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텔라 가는 길
푸엔테 라 레이나를 떠나며 몸의 상태를 파악하다 보니 마음만큼이나 몸 역시 이곳에 발을 담그고 온전히 길을 걷는 걷기의 시작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2023년 9월 25일
나는 푸엔테에서부터 일찍 일어나 걷기를 하는 하루 루틴을 포기했다.
아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어제 뒤꿈치에 생긴 물집을 터뜨리고는 빨리 걸을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험한 길은 아니었지만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다 보니 발이 나을만하면 다시 물집이 생겼다.
그래서 나의 몸 상태를 보면서 하루하루의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7시 기상 8시 17분 출발
아주 천천히 움직였기 때문에 창문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들어올 때즈음 느지막이 눈을 떴다.
6시부터 일찍 움직이는 순례자들이 방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는 마지막으로 안나가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방을 싸고 8시가 되자 모두가 나가고 방에는 나 혼자만 남았다. 분주했던 순례자들의 소란을 뒤로하고 잔잔한 공기가 고요해졌다.
하루 전날 식당에서 베로니카와 아담 부부와 산티아고 일정을 물어보며 다음날 일정을 체크했었다.
순례자에게 가장 중요한 숙소 문제가 항상 큰 화두였고, 어제 숙소를 공유해 줬었는데 이름도 콕 기억에 남는 “카푸치노”라는 이름의 숙소였다. 아주 유서 깊은 알베르게라는 말을 듣고는 나는 그곳에 머물러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예약을 하는 노하우가 생기며 나의 일상에도 여유가 생기게 된 듯하다. 여전히 발은 뜨겁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길을 걸었다.
천천히 걸으며 마주친 인연들 역시 느리게 걷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해가 지기 전에 걷는 것이 중요하다.
아침 카페 8시 36분
해가 뜨고 나서 천천히 길을 걸어 마을에 일찍 문이 열린 Taberna Punete에 들어 아침 카페 콘 레체와 나폴리티나빵으로 식사를 했다.
천천히 아침을 즐기는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는 지금 이 순간이 여유로웠다.
좁은 빵집 테이블에서 모두가 합석해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나는 성당을 빠져나오는 안나와 마주쳤다.
안나:
여기 안에 성당을 너는 분명 좋아할 거야.
꼭 보렴.
꼭 보라고 말한 후 바람처럼 사라졌다.
성당으로 들어서자 예수상이 소박하게 서있었다.
오늘 하루 무사히 길을 걷게 해 주세요.
성당을 빠져나가기 전 예수상을 보며 눈을 감고 잠깐 길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스페인의 화려한 성당 디자인이 다른 외관과는 다르게 이 사람들에 엄청 가톨릭을 중요시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Puente romanico de Puente la Reina
다리로 푸엔테 라 네이나를 빠져나왔다.
길에서 마주친 베로니카 역시 물집으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푸엔테를 지나 두 번째 도시 Manẽru에서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을 거라고 했다.
우리는 에스텔라로 가는 내내 업치락 뒤치락하며 계속 다시 마주치게 됐다.
그렇다고 굳이 같이 걷지는 않았지만 이 길 내내 자주 마주치며 재미난 추억을 많이 만든 것은 사실이다.
스티브와 에스페란자
스티브와 에스페란자를 알게 된 것은 빌라바를 가기 전부터로 추정된다.
우리의 카미노에서의 추억은 길 초반 에스텔라로 가는 길에서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길을 걷는 호흡과 취향이 맞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길가에 널려 있는 자두와 와이너리 근처에 있는 포도밭의 포도를 따먹으면서 우리는 아침을 해결할 정도로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사실 먹으면 안 되지만 운이 좋지 않아 주인에게 걸린다면 당연히 돈을 내야 하지만 눈치를 살금살금 보고는 배를 채우는 것이 순례자들에게 쏠쏠한 재미랄까?
물을 마시면 소변으로 배출된다. 하지만 과일은 수분 보충과 에너지원으로 작용을 한다.
우리는 입술이 보라색이 되도록 포도 알을 한 움큼 입에 넣고는 주변 눈치를 보며 키득 거렸다.
걸리면 그간 주인이 손해 본 것들까지 물어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이 커플이 재밌는 것은 처음에 나는 이 둘을 부부로 오해했지만 알고 보니 부부가 아니었다.
스티브는 캐나다계 필리피노이고 에스페란자는 미국계 필리피노 이민자였다.
나는 이들이 걷는 길을 대하는 여유로운 자세가 맘에 들었다.
하루에 30~40킬로미터를 기록 경신하듯이 길을 걷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걷는 길에 이제 추수를 마치고 산더미 같이
짚풀들이 3층 높이 건물 정도로 쌓아놓은 풍경에 절로 감탄을 쏟아 댔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나 고흐의 “추수하는 사람들”이 생각나는 풍경이 펼쳐졌다.
Cirauqui
Cafetería Zirauki
여기서 나는 이른 점심을 먹었다.
마을 중심에 있는 작은 슈퍼마켓이었는데 테라스가 크게 되어 있고, 순례자들이 앉아서 많이들 쉴 수 있는 고즈넉한 작은 마을이었다.
혼자서 천천히 걸으며 아침시간을 즐기기 좋았다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스페인 음식으로 인스턴트 빠에야를 먹었다. 조금만 참았다면 제대로 된 음식점에서 빠에야를 먹었을 텐데 조금은 이른 점심을 먹고 땀을 식혔다.
익숙하게 이곳의 마스코트인 큰 개가 테이블에 앉은 내 앞에 와서는 무언가를 바라듯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익숙한지 도망도 안 가고 아주 순했다.
지도에서 이곳을 직접 찾는대도 어렵지 않았던 이유는 이 누렁이 큰 개 덕분이다.
순례길에는 개들이 참 많은데 아직까지 위험하다거나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행복 버스 ; DOPPELLECKER CAFE
빠르게 길을 걸었다면 아마 순례길 중간에 떡하니 서있던 이 버스를 아마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번역앱을 돌려 버스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면
나의 미션: 행복하기!
1960년 스타일의 오래된 버스를 개조해 카미노 일대를 버스로 순례 중인 이 버스의 이야기를 알 수 있었을까?
주인장인 독일인 부부의 친절한 응대에 우리는 길 위에서 감동을 받을 만큼 만족스러워했다.
주인장은 얼음이 구비되어 있다고 해서 나는 그러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되는지 물어봤다.
유럽에서 찾기 어렵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처음으로 주문하고 더위를 달랬다.
특히 이런 시골길에서 “아. 아”를 주문하다니
감지덕지였다.
주인장: 진짜로 에스프레소에 물과 얼음만 넣어서 먹어도 괜찮겠니? X 3번
주문을 계속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한국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겨울에도 마실 정도로 좋아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 뜨거운 태양아래서 마시는 “아. 아” 는 사막 위의 오아시스처럼 정말 꿀맛이었다.
냇가에서 발 담그기
작열하게 뜨거운 길을 걷다 마주한 냇가에 흐르는 물이 뛰어들고 싶게끔 시원해 보였다.
유튜브에서 순례자들이 더운 여름 길을 걷다 더위와 근육을 식히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길을 걸을 때 꼭 저기 물가에서 발을 담글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순간은 생각보다 금방 다가왔다.
무거운 가방과 뜨겁게 달궈져 올라오는 땅의 열기에 우리는 냇가에서 길을 멈춰 섰다.
화장실도 갈 겸 옆길로 빠져 개울가에 발을 담그고 잠시 열을 식혔다.
아담은 머리에 물을 끼었었다. 유럽은 절대 개울 물을 식수로 쓰면 안 된다. 그냥 끼얹고 식히는 정도가 적당하다.
한국에서 순례길을 준비하며 집 앞 둘레길을 걸을 때도 나는 걷기보다 물에 발 담그는 재미로 연습을 했었다. 카미노에서도 이 재미를 소소하게 누릴 수 있다니 더 신이 났다.
아담과 베로니카 역시 잠시 냇가 앞에 앉아 열을 식히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까도 말했었지만 베로니카 역시 발 상태가 좋지 못해 에스텔라 숙소에 이미 짐을 보낸 상태였고,
근육 테이프를 미터로 끊어서 가져왔는데 이제 거의 없다면서 그냥 다 들고 올걸 후회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우리는 자주 길에서 마주쳤다.
이른 점심 이후 전문 빠에야 집이 나타났다.
베로니카와 아담은 당연히 밥을 먹고 갈 거라고 했고, 나는 그냥 길을 떠났다.
함께 길을 걷지만 늘 얘기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그저 조용히 걷고 싶을 때도 있고 우리는 모두 한 곳으로 걸어갈 뿐이다.
함께 걷더라도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걷는 게 중요하다.
걷기 챌린지
길을 혼자 걷고 있을 때 우연히 마주친 한국청년이 있었다.
이 친구는 2번째 까미노라고 했다.
하루에 평균 30킬로미터를 걷고 있다고 했다.
인사를 하고 걸으면서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40Km를 걷는 중이라나?
하루에 평균 30~40km를 걸으려면 얼마나 빨리 걸어야 할까?
한국의 속도로 빠르게 걷고 있는 저 청년을 보며 우리 한국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두 번이나 이곳에 와서 걷고 있는 저 청년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걷고 있을까?
나는 이 길을 챌린지 하기 위한 정복의 도구로 삼은 것은 아니지만 쌩하고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경쟁심에 가끔 불이 붙곤 했었다.
잠깐의 대화를 나누곤 이 젊은 청년은 빠르게 나를 지나쳐 갔다.
수로
아름다움 풍경이 펼쳐질 때면 꼭 신기하게도 에스페란자와 스티브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늘 도대체 몇 번을 마주쳤는지 나는 내 뒤꿈치 물집 때문에 절뚝이며 다시 인사를 했다.
앉아서 발을 담글만한 수로가 나타났다.
말레이시아 무리들은 수로가 지나가는 길에 다들 모여서 민트향을 마시며 쉬고 있었는데, 피레네 산에서 만나고 오랜만에 보는 듯했다.
수로 주변에는 애플 민트가 지천에 피어서 향기로운 향이 기운을 북돋았다.
나와 스티브는 양말을 벗고 누가 짠 것도 아닌데 수로에 앉아 발을 담갔다.
잘못해서 수로에 빠지면 허리까지는 빠질 정도로 깊은 수로였다.
말레이시아 단체 순례자들은 우리가 신기했는지 한참을 서서 우리를 구경을 했다.
근처 공원을 산책하던 검정 래브라도 레트리버 강아지 주인도 개를 수로에 집어넣고는 몸을 식혀 준다.
내 발 상태를 본 스티브는 밴드와 약 몇 개를 더 챙겨 주셨다.
스티브: 붙여놓은 꼼삐드가 떨어지려고 해.
이걸로 붙여!
나: 발에 구멍이 났어요. 허허허
스티브는 말이 많은 분은 아니지만 큰오빠같이 의지가 되는 분이었다.
발에 아무 문제 없이 걷는 순례자들도 많지만 뭐 이런 상황에서 해결하며 걸을 뿐이었다.
덕분에 이렇게 잠시 잠깐씩 발을 담그고 대 자연과 교류하며 나는 조금씩 치유되어 가고 있었다고 느낀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기억의 조각이 쌓여 나에게 에스텔라로 가는 길은 발이나 온몸의 근육통의 고통보다 소소한 즐거움의 기억들이 곧곧에 허브 향기처럼 퍼져 있다.
여전히 그때 당시 길을 걸은 기억을 하면 즐거워질 정도로 말이다. 내가 다시 돌아가서 길을 걷는다고 이런 즐거운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이곳에서 민난 사람들과 함께 나도 모르게 치유되어 가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에스텔라로 입성했다.
카푸치노 알베르게는 마을에서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고, 북적이던 길을 뒤로하고 에스텔라로 들어가는 길은 혼자서 차분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듯이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어서 좋았다.
이제는 익숙하게 전화로 예약을 하고 숙소로 가는 길이 어색하거나 조급하지 않게 말이다.
등이 땀에 다 젖었다.
신발을 벗어 놓고 방에 들어가 어서 씻고 약국도 가고
저녁도 먹고 싶다.
지치고 힘들지만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이 더 크게 감동으로 온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