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사람들

순례길 친구 마리아, 그리고 낯선 여행자들과의 특별한 인연

by 양작가

숙소 공유공간에서의 식사

바닷가까지 들렀다가 까르프에 들러 라면과 계란 과자, 맥주를 사 와 지하 공유공간으로 향했다.

세비야의 공유공간처럼 고즈넉하고 휴식의 여운이 가득한 호스텔은 아니었다.
여기는 바르셀로나이니까! 매일이 축제 같은 분위기다.

공유공간에서는 마침 상그리아 무료 워크숍이 진행 중이었다.
아까 가우디 무료 걷기 투어를 이끌었던 미국인 가이드가 이 워크숍도 맡은 듯 보였다.

소란스러운 틈 사이에서 부엌의 전자레인지와 커피포트는 살면서 그렇게 더러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관리자가 있는 것 같진 않았고, 청소가 되지 않는 듯했다.

나는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내가 먹을 그릇이라도 닦은 후, 라면을 데워 먹을 준비를 했다.

누가 이곳 주방에서 제대로 요리를 해 먹을까 싶은 분위기였다.

낯선 여행자들과의 특별한 인연 낯선 여행자들과의 특별한 인연

낯선 여행자들과의 특별한 인연


미국인 여행자

그나마 조용한 구석 테이블에서 식사 중이던 미국인 여행자와 나란히 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그는 스페인 특유의 아주 큰 빵과 1.5리터짜리 우유, 잼도 큰 병에 담긴 걸 꺼내 먹고 있었다.
양이 너무 많고, 이곳에서는 작은 포장 제품을 찾기 어렵다며 나에게도 빵과 잼, 우유를 건넸다.

한 달간 스페인을 여행한 이 미국인은 “이제 더는 스페인에 머물지 않아도 되니 좋다”며, 내일이면 미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했다.


그리고 “스페인의 우유는 미국 우유보다 맛이 없다”라고 했다.

미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말로는, 미국 우유는 종류도 다양하고 지방 함량까지 세분화되어 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스페인 우유는 단조롭다고 느낀 걸까?


직접 순례길에서 소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뛰어놓는 걸 봤던 나로서는 이곳의 우유와 고기가 믿음직해 보였기 때문에 맛이 없다는 얘기에 다분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유제품과 비교했을 때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마친 뒤, 싱크대로 가서 그릇을 씻으려는데 이미 사용한 식기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알제리 여행자

그 앞 바 테이블에서 인스턴트 빠에야를 먹고 있던 한 아랍계 여행자가 나를 보더니,

“싱크대가 막혔다”라고 먼저 말을 건넸다.

나는 그가 중동계 혹은 인도계 같다고 생각하고 조심스레 “혹시 인도분이신가요?”라고 물었는데,

그는 잠깐 정색하듯 “아니요, 난 알제리 사람이에요”라고 답했다.


그 반응을 보고 문득,

우리가 외국에서 종종 '중국인이냐'는 질문을 들으면 미묘하게 기분이 상하듯,

이들도 '인도인이냐'는 질문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문화나 민감한 정체성 문제는 의도와는 다르게 전해질 수도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숙소 공유 공간에서의 만남

식사를 다 마친 미국 여행자와 알제리 여행자 그리고 노트북으로 작업 중인 브라질 여행자가 공유 공간 정중앙 있던 반쯤 누울 수 있는 커다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알제리 여행자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내일 파리행 기차를 탄다고 소개를 했다. 나에게 왓츠앱 번호를 물어봐서 서로 번호를 교환했다.


알제리는 어떤 나라이지?

나는 알제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세계테마기행>에서 봤던 올리브 수확을 하는 농촌의 풍경은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거대한 맷돌로 직접 올리브를 짜서 생기름을 만들고, 그 자리에서 바로 판매하는 모습. 마치 한국의 전통 방앗간을 떠올리게 했던 장면이었다.


유럽의 남부, 스페인이나 그리스, 이탈리아처럼 잘 알려진 올리브 산지 외에도,
알제리·이란·터키 같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올리브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특산품이다.
특히 알제리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으면서도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스페인과 마주한 위치 덕분에, 유럽과의 교류가 활발한 나라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디지털 노마드, 브라질 여행자

그 소파에는 미국 여행자, 알제리 여행자와 함께, 노트북을 펼쳐놓고 조용히 일하는 브라질 여행자도 있었다.
정신없는 이 숙소 분위기 속에서, 오직 그 사람만이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원격으로 업무 중이라고 했다.
바로, 말로만 듣던 디지털 노마드였다.

질문을 더 해보고 싶었지만, 자꾸 방해하는 것 같아 자제했다.
하지만 그 순간은, 마치 책 속에서만 보던 삶을 현실에서 마주친 느낌이었다.

그는 마테차를 나무잔과 나무 빨대에 담아 마시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한 모금 맛보며, 사람은 이렇게 직접 보고 부딪치며 배울 때 확실히 그릇이 넓어진다는 걸 실감했다.


다시 순례자로

밤이 깊어가자, 로비 옆의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숙소 전체가 시끌벅적해졌다.
한국인 민박처럼 사람들과 어울려 술 한 잔 나누기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참 좋은 공간이었지만,
나는 다음 날 순례길 친구 마리아를 다시 만나기로 한 터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방에는 이미 자고 있는 여행자들도 있었고,
내 맞은편 침대에 있던 강한 인상의 여행자는 배낭에 가리비 조개표식을 달고 있었다.

나도 순례자라고 인사를 하며 내 가리비 조개를 보여주자,
맞은편에 침대를 자리 잡은 순례자의 얼굴에서도 서서히 긴장이 풀리는 표정이 느껴졌다.



2023년 11월 8일, 바르셀로나에서 다시 만난 순례자 친구 마리아

오늘은 순례자 친구 마리아와의 재회를 기록하고자 한다. 그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의 순례자이다.

《인생 계획에 없던 산티아고》 중반을 읽어보면, 마리아와 나 사이의 특별한 인연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라바넬 델 카미노에서 처음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눴고, 이후 사리아, 그리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함께 걸으며 깊은 추억을 쌓았다.

그리고 산티아고에서 우리는 각자의 길을 떠났다. 나는 피스테라를 거쳐 포르투, 리스본, 세비야, 그리고 바르셀로나로 이어지는 여정을 택했고, 마리아는 산티아고에서 피스테라까지 100km를 더 걷고, 다시 **북쪽길의 마지막 지점인 아 코루냐(A Coruña)**에서 카풀을 타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길

순례길을 마친 후 돌아가는 ‘집’이, 비행기 몇 시간을 타고 가는 외국이 아닌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바르셀로나라면 어떤 기분일까. 그건 내겐 상상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더구나 이번이 마리아에게는 두 번째 순례길이었다. 내가 여행자 모드로 전환되어 순례자로서의 감각이 조금씩 희미해져 가던 그때, 그녀는 여전히 또 다른 길을 걷고 있었고, 전혀 다른 루트를 따라 걸은 끝에, 우리는 바르셀로나에서 다시 마주쳤다.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각자의 삶에 남아 있겠지만,
순례길이라는 강렬한 여정을 마친 지금, 우리는 삶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을까?


깨달음이라는 것에 대하여

깨달음이란 정말로 ‘매트릭스’ 속 네오처럼 어느 순간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날아다니듯 확연히 변화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어쩌면 '깨달음'에 대한 일반적인 환상, 혹은 착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직 유영 중인 나 같은 여행자에게, 순례길 이후 또 다른 도시에서 그 여정을 함께한 친구와 재회한다는 것은 무척 특별한 일이다. 그 만남만으로도, 바르셀로나는 내게 한층 더 의미 있는 장소가 되었다. 마치 이곳에 작은 씨앗 하나를 뿌려놓고 떠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다시 돌아올 곳

철새가 계절마다 본능적으로 그곳을 향해 날아가듯, 언젠가 나도 또다시 이 도시를 찾게 될 것이다.

바르셀로나와의 인연은 그런 예감과 함께 나의 기억 속에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남았다.

가우디의 도시이자 현대미술이 살아 숨 쉬는 바르셀로나. 그리고 오늘은, 순례길에서 인연을 맺은 친구 마리아와 함께 이 도시를 거닐며 또 다른 여정을 이어가게 된다.


EL CORTE INGLES | Plaça Catalunya

우리는 점심시간에 카탈루냐 광장에서 가까운 백화점 EL CORTE INGLES의 스카이라운지에 있는 푸드코트로 가서,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었다. 이곳은 커피와 식사를 하면서 바르셀로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특별하게 일정을 정해놓고 만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이곳으로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었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장소였기 때문에, 부담 없이 바르셀로나 전경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일상복을 입고 나타난 마리아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알록달록, 이제는 해져버린 신발과 등산복 차림이었으니 말이다.


나도 마리아처럼 순례자 티를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하고 싶은 것들을 마리아와 상의하기 시작했다.


마리아는 바르셀로나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근교의 부모님 집에 머무는 중이었다.

다행히도 다른 약속이 미뤄져, 이렇게 바르셀로나에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El món neix en cada besada
(세상은 매번의 입맞춤에서 다시 태어난다)

"El món neix en cada besada"는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포토스팟인 조안 폰쿠베르타의 타일 키스 벽화인데, 아주 유명한 키스 그래피티가 있는 장소 바로 앞에, 베트남 쌀국수를 파는 음식점이 있었다.

정말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는데, 그곳은 전 세계의 문자와 메시지로 구성된 ‘키스하는 그래피티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사진 명소였다.


우리가 찾은 음식점의 바로 앞 테라스 옆에는,

그 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긴 줄을 서고 있었다.

사실 나는 원래, ‘알고 가는 유명한 명소’는 잘 가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바르셀로나는, 어디를 가든 명소가 아닌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Bun Bo Barcelona – Vietnamese Inspired Food

나는 순례길에서 함께 먹었던 짜파게티처럼, 맛있는 아시아 음식을 마리아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다.

마리아가 짜파게티를 먹었을 때의 반응을 알고 있었기에, 이번엔 베트남 쌀국수를 먹고 어떤 리액션을 보일지 내심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건, 그 자체로도 하나의 모험이라는 것을 말이다.


베트남 쌀국수는 나에게 있어 소울 푸드라고 자부할 정도로 좋아하는 음식이다.
하지만 유럽에 와서는 포르투에서 한 번 먹었던 것을 제외하면,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리고 유럽에서 아시아 음식이 얼마나 본래의 맛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는 사실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은 꽤나 맛이 좋았다.
베트남 음식이 이제는 세계 어디서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례자 티 벗어내기

우리가 서로 다른 나라,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진짜 친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바르셀로나는 나에게 특별한 장소가 된 것 같다.
오늘의 바르셀로나에서의 하루는 마치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약속을 잡고 서울에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일상적이었다.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은 나와,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마리아의 템포는 달랐지만,
그녀가 현지인으로서 나를 편안하게 안내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곳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마리아와 바르셀로나 도심 순례하기


1. 유심 카드 구입

카탈루냐 광장에 있는 보다폰 매장에서 마지막 여정을 준비하며 20유로짜리 유심 카드를 구매했다.


2. 새로운 운동화 구입

한국에서 거금을 들여 산 호카 신발은 안팎으로 이미 수명을 다한 상태였다.
유럽 대부분 지역과 마찬가지로, 신발과 의류 가격이 물가 대비 정말 저렴하다.
나는 할인 매장에서 살로몬 트레일 러닝화를 약 70유로에 구입했다.


3. 옷 사기

자라가 스페인 브랜드인 만큼, 여러 스파 브랜드가 쇼핑센터에 즐비했다.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이라 매우 저렴한 가격에 세일 중이었고, 한국에서 편집샵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의류를 바잉 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옷을 살 거였다면 포르투에서 샀어야 더 저렴했을 것 같아 아쉬웠고, 결국 옷은 사지 못했다.


4. 선글라스 구입

선글라스를 사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꽤 자주 쓰는 편이었다.
우연히 들른 안경 공방에서 블랙프라이데이 1+1 행사를 하고 있어서, 저렴하고 예쁜 스타일을 고민 없이 15유로에 구입했다.


5. 기념품 사기

파리로 돌아가기 전, 파리에 살고 숙소방까지 내어준 언니와 형부에게 감사의 선물을 사드리고 싶어서

스페인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선물을 구입할 계획이었다.


카르푸 주류 코너를 서성이다가, 술에 대해 잘 알 것 같은 스페인 아저씨에게 프랑스 사람에게 줄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받은 추천이었는데, 아저씨가 알려준 3유로짜리 와인이 생각보다 맛있었고, 스페인을 떠올리게 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그 와인은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 주었다.

스페인 와인은 3유로부터 5유로 이상 되는 와인을 구매해도 저가 와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게 특징이다.

함께 순례길을 걸었던 영국인 순례자 (엄마 같은) "피아"가 해주었던 말처럼 “스페인 사람들에게 와인은 물”과 같으니 말이다.



이제 헤어질 시간

마지막으로 자라 매장까지 구경한 후, 어느새 어둠이 내렸다.
이제 마리아와도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마리아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동안 일상에서 챙기지 못했던 병원 치료와 구직 등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나게 될까?

계속된 여행 일정과 피로가 쌓여서였을까, 자라 매장을 나온 뒤부터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바람과 먼지 때문일 것이다. 몸 상태가 괜찮았다면 더 오래 머물렀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 쉬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다음 날 파리행 TGV기차 티켓을 구입하고 떠날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파리 언니 집으로 돌아가면 숙소를 구하거나 식당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어 한결 편할 것이다.


오늘 산 새 운동화를 신고 다시 파리로 돌아간 일상은 어떨까?

11월의 파리의 날씨가 얼마나 우중충할지 잊은 채,

여행의 피로를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인지 스페인의 따뜻한 태양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을 만큼

스페인에 완전히 녹아들어 지냈던 것 같다.


익숙한 것도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평소에는 스쳐 지나갔을 사소한 풍경까지도 더 담으려 애썼다.

과연 나는 길 위에서 얼마나 달라졌을까?

앞으로 펼쳐질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순례길과 포르투, 리스본, 세비야를 거쳐 바르셀로나까지 스쳐간 인연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리아를 보내고 길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버스킹 노래를 한참 듣다가, 쏟아지는 생각들에 몸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Buen Camino!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