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의 발자취를 따라서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 이토록 큰 충격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스페인의 풍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탓에, 이제는 그게 그거처럼 느껴지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 광장 옆 숙소에 짐을 풀고, 숙소에서 제공하는 무료 가이드 투어를 신청한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한 사람의 천재성과 간절함이, 어떻게 도시 전체를 바꾸고 전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지를 바르셀로나는 보여주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여전히 기부금만으로, 아주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지어지고 있다.
세상에 기적이 없다고?
간절히 원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바로 이곳 바르셀로나가 증명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꿈과 신념은 한 세기를 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세대를 이어 계속해서 구현되고 있었다.
허무주의와 무기력이 만연한 이 시대에, 기적을 '지금, 여기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도시.
바르셀로나는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
바르셀로나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마침 숙소에서 제공하는 가우디 무료 투어 시간과 딱 맞아떨어졌다. 나는 서둘러 짐을 풀고 로비로 내려갔다. 투어를 기다리는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 있었는데, 그 무리에서 아시아인은 나와 미국계 화교 여성 단 두 명뿐이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완전한 미국 태생이라, 머리카락만 검은 미국인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 분위기, 뭐 낯설지 않았다. 익숙한 듯 무표정한 얼굴들 사이에서 둥글게 서서 인사를 나누던 중, 내가 그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살짝 놀랐다. 나이를 소개하면서도 마치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짧은 머리를 거울 속에서 바라보며 놀라는 기분이랄까.
우리 투어 가이드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스페인에 머무는 20대의 젊은 미국인이었다. 자신을 소개하며, 스페인에 온 이후 한 번도 미국식 패스트푸드점에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개인사까지 쉴 새 없이 털어놓았다. 말이 어찌나 빠른지, 걷는 것보다도 그녀의 말을 따라잡는 게 더 힘들 정도였다.
분명 다시는 못할 소중한 체험이긴 했다. 하지만 그때의 투어는, 바르셀로나의 재래시장만큼이나 정신없고 북적여서, 내겐 한 번으로도 충분한 경험이었다.
투어를 시작하자마자,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모두가 무심히 지나치던 한 식수대였다. 가이드의 짧은 소개와 함께 그냥 지나치는 곳이었지만,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 식수대는 바르셀로나 최초의 식수대로, 지금도 여전히 맑은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놀라운 건, 이 식수대가 오늘날까지도 바르셀로나를 지나는 순례자들의 목을 축이는 물줄기로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과거의 유산이 단지 보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살아 있는 장소라는 점이, 나를 뭉클하게 했다.
프랑스의 화려한 분수나 장식적인 식수대처럼 미적으로 꾸며져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사 갑옷처럼 단단하고 묵직한 기운을 품은 이 식수대는, 오히려 그런 무장한 듯한 실용미 덕분에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숙소를 나와 곧장 라 보케리아 시장으로 향했다.
팜플로나의 축제, 마드리드의 밤거리—그 모든 것을 한데 모은 듯한 바르셀로나의 활기는 숨 막히도록 강렬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과 도시의 열기가 스페인의 열정 그 자체처럼 느껴졌다.
가이드는 우리를 시장 안쪽의 과일 주스 가게로 이끌었고, 나는 용과 스무디를 한 컵 골랐다. 이국적인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우리 그룹은 대부분 미국인과 동유럽인이었고, 그나마 나와 비슷한 연령대는 유타 출신의 미국계 중국인 여행자뿐이었다.
가이드는 젊고 에너지가 넘쳤다. 말은 정말 빨랐고, 사실 그의 역사 설명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 수 없었다. 오히려 주말마다 가는 바르셀로나의 핫한 클럽 이야기나, 현지에서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까사 브루노 쿠아드로스:
1883년 건축가 호세프 빌라세카가 지은 모더니즘 양식의 건물이다.
코너의 화려하게 장식된 용 조각과 벽면에 장식된 우산이 눈길을 끈다.
우산 장식은 우산가게의 간판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은행으로 사용되고 있다.
위층에는 이집트 회화 갤러리가 있다.
비록 겉핥기식의 가우디 투어였지만, 바르셀로나 핵심 건축물을 빠르게 훑어보는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중 하나였던 까사 브루노 꾸아드로스는 유럽 고딕 양식의 벽면 위에 일본 전통 문양과 용, 우산 조각이 새겨진 독특한 건물이었다. 동양과 서양이 절묘하게 뒤섞인 그 모습은 100여 년 전 유럽 사회에서 오리엔탈리즘이 예술적으로 얼마나 뜨거운 흐름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였다.
바르셀로나가 예술적으로 얼마나 선도적인 도시였는지, 그 과거의 뜨거운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구엘 저택은 내가 둘러본 가우디 건축물들 중 가장 관광객이 적었던 곳 중 하나였다.
나는 대부분의 가우디 건축물 내부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이곳은 그 외관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만약 바르셀로나에 오직 예술을 위해 찾아왔더라면, 그때의 나는 뼛속까지 기록하려는 사람처럼, 이 작은 건축물의 모든 디테일을 붙잡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깊은 인상을 주는, 숨은 진주 같은 장소였다.
바르셀로나의 건축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이 도시가 기존 유럽 도시들처럼 균일한 건축 양식만을 고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걷다 보면 고전적인 고딕 양식을 벗어난 새로운 감각의 건축 블록들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도시 전체가 마치 과거와 미래가 충돌하며 살아 숨 쉬는 실험실처럼 느껴졌다.
*레이알 광장(Placa Reial)*도 그중 인상적인 장소였다.
고풍스러운 광장 한가운데에는, 놀랍게도 밤이 되면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클럽이 자리 잡고 있다고 가이드가 전해주었다.
광장의 전통적 외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 클럽의 존재는, 이 도시가 과거의 양식 위에 새로운 문화를 덧입히며 공존해 나가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바르셀로나의 지하철은 파리와 비슷한 시스템이었다. 일회권과 일주일권 중에서 나는 일주일권을 구입했다. 혹시 모를 일정 변경에 대비해, 이 도시에서 더 머무르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재미있게도, 파리에서는 2024년 올림픽 준비로 점차 사라지고 있던 종이 티켓을 이곳 바르셀로나에서는 여전히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티켓을 사는 과정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지하철역 매표기 근처에는 노숙자들이 상주하며 틈을 노렸고, 심지어 자동판매기조차 이유 없이 돈을 삼켜버리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실제로 나와 함께 투어를 했던 유타 출신의 미국인 남성 여행객도 이런 일을 겪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지하철을 탈 계획이라면 이 부분은 꼭 주의하길 바란다.
그런 작은 해프닝쯤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 관광객들은 여유롭게 지하철을 나서 까사 밀라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하철을 빠져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구엘 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있다. 시야에도 들어왔다. 도시 전경이 일정한 높이로 정돈되어 있는 가운데, 마치 롯데타워처럼 멀리서도 공사 중인 대성당 건물이 꼭짓점처럼 도시를 꿰뚫고 솟아 있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간다.
바르셀로나의 거리마다 특이한 가로등이 빛나고 있는데, 이 역시 가우디가 디자인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가 어떤 생각을 했기에, 허허벌판 같은 공간에 거대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짓겠다고 했는지, 그리고 기존에 없던 추상적인 건축 스타일의 가로등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타일로 장식된 벤치, 점묘화처럼 세밀한 디자인의 벤치까지도 여전히 그의 손길이 닿아 있는 듯하다.
그런 인물이 이 지구에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까사밀라
1905년에 안토니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의 부호인 밀라 부부의 의뢰를 받아 5년에 걸쳐 지은 주택이며 가우디의 마지막 주택 건축물 작품이라고 하는데 집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조형물이나 예술품 느낌이 나는 곳입니다.
말 그대로 까사 밀라는 밀라 부부가 의뢰한 집이다. 맞은편 거리에 위치한 까사 바트요가 화려한 외관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면, 까사 밀라는 가우디가 의뢰인의 뜻에 맞추기보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밀고 나간 작품이다.
보통은 디자인 의뢰에서 선 하나, 글씨 하나라도 틀리면 난리가 나기 마련인데, 가우디는 무슨 배짱으로 자유롭게 작업했을까 궁금해진다.
나는 까사 밀라를 볼 때면 스카이 워커가 살던 모래사막의 집들이 떠오른다. 화려한 색채 대신 곡선과 모래빛 흰색이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모습은 마치 세상의 모든 색을 흡수하는 동굴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확실히 까사 바트요 주변에는 방문객이 더 많이 몰려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까사 바트요
가우디 건축의 특징인 굴곡진 벽면, 창틀 등의 곡선의 미를 느끼실 수 있고 내부는 보존된 원형에서부터 전시관, 디지털 상영관 등이 있으며 옥상에서 조형물과 주변 경치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부유한 직물업자 바트요의 저택이었기에 살림살이나 장식품도 보실 수 있으며 제공되는 태블릿 PC로 해당 장소에 대한 설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가우디의 건축물은 마치 미래사회나 외계인의 건축물을 상상하고 지은 듯한 느낌인데 까사 바트요도 어김없이 그 독특하고 섬세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까사 바트요에 모여서 용의 비늘 한 점을 때어다가 만든 듯한 빗나는 건축물 앞에서 한참을 구경을 하고, 투어를 마쳤다. 나는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워서 주변을 걷고 자연스럽게 해산하게 되었다.
사실 카탈루냐 광장까지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샹젤리제 광장처럼 일렬로 늘어선 명품 거리에는 예쁜 편집샵들도 많아서 들어가서 상품들을 구경하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바르셀로나까지 가서 내부를 왜 안 보고 왔냐고 물을 수 있지만, 가우디가 전 재산을 국가와 종교에 바쳐 건축물을 지었으나 가우디와 관련된 모든 지역들은 고가의 입장료를 내고 입장해야 한다
.
가우디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생가 사이에 있던 전통시장과 동서양의 조화가 어우러진 용 조각상들, 그리고 한쪽은 용이 하늘로 날아갈 듯 비늘이 반짝이다가 맞은편 건물은 사막의 흰개미 집을 연상시키듯 모든 색깔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이 새하얗고 기묘해서 이런 아이디어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소름이 마구마구 돋았다.
한 명의 천재가 이 도시를 아름답게 바꿔 놓았다.
정말 바르셀로나는 용의 비늘 한 조각을 훔쳐서 비밀스럽게 그것을 건축물로 만든 미스터리 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모든 에너지를 다 빨아들여서 발산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여러 스페인의 도시마다 각자의 문장과 역사가 있지만, 독특하게 바르셀로나는 바르셀로나만의 지역 언어와 문양을 길가에 우리가 익숙하게 밟고 지나가는 타일마저도 바르셀로나의 문양이 눈에 띄지 않는 곳까지 가우디의 손길이 뻗혀 있었던 것 같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떤 기운을 가지고 있길래 앞도적인 예술가들을 배출했을까?
생뚱맞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는 가끔 『맨 인 블랙』에 나오는 외계인들처럼 달리, 피카소, 그리고 가우디가 창의성이 뛰어난 예술 행성에서 지구로 이민 온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감각이 있는데, 호크니의 경우 물의 일렁임과 잔잔하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잎들이 떠올린다.
달리의 작품에서는 사막을 걷는 긴 다리 코끼리와 늘어진 긴 수염처럼 흘러내리는 시계가 떠오른다. 르네상스 미술이나 유럽 고전주의가 종교적이고 극사실주의적인 외면의 촉감에 집중했다면, 달리는 감각 그 자체에 집중한 것 같다. 반면 가우디의 작품은 마치 생선의 내부 근본 틀을 꿰뚫는 듯, 그 안을 관통하는 깊은 울림을 주는 듯 했다.
미술계에서 꽤 오랫동안 활동해도 웬만한 작품에 “놀랐다”는 표현을 쉽게 쓰지 않는데, 가우디의 작품은 내 뼛속 깊이까지 파고들 만큼 잊히지 않는 강렬함을 남겼다.
3D 스캐너도 엑스레이도 없던 시대에, 직접 인체 내부 장기까지 연구했을지 궁금할 정도다. 그의 인생 자체가 너무 신비롭고 궁금해졌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유럽 여행 관련 프로그램을 거의 보지 않지만, 유일하게 즐겨보는 곳이 바르셀로나를 다루는 방송이다.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현지에서는 제대로 된 역사적 고증을 가지고 가이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단지 생업을 위해 대본을 읊는 듯한 가이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로마를 넘어서, 바르셀로나와 가우디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원래는 오후에 가우디 걷기 투어, 저녁에는 고딕지구 아트 갤러리와 바르셀로나 해변 걷기 이야기를 쓰려고 했지만, 내 글이 좀 더 효율적으로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 순례길 일정처럼 하루를 통으로 기록하지 않기로 했다.
순례길에서 길은 하루 일정이자 깨달음의 장이라면, 바르셀로나 여행은 문화적 충전의 장으로서 각각 다르게 느낀 점들을 전하고 싶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