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오르세 미술관 반고흐 특별전 체험기
파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반 고흐를 닮은 사람을 만났다.
피카소는 스페인 사람이었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꽃을 피웠다.
반 고흐 역시 네덜란드 사람이었으나 화가로 전향한 후 마지막까지 살았던 곳은 프랑스였다.
그림 한 점 팔지 못했지만, 그를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성장하게 한 무대는 분명 프랑스였다.
왜 이들은 고향을 떠나, 그렇게 상막하고 외로운 도시 파리로 와야 했을까?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오르세 미술관을, 드디어 두 번째 유럽 여행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오늘은 퐁피듀에 이어 오르세 미술관을 가는 날이다.
오르세는 작품 수도 많고, 사람도 많은 곳이라 체계적으로 보지 않으면 금세 지칠 것이다.
위치로 보면 퐁피듀와 루브르, 그리고 오르세까지 모두 한 블록 건너에 자리해 있다.
그래서 Île-de-France 앱 안내대로라면 오늘도 아주 쉽게 관광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으나, 여기는 파리 아니던가? 시위의 도시! 지하철 파업과 공사, 잦은 고장으로 시도 때도 없이 멈춰 서는 곳이다.
퐁피듀가 근현대 시대의 단면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오르세는 중세 인상파 시기의 작품과 로댕의 조각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서울역의 모티브가 된 박물관이기도 하다. 옛 기차역을 그대로 복원해 만든 공간이라, 역사적 가치와 함께 현재와 과거가 예술 작품 속에서 공존한다.
최근 서울역 구 역사 역시 전시와 행사 공간으로 활용되며, 근현대 시대에 지어진 독특한 건물이 서울의 역동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져 또 하나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나의 첫 유럽여행에서 오르세 미술관을 관람했을 때의
충격과 감동의 순간을 나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거장들의 작품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이곳에서,
마치 매일 집처럼 드나드는 예술학도들을 보며
나 역시 이곳에 매일 오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 마음을 아는 듯, 오늘은 햇살이 환히 비쳤다.
첫 유럽여행 당시, 게스트하우스에 자주 오던 한국인 유학생의 예술인 학생증을 빌려 무료로 입장했던 기억이 있다.
수많은 작품 하나하나를 기억하기보다, 그 장소가 지닌 에너지와 분위기가 내 머릿속 깊은 저장고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번 두 번째 오르세 방문에서 그 기억이 자연스레 끄집어져 나왔다.
마치 스무 살의 나와 다시 조우하는 기분이었다. 설레고 풋풋했던 어린 날의 모습과 마주하는 듯했다.
오르세는 여전히 차가운 로댕의 조각상처럼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뱀파이어처럼, 그곳은 시간이 멈춘 채 건재해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오르세에서 만난 수많은 작품들에 대해 일일이 이야기하지는 않으려 한다.
정말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이미 나보다 훨씬 잘 담아낸 블로거들이 많다.
내가 이곳을 이야기하는 진짜 이유는,
작품이 아니라 이 장소가 내게 건네준 추억과 기억 때문일 것이다.
가장 자유롭고도 연약하며, 가슴 시린 이야기를 그려낸 화가 ― 반 고흐.
마침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특별전으로 반 고흐 원화가 전시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간 것이 아니었지만, 수많은 작품을 훑듯이 보고 난 뒤, 마지막으로 2시간 가까이 줄을 서며 특별관에 들어섰을 때에서야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반 고흐의 노랑을 좋아한다.
그의 작품을 마주하거나,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볼 때면 자꾸만 눈물이 났다.
만약 그가 피카소처럼 잘 나가는 부자 화가로, 사교계 인사들과 어울려 파리의 중심을 주무르며 살았다 해도… 내 생각에 그의 마지막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피카소의 재능과 작품을 존경하지만, 반 고흐는 전혀 다른 결의 아티스트였다.
수많은 반 고흐의 작품을 보았지만, 사실 그중 대부분은 판화이거나 프린트다.
오르세가 소장 중인, 잉크 냄새가 아직 살아 있는 원작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프랑스 현지에서도 귀한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2시간의 대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모든 관계와 믿음이 무너지고, 결국 홀로 고독한 나만 남았을 때
우리는 과연 반 고흐처럼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순례길을 걸으며, 나는 내가 선택한 예술에 대해 수없이 되물었다.
외롭고,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과 무시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붓을 놓지 않았던 그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마지막까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인생의 풍파와 배신, 믿음의 상실을 경험하고 순례길을 걷게 되었다.
그 길에서 내가 다짐한 것은 단 하나, 한국에 돌아가서 무엇이든 해내며 살아내겠다는 것이었다.
예술은 나에게 영원한 숙제이자, 숙명처럼 자라난 사슴의 뿔처럼
갈고닦아야 하는 동반자이지만, 삶을 예술로만 가두진 않겠다는 다짐도 함께였다.
그 다짐이 한국에 돌아와 완전히 이루어지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내 발걸음에 맞춰 삶을 걸어 나갈 힘이 생겼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돌아오는 길, 오르세에서 반고흐 플레이모빌 하나를 구매했다.
2023년 나의 두 번째 오르세 방문과 반고흐 원화전을 잊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자 기억의 증표였다.
지금 이 반고흐 플레이모빌은 내 방 창가 선반 위에서 조용히 전시되어 있다.
유럽에 있다 보면, 우연히 들른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콘서트처럼 재미있는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반고흐 원화전을 보고 나온 직후, 지하철 안에서 나는 우연히도 반고흐와 정말 비슷하게 생긴 청년과 마주쳤다.
마치 드라마 닥터 후에서 처럼, 반고흐가 시간여행을 하고 현대에 자신의 작품을 구경하고 나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모습 같았다.
잠시 얼굴을 보고는 웃음을 지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마주했던 명화 속 사람들은 결국, 유럽의 일상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자연스러움과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만나, 이곳을 더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 같다.
예술은 누구나 즐기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윤활제 같은 것이니 말이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열차 안에서 익숙한 풍경과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지하철에 나이 드신 노숙자 아저씨가 한껏 몸을 움츠린 채 올라타셨다.
금세 기차 안에는 찌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주변을 의식한 듯, 몸을 입고 있던 재킷으로 냄새가 공기로 퍼지지 않게 붙잡으면서 더 구석에 앉아 계셨다.
하지만 인상을 쓰거나 자리를 옮기는 승객들보다는, 오히려 나는 그곳에서 파리의 온정을 체험할 수 있었다.
최근 서울에서는 지하철에서 몸이 부딪힐 때, 다들 핸드폰만 보며 “미안하다”는 말조차 없이 성의 없이 지나치는 경우를 많이 체험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사과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회라니, 요즘 사람들은 더 화가 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차가운 도시 파리에서는, 노숙자 아저씨를 향해 욕을 하거나 내쫓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한 파리지앤느 여성분이 다가가 “식사는 하셨나요?”라며 샌드위치를 건네고 위로를 건넸다.
이어 청년도 다가와 아저씨에게 “돈은 있으신가요? 건강은 괜찮으신가요?”라며 돈을 쥐어주었다.
따뜻한 온정에 오늘 하루 종일 미술관 관람으로 지쳤던 피로감이 사라지는 따뜻한 순간이었다.
이곳 파리가 왜 낭만이 있다고 얘기하는지, 이 상막하고 거대한 아름다운 도시에서 살아보면 다채롭게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많다.
냄새나고 불친절하며 지저분하고, 소매치기들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서로 보이지 않게 따뜻한 온정이 오고 간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도시의 외로움 속에서도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다.
순례자에서 여행자로, 그리고 생활자로. 이제 이곳 파리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며 바라보는 풍경은, 처음 유럽에 왔을 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계절도 변했고, 나 역시 그들과 어우러지는 색깔로 변화하고 있었다.
내일은 언니 집에서 내 친구 숙영이와 세정이 가족들을 불러 홈파티를 할 예정이다.
유럽 파리 생활에 익숙해가는 즈음, 곧 나는 다시 한국으로 떠나겠지.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