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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작가 Jun 06. 2024

갑작스러운 고해성사

팜플로나는 축제 중

산티아고를 걷는 중 가장 많은 인파를 구경할 수 있었던 팜플로나 방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찌 보면 축제를 피하려다 가장 많이 몰리는 토요일 주말에 팜플로나에 도착했다.







2023년 9월 23일 팜플로 Albergue Jusue y Maria  체크인 1번 /11:58


나는 지저스 이 마리아 알베르게에서 1번 침대를 배정받았다.

줄줄이 콜롬비아 수녀님(그냥 수녀님이 애칭)과 페드로 캐시가 4번까지 배정을 받아 한 칸을 함께 썼다.

100킬로의 장신인 페드로가 이층을 배정받아 싸구려 침대에 올라가자 침대가 흔들거렸다.


나는 캐시에게 깔려 죽은 거 아니죠?

살아 있죠?

괜찮은 거죠?

농담을 하자.


캐시가 내일 목소리가 안 들리면 안 좋은 소식으로 알라고 했다.

하며 페드로와 캐시 그리고 우리는 박장대소를 했다.


텅 비어 있는 쇠 파이프로 만들어진 알베르게

이층 침대에 올라가 누워 보는 페드로는 튼튼하다며

싱긋 웃어 보였다.

침대는 그럼에도 잘 버텨 주었다.

아마 산티아고 길에 있는 알베르게 중에 최대 규모라고 얘기를 들었다.

우리 자리가 1번에서 4번이었으니 저기 끝에 빨래 방과 1.5층과 2.5층에는 샤워실과 화장실 그리고 3층에는 공용 주방까지 모두 오픈 형이라 위로 올라갈수록 소음이 심했다.


건물 자체가 큰 가벽으로 운동장에 세워둔 단체 야영장 같은 곳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짐을 풀고는 나는 여기 근방에 있는 “중국음식점”을 검색해서 그곳을 가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핸드폰 유심도 구매를 해야 한다.

큰 도시에 도착하면 도시에서만 할 수 있는 문명생활의 끈을 연결하기 위해 생필품 구매 등을 보완하기 위해 팜플로나에 왔다.


캐시는 나에게 아시아 음식을 잘 먹지 않지만 네가 소개해준다면 함께 먹어보고 싶다며 나를 따라와 주셨다.

보통 캐나다 분들이 친절하지만 고개를 숙이지 않는 분들이 많고 금방 친해지기가 어렵다.

그런데 캐시의 그 말은 첫인상의 도도함과는 다르게 따뜻한 말투가 경계를 허물게 해 주었다.


2시 이후에나 점심 식당이 오픈을 하니 나와 패드로 캐시는 식사할 곳을 찾아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콜롬비아 순례자분은 씨에스타를 가질 거라고 말하고는 잠을 청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몹시 허기진 상태였다.


숙소옆 축제준비중인 현지인


숙소 옆에선 대형빠에야 냄비에 빠에야를 만들고 있어서 알베르게에는 빠에야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인구감소시대라고 하는데 내가 느끼기엔 온 세상 사람들이 팜플로나 골목으로 꽉꽉 들어차서 진공관 베이스처럼 사운드와 공명이 느껴질 정도로 바깥소리가 숙소 안으로 울려 퍼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소음강도가 커졌다.


빠에야 냄새 때문인지 음식냄새가 사방에서 진동하면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었다.


엄청난 소음과 인파에 우리는 먼저 먹을 곳을 정하고 나가기로 정했다.


팜플로나는 큰 도시인만큼 선택권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가기로 했던 중국음식점은 축제인 오늘은 일찍 문이 닫혀 있었다.

나를 믿고 배고픔을 참고 따라와 준 페드로와 캐시에게 미안함이 올라왔다.

다들 배고픔을 못 참고 결국 캐시와 페드로는 타파스를 파는 Bar에 가서 식사를 하러 간다고 했다.


유십판매샵에서 유심 구매

스페인 유심칩/City Phone /movistar 100기가 유심칩 /15유로/12:58

 

나는 중국 음식점 근처 유심칩 판매소를 찾아서 들어갔는데 마침 주인이 중국 화교라서 나는 중국어로 오늘 상황을 물어봤다.


옆에 중국집은 오늘만 문을 닫은 건지, 원래 이렇게 자주 노냐고 하니 그렇지는 않지만 오늘 축제는 산페르민 성인 축전이라 아주 큰 축제이고, 중국 음식점은 이런 날은 일찍 닫는다고 했다.


이 중국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얘네 원래 이렇다는 듯 일상적으로 피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핸드폰 유심칩이 아직 끝난 건 아닌데 앞으로 걸을 곳들이 시골길이라 내가 9월 5일 자로 유심칩을 맞춰서 가져왔으니, 10월 5일 자로 사용이 가능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이 요청이 단번에 오케이가 난 것이 스페인에서 얼마나 행운이었냐면, 부르고스나 레온 심지어 바르셀로나에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유심칩을 해달라고 했을 때 몇 번을 귀찮아하며 거절을 당했다.


승차거부도 아닌 판매거부


외국인은 여권등록을 해야 선불폰 번호를 등록해야 하는데 조금 번거로운 과정이었다.


여기 대리점의 주인이 중국사람인 것이 나에게는 천만다행이었던 것 같다.

차라리 마음이 불안하다면 미리 한국에서 세 달 치 유심칩 세 개를 미리 구입하는 게 마음이 편했을 수도 있을 거 같긴 하다.


난 스페인 내에서 100기가짜리 모비스타 유심칩을

 15유로에 구입했다. 현지에서 사는 알뜰선불폰이 훨씬 저렴하긴 하다. 한국도 유럽처럼 더 저렴하게 통신망이 이용이 사용되면 좋을 듯싶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중국인들 매너를 욕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나의 경우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간 고생 많았다는 듯 일들이 수월 하게 풀려 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10월 중순에는 지인 작가님과 파리 여행계획에 함께 합류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산티아고를 마치고 10월 초중순경 파리로 돌아갈 계획을 하고 있었었다.

때문에 내가 이렇게 스페인에 오래 머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스페인과 이렇게 사랑에 빠지게 될 줄이야.

한창 식중독 걸리게 한 놈 욕하면서 아무것도 못 먹어 입이 댓 발 나와 혼자 화가 나있었는데 ㅎㅎㅎ


유심 구매 목적과 생필품을 살 목적으로 팜플로나에 들리면서 캐시와 페드로 그리고 조샙아저씨를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Kebabish Pamplona


그나저나 진짜 음식이 절실한데 크리스마스 전날 명동거리 같은 들뜬 분위기와 금요일 밤 이태원 핼러윈 파티 같은 인파 속에 생뚱맞게 생소한 스페인 음식점 찾기처럼 나는 팜플로나에서 갑자기 섬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페드로와 캐시는 페드로가 미리 알아놓은 타파스 바에 간다고 했으니, 나는 식사를 하고 싶어서 거리 인파를 뚫고 팜플로나 탐방을 시작했다.


30분 더 걸어가면 중국식 뷔페가 있었으나 이 인파를 뚫고 더 걸을 자신이 없어서 일찍 포기하게 되었다.

결국 근처에 있는 역시 축제날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케밥집에 들어가 케밥과 감자튀김을 시켜 먹었다.


케밥은 예전 유럽 여행 당시 정말 주야장천 도너 케밥을 먹었던 기억이 추억이 돋아서 며칠 만에 음식을 시킨 게 유럽식 패스트푸드였다.


기름진 거라 속이 넘어갈는지 모르겠지만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감자튀김만 겨우 먹고 케밥은 포장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산 페르민 성인 대 축제/ Fiesta San Fermin /팜플로나를 대표하는 축제로서 7월에 열리는 황소축제와 토마토 축제로 우리에게는 알려져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등장하여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스페인의 대표 축제이다. 매달 크고 작은 규모로 산 페르민을 기리기 위해 축제가 진행된다고 한다.


성인을 기르는 축제인데 분위기는 홍대 금요일 밤 같은 분위기에 개부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심지어 스페인 다른 지역에 사는 관광객과 유럽관광객 그리고 순례자들까지 뒤섞여서 심지어 개까지 뒤섞여서 밖으로 나와 술을 마시고 춤추고 타파스를 즐겼다.


음악단들도 관광객들과 훌리건들까지 뒤섞여 공연을 했다.



그나마 성인 축전인걸 알 수 있는 것은 성인 복장의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연신 찍는 정도?

이 정도는 스페인은 놀기 위해 명절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명절이 많았다.


심지어 이 명절이 스페인 명절 중에 하나였고, 지역축구팀 응원가에 담배냄새, 깨진 술병과 잔들이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어서 정말 시간이 지날수록 아수라장 같은 분위기였다.


 이 사람들 목소리 키우기 경쟁이라도 한 거 마냥 시간이 지날수록 한 여름의 매미들처럼 소음 데시벨이 좁은 골목을 타고 빠져나가지 못하고 거대한 자기장처럼 덩어리 치며 울려 퍼지는 듯했다.



유심을 구매 후 숙소 근처에 있는 중국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비상식량으로 컵라면과 봉지라면을 구매했다.

창문에서부터 한국 라면이 비취되어 있어서 나는 흔치 않은 기회를 잡아서 슈퍼 안으로 들어갔다.


 중국 우육탕면과 농심 순라면을 구매해서 의식의 흐름대로 어떻게 한국 라면을 파는지 중국어로 물어보니

한국인들이 많이 오니까 판다고 한다. 역시 중국인들 이럴 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일단 스페인사람들도 영어가 잘 안 통하고 중국어가 스페인어보다는 편한 나로선 필요한 물품을 떠나 말이 통한다는 게 속이 시원했다.

순라면은 한국에서는 팔지 않는 외국인들 전용 한국 라면이다.


한국인은 산티아고 길 참여 세계 순위 5위로 인기 있는 길이다. 고로 치이는 게 한국인이란 말이다.

도전 정신 강한 한국인들에게 도장 깨기 미션은 찰떡이다.


의지의 한국인은 여기서도 열심히 걷는다.


많이 참여하는 한국인들과 생활력 강한 중국인 화교들 덕분에 아시아 라면을 먹을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점점 많아지는 인파를 뚫고 겨우 숙소로 돌아왔다.

캐시가 숙소 침대에  앉아 쉬고 있었다.

나는 왜 숙소에 있냐고 물었더니 페드로와 간 곳은 술집이라 제대로 된 음식도 없고 정신이 없어서 그냥 돌아왔다고 했다.

그래서 아직까지 아무것도 먹은 게 없다고 했다.

보기에도 기운이 없어 보이셨다.


나는 캐시에게 뭐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냐고 물어보았는데, 캐시의 대답이 정말 정답이었다.!


제대로 된 음식


죄다 술집만 열려 있어서 앉아서 천천히 음식을 음미할 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다시 밖으로 끌고 나가 아까 인파에 쓸려 마을 구경을 하면서 봤던 시청 쪽으로 내려갔다.

마침 시청 행사도 끝나고 축제 행렬을 빠져나와 카페테리아와 고급 호텔들이 보이는 음식점들로 향했다.


나도 캐시도 허기가 진 상태였기 때문에 하얀색 파라솔이 펼쳐진 호텔 테라스에 앉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치고 인파에 치이고 음식에 대한 기대가 제로였던 상태였는데, 캐시는 팜플로나가 황소로 유명하다면서 그러니까 소고기가 유명하다고 말했고, 아까 침대에서 기운 없어 보이는 모습은 없어지고 햄버거를 시키며 눈이 반짝였다.

나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페인에 왔으니 상그리아를 꼭 먹어보라며 상그리아를 시켜 주셨다.


저기요…. 저 속이 안 좋아요~

와인을 마시면 속이 좀 편해질까요?


내 얼굴만 한 크기의 맥주잔에 상그리아와 호주에서 내가 처음 봤던 맥도널드 빅맥보다 큰 수제 버거의 문화 충격처럼 큰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가 우리를 맞이했다. (빅맥보다 큰 햄버거를 처음 봤음)


수제버거와 상그리아
Bar La Galea




나는 진짜 장담할 수 있는데 스페인 어딜 가든 소고기가 끝내준다는 것이다.

나와 캐시는 음식 취향으로 한마디로 통했다.


그때 이후 캐시는 나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속이 안 좋다던 나는 상그리아 한잔을 다 비우고 있을 때 캐시는 눈알을 굴리며 이탈리안 제스처를 취하며 빨리 한입 먹어보라며

나에게 먹어보길 권했다.


Sooo

Diliciloussssss

Best!!!!

Ever!!!


패티가 두꺼운데도 입안에서 육즙이 터지면서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역시 질 좋은 음식을 먹으니 부드럽게 넘어가는구나.


아까 케밥 먹을 때 기름져서 그런지 목에서부터 식도를 닫아버려서 먹질 못하고 그대로 뒀는데 말이다.

입은 거짓말은 못한다.


속도 안 좋고 먹은 것이라곤 감자칩이 다였다.

그러니까 빈속에 상그리아 500CC를 다 마셨으니,

한도초과로 나는 머리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숙소로 돌아가 자야겠다고 했다.

아까 익혀 놓은 슈퍼마켓을 안내하고 캐시와 더 필요한 물품들을 다 구매 후 나는 숙소로 돌아가 2시간 정도를 뻗어서 잠을 자버렸다.


한국시간으로 설정되있던 왓츠앱 시간대


여전히 축제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 보니 어느새 해가 어둑어둑 내려앉아 밤이 되었다.

왓츠앱에는 페드로가 뭐 하고 있냐며 톡이 남겨져 있었다.

하루종일 먹은 거라곤 케밥집에서 먹은 감자튀김과 상그리아와 햄버거 한입이 다였다.


나는 패드로의 톡을 보고 페드로가 있는 곳을 찾아가 저녁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3층 공유주방으로 올라가 보니 단체로 온 한국분들이 바글거렸다.

소주와 김치 그리고 라면포트까지 가지고 요리를 하고 있어서 한국 분위기로 주방을 점령한듯했다.


저녁 8시


나는 상황을 살피고 지금 당장 주방에서 요리를 먹을 자리도 없고 해서 일층으로 내려와 페드로가 있는 음식점으로 이동을 했다.


다들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이 사람들 계속 밖에 있었는데 하루종일 뭘 먹은 걸까?

안주도 많이 안 먹고 거의 술만 마시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페드로가 구글맵으로 공유해 준 BAR에는 유일한 한국인 친구 조셉 아저씨, 캐시, 패드로 그리고 패트리샤와 이안 아저씨가 계셨다.


이미 건아하게 일차를 끝내서 빈 잔들이 테이블을 가득 매웠다.

새로운 얼굴의 세명의 순례자와 흥겨운 분위기를 즐겼지만 나는 저녁을 먹는 게 우선이었다.

이분들은 이미 식사를 다 마친 상황이어서 나는 다시 저녁을 해야겠다고 말을 했다.


조셉 아저씨의 경우 팜플로나에서 알게 되었지만 푸엔테 라 레이나를 함께 걸으며 산티아고 끝까지 의지 할 수 있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리고 패트리샤와 이안 아저씨는 캐나다 경찰을 은퇴하고 오신 부부 순례자로 부르고스 전까지는 줄곧 마주쳤었던 것 같다.

항상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었다.


나는 캐시에게 저녁 식사를 하셨냐 여쭤 봤더니 아직 먹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숙소 주방에서 뭘 좀 해 먹을 거라고 했더니,

캐시도 간단히 뭘 먹어야겠다며 따라와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권유할 때마다 캐시는 항상 나를 지지해 주고 따라와 주었던 것 같다.



숙소에서 늦은 저녁 식사

숙소로 돌아와서 라면과 남은 케밥을 들고 주방으로 올라갔다.

아까 소란스럽던 분위기는 식사가 대부분 끝난 상황이라 우리는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상그리아 이후 위장이 소독이 된 걸까?

내 위는 완벽하게 이곳 스페인에 적응을 마친 듯 보였다.


제일 구석에 큰 테이블에서는 생장에서 만났었던 프랑스 히피 순례자들이 “프랑스”스러운 만찬을 준비하고 있었다.

와인과 샐러드 과일까지 아마도 요리하는 걸 보고 캐시가 점심때 먹은 햄버거 얘길 하면서 같이 밥을 먹자고 제안을 했다.


헤어밴드를 하고 다니던 네덜란드인은 플레르

프랑스 파리지앤드 마리


처음 생장에서 봤을 때 도도한 모습에 인사만 하고 지나쳤었는데 캐시 덕에 말을 트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앉아서 떠나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순례자들에게 그렇듯 늘 역시 길 이야기와 왜 길을 걷는지와 끝까지 길을 걷는지가 항상 화두이다.

이런 이야기를 교류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경직된 마음이 조금씩 스페인의 축제의 밤과 함께 녹아들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고해성사

와인과 샐러드를 함께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들이 오고 갔다.


플레르는 전에는 컴퓨터 관련 일을 네덜란드에서 했다고 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오면서, 여행을 업으로 살고 있는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오랜 시간 여행을 했고 프랑스 남부 쪽에 남자친구가 있어서 곧 그쪽으로 갈 거라고 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 한 사람을 만나 송두리째 바뀌는 게

인생은 어쩌면 한순간의 찰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나 역시 약간은 와인으로 누그러진 긴장과 분위기 그리고 코로나가 나를 바꿔 놓은 것들에 대해 동의하며 말을 시작했다.


맞아요!

저 역시 코로나가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당신을  어떻게 변화시켰어요?

라고 플레르가 물었다.


나는 갑자기 머리를 세게 부딪히는 것 같이 살짝 멈칫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렇게 깊은 얘기를 꺼내 놓게

 될 거라고는 아직 마음의 준비조차 되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하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고 기회가 다가왔을 때 앞으로 마음을 전진시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원래 아빠는 폐암으로 치료를 받고 계셨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걸리면서 합병증으로 돌아가셨어요.

산티아고를 걷는 초반에 정신없이 이곳의 분위기와 적응을 하느라 아빠 사진만 본 게 다였는데, 누군가에게 공식적으로 지인도 아닌 타인에게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말한 거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 안에 있던 아빠에 대한 마음의 짐을 해리포터의 “볼드몰트”라는 단어처럼 말 못 할 존재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말을 꺼내자마자 내 안에 있던 결계가 풀리는 것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마도 와인과 상그리아 술기운 분위기 그리고 팜플로나 축제의 소음이 더해져 그런 이야기들이 고해성사하듯 튀어나왔던 것 같다.

순례자들이 걸으면서 많이 울고 각성하기는 한다.

하지만 남들이 우는 걸 본 적은 없다.

플레르는 내가 지금 이렇게 우는 이유는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어서라고 했다.


아빠와 나는 10년 넘게 따로 살았어!

라고 했지만 아직 네 마음속에 사랑이 남아있어서 우는 거라니?


도도해 보이던 이 친구 역시 보이는 것과 달리 대화를 하고 나서 “천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기적절하게 나를 안내해 주기 위해 나타난 천사들 같이 느껴졌다.


내가 모두의 저녁식사를 방해한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나는 늘 아빠를 미워하고 원망했었는데…

침대에 돌아오고 갑자기 터져버린 눈물에 가슴이 저릿함이 몰려왔다.

꽁꽁 싸매고 눌러놓았던 속을 들킨 것만 같아 나는 침대에 누워 살짝 멍한 상태로 허공을 바라봤다.


내일은 다시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잠에 들려고 노력했으나, 팜플로나의 축제의 밤은 새벽 6시까지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다.


알다시피 유럽 건물들은 방음이 전혀 안 되는 데다가 알베르게는 오픈 강당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귀마개를 쑤셔 넣고는 겨우 눈을 붙였다.


내일은 푸엔테 라 레이나를 가야 한다.


 Buen Camino!


팜플로나 이동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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