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에서 생활자로

파리 일상 복귀

by 양작가

여행자에서 생활자로

여행자에서 생활자로

여행자에서 생활자로 돌아가는 시간 이제 파리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회복과 일상으로의 복귀가 나의 남은 여정의 주제였다.

파리의 날씨는, 스페인보다 북쪽에 위치한 만큼 무려 10도 이상의 기온 차이를 보였다.

나는 9월 한국을 떠난 이후, 늦여름의 날씨 속에 머물러 있었다. 프랑스에서도 늦여름을 즐겼고, 10월 스페인에서도 여전히 더운 날씨를 체감하며 지냈다.


그러나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가을 없이 곧바로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로 접어든 서유럽의 날씨를 정통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 차가운 공기가 아마도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올 수 있게 서서히 식혀주는 듯했다.

해는 오후 4시면 지고, 매일같이 부슬비가 내렸다. 습한 공기와 난방이 잘 되지 않는 집은, 한국의 보일러 문화와는 또 달랐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추위의 간극을 몸으로 느껴야 했다.

여행 내내 바쁘고 정신없던 일정 속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이 순간이 아직은 실감 나지 않았다.




2023년 11월 10일 Gif-Sur-Yvette 언니네 집 아침/ 비가 그친 흐린 날씨

오늘은 운이 좋게도 아침 햇살을 잠시나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간밤에 내린 비로 땅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어느새 여행의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유럽의 일상이 익숙해진 순례자처럼 새벽 6시 30분에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방 창문을 열어보니, 문 앞 뒷마당에 9월부터 얼굴을 익힌 동네 고양이가

마실을 나온 듯 창가에 얼굴을 내밀었다..
창문을 열고 고양이와 잠깐 인사를 나눈 후, 0층에 있는 부엌으로 자연스럽게 향했다.


어젯밤 늦게 도착했기에, 아직 아이들은 자고 있을 시간이다.

아마 부엌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하고 있으면 곧 아이들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들은 얼마나 자랐을까?
어른의 시간보다 더 빠르게 흐르는 아이들의 성장 속도만 보아도,

그동안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빵 굽는 아침

바게트를 토스트기에 굽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잠시 고요함을 즐기고 있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데, 부엌문이 열리며 수잔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인사를 하려 했지만, 내 목이 말을 듣지 않는다.


고요했던 순간은 금세 사라지고, 세 명의 아이들이 연달아 부엌으로 들어오자
주방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북적이고 소란스러운, 동시에 활기찬 아침 시간.


형제가 없는 나에게 아침은 늘 고요한 시간이었기에
이 풍경은 낯설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중·고등학교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하며 단체 생활에는 익숙해졌기에
아이들과의 아침도 어렵지 않게 스며들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시리얼과 토스트에 잼, 반숙 계란을 나눠 먹고
막내 이반의 잠투정을 들으며 어느새 아이들은 학교에 갈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비쥬(Bisou, 프랑스식 볼뽀뽀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은 하나둘 학교로 등교를 시작했다.



여행자 티 벗어나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나는 묵은 여행 짐을 모조리 세탁기에 넣고 빨래를 돌렸다.

산티아고에서, 그리고 각지의 여행지에서 묻혀온 먼지와 진드기,
베드버그가 옮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차 방어 작업이었다.

그렇게 순례자의 흔적이 하나씩 지워져 갔다.


순례자이자 여행자였던 일상에서 이제는 생활자로 돌아오자,
고요함과 함께 내 안에서 꺼져 있던 공간들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창고처럼, 그 공간들은 먼지로 가득 덮여 있는 듯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언니와 나

여행 중에도 늘 즉흥적으로 어디로 갈지를 정했던 나에게,
순례자 친구 안나는 "넌 나비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유로움 표현한 의미였을 것이다.


그에 비해 언니는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사람이다.

언니는 5살, 7살, 11살 아이들을 키우며 신학대학교 학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다.
줌(Zoom) 수업과 시험공부를 병행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엄마로서 차분하게 수많은 일들을 하나씩 처리해 나갔다.


내가 언니 집에서 오래 머문 것은 아니지만,
예측 불가한 나로 인해 적잖이 신경이 쓰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언니에게도 일종의 도전이었을 것이다.


만약 감기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니스나 다른 지역을 여행하다가 막바지에 파리로 돌아와 귀국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파리 시내에 집을 구해 지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감기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걷기

아이들을 보내고, 빨래를 돌려놓은 뒤
순례길을 떠나기 전 매일같이 걷던 산책 코스를 한 바퀴 돌고 왔다.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건 늘 자연이다.
손바닥만 한 잎사귀들이 노란 갈색으로 물들어 산책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9월의 늦여름 풍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차가운 공기가 코 안 깊숙이 파고들었다.
지금 내가 가진 옷으로는 도무지 이 추위를 감당할 수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스페인에서 그 무스탕 재킷을 살 걸.’
같은 생각이 자꾸만 맴돌았다.


아직 누구를 만나지도 않았고, 특별한 일도 없어서일까.
스페인 여행지에서의 시간과 파리에서의 일상이 뒤섞여 있다.

아마도, 이 감기를 통해 몸에 남아 있던 스페인의 잔향도 서서히 벗겨질지도 모르겠다.


감기

몸이 쉰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습하고 추운 파리의 날씨 탓에 몸 상태는 오히려 더 나빠졌다.

기침이 심해 오늘은 외출은 무리일 것 같다.

세탁기를 돌리고, 스페인에서 가져온 감기약을 챙겨 먹은 뒤,

여행 내내 멈추지 않고 달려왔기에,

샤워를 하고 전기장판을 켜고 푹 쉬어야겠다.


순례자의 지팡이

여행자 티를 벗어내는 마지막 단계는
피레네산맥부터 시작해 산티아고까지 완주하고,
포르투갈과 스페인 남부, 바르셀로나까지 나와 함께한 동반자,
“나무 지팡이”와 이별하는 일이었다.


나와 지팡이는 이번 여행에서 그만큼 나에게 애착템이자 반려템이었다.
하지만 이 나무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캐리어에 담아야 했는데, 조금 큰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나무 지팡이를 반으로 잘라서 서울에 돌아와 연결 홈을 파고,
문양을 만들어 재미난 예술작품으로 변형해 보자는 것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손대지 못하고
방 한구석에 그대로 있다.)


나는 순례길에서 인연을 쌓았던 친구들에게 스틱을 잘랐다고 알렸다.

몸은 프랑스 파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순례자라는 동료애로 연결되어 있었다.

모두 내 스틱을 아쉬워하며 “예쁜 함을 만들어 기념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언니에게 톱이 있는지 부탁했고, 내 “아티+스틱”을 반으로 잘랐다.

이제 파리에서 푹 쉬고 한국으로 돌아가자.
그동안 고생했다.


오전 내내 여행자 티를 덜어내고, 산책까지 다녀오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 아이들이 하교를 했다.

감기는 파리의 습하고 차가운 날씨만큼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11월 12일 주말 교회 가기

교회를 글에 포함하는 이유는 순례길 루틴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서다.

순례길을 새벽부터 걸은 하루를 마무리하며, 숙소 근처 성당에 가서 무사히 도착한 것에 감사드리고,
다음 여정의 안전과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소중했다.


나는 특정 종교가 있지 않고, 그렇다고 종교를 갖고 싶지도 않다 그저 고정관념도 없는 편이다.
그래서 기도를 하고 싶다면 예배당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꼭 특정 종교에 가입해야 한다고는 전혀 느끼지 않는다.


비 오는 주말

실방형부와 단아, 이반은 다른 일정이 있어 형부를 따라갔고, 언니와 수잔 그리고 나는 프랑스 현지 교회에 참석해 예배를 드렸다. 온전히 불어로 진행되는 예배였지만, 유럽 예배당의 장점 중 하나는 수준 높은 찬송가 연주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언니의 일본인 친구 ‘카오리’가 전담 오르가니스트로 연주한다고 해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꼭 가보고 싶었다.

레온 대성당에서 오르간 공연을 본 경험이 있어, 더 가까이서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던 것 같다. 규모는 대성당보다는 작았지만, 직접 들으니 더욱 좋았다.


카오리의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쉼 없이 이어진 일정 속에서 내리는 비와 공연, 그리고 예배는 여행자로서 쌓였던 마음의 짐을 벗어내는 시간이 되었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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