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당한 핸드폰 소매치기 사건
모든 게 익숙해져서 더는 특별한 게 없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세정이 와 함께 파리만이 지닌 오래되고 특별한 분위기가 깃든 곳에 가고 싶어 인터넷을 뒤적였다. 그러다 여행을 많이 다니던 지인에게 문의를 했고, 그는 방브시장을 추천해 주었다.
한국의 황학동이나 동묘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순례길과 긴 여행에 익숙해진 나는, 그곳이 얼마나 악명 높은 곳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사실 소매치기로 소문이 자자한 바르셀로나에서도 아무 일 없이 지나왔으니 더욱 그랬다.
이제는 더 이상 고생은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아빠와 나 사이의 짧은 유통기한처럼, 그날도 생각지 못한 어떤 물건과의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 날이었다.
여행 와서 이렇게까지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오랜만이었다.
눈을 뜨자 왠지 그간의 사진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클라우드에 있던 초반 여행 사진들을 정리하며 저장해 두었다. 언젠가 차근차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세정이가 아침 인사를 건네며 내가 자던 거실로 아침을 가져다주었다.
아침 해장으로 세정이는 쿠키와 빵, 그리고 진하게 내린 프렌치 프레소 커피를 건넸다. 우리는 간단히 아침을 먹고 방브 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세정이도 아직 방브 시장을 구경해 본 적이 없다고 해서, 마침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 아침, 세정이 와 나갈 채비를 하고 장밥(티스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친절하고 밝은 성격의 짝꿍을 만난 것 같아, 축복해주고 싶었다.
방브 시장으로 이동
방브시장으로 가는 길 프랑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도시 외각의 철로와 철조망이 사방으로 쳐진 육교를 지나갔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트램을 타고 이동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트램은 고장으로 모두를 중간에 내리게 만들었다.
방브시장이 열리는 주변은 시장의 규모만큼이나 다양했다. 관광객과 상인들, 그리고 소매치기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 무리 속에서 사진을 찍는 중국인 관광객을 보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저런 식으로 돌아다니면 분명 가방이나 지갑을 털리겠지.’
생각해 보면 악명 높은 바르셀로나에서도 순례자의 행색으로 다녀서인지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곳 파리에서는 시장의 풍경과 인파에 넋을 놓고 구경하느라 경계심이 조금씩 풀려 있었다.
그렇게 넋을 놓고 다닐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걸 왜 몰랐을까.
나는 초원의 한 마리 무방비한 초식동물처럼, 방브시장이란 정글에서 소매치기들의 표적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유독 사람들이 몰리던 구간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남자 둘이 나타나 나와 세정이 사이로 밀고 들어왔다.
보통 프랑스 사람들이 저렇게 몸을 밀착해 비집고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어, 나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시장의 끝에 다다랐을 때, 마지막 지점을 기념하려고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려 손을 뻗었다.
헉——!
“분명 주머니에 있었는데?”
핸드폰이 사라진 것이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나는 늘 ‘비우기 여행’을 말하며 순례길과 유럽여행을 떠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의 짐을 비우고 싶다는 뜻이지, 핸드폰까지 사라지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더욱이 핸드폰 자체보다 아찔하게 떠오른 건, 아침에 백업하지 못한 산티아고의 사진과 영상, 그리고 순간들을 기록한 글들이었다.
순례길에서 마주한 얼굴들과 풍경들이 한순간의 방심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혹시 떨어뜨린 건 아닐까 하는 희망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려,
처음에 땡땡 캐릭터 피규어를 팔던 상인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제가 폰을 여기서 떨어뜨리지 않았나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고개 젓는 손짓뿐이었다.
여행 유튜브에서 흔히 보던 도난사고가, 이제는 내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가방 배송 지연, 식중독, 감기, 로밍 실수… 더는 잃을 게 없다고 안심했던 내 잘못이 컸다.
게다가 지인이 권했던 고가의 여행자 보험 대신 저가 보험을 든 것이 갑자기 후회스러워졌다.
순례길에서 가방이 지연되던 해프닝을 겪으면서도, ‘설마 또’라는 안일한 마음을 가졌던 게 이런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명백한 소매치기였다.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세정이는 내 흔들린 멘탈을 붙잡고, 빠르게 방브시장 근처 경찰서로 향했다.
빌어먹을!
정말 잊지 못할 여행이 되고 말았다.
프랑스 파출소는 입장부터 쉽지 않다.
입장도 함부로 할 수 없고, 벨을 눌러 출입 신고를 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다.
사실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악명 높은 소매치기 천국, “파리”라는 사실은 파리에 사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행자들도 각오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이미 경찰들은 손을 놓은 지 오래였지만, 내가 경찰서에 가야 하는 이유는 진술서를 작성해야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파리를 즐길 여유는커녕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만약 포르투에서처럼 핸드폰 없이 파리 시내를 혼자 헤매고 다녔다면, 생각만 해도 간담이 서늘했다.
세정이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겹쳐졌다.
파리는 포르투처럼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작은 도시가 아니다.
언니네 집에서 파리 중심까지는 무려 27km나 된다.
경찰서에 들어가 상황을 설명했지만, 경찰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말했다.
“시리얼 넘버를 모르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차피 핸드폰을 다시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시리얼 넘버를 확인하려면 집에 있는 서브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확인해야 한다.
결국, 결론은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세정이 와 헤어지기 싫었지만, 더 이상 파리를 즐길 여유는 없었다.
빨리 집에 가서 시리얼 넘버를 확인하고, 다시 파출소에 가서 신고를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비우기 여행”을 외치던 나는, 결국 멘탈까지 탈탈 털리고 말았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내 지갑과 카드가 무사하고, 도난으로 발생한 손실 일부를 보험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태풍의 화마처럼, 예상치 못하게 내 핸드폰과의 이별을 맞이한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에 기대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 차리자!
집에 가서 시리얼 넘버를 확인하고 신고하면 된다.
나는 빠르게 집으로 돌아와 시리얼 넘버를 챙겼다.
막상 우리가 여행에서 겪은 모든 일들을 대하듯 삶의 모든 일에 연연하게 대한다면,
얼마나 여유로운 삶이 될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부랴부랴 돌아온 집에서 세정이 와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밀려왔다.
나는 세컨드폰으로 아이폰 도난 알림을 눌러 위치를 확인했다.
폰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괘씸한 파리 도둑놈들!
세정이에게 위치 사진을 보냈더니,
찾기 어려울 거라며 괜히 폰을 따라다니는 것은 더 위험하다며 마음을 접으라고 조언해 주었다.
시리얼 넘버를 확인하고 신고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마침 실방 형부가 집으로 들어왔다.
내 멘탈은 오락가락하며 정신이 없었다.
형부는 이반이 머리를 자르고 있어서 금방 데리고 올 테니 나갈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경찰서에 가는 경험을 또 언제 해보겠는가?
형부 역시 프랑스에서 핸드폰을 찾는 것은
“파리에서 별 찾기”라는 말을 했다.
이반을 데리고 집에 돌아온 형부와 나는 지하철역 근처에 위치한 파출소로 향했다.
이반은 5살 남자아이이다.
그 또래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이반은 소방관과 경찰관을 굉장히 멋있어한다.
유난히도 이반은 경찰서에 간다는 소식에 신이 나 있었다.
경찰관이 되고 싶은 5살 꼬마의 눈이 반짝였다.
우리는 방브시장 근처 경찰서처럼, 벨을 눌러 도난 경위를 밝히고 경찰서로 입장했다.
조서실에 앉아 핸드폰 도난 장소, 핸드폰 시리얼 넘버, 보험 종류 등을 알려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거의 한 시간 정도였던 것 같다.
누가 어이없게 소매치기를 당할까 싶겠지만, 정말 그 순간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단지 방지를 위해 목이나 팔에 걸고 다니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다.
순례자처럼 낡고 해진 옷을 입고 다녔어야 했는데,
파리에 왔다고 멀끔하게 입고 다닌 것이 내 마음에 걸렸다.
언니도 실방 형부에게 소식을 듣고, 가방을 잃어버렸던 일화와 지인 중 지갑을 털렸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내 핸드폰을 잃어버린 상황에서는, 그 어떤 위로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순례길을 다녀와 감기까지 걱정시킨 것 같아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엎질러진 상황은 어쩔 도리가 없다.
빨리 마음을 다잡고 남은 여행을 즐일 수밖에 없다.
핸드폰 도난 사건으로 여행 막바지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상태였다.
남은 기간은 핸드폰 유심을 구입하지 않고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그나마 가지고 온 세컨폰에 구글맵을 캡처해서 원하는 지정 장소들을 다녀볼 예정이다.
모든 것에 초연하게, 마지막까지 잘 지내보자.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