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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Cebreiro에 울려 퍼지는 백파이프 연주

오스삐딸 데 콘데사 가는 길 (Hospital de Condesa)

by 양작가

인생의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진 않는다. 단지 내 뜻대로 흘러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길을 걸으며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걷는 동안의 과정을 나의 계획 안에서 조금은 여유롭게 지켜 바라봐 줄 수 있게 변화하고 있었던 것 같다.



2023년 10월 21일 새벽, 숙소 안

베가에서 올든과 함께 만들어 먹었던 저녁 집밥이 아득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여자 셋이 함께 쓰는 방에서라면 편히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화를 마치고 돌아온 올든은 곧 코를 골기 시작했다.

코를 고는 유형에 대해 나는 길을 걸으며 종합적으로 정리해 본 적이 있다. 아마 코골이 연구학자 수준으로 심층적으로 고민해 본 것 같다. 왜냐하면 코골이의 유형과 소리, 체형, 식습관 등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코골이 유형을 나름대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비만

담배

체력 저하로 인해 몸이 감당이 안 되는 상태


길을 걸으며 잠을 자는 것은 정말 중요한데, 코를 고는 유형에 따라 다르게 느껴졌다. 어떤 유형은 저음으로 낮게 깔려서 크게 방해가 되지 않았고, 어떤 유형은 마치 소리를 지르는 듯한 고음이라 신경이 곤두섰다. 그리고 숨을 쉬지 않다가 갑자기 내뱉는 유형도 있었다.

새벽, 나는 코고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어둠 속에서 침대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이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10월 21일 아침

베가에서의 저녁은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초반 길, 비아나에서 하갈 언니와 함께 만든 저녁 식사처럼, 후반 길 최고의 식사였다. 밤새 장작을 태운 열기가 주방에 남아 있었다.


습한 날씨 탓에 빨래는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나는 그동안 쓸모없다고 생각하며 가지고만 다녔던 드라이기를 드디어 꺼내 쓸 기회가 생겼다. 축축이 젖은 옷들을 드라이기의 따뜻한 열기로 말렸다. 올든도 양말이 마르지 않는다며 드라이기를 빌려 갔다.


새벽녘,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일찍 길을 떠났다. 한적해진 숙소에서 올든과 나는 주방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깨우며 출발 준비를 했다.

오늘은 언덕을 넘어야 하는데, 또다시 어제처럼 비가 쏟아진다면 여간 고생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다행히도, 오랜만에 구름이 걷히며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하늘 아래, 무지개가 살포시 내려앉았다. 어제처럼 감동에 북받쳐 눈물을 쏟을 만큼 크고 화려한 무지개는 아니었지만, 소박하고 조용한 아침 속에 떠오른 무지개가 오늘 하루의 좋은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햇볕의 따스함이 그리웠으니까.



출발 :Vega de Valcarce> Ruitelán 2.1km > Las Herrerías 3.5km > La Faba 6.6km > La Laguna 9.2km > O Cebreiro 11.5km > Liñares 14.8km > Hospital da Condesa 17.2km

도착: Hospital de la Condesa

총 거리 17.2km



10월 21일 출발 8:53

오늘은 숙소를 예약하지도, 어디서 멈출지도 정하지 않은 채 걷기로 한 날이다. 10km 정도 오르막을 오르면 그다음부터는 완만한 고산지대가 펼쳐질 것이다. 최소 20km는 걷게 되지 않을까? 짐을 단단히 고쳐 매고, 올든과 함께 9시가 다 된 시간에 출발했다.


마을을 지나 오르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몸이 풀리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이는 아니었지만, 올든과의 대화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안했다. 그래서인지 서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줄줄이 털어놓았다. 물론 모든 이야기를 다 꺼낸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올든은 길을 걸으며 ReLive라는 앱을 사용하고 있었다. 예전에 아나가 나에게 추천했던 앱이었다. 이 앱은 지형과 거리 정보를 기록하고, 지나온 길의 특징을 사진과 함께 영상으로 만들어준다. 두 번째로 추천을 받으니 신뢰가 갔다.


나는 평소 새로운 앱을 깔거나 사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은 모든 것에 마음을 열어둔 상태였다. 그래서 이번엔 시도해 보기로 했다.


올든이 사용하던 스틱이 꽤 가벼워 보이면서도 순례길을 걷기에 적합해 보였다. 무겁지도 않고 편리해 보이길래 그 얘길 꺼내자, 올든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론세스바예스에서 누군가 기부물품으로 두고 간 거야! 내가 가져와서 정말 잘 쓰고 있지?"


나는 순례길을 걸으며 내 안의 "가시"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 발 내딛어 상대방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내 모습이다. 상처받는 게 두려워 20대의 아픈 기억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던 나. 하지만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닫고, 그 내면 아이를 깨워 살피기 시작했다.


올든과의 대화, 따뜻한 저녁 식사, 그리고 후반길에서 만난 무지개까지. 그 모든 순간이 조금씩 나를 과거에서 꺼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있었다.



Las Herrerias

산중턱과 내리막이 맞닿은 곳에서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고, 계곡 물소리가 고요하게 들려왔다. 그런 풍경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던 중, 수줍게 고개를 내민 무지개를 발견했다.


마을을 지날 때, 피아가 말했던 트래킹 광고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말을 타고 산을 넘는 프로그램이었다.

피아는 지금쯤 말을 타고 산을 넘고 있을까?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비탈진 경사를 따라 걷다 보니, 나와 올든의 발걸음 차이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길에서 한국인 약사분과 한국인 남성 무리들과 몇 번 마주쳤다.


올든은 원래 조용히 홀로 걷는 스타일이었다. 걸으면서 한참 먼저 올라가 나를 기다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결국 중간에 있는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홀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마 4km 정도 지점이었을 것이다.



INICIO SUBIDA O CEBREIRO 갈림길

이제 165.9km밖에 남지 않았다. 오르막 산길이었지만, 중간중간 자리한 산장들과 마을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지루할 틈이 없었다. 길가에는 간밤의 비를 맞고 떨어진 밤송이들이 널려 있었고, 그 사이 입을 벌린 밤 한 개를 주워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걸었다.


이 구간은 구불구불한 아스팔트 자전거 도로와 왼쪽의 순례길로 나뉘어 있다. 순례자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살짝 우왕좌왕 하긴 했으나 좁고 굳은 산길인 왼쪽 길로 방향을 틀어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섰다.


비에 젖은 낙엽들, 그리고 이른 아침 많은 순례자들이 지나간 흔적들로 인해 길가에는 터진 밤들이 질퍽하게 늘어져 있었다. 습하고 눅진한 흙길이 발에 감겼다.


길가에 떨어진 나뭇가지들은 구석구석 이끼가 들어차 초록빛 새 옷을 입고 있다. 벌레들의 안식처가 된 고목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풍경만 보면 마치 비 오는 날 북한산을 걷는 듯했다. 순간, 한국에서 걷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갈리시아의 기후는 한국과 닮아 있었다.


다만, 이 길이 카스티야와 갈리시아의 접경 지역이며,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이 콤포스텔라를 향해 걷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La Faba

La Faba에 도달했을 때, 164.5km라 쓰여 있는 비석과 수돗가 나타났다. 산길에서 수돗가를 찾기 쉽지 않다. 내 속도는 느렸지만, 비탈진 길을 오르며 내가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수돗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프랑스 아저씨와 마주쳤다.


아저씨는 나에게 기념으로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지나던 순례자와 함께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며, 쉬지 않고 계속 걷기 시작했다.

그 비석 옆 표지판이 가리키는 음식점에는 올든이 있었던 것 같다.


라 파바에서 라 라구나까지, 이 프랑스 아저씨와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아저씨의 이름은 Josian이고, 툴루즈에서 왔다고 했다. 내가 들고 있던 밤을 보며 프랑스 사람들도 밤을 구워 먹거나 삶아 먹는데, 이곳 사람들은 먹을 것이 풍족한지 잘 먹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La Faba에서 La Laguna까지 가는 가파른 길을 걷는 내내, 할 일을 마친 말들이 듬성듬성 산길을 내려갔고, 산길을 벗어난 울타리에는 목장의 말들과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이 말들이 너무 재미있었던 건, 사람이 익숙한 듯 아무런 반응도 없이 순례자들 앞을 지나갔다는 것이다. 우리 순례자들은 점점 더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고 있었다.


왼쪽에는 푸르른 목장이 펼쳐져 있고, 오른편에는 누군가 돌을 하나씩 모아둔 기도 탑들과 여기서 잠든 순례자를 기리는 비석과 꽃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만약 어제 폭우가 쏟아졌던 날, 지금 이곳을 산행했다면 비와 안개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산길을 걸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까미노의 길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으며, 매 순간 새로운 이벤트를 선사했다.


La Laguna / Bar Albergue La Escuela

조지앙 아저씨와 함께 라구나까지 3km를 걸었고, 계속된 경사길에서 나온 중간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타난 Bar Albergue La Escuela는 아까 갈림길에서 나뉘었던 자전거 길이 합쳐지는 길목이라 많은 자전거 순례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보다 한 템포 먼저 들어가 식사를 하고 있던 조지앙 아저씨 옆에는 먼저 앉아 대화를 나누던 영국 브라이튼 출신의 내 또래 순례자와 다시 인사를 했다.


조지앙 아저씨는 이미 식사 중이었기 때문에 바에 앉아 식사 중이었고, 영국인은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길래 함께 앉아도 되는지 물었다.

우리는 잠시 얘기를 나누며 이른 점심 식사를 했다.


이 순례자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아 ‘브라이튼’이라고 부르겠다.

그는 브라이튼 대학교에서 직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오늘은 이곳 ‘라 라구나’ 에서 걷기를 마무리할 거라고 한다.


오늘 9.2킬로미터를 걸어서 , 탄력이 붙어 대부분 20km 이상을 이동 중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걷고 있던 모든 순간이 소중해서, 이 브라이튼 출신 영국 순례자처럼 길의 후반부를 천천히, 멈추고 갔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친 그는 배낭과 침대 시트를 들고 숙소로 올라갔고, 나는 밖으로 나와 바깥 풍경을 감상하며 잠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누구를 만나도, 그 모든 순간들이 나를 배울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느낌이 든다.

풍경을 바라보는데, 소를 이끄는 목동 할아버지의 누렁 소들이 마을 중간을 관통하고 있었다.




Punto de Entrada a Galica 드디어 갈리시아

주 경계선을 몇 미터 지나가면 카스티야 이 레온과 갈리시아를 상징하는 방패 모양 문장을 볼 수 있다.
산티아고까지 160.948km가 남았음을 표시하는 돌 이정표가 있다.
비석에서 이제는 카스티야 이 레온이라는 표시 대신 갈리시아라고 기록되어 있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기점으로 사진을 찍는다. 갈리시아 지방으로 넘어감을 알리는 갈리시아 문양이 새겨진 멋진 비석 위에 돌을 쌓으며 기도를 올린다. 이는 마지막 여정이 안전하게 콤포스텔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이다.


O Cebreiro에 울려 퍼지는 백파이프 연주

O Cebreiro에 도착 직전, 길 오른쪽 벽에 가득 붙어 있는 아이비 길이 나타난다.

이곳은 띄엄띄엄 혼자 걷던 순례자들이 모여드는 정체 구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 역시 이곳에서 아는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익숙한 갈색 곱슬머리의 뒷모습이었다.

"와우! 마리아!"


이 담장 길은 워낙 좁아서 소란스럽고 정신이 없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이 길에서 다시 만난 것에 감사했고, 정말 반가웠다. 10킬로미터 후반의 길을 마리아와 함께 걷게 되었다.

원래 마리아의 계획은 이곳 O Cebreiro에서 짐을 푸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이곳에 짐을 풀거나, 후반 순례길에 합류할 수 있는 중요한 합류지이기도 하다.

마리아와 간단한 인사 후, O Cebreiro로 들어가는 입구에 앉아있는 소녀상 **Escultura “Peregrina Repousando”**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 옆에 있는 비석 앞에서는 백파이프 연주가 울려 퍼지며 순례자들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있었다.


내가 가진 자료는, 날이 밝은 날 소녀상은 10월 초 베로니카가 공유한 걸어갔던 날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내가 걸었던 10월 21일은 아마도 안나가 걸었던 시기와 비슷하고 하루 이틀 차이가 나는 거리였기 때문에, 안개에 둘러싸인 소녀상은 또 다른 색다른 매력을 보여줬던 것 같다.


순례길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선사해 주니 어떤 날씨와 상황이건 여전히 아름다운 것은 어떻게 봐도 아름 다웠다.



나는 마리아에게 어디까지 가는지, 도착 예정지를 물었다. 나는 점심을 La Laguna에서 일찍 먹었기 때문에 O Cebreiro에 머물 이유는 별로 없었다.


마리아와 상의 후, 우리는 이곳이 아닌 다음 마을에서 머물기로 합의하고, 마을을 가로질러 걷기 시작했다.

더 걷자고 얘기를 했지만, 일단 O Cebreiro를 빠져나가려면 마을을 가로질러 마지막 코스인 Albergue Municipal de O Cebreiro를 지나쳐야 했다.


마침 갈리시아의 전통 가옥을 구경하며 알베르게 앞을 지나는데, 멀리서 에바와 카르멘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카르멘에게 다가가 저번에 공유한 왓츠앱이 등록이 안 된 것 같다고 말하고는 다시 연락을 마쳤다.


이 둘은 쿨하게 인사를 마친 뒤, 올든과 점심을 먹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빠른 걸음으로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베가 데 발카르세 가는 길 처럼 올든과 자주 마주치면 좋으련만, 오늘은 서로 엇갈리는 흐림인가보다. 하지만 오늘은 또 새로운 하루임에 더 집중하고 나는 마리아와 길을 걸어 나아갔다.



Albergue Municipal de O Cebreiro

저기 두 젊은이와는 다르게 우리는 여전히 느리게 한 발, 한 발을 내디뎠다. 이제는 느리다고 불안함이 올라오지 않는다.


마리아는 이 숙소에 머물지 여전히 고민 중이었다. 이유는, 다음 도착 예정지까지 일정에 오늘 조금 더 걷게 되면 내일 아주 조금밖에 못 걷는다는 것이었다. 일단 우리는 알베르게 앞에 발을 멈췄다.


오늘 날씨는 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었지만, 오후가 되면서 구름이 다시 차오르며 시야가 뿌옇게 바뀌고 있었다.

알베르게 입구에는 깨진 와인잔이 보였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누군가 위험하게 입구에 이렇게 잔을 깨 놨다니...


뭔가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둘 다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우리는 알베르게를 지나 허리 위로 올라와 있는 갈대와 고사리를 뚫고 숲길을 헤치며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이 길이 길이란 걸 알려주는 지표는 유일하게 순례자 비석뿐이었다.


여기서부터는 1000m 지대에 구름과 시야가 맞닿아 있었고, 굉장히 습한 기후 덕분에 숲이 울창하게 밀림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이 걸을 길까지 침범한 대왕 고사리들을 막대기로 눌러가며 앞을 헤쳐 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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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o de San Roque

험한 길은 없었으나 수풀이 너무 우거져서 옷들이 이슬에 푹 젖으며 걸었다.

웃옷은 초록색 물이 들어 지저분해지고 있었다. 밀림을 지나 Liñares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자, 언덕 위로 거대한 순례자 동상이 나타났다.


해발 1270미터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있는 이 거대한 순례자 조각상은 요소와 싸우는 어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막대기에 기대고, 바람에 휩쓸릴 위협이 되는 모자를 들고, 갈리시아 예술가 호세 마리아 아쿠냐가 조각한 순례자는 힘든 것처럼 보인다.


도로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자전거 순례자들과 마주치는 구간이기도 했고, 바람을 가르며 걸어가고 있는 순례자들을 표현한 이 아름다운 조각상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치 이 동상이 순례자 동료인 것처럼 대하며 말이다.


이제 오스삐탈로 가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 경사의 도로 였다. 그때 내 기억으로, 마리아가 순례길을 걸으며 겪었던 난처한 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나와 상담하며 함께 걸어 내려갔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금방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게 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이제 서로 마음을 놓고 조금은 편안한 사이가 되었으니까. 길이 더 편하게 느껴졌다.

Hospital de Condesa 도착: 15:50

유일하게 있는 저렴한 알베르게와 음식점겸 호텔이 전부인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슈퍼마켓에 가려면 전 도시나 다음 도시로 몇 킬로를 더 걸어야 한다. 우리는 날도 어두워지고, 이곳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마을에 접어들었을 때 갑자기 우리 머리 위로 큰 매가 날개를 펼치며 유유히 지나갔다. 흔하지 않게 가까이서 본 광경이라 나는 손가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나: "저기 봐봐! 매가 지나가고 있어!"


한참을 매에게 시선을 뺏겼다. 그러고 나서 나는 피레네에서부터 매와 독수리를 마주친 이야기를 마리아에게 해주었다. 매나 독수리는 저 높은 곳에서 우리를

다 지켜보고 있다고! 나는 그들을 하늘을 올려 볼때 마다 보는데 그들이 나를 지키는 수호천사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말했다.


마리아는 길을 걸으며 매를 자주 보진 못했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니 하늘을 자주 봐야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숙소에 짐을 풀지 더 걸을지 잠시 고민했으나, 마리아는 여기서 더 걷게 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말에 오늘은 이곳에서 짐을 푸는 게 무난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오늘 길은 언덕이 심했지만, 그렇게 고단하고 힘들었던 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직 더 걸을 만큼의 체력이 남아 있었으니까.



ALBERGUE PARA PEREGRINOS "HOSPITAL DE LA CONDESA"

우리는 이 긴 이름의 숙소에 체크인할 때, 이미 4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나 다른 순례자들이 짐을 풀고 쉬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도 인기척조차 보이지 않았다. 비가 와서 옷도 축축하고 추운 상태였던 터라, 호스트의 불친절함이 더 눈에 띄었다.


어제 "베가 데 발카르세"의 주인장과는 너무 달랐다. 그곳에서는 손님을 반갑게 맞아줬지만, 여기는 전혀 환영받지 않는 느낌이었다. 결국, 퇴근하지 못하고 둘밖에 없는 순례자들을 체크인 후 영 그 호스트를 마주할때 기분이 썩 좋지는 못했었다.


주방에는 의자들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고, 공영 알베르게 특유의 오픈형 구조로, 천장이 보이는 숙소였다. 기온이 급격히 10도 이하로 떨어져서, 두 명밖에 없는 숙소에 난방을 켤 기대는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따뜻한 물과 조용한 환경, 넓은 실내 공간이 있어서 조금 위안을 삼았다.

정말 마음에 들었던 점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그림 같은 바깥 풍경이었다. 일몰 뷰가 예술 그 자체였다.

숙소 맨 구석 자리에 짐을 풀고, 젖은 옷과 샤워 용품을 정리하면서 마주 앉아 있었는데, 마리아는 항상 판초도 고어텍스 신발도 아닌 일반 등산화를 신고 걸었다.


나: "마리아! 안 추워?"

마리아: (몸을 부들부들 떨며) "괜찮아! 따뜻한 물로 씻으면 괜찮아질 거야."


아이구, 이런!


마리아는 젖은 옷들을 세탁하려고 했는데, 나에게도 같이 세탁하자고 권했다.

보통 순례길에서 잘 맞는 순례자들과 합의가 잘 되면 자주 이런 일이 생기지만, 나는 나름의 깔끔 기준이 있어 정중히 사양하고 손빨래를 했다.


유효기간이 만료된 유심칩

그때, 갑자기 스페인어로 된 장문의 문자가 날라왔다. 아이폰 번역기를 돌려보니, 요금제 추가 납입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가 레온에서 구입한 오렌지 유심의 시작 기일보다 며칠 앞서 있었기 때문에 그게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유튜브를 하루 종일 틀어놓거나, 걸을 때마다 구글 GPS와 카미노 앱들을 여러 개 켜두다 보니, 데이터가 빨리 닳는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갑자기 와이파이가 안 된다는 건 여행 중에 지도를 잃어버린 것처럼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일베르게 공용 와이파이를 연결해 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레온에서 산 새 오렌지 유심을 넣어봤다. 다행히 와이파이가 돌아간다. 휴~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오늘은 특별한 해프닝 없이 조용히 지나가나 싶었는데, 이렇게 또 작은 소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저녁 식사: Mesón O Tear

마리아는 점심을 거른 채 오스삐딸로 와서 배가 고팠던지, 뭘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나는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아 샤워를 하며 짐을 정리하기로 했다.


마리아가 식사를 하러 나간 사이, 나는 순례길에서 알베르게를 통째로 혼자 차지한 경험을 했다. 이렇게 혼자 있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늦게까지 샤워를 하면서, 몸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따뜻한 물이 잘 나와서 뒷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샤워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순례자들이 올 거라면 진작 짐을 풀었을 텐데, 아마도 모두 전 마을이나 후 마을에 짐을 풀었을 것 같다고 짐작했다. 날씨와 계절이 바뀌면서 해지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았다.


마리아가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마리아의 세탁기 빨래가 끝난 상태였다. 이제 배가 고파져서, 마리아가 식사했던 음식점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가니, 일몰이 아름답게 하늘을 물들이며 내려앉고 있었다.

"오늘도 해냈구나! 장하다!"



식당에서의 저녁

식당에 도착했을 때, 주인은 이미 문을 닫고 퇴근하려는 찰나였다. 하지만 나와 마주친 주인은 흔쾌히 다시 주방에 불을 켜고, 오늘 해놓은 요리를 내놓았다.


아마 한국에서라면 이런 상황에서 인상을 쓰며 매몰차게 돌아가라고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가톨릭 정신에 따라 순례자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대접해 주었다.


이곳은 오스삐딸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처럼 느껴졌다. 나는 갈리시아 수프, 빠에야, 돼지고기 미트볼, 감자 등을 시켰고, 음료로 와인을 한 잔 주문했다. 그런데 와인이 한 병이 나왔다.


이렇게 혼자 순례길에서 식사를 즐긴 건 처음이었다. 슈퍼마켓도 보이지 않는 시골 마을이라 음식의 맛을 평가하긴 어려웠지만, 하루를 마치며 감사히 식사를 했다.


혼자 식사를 시작했을 때, 동네 주민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러 들어왔다. 그 사람은 주인장과 함께 티브이를 보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닥수훈트 강아지조차 이곳이 익숙한지, 식당을 돌아다니며 둘러보고는 나에게 다가와 냄새를 맡아보더니 다시 주인에게 돌아갔다.


와인을 많이 마셨고, 식사를 마친 후, 식당을 빠져나왔다. 미리 준비된 찬 음식을 먹으라며 주인장이 계속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편히 먹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베가 데 발카르세에서 올든과 함께했던 아늑한 저녁이 그리워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식사를 마친 후,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스페인 순례길의 시골길에는 조명등이 없다. 한국의 시골도 농산물과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밤에 조명등을 꺼두기 때문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숙소 앞의 멋진 풍경이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그 풍경도 점점 어두워지니 조금은 으스스해서, 잠시 감상하다가 숙소로 급히 뛰어 들어갔다.



둘만 있는 알베르게의 밤

마리아의 빨래는 건조까지 마치고, 어느새 다 마른 상태였다. 그런데 여전히 내 빨래는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그냥 같이 빨래 돌리자고 할걸" 하는 후회가 살짝 밀려왔다.


숙소의 주인장도 이미 퇴근한 상태여서, 마리아에게 6시 이후에는 현관문을 잠그고 소등하라고 지시를 받았다. 정말, 이 큰 숙소에 우리 둘만 남았다.


저녁이 되자 기온은 급격히 떨어져 한 자릿수로 내려갔다. 마리아와의 대화 중 가장 재미있었던 건 역시 이성 문제에 관한 이야기였다. 길을 걸으며 추근덕거리는 아저씨들에 대해 나누었다. 마리아는 함께 걷던 한 아저씨가 2번 정도 길에서 마주쳤다고 했다. 문제는 마리아가 너무 착해서, 다 받아 준다는 것이었다.


"하… 어딜 가나… 이런 놈들……"


마리아는 다른 유러피언처럼 콧대 높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순수하고 충성심이 높으며, 사람을 좋아해서 이야기를 들어준 것뿐인데, 그걸 좋다는 것으로 착각한 아저씨는 계속해서 추근덕대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마리아는 그저 고맙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지저분한 인간관계나 추근덕거리는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경험이 많았다. 순례길 전에 지원 사업 관리 업무를 하며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했기 때문에, 그런 복잡한 상황도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지 알았다.


나는 마리아에게 단호하게 "차단버튼을 누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싫다고" 정확히 말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통해 많은 인생 공부를 했으니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평온하게 길을 걷는 것이었다.


좋은 일이라면 몰라도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면, 그런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을 더 대우하고, 똑똑하게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긴 밤 동안 나누며, 숙소에서 일찍 눈을 붙이려는 순례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큰소리로 수다를 떨었다.


침대 두 자리에만 켜지는 조명등이 너무 깜깜하고 으스스해서, 우리는 침대 6개의 조명을 모두 켰다. 사람이 많으면 서로 온기를 나누고, 위험에 대비해 서로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란 조명의 따스한 느낌이 추위를 조금 덜어주는 듯했다.


오늘을 기점으로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고, 우리는 모두 옷을 껴입고 판초까지 덮어 이불 삼아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 둘밖에 없는 숙소에서, 정말 적막한 고요함 속에 금세 잠이 들었다. 새벽에 기온이 더 내려가면서 추워져, 잠에서 깨어났다. 마리아는 피곤했는지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베가 데 발카르세에서의 아늑한 숙소와는 달리, 벌써 이렇게 추워져서, 늦가을과 겨울 시즌에 숙소와 걷기가 어떨지 짐작할 수 있었다.


추우니까 또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나는 0층까지 내려가는 게 귀찮아서, 1층 화장실을 열고 볼일을 봤다. 그렇게 오스삐딸 데 콘데사에서의 하루가 저물어 갔다.


침낭 속으로 몸을 구겨 넣고, 어디까지 갈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마리아는 어제 일정을 공유하면서 Fonfría까지만 갈 거라고 했고, 나는 오늘처럼 얼마나 더 걸을지 모르겠지만, 더 걸을 수 있다면 더 걸을 것이다. "무리하지 말고 상황을 즐기자"는 생각이 들었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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