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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은 비를 타고

카카벨로스 가는 길(Cacabelos)

by 양작가


개인적인 성찰
예로부터 비는 풍요과 정화를 의미했다.
영화 “신비한 동물 사전”에서 또한 비를 통해 기억을 지우는 역할을 돕는다.

몰리나세카서부터 산티아고까지 걷는 내내 내리기 시작한 비는 후반 여정의 시작과 내가 그토록 원하는 마음의 정화의 시작이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들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났고, 나는 언제나 그렇듯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한 낮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니 그저 나는 비를 맞으며 온전히 그 길을 걸어야 했다.

후반부의 이야기는 길 위에서 예상치 못한 해프닝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출발지: 몰리나세카> 캄포> 폰페라다> 콜롬부리아노스> 푸엔테누에바스> 카카벨로스

총 거리: 22.9km


2023년 10월 19일 몰리나세카 세뇨르 오소 알베르게에서

몰리나세카의 '세뇨르 오소 알베르게'에서 밤새 비가 그치길 바랐지만, 오히려 새벽이 되자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비가 오니 모두 느지막이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본의 아니게 2인실 방을 쓸 수 있어 조용하고 좋았지만, 전날 산을 뛰었던 여파로 근육통이 더 심해져 밤새 잠을 설쳤다. 스웨덴 순례자와 나는 자연스럽게 새벽 6시에 눈이 떠졌다.


스웨덴 분은 경량 침낭이 아닌 꽤 덩치가 있는 침낭을 가지고 다녔다. 대부분 부지런한 순례자들은 이미 길을 떠나 숙소는 고요함이 가득하고, 나와 스웨덴 순례자만 남았다.


스웨덴 분은 본인의 고어텍스 재킷의 방수 용량이 넘어서 근처에서 저렴한 우비를 구입했다며 입은 모습을 보여줬다. 나는 그때까지 내 고어텍스를 찰떡같이 믿으며, 비옷을 샀다는 말에 내 고어텍스 재킷은 끄떡없다며 장담했었다.


서로 가방과 옷매무새를 다듬는 것을 도와주면서 인사를 나누고, 드디어 길을 떠났다. 이때 이후로 아쉽게도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못했다.

부엔 까미노!




출발 전 아침 7:45

어제 다짐한 대로, 비를 피해 배낭을 택배로 먼저 보내고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모두가 떠난 줄 알았던 숙소에는 떠나지 않고 있는 대만 순례자가 있었다. 발목 상태가 좋지 않아 빨리 걷지 못한다고 했다.


다음 목적지는 카카벨로스(Cacabelos)로, 약 22.9km 떨어져 있다. 호스트에게 내 가방을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왓츠앱으로 보내놓았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배낭을 로비의 택배 보관 장소에 두고 길을 나서려는데, 이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에게 귀여운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특별한 선물은 아니지만, 신발 위에 몰리나세카 풍경과 곰 모양의 세뇨르 오소 도장이 찍혀 있는 엽서가 놓여 있다.

안녕, 잘 지내! 몰리나세카!



몰리나세카를 빠져나오는 길

몰리나세카를 떠날 때 라바날 델 카미노에서 인사했던 마리아와 길에서 다시 마주쳤다.


마리아는 함께 걸을 친구와 길의 교차점에서 만나기로 했다며 몰리나세카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우리는 길에서 다시 만나면 인사하자고 말한 후, 각자의 길을 떠났다.




새벽에 캄포로 들어가는 길목, 알베르게 산타마리아 근처에서 브라이언, 벤, 피터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빗길을 무사히 내려온 듯 보여서 반가웠다.


나는 이분들처럼 미리 판초를 입었어야 했는데, 고어텍스 재킷의 성능을 100% 믿고 있었다. 비가 더욱 거세지자 지퍼를 턱까지 잠그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제 드디어 800km의 긴 여정은 215.6km를 남기고 있다는 비석이 우리 순례자들의 위치를 알려준다.

몰리나세카에서 캄포를 지나 폰페라다까지 걷는 동안, 라바넬에서 물집의 물을 모두 빼고 꼼 피드를 붙였으나, 뒤꿈치를 뒤엎은 큰 물집은 산길을 뛰어 내려오면서 다시 덧나서 발에서 계속 열을 내고 있던 상태였다.


나는 발을 절뚝이며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길은 완만한 경사가 있어 뒤에서 밀어주듯 속도감 있게 걸을 수 있었다.


마을에서 마을로 넘어가는 길에 발뒤꿈치가 욱신거리는 게 느껴졌다. 중간 마을 길에서 두 갈래로 갈리는 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 우리 순례자들 모두 갈팡질팡하고 있다가, 한 블록 먼저 걷고 있는 브라이언과 벤, 피터 아저씨를 다시 발견하고 뒤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때 빗줄기가 더 거세지고 있었다.

이 정도 비면 길을 멈춰야 하나 싶었지만, 모두 내비게이션에 도착 예정지를 찍어놓고 가는 자동차처럼 이제는 그저 비를 맞으며 한길만 보고 걸을 뿐이었다.


폰페라다는 성이 있는 꽤 큰 도시였다.

나는 폰페라다에 도착했는데, 문제는 쏟아지는 비에 아침에 스웨덴 순례자분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고어텍스 재킷 방수 용량이 한도치를 넘어섰어요.”



고어텍스 특징
고어텍스 재킷은 방수 기능이 뛰어나지만, 겉면의 발수 기능이 저하되면 전체적인 방수 능력도 감소한다. 따라서 주기적인 세탁과 발수 처리가 필요하다.

또한, 고어텍스 소재는 투습력이 있지만, 공기의 유입과 배출에 한계가 있어 장시간 비를 맞거나 땀을 많이 흘리면 내부가 습해질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고어텍스 재킷을 착용하더라도 날씨와 활동 강도에 따라 추가적인 방수 장비나 의류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정보를 미리 알았더라면, 나도 스웨덴 순례자처럼 판초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어텍스 재킷의 성능을 과신했고, 그 결과 비에 젖어 불편함을 겪었다.



폰페라다 도착

폰페라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고어텍스 재킷의 방수 성능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깨달았다. 비는 점점 거세졌고, 옷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이 상태로 계속 걷는다면 감기에 걸릴 위험이 높았다. 폰페라다 성은 비구름과 두꺼운 비로 인해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방이 안개로 뒤덮인 아침 시각이라 이곳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보다는 비를 피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더 컸다.


함께 걷던 프랑스 부부, 안토니 아저씨와 브리짓 아줌마는 내 상태를 보고 걱정하며 비옷을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큰 배낭은 동키서비스로 보냈지만, 나는 에코백을 배낭 삼아 등에 메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하늘은 불쑥 폭우를 퍼부었고, 더는 버틸 수 없어 옷을 벗어 고어텍스 재킷 안에 에코백을 숨겼다.


앞서 매던 세컨드 가방도 몸속으로 끌어당겼다. 고어텍스 재킷은 다시 꽉 동여매며 비바람 속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혹시나 앞 가방이 젖을까 봐 미니 배낭 커버를 붙잡고 싸매고 있었지만, 비는 멈추지 않았고, 점점 더 차가운 물방울이 피부를 스쳤다. 점점 추위가 몸을 파고들며, 그저 한 걸음씩 걸어야만 했다.



Turco de Manila/ 폰페라다 기사단의 성

길을 걷다 보니,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함께 걸었던 프랑스 부부와 폰페라다 성 앞에 자리 잡은 카페에서 독일인 순례자 수잔이 그곳에 있었다. 우리는 초반 중반 후반 분기별로 서로 스탭이 교차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프랑스 부부 역시 2023년 8월 19일 수진의 초반순례길 , La Domaine La Sauvage에서 수잔과 처음 만났었다는 것. 수잔은 그때 순례를 시작한 지 이틀째였다고 했다.


그날 밤, 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을 본 기억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수잔은 성 투어를 위해 시간을 맞춰 대기 중이라고 말했다. 이 부부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지금은 뉴욕에서 이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기사단의 성
기사단의 성은 12세기에 지어졌다.
8,000 제곱미터에 달하는 다각형 평면 구조이며 별자리를 상징하는 탑 12개로 장식되어 있다.
15세기와 16세기에 개조되었다.
꼭 방문해야 할 건축물이다.
4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화~일 오전 10:00~ 14:00 / 오후 16:30~20:30
월요일 휴무
라 엔시아 날인 9월 8일 휴무 9월 11일 오전에만 운영
순례자 여권을 소지한 순례자 요금: 4유로
관람을 위해서는 현지 관광안내소에 문의하길 바란다.


수잔과 마리아는 순례길을 완주한 후, 폰페라다의 추억을 물었을 때 '기사단의 성'을 들어가 성 투어를 했다고 했다. 그만큼 그곳은 유적지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었지만, 나는 비에 젖은 채 빨리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폰페라다 하면 떠오르는 것은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와 비옷을 찾으며 도시를 헤매던 기억뿐이다.


이 해프닝 덕분에 또 다른 못 잊을 추억을 만들었다. 어떻게 매일같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 나는 한국에서 판초를 준비해 갔었는데, 오히려 고생을 자처한 건 아닌지 싶었다.


가방 무게 때문에 파리 언니 집에 두고 온 판초가 떠올랐다. 레온에 도착할 때만 해도 비옷을 챙기지 않은 걸 칭찬했었는데, 그때 그 선택이 이렇게 아쉬워질 줄이야.



‘폰페라다(Ponferrada)‘는
쇠로 만들어진 다리'라는 뜻이다.

온화한 기후 덕에 경제적 중심지로 번영했으며, ‘페르난도 2세’는 순례자들의 안전을 위해 이 도시를 템플 기사단에 맡겼다고 한다.

그 당시 기사단의 재산과 부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유적지와 도시 경관이 아름다웠다.


비가 그쳤다면, 나는 이 도시를 천천히 돌아보며 레온처럼 역사적인 발자취를 구경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내 고어텍스 재킷은 점점 축축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나는 수잔의 생일도 31일이고 해서 내 생일인 24일에 어디에 있든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자 안토니 아저씨는 눈이 커지며 말했다.


'24일은 제 생일이에요!' 세상에나!"


프랑스 부부에게 그날 특별한 이벤트가 있냐고 물으니 좋은 숙소를 예약해 두고 휴식을 가질 거라고 했다.

그렇다 휴식만큼 좋은 보상이 없으니까.


우리는 자연스럽게 수잔과 헤어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순례길 화살표를 따라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기사단의 성 앞 카페에서 수잔을 만났을 때는 비옷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았으나, 프랑스 부부와 유적지의 시계탑, 성당, 기사단의 조각상을 지나며 계단이 보이는 Minador Puente Cubelos에 도달했다. 경사진 계단을 내려가며 산티아고 길로 가는 중, 슈퍼마켓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폰페라다를 벗어난 후엔 비옷을 살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둘러 비옷을 파는 곳을 찾기 위해 순례길을 벗어나 폰페라다 도심을 비를 맞으며 헤매기 시작했다.



Alimerka Supermarkado

프랑스 부부를 뒤로 하고, 지도를 펼쳐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을 찾았다. 일단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슈퍼마켓에 거의

모든 물건을 찾을 수 있으니, 그곳에서 우산과 비옷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슈퍼마켓에 도착했을 때, 라바넬에서 그림을 그리던 순례자가 물건을 구매 후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비에 젖은 채로 매장으로 들어가 직원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나:혹시 우산이나 비옷 파나요?

직원:슈퍼마켓에서는 우산과 비옷을 팔지 않아요. 잡화점으로 가보세요.

나: 잡화점이 어디로 가야 해요?

직원: 스페인어 샬라샬라 &(&**()() 음… 다음 블록 길가 쪽에 있어요.

나: 감사합니다.


직원 말대로 서둘러 골목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엔 잡화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장을 보고 나온 폰페라다 시민이 길을 잃은 나를 발견하고 손짓을 하며 따라오라고 했다.


'우산이나 비옷은 잡화점에 가야 해요.'


나는 마치 아기 오리가 엄마를 따라가듯, 그 행인의 발걸음을 쫓았다.

조금 헷갈리긴 했지만, 마침내 중국어로 된 간판의 잡화점이 나타났다. 이 잡화점은 한국에 돌아와 구글 지도로 찾아보는데 한참 걸릴 만큼 기억에 남았다.


이 생고생 덕분에 폰페라다는 내 머릿속에 영원히 '잡화점 찾기'의 에피소드로 남았다. 늘 맑은 날과 순탄한 길만을 생각했지만, 인생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폰페라다를 걸었던 순례자들에게 그날을 어떻게 즐겼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성 투어나 마을 구경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만 나의 폰페라다는 초보여행자의 고생담으로 기억이 남아있다.


Bazar Aisa 11:03

내 위치를 확인해 보니,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큰 대로 바로 앞에 위치한 곳이었다. 나는 도움을 준 시민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입구로 들어갔을 때, 스티커를 주었던 뉴욕 할머니 자매분들이 나타났다. 마치 '트루먼 쇼'처럼 말이다.


그분들은 분명 몰리나세카에 도착한 날, 10km나 떨어진 El Acebo에서 캐시와 짐을 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셨냐고 물으니, 비가 많이 와서 버스를 타고 오셨다고 했다.


산길에서는 어르신들이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나는 그들의 선택이 현명했다고 말했다. 빗길에서 위험한 산행을 강행할 필요는 없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나는 이층으로 올라가 분홍색 비옷을 골랐다. 세 가지 디자인의 비옷이 있었는데, 남성용 비옷과 비옷 바지까지 있는 걸 살까 하다가, 짐이 늘어나는 게 싫어서 급히 가벼운 분홍색 비옷을 고르게 되었다.




분홍 싸구려 우비

급히 우비를 입고 걷기 시작하자, 몸이 조금씩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을비는 차갑고, 몸을 축축하게 만들었다. 순례길 장비 중 비옷을 파리에 두고 온 게 계속해서 후회가 되었지만, 이제 와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당장 비어있는 것을 채우고, 다시 빠르게 길에 합류해야 한다.


그런데 비옷은 배에 찬 보조가방 때문에 계속 움직이며,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기를 반복하다 보니, 비옷의 겨드랑이 쪽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젠장! 다시 잡화점으로 돌아가기는 너무 많이 걸어왔고, 이제는 되돌아가기엔 시간이 많이 흘러 버렸다.


만약 그때 폰페라다에 데카트론이 근처에 있다는 걸 알았다면, 좋은 판초우비를 구매했을 텐데... 이렇게 즉흥적으로 처리하다 보니 싸구려 우비처럼 금방 내 상태가 드러나버린 것 같다. 이래서 늘 데카트론 위치를 알아두라고 순례 선배들이 얘기했던 조언들이 떠올랐다.


이제 다음 도시에서 우비를 판매하는 곳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완전히 비에 젖지는 않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아까는 물에 빠진 생쥐 같았고, 지금은 찢어진 비옷을 입고 다니는 홈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El Barde Compostilla 12:04

디귿자 모양의 공동주택처럼 보이는 이곳은, 시계탑이 있는 요새 같은 건물이었다. 사각형 터널을 지나면 공동주택과 커피숍이 나왔다. 건너편에는 iglesia de Santa Maria de Compostilla 성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와 추위 속에서 우비를 사야겠다는 긴장감에 몸이 얼어가고 있었는데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허기가 느껴졌다. 잠시 몸을 녹이고 급하게 박스테이프라도 있으면 비닐 우비에 붙여서 비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페에 우비를 입고 들어갈 수 없어서, 테라스에 우비를 벗어두고 카페 콘레체와 토스트, 잼을 주문했다. 그리고 급하게 웨이터에게 물었다.


'혹시 박스테이프 있나요? 우비가 찢어졌어요.'


웨이터는 찢어진 우비를 보고는 다른 직원들과 심각하게 스페인어로 대화를 시작하더니, 영어가 가능한 웨이터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저희는 종이테이프밖에 없어요.'"




급한 대로 받은 종이테이프를 겨드랑이 쪽에 덕지덕지 붙여 우비를 고정시켰다. 그 후, 나는 빠르게 허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카페는 우드톤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고, 산티아고를 걸으며 봤던 카페들 중 가장 안락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테라스 옆자리에는 프렌치 불독이 침을 흘리며 내 빵을 호시탐탐 얻어먹으려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 디귿자 모양의 건물이 신기하게도 건너편의 성당까지 바라보여서일까? 바람과 비를 피하게 해 주듯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많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지나며 추위와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들은 점심을 나누고 있었고, 나는 성당을 배경으로 점심을 뚝딱 해치웠다.


따뜻한 카페 콘레체를 마시고 나니, 급했던 마음도 누그러지는 듯했다. 옆에 있던 프렌치 불독에게 인사를 건네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전 동안 벌어졌던 폰페라다 우비 찾기 대소동을 마무리하며, 나는 폰페라다를 빠져나갔다.


폰페라다는 공원도 많고 커서 날이 좋았다면 도심을 거닐며 휴식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지 못할 친절한 카페 웨이터 덕분에 우비도 정비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다.


홈리스 같은 순례자

분홍색 비닐 우비의 겨드랑이 부분을 아이보리 종이테이프로 봉합해 놓으니, 그야말로 누더기가 따로 없었다. 최대한 팔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걸어야 했다. 나는 주머니 쪽에 뚫린 구멍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한 손을 지팡이에 의지해 한 걸음씩 걸어가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걷는 것조차 쉽지 않다. 어쩌면 그날 비 오는 길이야말로 나 자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날이 아닐까?


10월 중순부터 내리기 시작한 스페인의 가을장마는 11월까지 계속되었고, 그로 인해 마드리드 지하철에 홍수가 나기도 했다.


스페인에 내리는 홍수 소식에 이렇게 호들갑인 이유는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 아님에도 기후변화의 영향은 유럽 역시 예외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은 소식으로는 스페인 남부에서 홍수로 인명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잠시 벗어난 경로

산티아고 프렌치 웨이 한국 앱과 구글 지도를 통해 내가 걸었던 길을 살펴보니, 애초에 순례길 루트로 설정된 경로와 내가 잡화점에서부터 콤포스틸라 카페까지 걸었던 길이 경로를 벗어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건, 내가 공원을 가로지르던 길인데, 그때 공원에서 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아마도 폰페라다를 빠져나가기 전, 다리 아래에서 순례자 그라피티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던 것 같다. 그곳엔 에너지 박물관도 있었고,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갔다.


길을 지나며 보이는 그라피티들 중에는 꽤 진지한 작품들이 많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들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걸어가겠지만, 이날 비로 인해 겪은 해프닝은 정말 잊지 못할 에피소드 중 하나로 남았다.



폰페라다를 빠져나가며

콜롬브리아노스를 CL-631 도로를 따라 마을에 진입했다. 마을에는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카페와 휴식처들이 줄지어 있었다. 나는 폰페라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몰리나세카에 도착했을 때처럼 늦은 시간에 숙소에 도착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 길을 재촉하며 걸었다.


콜롬브리아노스와 프엔테누에바스를 지나칠 때마다 각기 다른 특색을 가진 스페인의 작은 마을들이 내 기억에 깊이 남는다.


레온에서부터 시작된 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레온 전 사막길에서 만난 흙벽돌의 집들과는 정말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사람들의 성향도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마치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넘어온 느낌이랄까?




나는 중간중간 마을의 카페에서 낯익은 순례자들을 마주쳤다. 바에 앉아 젖은 몸을 말리며 따뜻한 음료나 술을 마시거나, 중간 마을의 숙소에 짐을 푸는 순례자들도 종종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2시쯤밖에 안 되는 시간에도 하늘은 여전히 구름으로 가득 차 있어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몰랐다.


금세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릴 것처럼 우중충했다. 하지만 완만한 경사의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몰리나세카로 내려가는 비탈진 산길보다는 심적으로 여유로웠던 것 같다.



캄포나라야

캄포나라야에 도착했을 때, 마을 입구부터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의 입구에는 Torre del reloj de Camponaraya 시계탑과 아름다운 순례자 동상이 있는 수돗가가 보였고, 원형 교차로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멀리서 마리아와 함께 걷기로 했던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마리아의 친구는 라바넬 델 까미노 가는 길에서 새벽 성당에서 만났던 금발의 바비핑크 영국인 순례자였다. 멀리서 바비 형광 핑크색 재킷 덕분에 더 빨리 그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때 시각은 3시쯤이었다. 나는 둘에게 인사를 건넸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마리아는 스페인 사람답게 예리한 눈으로 점심을 먹을 음식점을 고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면 함께 먹어도 되는지 물었다. 그 결과 그들과 점심을 함께 하게 되었다."




Mesón el Reloj 15:00

음식점은 외관과 달리 내부가 꽤 큰 규모였다. 현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2시부터 4시까지가 본격적인 점심시간이기 때문에, 일단 젖은 우비와 배낭을 문 근처에 벗어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비를 벗을 때 겨드랑이 부분이 찢어진 걸 발견하고, 그들은 무슨 있었던 거냐며 물었다.


나는 비옷이 얇고 약한 비닐 재질인데 옷을 많이 껴입고 배에 보조가방을 차고 다니다 보니 공간이 부족해 어느 순간 찢어졌다고 설명했다.


급하게 카페에 들어가 플라스틱 테이프를 요청했더니, 종이테이프를 받아 이렇게 된 거라고 말이다. 나는 찢어진 우비를 보여주며 웃으며 '꼭 홈리스 같지?'라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빌어먹을 우비, 찢어지고 난리야.!‘

4유로짜리 싸구려 비옷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으며 식당 안쪽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예상외로 음식도 서비스도 괜찮아서 우리 셋은 만족하며 높은 별점을 주었다. 마리아에게 감사의 뜻으로 따봉을 날렸다.


나는 점심이었지만 음료로 와인을 시켰고, 스페인에서는 두 명 이상 같은 메뉴를 시키면 와인 한 병을 주는 인심 덕분에 우리에게 와인 한 병이 왔다.


피아는 '와인은 스페인에서 물이다'라고 말하며 별 걱정 없이 와인을 즐겼다. 나는 아직 피아와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유머코드가 마음에 들었다.



식사를 하며 나는 아스토르가를 지나면서 새벽 성당에서 만났던 엄청 뚱뚱한 미국 여성 순례자가 잘 걷고 있는지 물었다. 피아는 왜 그런 질문을 나에게 하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때 상황을 설명하며, 새벽에 잠깐 성당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이야기와 그날 길을 잃었던 사건을 풀기 시작했다.


라바넬 델 카미노 가는 길 사건의 전말

아스토르가 Ermita del Ecce Homo 이야기의 전말을 다시 풀자면, 새벽에 우리는 예배당에서 잠시 마주쳤고, 그 후 구글맵이 이상한 길로 안내하자 나는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갔다. 그런데 걷다 보니, 고가도로 위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멈추라는 소리와 랜턴으로 구조 신호를 보내는 걸 봤다. 그래서 나는 다시 예배당으로 돌아가 길을 건너 다리 위 고가도로길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피아는 그 이야기를 듣자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피아: 맙소사! 그게 너였어?


맞아! 그날 기억나, 나랑 같이 걷던 미국인 여성 순례자와 새벽 예배당을 빠져나오면서 너를 봤었지? 우리는 그냥 같이 걷고 있었을 뿐이라,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 그래서 그녀가 지금 어디쯤 걷고 있는지 모르지만, 네가 그때 잘못된 길로 접어든 걸 다리 위에서 발견했어! 그때 너 말고 한 명 더 있었잖아!"


피아의 목소리는 점점 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격앙되었다. "너 정말 그날 빨리 걷더라고, 우리는 아무래도 잘못된 길인 걸 네가 모르는 것 같다고 판단했어. 그래서 알려줘야겠다 싶어서 다급히 다리에서 멈춰서 가방을 뒤로 벗어던지고... 쉣!" (피아는 다급하게 욕을 하며) 소리를 질렀어!

Stoooooop! Stttttttooooop it! Yoooooou Have wroooooong way~~~~~

(멈~쳐!!! 너 길 잘못 가고 있어~~~!)


그 순간, 네가 뒤돌아 오는 걸 확인하고 우리는 안도하며 다시 갈 길을 걷기 시작했어.


피아 입장에서 그 당시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소름이 돋았다. 왜냐하면 그 길을 안내해 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에게 감사함과 아쉬움이 남았고, 그 덕분에 나는 내가 받은 고마운 경험을 누군가에게 나눠 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산티아고의 수호천사가 어리숙한 순례자 한 명을 구한 거라고 표현했었다.


이렇게 한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사람이 나를 구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평범한 점심이 이제는 놀라움과 감탄사로 가득한 축하의 자리로 바뀌어 버렸다.


나는 피아에게 감사 인사와 비주를 했고, 피아는 내가 무사히 길을 걷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며 따뜻한 엄마 미소와 허그를 해주셨다.



말타기 체험에 관한 정보 공유

우리는 점심을 함께하며 서로 한층 가까워진 분위기 속에서 피아가 준비하고 있는 특별한 산티아고 이벤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것은 바로 순례길에서 승마 체험이었다.


나는 팜플로나와 부르고스를 지날 때 순례자들 중에 말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해볼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피아는 말 체험 예약은 인기가 많아서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혹시 후반부 구간에서 말 타기를 원한다면 이 사이트에서 예약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우리 셋은 마치 평생 친구처럼 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하고 맛있는 점심을 마쳤다.


피아는 캄포나라야 근처에 숙소를 예약해 둔 상태였고, 나와 마리아는 카카벨로스까지 5.8km를 더 걸어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4시가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튼튼한 판초가 필요해서 길거리에 진열된 판초 우비들을 구경했지만, 모두 유럽 사이즈라 너무 커서 숙소에 도착 후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마리아

마리아는 이번이 두 번째 순례길이었다. 그녀는 북쪽길을 걸었고, 심지어 순례 자원봉사도 해본 경험이 있었다.


우리는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다 보니 서로 비슷한 또래임을 알게 되었다(마리아가 3~4살 어리긴 했지만). 순례길에서 비슷한 또래를 만나는 것 자체가 귀한 인연이었다. 우리는 국적이나 인종을 떠나, 우리 또래만의 고민거리들을 이야기하며 걸어갔다. 완주 후 직장을 구하는 것과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등등



카카벨로스 가는 길

카카벨로스 가는 길은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하며 마을을 벗어나 점점 시골 숲길로 배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빠르게 왓츠앱을 공유했다. 마리아는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의 침착하고 차분한 말투는 이야기를 처음 나눴음에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나무들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아름다운 예술 작품처럼 나무들을 빛나게 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6킬로미터 남짓 되는 거리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카카벨로스 17:20분

마리아는 카카벨로스에 위치한 공립알베르게가 있는 곳으로 가보겠다고 인사를 나누고, 짐을 푼 후 상황이 되면 함께 저녁을 먹자고 말한 후 나는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에 들어가자 보관함에 내 빨간 등산 배낭이 얌전히 뽀송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로비에 들어섰을 때 벤, 브라이언, 피터 아저씨가 바로 숙소에 붙어 있던 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우리는 또다시 만났다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빠르게 체크인을 마쳤다.


숙소는 4인실에 화장실이 딸린 깔끔한 숙소였다. 숙소 이름은 Albergue-Hostel La Gallega였고, 1층 침대 자리는 이미 누군가 차지한 후여서 나는 결국 또 만년 2층 침대를 써야 했다.


내가 들어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샤워를 마치고 잠시 0층 로비에 내려갔다. 벤, 브라이언, 피터 아저씨 세 분은 저녁 식사 전 맥주를 마시며 여독을 풀고 있었다. 나는 0층 로비로 내려와 세 분 자리에 잠시 합석해 오늘 결국 우비를 구입하게 된 썰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냈다.


그분들은 나를 막내딸 보듯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이야기를 들어주셨는데, 그분들은 고생 많았지만 무사히 잘 도착해서 다행이라며 내 물집 걱정을 해주셨다. 나 역시 물집이 배낭 짐을 안 매고 걸으면 아무는 것 같다고 말씀을 건네었더니 일리 있는 말이라며 내가 말하는 이야기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여 주셨다.


마치 산티아고 길의 아빠들인 것처럼 나를 지지해 주셨다. 이야기를 마칠대쯤 마리아에게 왓츠앱 문자가 왔다. 공립 알베르게 문이 닫혀 있어서 내가 묵는 숙소에 방을 잡았다고 말이다.


삼총사와 인사를 나눈 후 방으로 돌아오자 룸메이트 분들이 들어와 있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스페인 호머 심슨 아저씨(맥주배를 가진 심슨 캐릭터 별명)와 독일인 아줌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정말 이 조합이 재미있다고 느낀 것은 독일인 아줌마나 스페인 아저씨 두 분은 전혀 영어를 못했고 각자 나라의 언어만 사용할 줄 아는 분들이었다.


나는 Say Hi 통역앱을 이용해 대화를 시도했다. 언어란 게 참 신기한 게, 한 가지 각자의 언어의 연결고리만 있으면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될 수 있다. 역시 말이 통하기 시작하니 분위기가 전환되기 수월해졌다.



저녁 나들이

옆방에 마리아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103호로 문을 두드렸다.

근처 잡화점에 다시 가서 우비를 봤지만, 폰페라다에서 샀던 똑같은 핑크 비닐 우의였다. 주인장은 이 우비가 아주 튼튼하고 좋을 거라고 했지만, (내가 직접 테스트한 결과는 갈기갈기 그렇게 찢어져 버렸는걸…)


나는 이거 똑같은 걸 오늘 다 찢어져서 다른 거 사러 온 것이라, 다른 거 없냐고 물어보니, 이게 유일한 옵션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더 튼튼한 판초를 사려면 트레킹 전문샵이나 데카트론에 가는 걸 추천한다.

결국 나는 숙소에서 판매하고 있는 밝은 카키색 판초 우의를 8.50유로에 구입했다.




잡화점에서는 결국 아무것도 없어서 마리아와 함께 잡화점 앞에 있는 슈퍼마켓에 가서 맥주와 감자칩 그리고 초콜릿과 바나나 이렇게 늘 사는 것들을 쇼핑을 했다. 조금 다른 것이라면 마리아가 갈리시아 지방에 왔으니 갈리시아 맥주를 먹어보라고 추천을 해줬다.


마리아는 계속 젖은 발로 걸어서 발톱 상태가 이상하다며 약국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근처 약국에 들러 약을 사서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숙소 앞에 음식점에선 한국라면을 팔고 있었다.



저녁 식사는 짜파게티/ EL MONO DEL CAMINO/ 20:00

저녁을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몸도 비에 젖어 있었고 다른 음식점을 찾아다니기도 귀찮아서 우리는 거기 앉아서 내가 추천한 짜파게티를 먹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나는 마리아에게 장담하면서, '분명 좋아할 거라고' 말하고는 음식을 시켰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도 거의 전 국민이 좋아하는 간식이니까, 아마 먹으면 눈이 휘둥그레 해질 것이다.


꽤 나름 그럴듯하게 계란 반숙까지 얹어서 나온 짜파게티는 초면에는 꽤나 낯선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를 믿고 한 번 먹어보라고 권했다. 마리아는 오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음음'을 연신 말하며 짜파게티를 맛있게 먹었다.


당연하지!! 짜장면이 괜히 국민 간식이 아니니까!!


마리아는 스페인 사람이지만, 왜 그렇게 친근한 느낌이 들었을까 생각해 보니, 친근하고 참한 아시아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순수함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서양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느낌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너무 순수하고 착해서 꾹꾹 눌러두고 있는 느낌? 리액션도 잘해주고, 말도 조곤조곤하게 했다. 토닥거리며 위로해 주는 리액션이 뭔가 아시아적인 느낌이라 그렇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짜파게티를 먹을 때, 리액션은 고삐 풀린 서양인 같은 느낌이 나타났다.


진심, 맛있는 걸 기대한 것보다 더 맛있었을 테니 놀랄 만도 하다. 어쩌면 마리아는 나름 낯을 가리고 있었던 걸 지도 모른다. 짜파게티 하나로 무장해제 돼 우리는 점점 더 마음을 열고 친한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거한 점심 이후, 의외의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다.


잘 자! 내일 보자!

잠자기 전

방으로 돌아오니 독일인 순례자 분이 벌써 잘 준비를 하고 계셨다. 우리는 밥 먹기 전, 통역 앱으로 떠들었던 수다 덕분에 방 분위기가 한결 편해져 있었다. 스페인 아저씨는 내일 일찍 출발할 예정이라며 나에게 '코를 골지 말라'며 농담을 건넸다.


아저씨는 스페인 아저씨들이 그렇듯 술을 많이 마셔서 배가 남산 만하게 나왔고 늘 얼굴이 벌겋게 닳아 올라 있었다. 하지만 페르디난도 황소처럼 섬세하고 좋은 분이었다. 만약 말이 통했으면 엄청 말을 시켰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독일 아줌마의 경우, 말 그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독일인 그 자체였는데 발에 발크림을 바르고 정갈하게 정리된 침대 위에 누워서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말 수는 많지 않고, 웃음 포인트도 정말 언제 웃어야 할지 싶게 재미없는 포인트에서 웃으셨다.


나중에는 친숙하게 말도 걸어주시고 했지만, 말을 많이 소통하는 타입은 아니란 건 확실하다. 두 분의 배려 덕분에 조용하게 방에서 쉴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숙소 앞 음식점

숙소 앞 짜파게티를 먹던 음식점은 밤이 되자 동네 사람들이 나와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이 되기 시작했다. 술까지 마셨으니 목소리 톤이 더 올라간다. 잠 안 자는 스페인 주정뱅이들 같으니라고! 누가 유럽 사람들 일찍 잔대?


스페인 사람들은 시에스타를 해서 밤에 더 말똥말똥하다. 게다가 말소리 볼륨을 줄이는 기능이 전혀 없다. 마치 중국인처럼….(극혐) 문을 닫으면 답답하고 열면 시끄럽고 아주 대 혼돈 그 자체이다!


귓구멍을 틀어막고 겨우 잠을 청했다. 그리곤 어김없이 새벽에 깨서 화장실을 간다.


충전 플러그가 아래에 있기 때문에 핸드폰을 아래에 두고 자야 한다. 나는 핸드폰을 빼들고 잠깐 메시지를 확인한 후 이층으로 올라가 내일 가야 할 루트를 확인했다.


나는 내일 Vega de Valcarce(베가 데 발칼스)까지 25km를 갈 것이다. 긴 여정이기 때문에 일찍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새벽에 자다 깨서 숙소 예약도 다 마쳤다. 그러니 이제 걱정할 게 별로 없다.


스페인 아저씨는 예상대로 연신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고 있다.

오늘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매일 걷는 이 순례길의 내일이 기대된다.


이제 200km만 가면 산티아고에 도착한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다.

이 순간이 아쉬울 정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9월 19일에 나는 파리에서 생장으로 도착해 순례자 여권을 사고, 20일 피레네 산을 넘었었다.


그때의 설렘과 피레네 산만큼이나 넘기 어려울 거라 느꼈던 나의 두려움을 넘고 산전수전을 겪으며 한 달이나 순례길을 걷고 있었다.


빨리 잠에 들어야 할 것 같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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