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거리에서 만난 예술

그래피티·버스킹·현대미술로 물든 거리 이야기

by 양작가

더운 여름, 다들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작열하는 여름 태양을 마주하면, 순례길에서 맞이했던 사막길의 녹아들 듯한 태양이 떠오릅니다.

그래서인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유독 순례길을 다시 걷는 꿈을 자주 꾸는 것 같아요.

습해진 날씨 탓에 더위를 피해 밖으로 나가보아도, 충격적일 만큼 더 습해서 금세 열기에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입니다.


유럽 소식을 뉴스로 접하다 보면, 이상기후로 인해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소식이 이어지고 있어요.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견디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마음 같아선 옆집 넘어가듯 유럽으로 훌쩍 떠나고 싶지만, 그 마음을 붙잡아 두는 힘은 바로 이 ‘순례글’을 쓰며 더운 여름을 건너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우디 투어를 마친 오후 시간

가우디 투어를 마친 이후 오후 시간 가우디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무리들과 헤어져 도심을 걷기 시작했다. 7시간을 세비야에서 타고 온 기차 여행 때문인지 아직도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가우디의 예술혼에 취해 감명을 받자마자 내가 또 바르셀로나의 어떤 부분에 감동하고 애정을 쏟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다시 까탈루나 광장을 향해 걷기 시작해 카탈루냐 광장에 있는 순례자의 수돗가에 도착했다.

함께 지나칠 때는 하지 못했던 수돗가에 들러서 물이 잘 나오는지 물을 틀어봤다. 낡았지만 여전히 쓸만하게 물이 흘러나왔다. 혹시 이곳을 지나는 순례자 없을까 하고 나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길 위의 버스킹

해가 느릿느릿 지면서, 거리에는 음악 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나는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버스킹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리스본이나 포르투에서도 도시를 지루하지 않게, 여유롭게 지낼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음악’ 덕분이었다.

세비야의 전통 플라멩코든, 록 공연이든, 비보이들의 댄스 공연이든, 나는 도시 곳곳에서
예술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마치 씨앗이 조용히 품어지다가
어느 순간 ‘툭’ 하고 터져 나오듯 울려 퍼질 때,

그 도시의 언어와 기후, 그리고 사람들의 숨소리까지 함께 들을 수 있었다.



도시에 울리는 선율

파리 센강 근처에서 공연을 하던 재즈 악단들이나 지하철에서 울려 퍼지던 반도네온 소리는 프랑스의 맛을 오롯이 느끼게 해 주었고, 세비야의 플라멩코 선율이나 리스본 골목 곳곳에서 열린 음악 공연에서는 젊음과 낭만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살짝은 달큼하고 무거우면서 더운 바르셀로나의 공기와 함께 따라온 보사노바 선율은 우연히 들려온 것이었지만, 대성당 앞에서 노래하고 있던 버스커의 목소리와 기타 선율이 묘하게 잘 어울려 낯설지 않은 장면을 만들어냈다. 스페인 영화 "그녀에게"에 나오는 그 기타 선율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거리로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음악가들 덕분에 도시는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워 보였고, 늘 목적지만을 향해 바삐 걸어가던 내 발걸음을 붙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 보면, 그것이야말로 음악의 힘이라고 느꼈다.




바르셀로나 가톨릭 대성당

음악을 벗 삼아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는 자연스럽게 바르셀로나 대성당이었다. 익숙한 스페인 건축물이었지만, 이번 여행이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바라며 성당에 들러 마음속으로 깊이 교감하며 기도를 올렸다.


밖에서는 기타와 부드러운 목소리가 어우러진 버스킹 선율이 흘러나왔고,

그 음악은 이곳을 무겁고 엄숙한 성지가 아니라 긴장이 풀리고 편안함이 흐르는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듯했다.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고 하늘이 어두워질수록 바르셀로나의 은은한 조명이 성당을 아름답게 감싸 안았다.



Pont del Bisbe고딕지구

나는 스페인의 여러 지역 중 고딕지구를 가장 좋아한다. 이곳이 가진 역사적 의미도 크지만,

무엇보다 그곳 특유의 분위기가 나를 사로잡는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을 때마다 마치 미로 속을 탐험하는 듯한 설렘이 마음을 채운다.

무엇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궁금증이 나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꼭 다리에 올라가 체험하지 않아도, 고딕지구를 거니는 것만으로 충분히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르셀로나 현대 미술 갤러리

바르셀로나 현대 미술 갤러리
사실 이곳에 갤러리와 그라피티가 밀집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온 것은 아니었지만, 늦은 시간임에도 유독 환하게 불이 켜진 한 갤러리 앞에서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멈췄다.

유럽 갤러리의 장점 중 하나는 늦은 시간까지도 전시 공간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스페인이 시에스타 시간과 휴일을 중요시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예술의 열정이 그 관습과는 별개로 계속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심 기대하며 들어간 그 갤러리에서는 바르셀로나 스트릿 아트를 주제로 한 전시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게 웬 떡이야?”


한국에서도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전시가 열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바르셀로나 고딕지구를 헤매며 시간을 보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스페인의 현대 미술은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밝고 친근한 색감으로 가득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예술이 정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경험했던 예술보다, 어쩐지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현대 미술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인 취향 차이겠지만, 프랑스 예술을 만년 짝사랑처럼 사랑하는 동시에,

스페인의 예술은 친구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이제는 스페인이 나에게 익숙해진 모양이다.



바르셀로나 스트릿 아트

유럽의 여러 도시에는 이미 많은 벽면이 그라피티로 가득하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문화유산에 낙서를 하는 과감한 만행은 결코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예술이라 해도, 암묵적으로 서로 다른 결을 존중하며 지켜야 할 룰이 존재하는 것 같다. 고려청자 위에 판박이를 붙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Exit Through the Gift Shop’(2010)이라는 그래피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이 작품은 그래피티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반크시, 뉴욕과 유럽 그래피티 아트의 중심지들, 그리고 촬영 중 직접 아티스트로 변해가는 한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0년대 이후, 그래피티는 이제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아 미술관에서도 당연히 접할 수 있는 예술로 인정받고 있다.




젊음과 새로움, 그리고 모험이 가득한 정해지지 않은 길이 그렇게 예술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반복되는 과정을 거쳤다.

뉴욕 미술계를 이끈 앤디 워홀 역시 당시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대량 생산에 대한 현대적인 시선을 작품에 담아냈고, 그로 인해 큰 충격과 비판, 그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렇다면 지금의 그래피티와 앞으로의 새로운 흐름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뜨겁게 뛰는 새로움의 반향은 마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화살표처럼, 예술가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고딕지구에는 6개의 갤러리가 있었고, 그중 내가 눈에 띄어 들어간 갤러리만 4곳 정도였다.

문턱이 낮아 언제든 부담 없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큐레이터의 설명을 편하게 들을 수 있었던 점도 매력적이었다. 인사동에 아무리 갤러리가 많아도 쉽게 들어가기 어려운 문턱이 있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대부분의 갤러리 작품들은 연령층이 높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그림들이 많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일러스트페어나 도서전이 인기 있는 이유도 한국 현대미술이 주 타깃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는 그림도 투자 대상이 되어 페어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진짜 예술은 생활 속에서 아끼고 즐겨야 한다. 정원의 꽃을 가꾸듯 꾸준히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재미있는 요소들이 자라난다.

책이 지식의 밥이라면, 예술은 정원의 꽃과 같다. 누군가에게는 필요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예술적 요소가 빠진 도시에 누가 다시 오고 싶어 할까?


바르셀로나만 해도 가우디가 자신의 꿈을 펼치지 않았다면 아무도 찾지 않는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예술은 삶에 색깔을 입히는 일이니까 말이다.




바르셀로네타 해변, Playa de la Barceloneta

그렇게 정신없이 파도치는 고딕지구의 갤러리의 섬에서 빠져나와 바르셀로나 해변으로 향했다.

도시가 정말 크다는 걸 새삼 느꼈다. 새로운 블록으로 움직일 때마다 마치 다른 도시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바르셀로나 수족관과 요트 정박장을 지나자, 고급 휴양지처럼 정비된 음식점들과 해변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밤이라 그런지 해변의 풍경은 해운대를 떠올리게 했다.

다른 점이라면 요트 정박장과 수족관 규모가 커서 해변까지 걸어가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뻥 뚫린 해변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바다는, 늘 강만 보던 나에게 바람으로 모든 것을 날리고 비워 내는 듯한 시원함으로 다가와 나를 환영하는 듯했다.




Sala Ciutat 디자인 서점

고딕지구를 걷다 우연히 창문 너머로 디자인 서점이 눈에 들어와 마감 시간 직전에 서점에 들렀다.

디자인 서적과 어린이 동화책 위주로 구성된 카페 겸 서점이었는데, 늦게 도착한 게 아쉬워 기념품을 사기로 했다.


여행하며 느낀 철칙 중 하나는 다시 찾으려 하면 그곳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 바르셀로나를 기억할 만한 기념품으로, 카탈루냐어가 쓰인 하늘색 에코백을 골랐다.

집에 에코백이 많지만, 이건 기념품으로 액자에 걸어두고 싶었고, 유럽 어디서 매고 다녀도 손색없을 것 같았다.

가격은 대략 15유로로 나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Coop arquitectesJordi Capell

하루밖에 되지 않은 시간 동안 거리를 부지런히 걸었더니, 이제는 익숙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많아졌다.

한국처럼 옥외광고판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점이 오히려 눈을 편안하게 쉬게 해 주었고,

도심에서도 걷기에 참 좋은 환경임을 새삼 느꼈다.


많이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거리는 10km 정도에 불과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문화적 충전이 풀로 채웠지만,

투어 가는 길에 미리 봐두었던 까르프에 들러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바르셀로나 예술 걷기를 마치며

바르셀로나에 온 첫날임에도 정말 쉼 없이 돌아다녔던 것 같다.

아마 몸은 제발 쉬라고 아우성을 쳤던 것 같은데, 예술적인 문화 충전을 하고 나서 나는 부스터를 단 듯 더 신나게 걸어 다녀 버렸다. 하루가 길고 해프닝이 많았던 만큼 나눠서 이야기를 하고 잇는데 너무 분산돼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 분산될까 봐 이렇게 구성하고 있다.

숙소에 돌아가기 전 장을 보고 숙소에서 밥을 먹고 씻고 잠을 자기까지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바르셀로나를 다음에 온다면 꼭 하고 싶은 것!
책방 탐방하기
유럽 화방에 가서 붓이나 조각칼 등 한국에 안 파는 장비 구입
플라멩코 배우기
어반스케치 워크숍 참가하기
바르셀로나 근교 도시 여행하기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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