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레떼 가는 길
카미노에서 만나는 다양한 경험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과 다른 이들과 이 길을 즐기며 울고 웃으며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브엔 까미노 앱 중 산티아고 순례 명상 35단계 중 3단계 순례자의 기도를 내 식대로 변형해서 하기 시작한 기도 (명상에 대한 자세한 내용: 복음과 함께 산티아고 걷기-안토니오다노스 페르디난데스)
밤중 비아나에서 남아공 부자의 이중주 코골이가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알토음과 아들의 베이스음으로 골아대는 버라이어티 한 아카펠라에 베이스음이 귀마개를 뚫고 내 신경을 건든다.
몇 번을 경험하였으나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침낭과 베개로 머리를 파묻고는 내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잠이 들기를 기다려 주는 것 말고는 이 육체로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다.
새벽 2시
자연스럽게 잠이 든 듯한데 다시 고막을 찢을 듯 코 고는 소리에 잠이 깨버렸다.
자다가 불편했는지 귀마개 한 짝이 빠져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아 불안감이 찾아왔다.
여분의 귀마개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나: 모든 걸 다 붙잡고 대비할 수는 없어(생각)
나는 깨버린 잠을 더 잘 생각이 없어져버려서 이층침대를 내려와 화장실로 향했다.
잠이 덜 깬 몸뚱이를 이끌고 이층을 내려올 때 납처럼 무거워져 성난 근육들을 끌고 걸어야 하니 죽을 맛이다. 어기적 거리며 최대한 소리를 안내고 침대를 내려오고 싶었으나 싸구려 철재 침대는 삐그덕 소리가 고요한 공기들 사이로 울려 퍼진다. 까치발을 들고 최대한 조심조심 밖으로 나와 핸드폰을 추가로 충전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언제 그렇게 더웠을까 싶을 정도로 해가 떨어지면 찬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온다.
칠흑같이 어두운 하늘에 별들이 콕콕 박혀 있다.
내일이면 한국은 추석이다.
아침길을 걸으며 시간이 여유가 있다면 한국에 전화통화를 한번 해야겠다 생각했다.
새벽 6시
역시나 숙소에서 가장 빠른 시간 남아공 부자는 기상해서 길을 떠났다.
도미토리의 특성상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 순으로 모두 잠에서 깨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나는 남아공 부자가 떠난 자리에 내 짐을 내려놓고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밤새 못찾았던 귀마개 한쪽이 침대 바닥 구석에 떨어져 있었다.
나:휴~
하갈 언니가 잠을 잘 잤는지 모르겠지만 타월로 가려 있던 커튼이 걷히고 밖으로 나왔다.
이때가 거의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언니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어제 부엌 냉장고에 쟁여두었던 요거트와 먹다 남은 샐러드를 조금 먹고 아침을 때웠다.
0층 계단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스웨덴 순례자가 핸드폰이 충전되길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 빠져나간 숙소에 마지막 손님이었다.
험상굳은 호스트 얼굴을 보기 전에 빨리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침 카페 Cafeteria El Portillo
골목을 쭈욱 빠져나오면 맞은편에 바로 카페테리아 겸 호텔 바가 열려 있다.
Palacio de Pujadas by MIJ를 내려오는 사람들 얼굴은 숙면을 취한 듯 밝게 인사를 건넨다.
아침 메뉴로 크루아상&카페 아메리카노를 먹었다.
가격: 3.4유로
카페 문 앞에선 이탈리아 지안 아저씨와 스페인 여자사람 친구가 담배를 피우고 출발 인사를 건넨다.
이곳 스페인에 와서 가장 행복한 것 중 하나가 어딜 들어가 커피를 마시건 커피와 빵을 평하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작은 행복이었다. 그래서 배고프지 않아도 카페를 보면 무조건 더 휴식을 갖기 위해 들어가 한 모금을 적신다.
함께 걷기
지도를 보면서 걷지만 디테일한 출발길은 마을을 빠져나올 때 한참 길을 헤맬 때가 종종 있다.
세 개의 카미노 앱에서 안내하는 길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구글 지도로 찾아가며 도시를 빠져나와야 했다. 왜냐히면 순례길은 정확한 답이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 정비가 잘 되어 있는 도시들의 경우 입출구에 고속도로가 있어서 순례자들에게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무겁게 짐을 메고 걷고 있는 우리를 약 올리는 듯 쌩하고 지나가버린다.
길 초입 영국 순례자 헨리가 짐 없이 혼자 걷고 있었다.
나와 하갈은 비아나를 빠져나오는 길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걷기 시작했다.
Ermita de Cuevas
거리:비아나에서 2.8km
마을의 역사와 산티아고 순례길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를 구경하고 있었다.
로스 아르고스에 함께 숙소에 머물렀던 이스라엘 가족과 핸리가 벽화를 구경하며 순례길을 그려놓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갈은 왜인지 그곳에 안 끼고 한참 멀리서 작품을 구경하다 조용히 그곳을 먼저 빠져나왔다.
나중에 조용히 얘기하길 이스라엘인들은 이스라엘 사람인 것을 말 안 해도 서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생김새, 옷차림, 제스처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건 한국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언니는 지금 여행을 온 거라 자국 사람들과 말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걷고 싶다고 했다.
(이 사람들도 똑같네)
그런 생각을 하며 나 역시 지금 걷고 있는 동안 한국어를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넋 놓고 벽화를 구경하다 하마터면 내 아티+스틱(지팡이)을 낮 두고 길을 떠날뻔했다.
이스라엘과 한국
한국과 이스라엘 문화는 꽤나 비슷한 구석이 많다.
계급 중심의 군대 문화라던가 강한 생활력까지 다른 문화권임에도 얘기를 할 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는 부분이 많았다.
우리는 길을 걸으며 포도밭을 지나갔다.
나는 넌지시 조심스럽게 이곳 산티아고에서 포도를 따먹어 봤는지 물어봤다.
언니는 진지한 표정으로 부모님이 농부라서 남의 농산물은 손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풀들에 대해서도 꽤 잘 알고 있었서 재밌게 얘길 나누며 지루하지 않게 길을 걸었다.
나는 한참 이전 길에서 서리해 먹었던 과일들과 자연에 널린 열매 얘기 풍요롭고 비옥한 스페인의 땅얘기를 하다가 주변을 산책하던 스페인 주민 아저씨가 우리가 관심을 가지던 열매를 가리키며 어떻게 먹는 건지 설명을 해주셨다.
우리는 아저씨를 보내고 키득 거리며 웃어댔다.
하갈: 함부로 먹으면 탈 난다잖아 ㅋㅋㅋ
나: 그래서 배탈이 난 건가?
근데 지금은 뭘 먹어도 무적이 됐어요. ㅋㅋㅋㅋ
너무 재밌는 거 같아요. 지금 상황
뜨거운 태양에 함께 맞춰 걷던 발걸음이 서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음도시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왓츠앱을 교환했다.
하갈언니는 발이 조금 뜨겁고 아프다고 했었는데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순례자들은 몸의 변화를 틈틈이 스스로 살펴보아야 한다.
작은 부상이라도 방치하다가 병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혼자 걷기
다시 길을 혼자 걷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언덕을 오르내리고 아름드리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혼자 걷는다는 것의 장점이 이런 거지!
아무 때나 내 맘대로!
그래도 여태껏 함께 걸었던 사람들 중에선 가장 차분하고 잔잔하게 걸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이 길에서 만나기를!
초반에 만났던 에스페란자, 스티브, 베로니카, 아담 모두 미국 사람이었네?(스티브는 알고 보니 캐나다인이었다)
이 사람들 얘기를 뜬금없이 지금 하는 이유는 곧 도착할 도시 Logroño라는 도시에서 Leon까지 오늘 기차를 타고 구간 점프를 할 거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혼자 걸을 때는 정말 별 생각이 다 올라오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현재 어디 있는지 소식을 물었다.
이들은 로그로뇨 기차역에서 모두 모여 함께 레온까지 갈 예정이라고 했다.
함께 활짝 웃으며 찍은 기념사진까지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를 인연 앞에 아쉬움이 앞서왔었다.
함께 레온까지 점프를 해버릴까 충동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들과 나의 길은 엄연히 달랐다.
우선 나의 첫 목표인 200km를 채우고 나서 다음을 생각해 볼 생각이다.
죽겠네 죽겠네~
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나는 나를 더 지켜보고 싶었다. 그리고 등 돌리고 10년가량을 방안에만 콕 박혀 있던 내 안의 내면아이와 나는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200km까지는 Burgos라는 도시까지는 걸어야 한다.
초반 길의 종착지인 그곳까지는 게다가 며칠 안 남았으니까.
로그로뇨를 가는 길은 혼자 걸었지만 지루 하지 않을 만큼 녹지와 호수가 잘 조성된 공원길을 지나 다리를 건너갔기 때문에 꽤나 즐거운 길이었다.
로그로뇨는 팜플로나처럼 역사가 깊고 규모가 있는 도시였다. 필요한 생필품이나 아시아 음식을 먹고 싶다면 꼭 들러서 쉬었다 가겠지만 나는 배앓이 이후에 아시아 음식은 머리에서 조차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위장으로 변신하여서 사람이 많이 붐비는 그냥 이곳을 지나갈 생각이었다.
로그로뇨 마을 입구에서 말을 타고 로그로뇨를 관통하는 순례 체험객들을 만났다.
팜플로나나 큰 도시를 지나다 보면 종종 마주쳤었는데 나이 든 말들의 힘겨운 행진이 아니라 건장한 젊은 말들과 말위에 타고 다리를 건너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자니 보는 내내 눈이 휘둥그레 해질 정도로 멋진 광경이 펼쳐졌다.
실제로 말을 가까이서 보면 정말 대형동물이라 할 만큼 크고 멋짐이 뿜어져 나온다.
에브로 강을 지나며 강 풍경을 담고 드디어 로그로뇨에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즈음 도착한 것 같다.
말 행렬의 말발굽 소리라 또각또각 더 경쾌하게 로그로뇨라는 도시에 입성한 것을 환영하는 듯 로맨틱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도시였다.
개인적으로 도시에 도착한 표시로 각 지역의 맨홀 뚜껑을 밟으면 그곳에 도착했다 기준을 삼는 편이라
나는 다리를 건너 만난 첫 맨홀 뚜껑을 기념품 챙기듯이 사진으로 남긴 기억이 있다.
다리를 건너며 보였던 풍경은 강가 앞에 산책하는 사람들과 누워서 여유롭게 누워 있는 풍경이 나는 이곳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팜플로나가 진격의 거인이 생각나는 성곽이 둘러싸인 곳이었다면 이곳 로그로뇨는 공원에 둘러 쌓인 마을 같은 분위기였달까?
꼭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비밀의 정원처럼 아름다웠다.
아직은 오전 시간이었기 때문에 도시에는 순례자들이 떠나가거나 혹은 도착한 사람들 외에 아직 상점들도 문을 열지 않은 분위기였다.
마을을 관통해 나가는데 순례자들 모두 헷갈려하며 지그재그로 헤매며 길을 빠져나갔다.
안나
안나와 로그로뇨 길 어딘가에서 마주쳤다.
나는 미술 조각상이 보이는 곳이었는데 음…
그런데 왠지 어색했다.
아마도 로스 아르고스 때 숙소 예약 사건 해프닝 이후 그렇게 된 듯했다.(어쩌면 미안함 감정 때문에 내가 한 발짝 앞으로 멈칫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미안함과 고마운 감정이 만감이 교차해서 다시 인연이 된다면 좋은 만남이 이어지길 기원했다.
길에서 자꾸 마주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걷는 스텝이 비슷하거나 취향이 비슷한 것이다.
안나 역시 그림을 그리는 분이라 섬세하고 관찰력이 뛰어났다.
우리는 취향이 비슷한 쪽이었다.
안나는 로그로뇨가 아름다운 도시여서 일부러 이곳에
잠시 도시를 구경 중이라고 했다.
내가 아직 까지도 이런 기억을 하는 이유는 길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초반 길을 걷는데 안나만큼 나를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 있었을까?
나는 길을 걷다 중간 길에서 어떤 한 순례자가 아주 큰 바게트를 먹고 있는 걸 보고 눈인사를 건넸다.
그의 주변에 식수대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물을 뜨고는 갑자기 한국에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그로뇨에서 지도를 보지 않고 거닐다 라우렐 거리와 산후안 거리를 지나 많은 공원을 지나쳤었는데 내가 굳이 이곳을 기억하는 이유는 특이한 놀이기구들이 있었서다.
핸드폰만 있으면 별과 지도에 의지해 길을 헤매지 않아도 되니 현대의 순례는 정말 편리해졌다고 할 수 있다.
얼마나 좋은가?
엄마와 전화통화
심지어 데이터가 100기가 여서 스페인에서도 인터넷 통화도 거의 무제한으로 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10 킬로그램이나 되는 짐을 메고 전화 통화를 하면서 길을 걷게 될 줄을 말이다.
엄마는 추석시간을 빼서 공주에 공부 겸 요양하는 절에 내려간다고 했다.
이곳은 아직도 무지 덥고 지금 걷고 있다고 얘기를 나눴다.
나는 이곳에서 의외로 가족들끼리 함께 걷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엄마 역시 허리만 다치지 않았더라면 함께 이 길을 걸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2022년 교통사고로 한 달 내내 병원에 실려가 누워 있었던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니 나는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그때는 정말 엄마의 사고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2022년은 하늘이 무너지고 함락한 성에서 빠져나와 목숨만 건진 나 혼자가 된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며 지금 내가 여기 순례길을 걷고 있는 지금!
내가 순례길을 걸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한 전개에 매일 꿈을 꾸는 듯 놀라는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통화하는 내내 보이는 햇살이 마치 내 마음을 위로하듯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친구와 전화 통화
마음을 추스르며 친구와 겨우 통화가 됐다.
이 친구는 10대 때부터 알던 사이기 때문에 목소리만 들어도 서로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죽마고우이다.
작년 2022년 한 해 내내 나의 슬픈 소식과 목소리만 들었었기 때문에 걸으며 듣는 첫 목소리였다.
친구: 목소리 정말 좋아졌는데?
나: 지금 걷고 있는 중이야..
친구: 목소리가 바뀌었어!
나는 아직까지 내 안에 짐이 덜어졌는지 느낄 수 없었고, 앞날이 막막하단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 안과 밖의 변화를 아마 멀리서 여행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친구는 금방 알아챘던 것 같다.
Panaderia el otro Costal
11시 30분경
전화를 하면서 흘러 흘러 걸어갔던 곳이 웃긴 게 빵집 앞이었다.
유독 빵냄새가 고소해서 전화를 끊고 발길을 멈췄던 곳이기도 했고, 점심 식사도 해야 해서 마침 잘 됐다 생각이 들었다.
나: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요?
줄 선 사람: 여기가 빵 맛집이에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던 곳에 왜 이렇게 줄을 서있냐 물으니 여기가 미슐랭 선정 빵집이라고 한다.
줄은 금방 금방 빠져나가서 나는 가게에 들어가서 하몽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빵이 주식이니까 점심시간은 정말 북적였다.
나는 주문대 뒤쪽 자리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내려놓았다.
해가 너무 뜨거워서 지금 쉬지 않으면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이 들었다.
예약에 대한 걱정 없이 걷다 보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길이 즐거워졌다.
그 부분에 대한 것은 조금은 해탈했던 것 같다.
로그로뇨를 빠져나오는 곳 까지도 큰 공원이 자리 잡고 있어서 마지막 빠져나와 뒤를 돌아보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어쩌면 나는 한국에서의 슬픔을 이곳에서 친구의 말처럼 쓸어내 버렸던 것 같기도 하다.
로그로뇨를 지나 Grajera Park /스페인어 : Parque de la Grajha
이곳에 있는 호수를 백조의 호수라고 부른다.
정말 이곳에는 백조와, 오리 등등 많은 새들이 그라제라 공원에 둥지를 트고 여유롭게 물가를 헤엄치고 있다.
호수가 자연스럽게 생태계가 유지되었다고 느꼈던 것이 일부러 비바리움을 꾸밀필요 없이 호숫가에 잠겨 있는 죽은 나무들에 끼여 있는 이끼들과 디즈니에서 나오는 마시멜로우 같이 생긴 수풀이 엄청 많이 자라고 있었다.
공원 테이블에 앉아 일기를 쓰거나 휴식을 취하는 순례자들을 종종 만났다.
여유롭게 순례길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에도 한숨 돌릴 만큼 넉넉해 보인다.
공원을 빠져나오는 길 한참 청설모를 구경하다 안나가 나타났다.
안나 역시 청설모를 촬영을 했지만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 쿨하게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공원을 빠져나오자 다시 포도밭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을 살핀 후 아무도 함께 걷고 있지 않아서 포도 한 송이 싱싱한 것으로 따서 물로 씻은 후,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속 캐릭터처럼 한 움큼 입에 포도를 배어 물었다.
포도 육즙이 입안에서 터지는데 포도 수확시기라 와인으로 만들기 전 당도를 올리기 위해 이미 익은 포도를 수확하지 않고 자연 숙성 시키고 있기 때문에 포도가 정말 꿀맛이다.
(걸리면 그간 많은 순례자들이 훔쳐 먹은 포도까지 배상해야 할 수도 있으니 가급적 지역 농민들을 위해 서리는 안 하는 것이 좋다.)
각자의 십자가
가는 길 내내 나타난 고속도로길 옆에는 가이드라인으로 쳐놓은 철조망으로 순례자들이 지나가며 만든 나무 십자가들이 하나하나 모여 십자가의 벽을 만들어져 있었다. 예수님처럼 속죄를 위한 거대하고 무거운 십자가는 아니지만 각자의 십자가를 이곳에 새기며 하나씩 짐을 벗어버리고 걸어 나아 갔을 속죄의 흔적이 장관이었다.
더위와 싸우며 이제는 덥다는 본능만 남아 멍을 때리며 걷고 있던 중.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환청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더위를 먹고 헛것을 들었나 싶어 그냥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그런데 다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누군가: Yang~
나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하갈 언니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언니는 등산화를 벗고 샌들을 신은채 걷고 있었다.
나: 오! 언니 다시 만났네요! 식사는 하셨나요?
샌들 신고 걸으니 발이 훨씬 나아요?
언니는 말할 힘이 없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샌들은 언니 거에 비해 도시형으로 굽이 별로 없는 샌들이라 시도를 안 하고 있었다.
더운 여름 열기에 신발을 벗고 샌들로 갈아 신은 것만으로도 발에 열이 빠져나가 열기를 빼줬다.
발바닥은 모르겠지만 훨씬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나바레떼에 있는 숙소 얘기를 하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언니는 알아둔 숙소가 있다고 해서 나는 그곳을 예약을 해둔 건 줄 알고 확인을 안 하고 그냥 그곳으로 함께 가기로 했다.
프라이빗 2인실을 잡으면 편하게 쉴 수 있으니 내심 처음 묵어보는 프라이빗 숙소라는 생각에 살짝 기대가 했다.(마음이 맞는 순례자들과 합의하에 방을 잡거나 에어비엔비로 렌트를 하기도 한다.)
나바레떼에 도착할 즈음 정말 내 몸의 에너지가 더위로 우리는 방전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언니: 거의 다 왔어!
저 말은 순례자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말이다.
보통 거의 다 왔다는 표현이 1~2시간은 걸으면 된다는 뜻이다.
막상 숙소 근처에 도착하고 문의를 해보니 예약이 꽉 차서 방이 없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 숙소에는 나바레떼 가는 길 중간중간마다 마주쳤던 스페인 아줌마 4 총사가 숙소를 예약해서 묵는다며 들어온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우리는 별 수 없이 마을 초입에 지나쳤던 공립 알베르게로 향했다. 개인 2인실을 쓰지는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나바레떼는 나헤라를 가는 루트의 중간 루트이기 때문에 공립 알베르게도 방이 여유가 있었다.
Navarrete 오후 3시 30분 도착
Albergue Peregrinos Navarrete
10유로
12인실 벙커/ 화장실 겸 샤워실 2개와 남녀 공용 화장실 포함
일단 씻고 조금 휴식을 취한 뒤
저녁을 먹어야겠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