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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 런

몰리나세카 가는 길(Molinaseca)

by 양작가
신비로운 길
모든 이해를 통과하는 평화는 이성적인 마음에 얼마나 매력적일까요?
변화된 상태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말로는 물리적 눈이 제공하는 이중성을 넘어 통일된 관점의 경험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
감각에 민감한 세상이 우리의 인식을 제한하고 각자의 상태에 갇히게 하는 것을 얼마나 오래 허용할 것인가요?
오늘날 우리의 자아가 새로운 차원으로 치솟고 초감각을 감지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인가요?
모든 보우리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괴테

참고자료: A Guidebook to the Camino de Santiago - John Brierley

라바넬 델 까미노>폰세바돈5.8km>만하린9.7km>아세보 데 산 미구엘16.5km>리에고 데 암브로19.9km>몰리네세카(25.6KM)




2023년 10월 18일 늦은 아침.

캐시와 나는 새벽 일찍 출발한 순례자들을 떠나보내고, 짐을 동키 서비스로 몰리나세카까지 보내기로 했다. 숙소는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8시가 다 되어 문을 나서, 어제 점심을 먹었던 라센다 옆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아침 메뉴는 토스트에 잼을 바르고, 신선한 오렌지 주스와 따뜻한 카페 콘 레체를 곁들인 것. 익숙한 조합이지만 언제나 든든하다.


순례길의 아침은 단순한 끼니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의식이며, 새로운 여정의 출발점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몸과 마음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오늘도 길 위에서 펼쳐질 새로운 풍경과 이야기가 기대된다.


8시 25분, 드디어 출발!




라벤더로 시작하는 아침.

숙소 앞 텐트 야영지에는 밤새 내린 비로 싱그러운 향기를 뿜어내는 라벤더가 은은하게 향기를 퍼뜨리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라벤더를 한 움큼 따면서 캐시가 한마디 했다.


캐시: "라벤더 향이 배드버그가 싫어해."


우리는 라벤더를 뜯어 가방과 주머니마다 꽂아 넣기 시작했다.

옆에서 함께 늦게 출발한 호주 청년에게도 라벤더를 건넸다. 그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라벤더 향에 둘러싸여, 우리는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순례길의 시작이 더욱 상쾌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오늘 산행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향기롭고 산책 같은 기분이었다.

비가 갠 하늘은 약간 흐렸지만, 걷기에 충분히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오늘 일정은 라바넬 델 카미노부터 몰리나세카까지, 25km의 산을 넘어야 한다.

짐이 없으니 가벼운 걸음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길에 대해 공부를 해도, 매일 겪게 되는 일들을 예상하는 건 초짜 순례자에게는 역부족이었다.


라바넬 델 카미노 마을을 떠나기 전, 돌에 문구를 써서 La Cruz De Ferro의 돌탑에 쌓으라는 안내가 적힌 오두막이 있었다. 그곳에는 누군가 정성스럽게 모아둔 예쁜 돌들이 놓여 있다. 마치 안내자처럼 길 위에 턱시도를 입은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중부 사막길에서 떠돌이 개들이 많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실제로는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갈리시아 지방의 산악지대에서는 떠돌이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많아, 나의 길 동무가 되주었다. 길을 걷는 동안 만나는 동물들은 순례길에 작은 기쁨을 더해주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얼마나 느리게 출발했는지,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길을 떠나고, 택배 차들이 와서 배낭을 픽업하느라 정신없이 분주한 모습이다. 산티아고 산업으로 먹고 사는 스페인 사람들의 일상이다.


이렇게 느리게 출발하면, 도시의 뒷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24km 이상을 걸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내가 꽤나 느리게 걷고 있다는 사실도 느껴졌다.


캐시와 함께

운이 좋게 구름이 걷히고 해가 뜨는 걸 보며 길을 걸었지만, 언제든지 비가 내릴지 모른다. 게다가 등반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폭우라도 내리면 정말 큰일이다.


길 초반, 캐시와 나는 다리 예열을 하며 몸을 풀고 5km까지는 함께 걸었다. 그 후에는 서로 먼저 가고 뒤따르기를 반복했다.

라바넬에서 폰세바돈까지 오르는 길은 아기자기하게 이어져, 예열하기 딱 좋은 길이었다.



비 온 다음 날

비가 그친 후, 나무들은 신선한 공기를 내뿜으며 상쾌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길 중간중간 물 웅덩이가 나타났고, 그 웅덩이 속에는 하늘과 구름이 비현실적으로 비쳐 마치 거울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아침 일출의 풍경과 더불어, 자연과 바람이 함께 빚어낸 이 장면은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이 길을 걷는 이들에게는 발길을 멈추고 감상할 이유가 충분하다.


안녕! 페르디난도

피레네처럼 고도가 높지는 않지만, 지금 폰세바돈까지 1400m를 향해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갈수록 기온이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산 중간중간, 스페인 소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는 풍경이 내 걸음을 여유롭게 만든다. 스페인에서 보는 소들은 자유로워 보였고, 깨끗하다. 반면, 한국에서 우리에 갇혀 뛰어놀지도 못하고 사육되는 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감기라도 걸리면 산 채로 생매장당하는 한국 소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씁쓸해졌다.


나는 스페인 동화 『페르디난도』를 꽤 좋아한다.

이 동화는 외형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내 생각에 이 이야기는 스페인의 정신을 잘 표현하고 있다. 덩치 크고 인상이 강렬한 스페인 사람들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섬세하고 꽃과 자연을 사랑하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아마 이러한 정신이 순례길을 보존하고 아끼는 모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 아닐까.




첫 번째 휴식처 Foncebadon

캐시와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하다 살짝 땀이 날 즈음, 산 중간에 위치한 폰세바돈(5.8km)에 도착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십자가와 언덕 위의 알베르게 Monte Irago가 눈에 들어왔다.

테라스에는 한국인 모녀가 앉아 브런치를 먹고 있었다. 오늘 아침부터 계속 마주친 걸 보면, 하루 종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과 한참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저 아래에서 캐시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폰세바돈은 언덕 위에서 아래 마을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고도가 높아졌음을 느끼게 했다. 해가 높이 떠서 정면에서 비치고 있어 눈이 부셔, 선글라스를 쓰는 게 필수였다.


캐시와 알베르게 카페테라스에 앉아 카페 콘 레체 한 잔을 시켜 땀을 식혔다. 잠시 후, 키 큰 벨기에 순례자가 베레모를 쓰고 나타났다. 그는 짧은 농담을 던지며 지루함을 달래 주었고, 그렇게 우리는 짧지만 즐거운 휴식을 마쳤다.


지천에 피어 있는 보라색 꽃

폰세바돈의 ’알베르게 몬테 이라고‘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다. 산길 곳곳에는 바람에 흔들리며 강한 보라색 꽃들이 바닥에 깔려 피어 있었다. 그 작은 꽃들은 순례길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순례길에서 만난 꽃들은 그 자체로도 눈을 사로잡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함께한 시간들이 더없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 꽃들 속에서, 길을 걸으며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다시금 마음 속에 떠올랐다.


La Cruz de Ferro 철의 십자가

폰세바돈을 지나면서, 캐티와 나는 점차 속도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철의 십자가(Cruz de Ferro) 기념물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에서도 캐티는 내 뒤에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순례자들 중에서도 빠른 편은 아니지만, 그날 캐티의 걸음이 나보다 느리다.


이 역사적인 명소에서 더 머물고 싶었지만,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산 정상으로 오를 때 비가 내리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윈드재킷 자크를 더 올리고 노란색 고어텍스 재킷을 꺼내 입은 후 다시 걸음을 재촉햤다. 그때부터 캐티와는 거의 떨어져 혼자 걷게 되었다.


십자가 옆의 작은 휴게소에서는 어제 라바넬 성당에서 함께 미사를 보았던 프랑스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비를 피해 빠르게 이동했다.



드디어 정상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다.

부르고스 전까지 하늘에서 자주 마주쳤던 매와 독수리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날개짓은 고요하게 펼쳐져 있었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마치 순례길의 또 다른 동반자처럼 느껴졌다.


1500m 높이의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도로와 마을들은 마치 작은 장난감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미세한 점처럼 보였고, 마을의 지붕들은 정교한 조각처럼 배열되어 있었다.


다행히 십자가를 지나 꼭대기에서는 구름의 무게보다 강한 바람 덕분에 구름이 걷히고, 오랜만에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 따뜻한 햇살은 길고 험한 여정을 지나온 나에게 작은 위안을 주었다.



정상에서 잠시 앉아 쉬며 후발주자로 천천히 걷고 있던 순례자들과 간식을 나누며 휴식을 취했다. 그 중 호주 청년과 대머리 순례자가 있었는데,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호주 청년은 아몬드를 건네주며, 종아리 통증 때문에 함께 가던 무리에서 떨어져 천천히 걷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눈빛에서 피곤함과 함께 묵묵히 길을 걷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길 위에서의 만남과 나눔은 순례의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각자의 이유로 길을 걷고 있지만, 서로의 여정에 잠시 동참하고 나누는 순간들이 순례를 특별한 경험으로 만들어준다.



잠시 후, 따르다호스에서 만났던 캐나다계 아시안과 젊은 순례자 네 명이 나타났다. 라바넬 델 카미노 순례자 미사에서 인사를 나누었지만, 길 중간에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서로 인사를 건넨 후, 정상에서 땀을 식히며 바람을 만끽했다.


어릴 때는 왜 그렇게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을 좋아했을까?


지난날의 나를 떠올리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여정에서 더 큰 힘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제서야 길을 혼자 걷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땀이 식고 한참을 캐티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캐나다 젊은 청년들의 무리가 떠난 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만하린(Manjarin) Café Bar Manjarín


만하린(Marjarín)까지 내려오니, 카미노 지도에 따르면 폰세바돈 이후 두 번째로 카페와 화장실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도착했을 때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문이 열려 있지 않았다. 화장실이 급해지기 시작했지만, 캐티는 나타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 바람이 점점 거세져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피레네 산맥에서 태풍을 맞아 큰 고생을 했던 캐티의 일화가 떠오르며, 캐티의 안전이 더욱 염려되었다.


땀이 식을 때까지 을씨년스럽게 놓여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아 캐티를 기다렸다. 뒤이어 오던 대머리 순례자에게 캐티의 소식을 물었으나, 못 봤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사과 서리

혼자 걷던 미국인 순례자가 길가의 사과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고 있었다. 나도 하나 달라고 부탁하여 함께 나눠 먹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서로의 손에 사과를 쥐고, 한 입 베어 물 때의 시원함이 입 안 가득 퍼지며 잠시나마 모든 피로를 잊게 해줬다. 그 작은 나눔이 소소한 기쁨이 되어,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사람들 속에서 이어진 따뜻한 순간이었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하니, 이전과는 달리 덤불이 많아졌고, 다른 한쪽 길은 큰길을 만들려는 듯 주변이 불도저로 파헤쳐져 붉은 흙이 드러나고 키 큰 나무들 옆에 쌓여 있는 곳이 나타났다.


순례길과는 다른 분위기의 길이었지만, 자연 속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고요함은 여전히 이어졌다. 그러나 순례자들이 걷던 오솔길과 거리가 있는 구역이라 길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 급하게 볼일을 보고, 다시 덤불 길로 돌아와 걷기 시작했다.


본격 내리막길

산 정상에서 엘 아세보 데 산 미구엘로 향하는 내리막길은 예상보다 가파르고 길게 느껴졌다.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을 걷다 보니, 피로가 몰려오고 캐티가 늦어져서 더 힘들게 느껴졌다. 여러 번 뒤를 돌아보며 기다려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고, 송전탑 근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초콜릿을 꺼내 먹었다.


달콤한 초콜릿은 지친 몸에 잠시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근처에 있던 휴게소나 카페는 모두 문을 닫혀 있었고, 열려 있을 것이라고 안내했던 정보는 시즌이 끝난 영향인지 다소 틀린 것 같았다.


그렇게 길은 더 길어지기만 했다. 이미 10km를 조금 넘게 걸었음에도 아직 10km가 더 남아 있다고 하니,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 같았다. 순례길에서의 이러한 구간은 물리적, 정신적으로 큰 도전을 안겨주는데, 특히 고지대에서 시작된 내리막길은 발과 무릎에 큰 부담을 준다.


이 구간은 많은 순례자들이 육체적으로 힘든 구간으로 꼽는 곳이라, 조심하며 걷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까지 이 구간을 지나며 더 많은 교훈과 성찰을 얻고, 자신과 싸워가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만이 순례길을 완주하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El Acebo de San Miguel 16.5km

엘 아세보 데 산 미구엘로 향하는 내리막길에서 호주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전망대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다시 만난 한국인 모녀와 함께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은 길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운 걷기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내 배낭은 이미 몰리나세카에 도착해 있었기에 멈출 수 없었다.


모녀는 리에고 데 암브로스로 가는 길을 이야기하며, 4km를 더 가면 숙소가 예약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몰리나세카까지 10km를 더 가야 했기에 서둘러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 캐티와 함께했던 라바넬 델 카미노에서의 하루를 떠올리며, 그때 점심 후 16.8km를 걸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그 다음날 겪은 폭우를 생각하면 결국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티는 엘 아세보 데 산 미구엘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었고, 나는 10km를 더 가야 하는 상황에서 시간을 더 아껴야 했다.


호주 청년과 내려오면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그가 정강이 근육 통증에 대해 응급처치를 하지 않고, 터무니없이 긴 거리를 일정으로 잡고 택시를 타기로 한 것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느낀 점은 순례길에서 체력 관리와 일정 조율의 중요성이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모든 순례자들이 길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컨디션을 고려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긴 여정을 떠날 때, 균형 잡힌 일정과 신체 상태를 잘 살펴야 한다.


두 번째 휴식 La Casa del Peregrino

엘 아세보 데 산 미구엘 마을 입구의 알베르게 라 카사 델 페레그리노에서 뉴욕 자매분들과 잠시 만난 후, 반가운 마음에 잠시 앉아서 쉬기로 했다. 라바넬 델 카미노에서 만난 아나와 스카프를 주었던 뉴욕 자매분들 그리고 다른 순례자들이 함께 휴식을 취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미사 이야기와 걸었던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뉴욕 자매분들은 참치 샌드위치가 너무 많다며 반 조각을 나누어주셨고, 나는 추가로 샌드위치와 맥주를 주문해 함께 나누었다.


그들이 이야기한 뉴욕에서의 휴일과 요트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와인잔을 들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마치 미국 드라마 'Sex and the City'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그들의 등산복은 고급스러운 고가의 등산 브랜드였고, 검정 페이즐리 패턴의 스패츠 디자인도 인상적이었다.


그때 정상에서 아몬드를 나누었던 대머리 순례자가 도착했다. 그의 원래 계획은 나와 비슷했던것 같다. 하지만 순례여정의 장점은 어디든 내가 원하는 곳에서 멈출수 있다는 것이다.그는 잠시 쉬어 갈거라고 말하고 앉았지만 곧 숙소를 체크인하며 이곳에 짐을 풀고 함께 앉아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테이블 건너편에는 젊은 순례자들이 햄버거를 들고 앉아 있었다. 나는 무리에 끼어 있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기에, 뉴욕 자매분들과 더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캐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맥주가 거의 바닥을 보일 무렵, 드디어 캐티가 도착했다. 그녀는 여전히 느리게 걸어왔고, 이미 한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오후의 걸음이 오전보다 훨씬 느려지면서, 경사진 내리막길과 빨라진 일몰 시간이 내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다. 캐티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여유를 찾고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산중 런

10km를 더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짐을 푼 캐티와 잠시 인사를 나눈 후 거의 뛰듯이 길을 재촉했다. 안락한 순간을 뒤로하고, 혼자 걷고 있던 프랑스 순례자 아저씨와 함께 걸으며 길을 나섰다.


아저씨가 내 빨간 손수건을 발견하고 소리치며 주워주셨고, 우리는 그 인연으로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그 이후, 우리는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길에서 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속도를 조금 늦추고 조심히 걸었다.


길은 내리막이었고, 도로길과 산길이 교차하는 구간이었지만,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발걸음을 빨리 재촉해야 했다.


아저씨는 근처 엘 아세보 끝자락에서 짐을 풀 것이라고 말했고, 나는 양해를 구하고 다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로스 아르고스 가는 길 에서처럼 다시 뛰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산중에서 뛰는 것은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지기 전까지는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며 여정을 이어갔다.


Riego de Ambrós 19.9km

리에고 마을을 지나면서, 그곳의 으스스한 분위기와 폐가들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특히 비가 내린다면 비탈진 바윗길을 걷는 게 얼마나 위험할지 상상이 갔다. 마을을 빠르게 지나치며 그 불안감을 떨쳐내려 했다. 그 와중에도 오늘 날씨가 괜찮아 정말 천운이었음을 느꼈다.


10월 18일, 이 날씨 덕분에 나는 무사히 이 구간을 지나갈 수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날씨 요정이 나의 길을 이끌어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서둘러 계속 걸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운이 나를 도와주는 날이라 믿으며, 조금 더 신속히, 그러나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몰리나세카까지의 길은 정말 끝이 보이지 않아서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갈 때마다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 거지?"라는 생각만 계속 떠올랐다. 특히 그날의 정돈 안된 날씨와 고된 걸음은 더욱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화장실을 볼 곳을 급히 찾은 뒤, 숲속에서 일을 보며 다시 길을 재촉했다. 길 을 걸을때 낮술이 얼마나 걸음에. 불편을 주는지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때 마주친 호주 순례자도 지친 모습으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그가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랐다.


늦은 시간, 그 길에는 내가 유일한 순례자였던 것 같았다. 다른 순례자들은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거나, 중간에서 멈췄던 것 같다. 길을 혼자 걸으며 점점 더 몰리나세카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오후 3시

몰리나세카의 사설 알베르게 Señor Oso에서 "오고 있냐?"는 문자가 왔다. 나는 "거의 다 왔다"고 답을 보낸 후, 산에서 마지막으로 전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마을의 전경은 분명히 보였지만, 마치 신기루처럼 점점 더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마을 입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MIRADOR A MOLINASECA

드디어 몰리나세카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마치 신기루처럼 마을은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1km도 채 남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빠르게 내려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 급하게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건 그만두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걸어가기로 했다.



드디어 도착 Molinaseca 25.6km

나는 6시가 넘어서 겨우 마을 입구에 있는 Ermita de Nuestra Señora de las Angustias 성당을 맞이했다. 마을 입구부터 유서 깊고 돌로 만든 메루엘로 다리가 있는 이 마을이 마음에 들었다.


메루엘로 강이 흐르는 돌다리를 건넜다. 하지만 10km 가까운 뜀박질로 인해 안 쓰던 근육을 사용했고, 긴장을 많이 했던 탓인지 허기가 몰려왔다.


미리 도착해 다리 근처 카페에 앉아 휴식을 즐기던 순례자들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Señor Oso Albergue 18:24

나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마을 중심가에 있는 Señor Oso에 도착했다.

숙소 앞에 벤치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나를 맞이해 주었고, 나는 그가 Señor Oso 직원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순례자였다.


호스트는 나를 보자 "너 안 오는 줄 알았다"며 내가 마지막 게스트라고 말했다. 숙소 입구에 그려진 불곰 그림과 입구로 올라가는 등산화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야 주변이 보이는 듯했다. 내 배낭은 잘 도착해, 느리디 느린 주인을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체크인을 마친 후, 주변을 살피니 숙소에는 신라면 큰 사발면도 팔고, 한국인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아마도 이 숙소에는 한국인이 많을 거라 짐작되었고, 실제로 한국분들이 4명 정도 있었다.


나는 4인실 방을 신청했었는데, 방에는 나 외에 한 명의 순례자만 있는 듯했다. 나는 누가 같은 방을 쓰는지 몰랐고, 빨리 몸을 씻고 저녁을 먹고 싶었다.


식당을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다시 마을을 돌아다니기엔 이미 기운을 다 뺏기 때문에 그럴 기력이 없었다.

거리에는 길고양이들이 많이 돌아다녔고, 사람 손을 많이 탔는지 꽤나 잘 따랐다.


장보기

Señor Oso에 묵는 순례자 중, 라바넬과 아스토르가에서 함께 묵었던 그림을 그리는 순례자를 같은 숙소에서 다시 만났다. 나는 숙소 근처에 위치한 슈퍼마켓에 들러 인스턴트 파스타를 샀고, 오래된 바나나 한 개를 서비스로 받았다.


해가 아직 지지 않았지만,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떨어질 것 같은 모양새이다.

나는 과일과 인스턴트 파스타, 그리고 초콜릿을 챙겨 금세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식사

숙소 공동 주방에서 독일인 순례자 Eva를 이곳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는 길에서 주운 밤을 한 소쿠리 주워와서는 삶고, 썩은 부분을 식탁에 앉아 도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4명인 줄 알았던 한국인 무리 중 한 명은 한국인이 아니라 대만 사람이었다.


라바넬에서 마리아가 숙소 사진을 보내줬던 분들 중 두 명이 바로 이분들이다.

한국인 아저씨 두 분과 1명의 여성분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내 방에 함께 묵는 룸메이트는 바로 아스토르가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던 스웨덴 순례자였다. 어느새 공용식탁은 순례자들로 꽉 채워졌다. 나는 인스턴트 파스타를 데워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틈새에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독일인 이바는 밤 상태가 좋지 못하다며 먹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밤을 사람들에게 건넸다.

나는 모여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지 않고 먹느라 신경을 쓰지 않다가, 한국인 여성분이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건넸다. "어느 나라 사람이세요?"


나는 아스토르가에서 겪었던 무례한 한국 분들이 떠올라 굳이 친절한 방식으로 한국말을 쓰지 않고 영어로 답을 했다. 온화한 표정의 이분은 그 전의 무례한 한국 여성들과는 다르게 호의적인 분위기였다.


나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한국말로 통성명을 했다. 이 여자 순례자분은 약사로 일하시다가 은퇴하셨고, 원래 함께 걷던 남자분 한 분이 레온에서 부상을 당한 얘기를 하면서, 우리는 경계를 풀고 대화의 장이 펼쳐졌다.

바로 그 부상자가 조셉 아저씨인 것이다!


세상에!

그 많은 순례자들 중에 이렇게 또 겹칠 수 있을까?

참 신기한 인연이다.


그녀는 나에게 조셉님의 안부를 물었다.

그분은 걸음에 대한 열정이 강해서 발목 부상으로 쉬어야 하는데도 계속 걸으셨다고 하며, 그걸 걱정하고 있었다.


어느새 식사를 다 마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식사를 다 마친 후, 긴장이 풀리고 노곤해져서인지 산을 빠르게 뛰어오르면서 근육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아마도 근육이 놀란 듯싶었다.

나는 빠르게 근육 이완제와 진통제를 먹고 숙소에 있는 폼롤러로 마사지를 시작했다.


이 숙소가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깔끔한 내부 시설과 침대 층고가 높아서 침대 안에서 사용하기 편리했다. 내 옷들이 꿉꿉함이 없어지길 바랐지만, 어둠이 내려앉자 꾸물꾸물하던 날씨는 기다리기라도 한 듯 비를 한바탕 쏟아냈다.


아까 엘 아세보 데 산 미구엘에서 길을 멈췄다면, 그다음 날 내리막길에서 꽤 고생했을 것 같다.

스웨덴 순례자와는 두 번째 같은 숙소에 묵게 되었고, 세 번째 만남이라 서로 통성명도 하고 자기 전에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 수다

어딜 가나 비슷한 주제인데, 유럽이라고 어른들이 물어보는 주제는 다르지 않다.


"아직까지 왜 결혼을 안 했냐?

남자친구는 있니? 그리고 혹시 여자를 좋아하는 거니?"


스웨덴 순례자분은 몸이 차가워져서 약국에 가서 질 유산균을 샀는데, 너무 많다며 유산균을 나눠주셨다. 그리고 자기 아들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이 부분은 개인적인 이야기라 패스하겠다.


아까 숙소에서 유일하게 숙소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스페인 청년은 어떻냐며 나에게 넌지시 물어보셨다.

"그분 여기 직원 아니에요?"라고 물었는데, 스웨덴 순례자분은 그 말을 듣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그건 그가 수더분하고 자연스러운 성격이라 그런 거야. 그는 순례자야!"라고 하셨다.

우리는 웃으면서 나는 몰랐다고 말했다.


아스토르가에서부터 느꼈지만, 우리는 몇 번 만난 사이 였지만, 서로 대화를 나누는 방식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껴서인지, 내 오랜 고민거리에 대해서 술술 고해성사가 나왔던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사람 자체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이 상처를 나 역시 이곳 산티아고에서 꼭 흘려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나도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밤새 내리는 빗소리에 내가 늘 품고 다니던 이 고민을 비와 함께 흘러갔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일 비가 안 내린다면 배낭을 메고 걸을 것이다. 하지만 비가 온다면 다시 한번 연달아 배낭을 보낼 것 같다. 내일은 Cacabelos까지 22.9km를 걸을 예정이다.


약을 먹었는데도 여전히 근육이 욱신거리는 게 심상치 않다.

근육 젤을 더 바르고 빨리 자야 할 것 같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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