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홈파티 풍경

프랑스 가정의 음식, 와인, 대화 속 문화 이야기

by 양작가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늘 가족들과의 연회나 나들이, 혹은 지인들과 교외로 나가 작은 소풍을 즐기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내가 지금 그런 공간에 머물고 있다 보니, 르누아르의 풍경처럼 정감 어린 시선과 사물에 담긴 애정이 내 눈에도 잔잔히 스며드는 듯했다.

그렇게 늘 파리 시내로 나가던 어느 날, 언니 집에서 언니와 나의 인연으로 이어진 새로운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나는 또 한 폭의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 받은 듯했다.


2023년 11월 18일 토요일 홈파티 풍경

언니는 고등학교 동창인 숙영이와 오랜 인연이 있었다.
그리고 숙영이와 나, 은영 언니까지 세 사람의 접점으로 이어진 인연이 이번에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각자 세 아이의 엄마라 이동이 쉽지 않았지만, 어렵게 시간을 맞춰 숙영이네 가족 다섯(독일인 남편, 쌍둥이 아들, 딸), 은영 언니네 가족 다섯(아이 셋과 형부), 그리고 나, 마지막으로 숙영이를 통해 다시 연락이 닿은 고등학교 후배 세정이 까지, 총 12명이 모여 다국적 홈파티가 열렸다.


아이들만 여섯이라 집안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언니는 이들을 초대하기 전날, 집에서 백김치를 담그고 전을 부치며 생선까지 구워냈다. 프랑스 한복판에서 이런 큰 잔치를 준비하다니, 순간 여기가 정말 파리가 맞나 싶었다. 예전 함께 일을 할 때도 느꼈지만, 언니의 손은 늘 크다. 외국인 두 명과 한국인 성인 네 명, 여섯 명의 아이가 먹고도 남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이 순식간에 완성됐다. 내가 조수 역할을 자청했지만, 혼자 일하는 게 몸에 밴 언니는 결국 밤새 뚝딱뚝딱 혼자서 음식을 해내셨다.


숙영이네 가족은 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언니네 집으로 바로 왔고, 세정이는 지하철을 타고 온다고 해서 내가 나가 배웅을 했다. 세정이는 고등학교 후배로, 유학을 간 이후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이번 여행에서 숙영이를 매개로 다시 연결이 되었다.


순례 전에 잠시 보긴 했지만, 순례 이후 이렇게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번 모임에서 유일하게 내가 직접 초대한 사람이 세정이었다.

집안에 열두 명이 한데 모여 있는 풍경은, 한국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난로 핀 거실

실방 형부는 쌀쌀해진 날씨에 난로에 불을 지폈다.
나도 언니 집에서 난로를 피우는 모습은 처음 봤는데, 마치 그림 속 한 장면처럼 흩어져 놀던 사람들이 온기에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처음의 어색함을 잊은 지 오래였고, 실방 형부와 숙영이 남편은 어느새 축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스페인에서 가져온 와인을 선물로 드렸고, 파티 날 함께 마실 수 있었다. 와인을 열자 돌아온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스페인의 땅과 햇살의 추억이 맛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어쩌면 그곳의 여유로운 사람들과 뜨거운 태양 아래 흩날리던 흙먼지가 와인 속에 추억으로 녹아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실방 형부는 프랑스인답게 특별한 평을 하지는 않았지만, 숙영이는 와인을 맛보고는 “맛있다”는 말을 건넸다.

세정이가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것, 프랑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남자친구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가 난로가에서 피어났다.


세정의 제안

파티가 끝날 무렵, 세정이는 오늘 자신의 집에서 2차 파티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왜냐하면 오늘 이후 다시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니에게 이야기를 한 후, 모두가 식사를 마치고 하룻밤 묵을 짐을 싸서 세정이의 집으로 향했다.
밤에 세정이네 집으로 가는 RER-C선이 갑자기 정차할 경우를 대비해, 자전거나 트램을 타기로 미리 계획했다.

지나는 길에는 북경의 우다코우나 왕징처럼 유학생과 아시아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 있었다.
세정은 유학 시절 그곳에서 지냈던 이야기를 잠깐 들려주었다.


장보기

집으로 향하기 전, 근처 까르프에 들러 파티에서 먹을 술과 간식거리를 샀다.

떡볶이 떡과 라면, 와인과 다양한 술 등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까르프가 큰 매장이어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필요한 것들을 골라 집으로 돌아간 기억이 난다.




세정의 집 – 2차 파티

세정이의 집은 프랑스 스타일의 공동 아파트 겸 스튜디오 느낌의 공간이었다.

집 입구에서 세정의 짝꿍 장밥티스트가 나에게 밝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 만나는 자리임에도 낯가림이 전혀 없는 밝은 성격이었고,

장난기 넘치는 표정 덕분에 세정이도 즐거워 보였다.

멀리서 온 언니로서 나 역시 안심이 되었다.


2차로 또 식사를 하는데, 라면과 떡볶이가 신기할 정도로 술술 들어갔다.
역시 떡볶이·라면 배는 따로 있는 걸까? 하하.

언니 집 파티에서도 2~3시간 동안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지만,

사실 술은 많이 마시지 않았다.
술보다 이야기와 웃음이 더 많았던 파티였다.


세정이네에서는 조촐하게 3명이서 식사를 했지만, 나는 살짝 취기가 오르는 듯했다.
집 안에는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고,

최근에는 그림을 렌트해서 주기적으로 걸어 놓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고등학교 때 철없던 우리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이제 프랑스에서 자리를 잡은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그간 하지 못했던 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술과 시간 모두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어 있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이곳에서의 일상을 하나하나 주워 담고 싶을 만큼 아쉬움이 느껴졌다.
내일은 뭘 하면 좋을지 세정이 와 고민해 봐야겠다.
나의 유럽에서의 일상도, 와인처럼 이야기가 익어간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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