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마트에서 뭘 사야 할까?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자,
순례길을 출발하기 직전 한국에서 느꼈던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프랑스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여름방학부터 9월까지의 초가을이다. 그 시기가 지나면 유럽의 가을과 겨울은 마치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듯, 도시 전체가 새 단장을 하며 화려하게 변신한다.
춥고 긴 겨울은 유럽 사람들에게 가족과 함께 벽난로 앞에서 지내기에 가장 어울리는 계절이다.
여행자나 유학생들에게는 매서운 추위가 야속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계절만큼은 실내의 따스함과 포근한 풍경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이제 귀국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지고 있던 짐들을 정리하며,
기념품으로 무엇을 사야 할지 하나씩 목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언니는 일정이 있어 파리 시내로 출근했다.
나는 오랜만에 집 안이 조용한 고요한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기념품을 사기 위해 아침 트레킹 코스를 따라 산책에 나섰다가, 자연스럽게 Bais d’Aigrefoin(아이그르푸엥 숲)의 다른 출구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지난 9월 순례길 출발 전, 언니네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했던 중식 뷔페가 있는 Intermarché Hyper Gif-sur-Yvette 근처가 떠올라 그쪽으로 향했다.
결국 산책을 마친 뒤, 그곳에서 장을 보기로 일정을 바꾸었다.
그 주변에는 마을 병원과 대형 마트, 맥도날드까지 함께 모여 있어, 말 그대로 동네 읍내처럼 느껴졌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나 역시 Intermarché 건물 입구에 있던 작은 책방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그곳에는 연말 엽서와 달력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프랑스어로 쓰여 있는 월력 달력과,
하루하루 한 장씩 메모지로 뽑아볼 수 있는 일력 메모지를 하나씩 골랐다.
이곳은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서인지 가격도 저렴했다.
구글 지도에는 이렇게 큰 건물 안에 입점한 작은 상점들이 검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동네 서점에서는 다양한 필기구는 물론,
책과 문구 용품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나는 특히 이런 공간을 좋아한다.
한국의 국민 간식이 초코파이라면, 프랑스를 대표하는 간식은 단연 ‘마들렌’이다.
프랑스 국민 제과 브랜드인 Bonne Maman의 마들렌 패키지 세트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ÉCHIRÉ(에쉬레) 버터를 기념품으로 챙겼다.
프랑스 하면 역시 버터 아니겠는가. 패키지도 예쁘고 감성적이다.
이 두 제품 모두 한국에서도 판매되지만, 대부분 OEM(현지 생산이 아닌 수입사 생산) 제품이라 진짜 현지의 맛을 다시 기억해보고 싶었다.
프랑스 마트의 버터 코너는 다른 어떤 코너보다도 크고 다양하다.
무엇을 고를지 한참을 고민하던 중, 옆에 있던 프랑스인이 진지하게 버터를 고르는 모습이 인상 깊어서 나도 그 사람을 따라 같은 제품을 집었다.
사실 에쉬레 버터가 얼마나 유명한지는 잘 몰랐지만,
버터 하나만으로도 빵의 풍미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건 알고 있었다.
마트 규모가 커서인지 라면 코너를 들렀다가,
신라면과 쌀국수 같은 동남아 브랜드 제품들이 많이 보여 반가웠다.
라벤더 비누 Un savon de Marseille à Paris
샤틀레역 근처를 거닐다가, 우연히 작은 비누 공방을 발견했다.
은은한 자연의 향 때문일까? 그곳으로 이끌리듯 들어가게 됐다.
그곳에서 수제로 만든 라벤더 비누가 담긴 작은 틴 케이스 두 개를 골랐다.
서울로 돌아가 만날 지인에게 선물할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누구에게 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언젠가 그 향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생기리라 믿는다.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 여름 플로럴 패턴의 원피스를 입고 다니던 발랄한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거리엔 시크한 블랙 재킷과 첼시부츠 차림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할머니까지 모두 첼시부츠를 신고 다녔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신발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확실히 스페인에서는 패션보다 먹거리에 더 눈이 갔다면, 프랑스에 와서는 베레모와 첼시부츠, 시크한 블랙 톤의 패션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마침 블랙 프라이데이 시즌이 다가오던 시기라, 나는 샤틀레 주변 편집숍들을 둘러보며 하나하나 신발을 신어보았다.
한국으로 가져갈 신발이기에 더 신중하게 골랐다.
스페인에서 트레킹용 운동화를 하나 샀고, 파리에서는 면세 상품으로 첼시부츠를 한 켤레 더 구입했다.
사실, 돈만 더 있었다면… 신발을 몇 켤레 더 사 왔을지도 모르겠다.
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나와 함께 걸어온 신발과 샌들을 정리했다.
이미 할 일을 다한 듯, 밑창은 닳고 쿠션도 터져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 신발을 버린다고 해서 내가 완주하지 않은 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제 짐을 줄이고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하는 나에게,
여기에 두고 가는 것이 맞는 선택일 것이다.
고생 많았다.
파리는 점점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화려하게 단장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따뜻한 빛을 뿜는 백열등이 수 놓이고, 상점들은 선물 상자처럼 예쁘게 꾸며진 진열창으로 발길을 붙잡는다.
나는 그 풍경을 만끽하며 파리 시내를 부지런히 걸어볼 생각이다.
생각보다 날이 추워 몸은 움츠러들지만, 얼마 남지 않은 여정을 놓치고 싶지 않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