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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작가 Jun 20. 2024

만나게 될 인연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


예로부터 칼릭스티누스 고사본은 이지점을 유럽 각지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이 합쳐지는 곳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투모넨세길, 레모비체길, 포디엔세 길이 스페인 국경을 지나 론세스바예스에서 하나의 길로 합쳐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스 솜포트에서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길인 툴르즈 길은 아라고누나바나를 지나 이지점에서 합쳐진다.

-부엔 까미노앱 자료 발췌-


길의 교차점 우리가 만나려 노력하지 않아도 언젠가 만날 지점에서는 만나게 된다.



이제부터 내리막


줄 곧 이어진 내리막길이 아주 쉬운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늘 하나 없는 더위를 피하지 않고 뚫고 걸어 나가야 했다.


우연히 조셉님과 나는 같은 숙소를 예약하게 되었고, 내가 옆에서 전화로 예약을 하는 것을 보더니

전화로도 예약이 되냐며 신기해하셨다.

대부분 전화 시도를 잘 안 하려 하기 때문에 이 쉬운 방법을 간과하듯 듯했다.


뭐랄까 페드로와 캐시처럼 끈끈해진 사이가 아니라 조셉님과 나의 사이는 당시 당근마켓의 거래를 위해 나온 판매자와 구매자 같은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게다가 일주일치 빨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조금은 머쓱하게 멀게 느껴졌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한국예절에 맞춰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외국인이면 오히려 “부엔 까미노”를 외치고 혼자 걷기를 하면 되지만 한국인들끼리의 대면 이후에는

끊어 내고 걷는 게 더 힘든 일이라 데면 데면한 상태로 걷기 시작했다.


페드로는 길을 벗어나 유서 깊은 성당에 들렀다 오겠다고 말하고는 길 후반에 다시 카미노 길에 합류했다.

도대체 그런 정보는 어디에서 가져오는 걸까?


숙소를 어디에 정했는지 물어보니 푸엔테 근처에 브라질 호스트가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머물 계획이라고 했다.


푸엔테에서 함께 저녁을 먹자고 말하고는 내리막을 함께 걸어가다가 숙소 방향으로 길을 꺾어 먼저 길을 내려갔다.


일단 너무 뜨겁게 덥고 내리막길을 가면서 물집이 불에 탄 것처럼 아려 왔다.

내리막을 디딜 때마다 무릎 쪽 뼈에 충격이 가해지는 느낌이었다. 정면으로 발을 계속 디디다 가는 내 도가니가 다 닳아 없어질지도 모른다.

정공법보다는 “게”처럼 옆으로 발을 디딛이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무릎 보호대가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푸엔테 라 레이나 앞 순례자 동상과 Jakue 알베르게


3시경

Puente La Reina Jauke Hotel 도착


정확히 말하자면 Puente la Reina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숙소였다.

푸엔테를 들어서는 입구부터 순례자 철제 동상이 우리를 안내했다.


내 생각에 말 그대로 Hotel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리셉션부터 따로 구비되어 있는 분위기가 이제까지 머물렀던 숙소들과는 퀄리티가 다르게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수비리의 숙소와 비슷한 급인데 규모가 조금 더 컸다.

알베르게 조개 마크를 확인하고는 안으로 들어가니

리셉션 안내 데스크를 안내해 주었다.


호텔 입구와 리셉션 데스크


입구에서부터 잘 정비된 있는 숙소가 맘에 들었다.

나는 전화로 예약을 했다고 하니 예약 확인을 하고는 혹시 저녁을 숙소에서 먹을 건지 물어보았다.

나는 처음에는 다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여기서 저녁을 먹겠다고 하고는 결제를 마쳤다.


조셉님:

같이 저녁을 안 먹어요?


나:

아직 모르겠어요!

우선 발 상태를 좀 봐야 할 것 같아요.

연락드리겠습니다.

쉬세요~


상태를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말하고는 나는 딜리버리로 보냈던 배낭을 들쳐 매고는 지하숙소로 내려갔다.


조셉님과는 방이 다른 방향이었다.

조셉님은 부킹닷컴으로 예약을 했는데 어떤 컨디션인지는 얘기를 나누질 못했다.

우리는 나중에 보자고 인사를 나누고는

나는 지하 방으로 내려갔다.



알베르게 숙소로 내려가는 문


스즈메의 문단속의 문제의 사다이진 석상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열자 커다란 나방이 순례자용 조개 문양 마냥 문 앞에 떡하니 자리 잡고는 앉아 있었다.  날개를 활짝 핀 나방을 아무도 치울 생각을 안 했다.


마치 “스즈메의 문단속의 사다이진 요석”처럼 치웠다가는 갑자기 날갯짓을 하면서 나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치우지 않으면 밟혀 죽고 말 것이다.


나는 밟히지 않게 옆으로 살짝 건드려 보았는데 기운이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숙소 방으로 가는 계단과 통로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면 식당과 빨래방이 왼쪽에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긴 복도식 알베르게 숙소가 나타났다. 딱 알아보기 쉽게 조개 모양과 화살표가 길을 안내했다.


방배정

카드키로 들어가는 방으로 들어가니 안나가 있었다.

안나와 최근에 대화에서는 우리가 이 숙소에서 만났던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이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안나는 육인실 방 안에 가운데 1층 자리에 있었다.

나는 맨 오른쪽 문쪽 창문이 있는 이층 침대에 자리를 잡았다.



방은 6인실 도미토리 룸으로 방안에는 샤워실과 화장실 드라이룸이 배치되어 있다.

꽤 프라이빗한 공간을 고른 것 같아 맘에 든다.

게다가 켜서 보진 않겠지만 텔레비전까지 있다니!!!!


나는 땀에 절은 옷을 벗고 빨리 샤워를 하고 싶었다.

뜨거운 직사광선 때문에 머리가 익은 것 같아 마음 같아선 수영장이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뛰고 들고 싶을 정도의 날씨였다.


빠르게 샤워실로 들어가 씻고는 침대 위에 짐을 풀어놓고 내 발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드라이어기까지 있다니!!!

감동~~


스페인 종이 테이프

물집 집도 첫 수술

이층 침대로 올라가 발을 확인해 보니 왼쪽 새끼발가락과 엄지에 생긴 물집에 이어 오른발 뒤꿈치에 큰 물집이 가득 차 아주 실하게 여물어 있었다.


뒤꿈치에 불이 나는 것 같이 아팠던 이유가 이거였다.

사실 뒤꿈치에 생긴 큰 물집 같은 건 알아서 터질 수 있게 둬야 한다고 한다.


내가 뭘 알았겠는가?


그저 물집이라면 다 터뜨려야 하는 줄 알고는 죄다 터뜨려 댔으니 발이 아주 화가 크게 났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의료 용품을 많이 가져갔다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한국에서 가져갔었던 종이테이프도 끝이 보였다.

안나는 약국에 가면 이런 테이프가 판다며 제품을 보여 줘서 나는 사진을 찍고는 다음에 약국이 보이면 꼼삐드를 추가로 더 사면서 사야겠다 생각했다.


빨래 말리기

수술집도를 마치고 프런트에  빨래 말리는 곳의 위치를 물어보니 건물 뒤쪽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야외 테라스 맥주를 마시는 휴식처 뒤편으로 돌아서 절뚝거리며 빨래를 들고나갔다.


입구 쪽 자리에 실비가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인사를 하고는 빨래를 뒤편에 널고 오겠다고 말을 했다.



숙소 뒷편의 빨래 건조 하는 곳


실비는 언제나 보면 지친 기색 없이 잘 걷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경찰공무원이었으니까 체력적으로는 뛰어났던 걸까?


실비 역시 내 발을 보더니

아이고~

이 작은 발이 아주 난리가 났네~

라고 말하며 안쓰러워했다.


나는 저녁을 먹기로 했던 것이 마음이 바뀌어서 실비에게 인사를 건네고 리셉션으로 돌아가 저녁 식사 예약을 취소하고 싶다고 말을 했다.

큰 숙소일수록 좋은 것은 카드가 다 된다는 것이었다.


숙소 포함 저녁 취소 영수증


숙박비와 저녁비용 포함 39.50유로에서

저녁 취소 비용: 19.50유로

숙박비 20유로만 계산됨


산티아고 좀비

카드 결제 취소를 한 후 벽을 붙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을 디딜 때마다 터진 물집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이쯤 되면 웬만한 순례자들 걸음걸이가 다 이상해지긴 했었다. 다들 크고 작은 근육통과 물집까지 겹쳐서 다들 어기적 거리며 천천히 근육들이 부딪히지 않게 아주 조심조심 발을 내딛듯 걷는다.

걸음걸이만 봐도 순례자인지 관광객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이다.


겨우 계단을 내려와서 빨래방과 식당을 돌아보고 있었는데 계단에서 익숙한 얼굴 둘이 계단 벽을 부여잡고

내려오고 있었다.


베로니카와 아담 부부였다.


게다가 이 숙소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베로니카는 오늘 있었던 썰을 빨래방 앞에서 풀어놓기 시작했다.

빌라바 전에 보고는 못 보는가 했었는데 아는 얼굴을 만나니 반가웠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들처럼 대화를 신나게 했다.

이 부부는 푸엔테 전 도시서부터 몸이 아파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빨래방 앞에서 우리는 시끄럽게 수다를 떨었다.

사실 앞쪽이 다 숙소라서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면 안 되는데 우리는 반가움에 그 사실을 망각해 버렸다.


이 부부가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 예약을 확인했는데, 예약이 안 돼 있었어서 굉장히 당황스럽고 멘탈이 나가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동공이 확장되며 미국인 특유의 과장된 제스처를 하면서 황당한 상황을 재현했다.


다행인 건 지배인은 차분하게 2인실 프라이빗 룸이 하나 남아 있다며 혹시 괜찮겠냐고 물어봐 줘서 당연히 괜찮다고 말하고는 좋은 방 배정이 돼서 다행이라고 했다.


여행지에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서 늘 전화와 왓츠앱으로 확인을 거쳐야 한다.


우리는 길 초반 내가 식중독에 걸려 길을 걸을 때 그리고 베로니카네 부부가 숙소 해프닝까지 같은 숙소를 거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몇 번을 마주쳤지만 사실 연락처를 주고받지는 않았었는데, 우리는 이제야 연락처를 왓츠앱으로 공유하게 되었다.


마침 맥주를 다 마시고 내려온 실비와도 함께 인사를 나누다가 식사를 물어보니 실비는 숙소에서 저녁을 먹을 거라고 했다.


나는 숙소와 1킬로 정도는 떨어져 있는 마을이 궁금해져서 방에 들어가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다시 나왔다.


베로니카와의 대화창 그리고 함께 걷는 커플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길을 걷다가 멀리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오는 베로니카 부부가 보였다.

마을로 가는 입구에는 Iglesia de Santiago 천주교 성당 풍경과 맞은편에는 시장 풍경이 펼쳐졌다.


곧 다가올 추석까지 맞물려 달이 휘영청 차오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해가 늦게 지는 이곳에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푸엔테 중심가로 가는 길


마을을 향해 걸으며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데 베로니카에게 연락이 왔다. 식사는 어떻게 할 거냐고 하길래, 나는 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괜찮으면 같이 먹자는 내용의 문자였다.


길 목에서 다시 만나서 페드로와 조셉아저씨가 먼저 만나서 술을 마시고 있는 음식점으로 가기로 했다.



페드로와 조셉님이 저녁을 먹던 장소



페드로와 조셉 님이 있는 음식점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차 있던 상태였다.

팜플로나와 함께 성축일을 푸엔테에서도 축제가 이어지고 있었는지 음식점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어떤 사람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음식주문을 못 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하고 합석을 했지만, 나는 배가 너무 고픈 상태였다. 양해를 구하고 아까 처음에 봤던 테라스가 있던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날 역시 무슨 인간 탑을 쌓는 행사와 축제를 했다고 한다. 골목 사이로 노란 노을빛이 아름답게 지고 있었다.


배가 고프니 빈혈 증세가 나타나 뭐라도 빨리 입에 넣고 싶었다.

우리는 아까 페드로가 있던 음식점에서 음식주문을 시도했었으나 술 말고 음식은 팔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베로니카와 아담에게 술을 마시겠냐고 물어보니 술보다는 식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베로니카와 아담이 나를 배려해 주는 모습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아담:

너 되게 절박해 보였어!


나:

맞아! 나 빈혈 있어서 굶으면 안 돼!


첫 만남부터 우리들은 잘 맞긴 했었다.

옮긴 음식점에서도 자리가 없어 결국 테라스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낮에는 그렇게 더웠는데 해가 지고 나니 날씨가 쌀쌀했다. 옷을 얇게 입고 와서 실내로 들어가서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었서 별도리가 없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메뉴를 보는데 옆테이블 사람들이 먹는 샐러드가 맛있어 보였다.


나: (속삭이며 ) 저 샐러드 맛있어 보인다.


우리가 계속 쳐다보니 눈이 마주쳐서 스페인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 샐러드가 메뉴에 있는 거냐고 물었다


옆테이블 스페인 사람: 이거는 메뉴에 없어요.

그냥 베이컨 시져샐러드를 주문하면 돼요.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식당 안쪽에 혼자 파스타를 먹고 있는 폴란드 순례자 시몬이 보였다.

니는 식당으로 들어가 인사를 한 후 다시 돌아왔다.

베로니카와 아담도 얼굴을 알고 있는 사이라 했다.


제대로 된 인사

우리는 이제야 제대로 통성명을 했다.

베로니카와 아담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고

삼십 대 후반의 나와 비슷한 연령대였다.

또래가 귀한 순례길이라 더 반가웠다.

하지만 비슷한 또래는 말 안 해도 말하는 걸 들어보면 알 수 있기는 하다.


신인류라고 말할 만한 노마드였는데

여행트레일러 RV캠핑카를 팔고, 방송 대본도 쓰고, 현재는 “노마드”로 살고 있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세계적으로 비혼문화 확산과 나에게도 왜 결혼을 안 하는지 등등 우리는 정말 별별 이야기를 다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보기 힘든 유형이라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우리는 늦게 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다가 아홉 시가 넘어서야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한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사실 일찍 움직여야 하는데 먹고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우리는 내일 걸을 사람들이란 걸 잊은 채 잠시 긴장을 저녁을 즐겼다.


숙소로 돌아와 부랴 부랴 숙소 뒤편에 빨래를 걷고는 무서워서 후다닥 뛰어서 숙소 방으로 돌아왔다.

숙소는 마을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있었으니 숙소의 조명 불빛과 달빛 말고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방에는 일찍 다들 짐을 풀고 자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알베르게는 아홉 시만 돼도 문을 걸어 잠그는데 호텔이라 통금시간이 없으니 우리도 신경을 안 쓰고 놀다가 늦게 돌아오게 된 것이다.

핸드폰 불로 화장실에 가서 얼른 씻고는 침대 위에 누워 내일 길을 살펴보았다.


푸엔테 라 레이나 지도 이동경로


내일은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에스텔라 까지 21.9km를 가는 길이다.


긴 하루를 보내고 오래간만에 깊은 잠에 들었다.

내일의 에스텔라를 위해


Buen Camino!


에스텔라 가기전 푸엔테에서 쓴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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