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두려움 극복기
산티아고의 여정이 벌써 한 달이나 저 멀리 흘러가 버렸다.
그 사이 수많은 곳을 여행했고, 핸드폰 도난 사건까지 겪으며 나의 인생길에서 좌충우돌을 체험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진정으로 한 발 내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산티아고 블루’라는 그리움 속에서 한국 사회에 쉽게 섞이지 못했고, 글을 쓰겠다는 고집으로 구직 활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글을 써야만 했다.
마치 프랑스 길 이후 정해져 있던 일정처럼, 글쓰기에 온 힘을 집중했다.
처음 순례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나, 지금 그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을 때나, 석 달이라는 공백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았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매주 글을 써 내려가는 나를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나의 신념이 되었다. 반드시 끝내고 싶다는 결심이었다.
그리고 다시 원점. 처음 프랑스 길에서 순례자 여권을 받기 전날의 두려움과 설렘이 떠올랐다.
그것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모험이었고, 새로운 길을 걷는 것에 대한 공포가 극한으로 치닫던 순간이었다.
식중독에 걸려 초반에 길을 포기하고 싶었던 고비, 길의 후반에는 배낭 지연 해프닝으로 멘탈이 무너졌던 순간, 포르투갈에서 와이파이가 작동하지 않아 비를 쫄딱 맞으며 길을 헤매던 기억,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리에서의 핸드폰 도난 사건까지.
나는 여행지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순간들을 차례로 마주했다.
그렇다면, 이 여행에서 내가 진짜로 느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여행 내내 ‘비우기 여행’을 원했다.
그리고 결국 핸드폰까지 도난당하고, 순례길에서 찍은 수십 장의 사진이 사라지면서 가장 두려워하던 순간이 현실로 다가왔다.
하지만 막상 핸드폰이 사라지고 보니, 내가 두려움이라 부르던 것이 얼마나 허황되고 내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공포였는지 알게 되었다.
다행히 세컨드폰과 아이패드로 빠르게 대체할 수 있었다.
수십 장의 사진은 아깝고 속이 쓰렸지만, 내가 그 길을 걸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걸어야 할 명분’까지 생겼다.
결국 두려움 속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닐까?
여전히 삶의 안정과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습성은 남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몸을 움직이게 하며, 때로는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순간들을 넘어서려 한다.
지루하고 외로운 글쓰기를 하며 얻은 통찰이다.
생각보다 글쓰기는 나와 잘 맞는 적성이었다.
20대 후반부터 남몰래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으며 ‘모닝 페이지’를 써왔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다.
30대의 내가 안에 있던 그림을 쏟아냈다면, 지금의 나는 내 안의 글자들을 하얀 종이 위에 쏟아내고 있다.
여전히 앞길이 어떤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제는 두려움 속에 숨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나는 11월 21일, 숙영이네 집에 다시 초대를 받아 갔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출국까지 며칠 남지 않아 유심을 새로 사지 않았기 때문에 와이파이 없이 시내를 돌아다녀야 했다. 그래서 언니네 집에서 숙영이네로 가기 전, 구글맵을 오프라인 모드로 설정해 두고 이동했다. 그만큼 파리 시내가 익숙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정이 와의 이별 이후, 다시 초대를 받아 파리 시내에 위치한 뫼동이라는 곳의 숙영이 집으로 향했다. 숙영이네 집은 파리 근교, 로댕 박물관이 있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걸어서 찾아가기 쉽지는 않았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나에게 이제 이런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단지 흐리고 추운 날씨 속을 헤매 다니는 동안 몸이 조금 상할 뿐이었다.
유럽의 겨울은 오후 4시만 되어도 해가 져버린다. 스페인에서 매일 마주했던 따뜻하고 찬란한 태양을 본 지 오래였다. 파리의 겨울은 꽤 우중충했고, 오롯이 크리스마스만을 기다리며 안갯속에 숨어 있는 듯 스산했다. 늘 안개가 깔려 있어서인지 사람들의 걸음걸이마저 무겁게 느껴졌다.
숙영이네 집에 들어서자 따뜻하게 피워둔 난로 덕분에 몸이 풀리며 긴장이 누그러졌다. 어릴 적 친구의 장점은, 10년 만에 만나더라도 마치 어제 만난 듯 편안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추억을 함께 공유한 사람만이 가지는 특별함이 아닐까.
여름휴가 때 다녀온 프랑스 남부에서 사 온 와인을 함께 따고, 난로 앞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와인을 홀짝였다. 아이 엄마들을 만나면 늘 시간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얼굴을 보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 충분히 행복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이후면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기에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언제 또 얼굴을 보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다.
박물관에서 그림을 관람한 뒤 지하철에서 만났던 노숙자처럼 마음 따뜻한 이야기도 있지만,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이 유서 깊고 큰 도시에서는 다양한 인간상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부터 언급했던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사실 내가 가장 이야기하기 싫고, 또 가장 추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모습이다. 그런데 파리에서는 종종 그 두려움을 직접 마주해야 했다.
한국의 경우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피우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대놓고 마약을 하고 돌아다니는 중독자를 보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노숙자를 만났을 때처럼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지기는커녕, 마약 중독자가 열차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가 갑자기 싸늘하게 식었다. 사람들은 홍해가 갈라지듯 두려움의 눈빛으로 자리를 피했다. 내가 있던 쪽으로 그가 다가와 빈자리에 앉자, 주변에 있던 네 명뿐 아니라 내 옆자리에 있던 네 명까지—총 여덟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자리를 옮겼다.
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분명 저 사람도 한때는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삶을 포기하고 저 지경에 이르게 된 걸까? 무엇이 그를 이렇게까지 내몰았을까?
출국을 하루 앞두고, 뤽상부르 공원 뒤편에 위치한 일러스트레이터 **마린 몽타구(Marin Montagut)**의 공방 숍을 구경하기로 했다.
뤽상부르 지하철역에서 내려 공원을 가로질러 뒤편으로 걸어 나오면 바로 닿는 곳이었다.
프랑스 작가들의 공방을 직접 가보는 것이 나의 작은 목표 중 하나였는데, 그 바람을 이루는 날이었다.
작가를 만날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한국 성수동에서 한국판 일러스트 전시를 하고 있었다.
‘파리 중심가에 이런 예술 공방이 있으려면 대체 월세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조금만 걸으면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도 있는 메인 스팟이다.
파리는 지도 없이 막 걸어도 금세 멋진 유적지가 나타나는 도시다.
공방 안으로 들어서자 예쁜 작품들이 가득했다.
기념품을 사 오고 싶었지만, 손가락만 한 작은 종지 도자기가 약 7만 원이었다.
관광객이라면 기념품으로 구입했을지도 모르지만,
순례자의 시선으로 보니 7만 원은 며칠을 버틸 수 있는 금액이었다.
아름답게 파리를 담아낸 작품들이었지만 결국 손을 접었다.
파리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센 강가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과,
지하철 열차 틈 사이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낡고 누렇게 바랜 책을 무겁게 들고 다니며,
활자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읽어 내려가는 모습.
생각하는 힘, 불평할 수 있는 용기, 시민의 자부심, 금기와 불평등을 깨뜨린 도시 파리.
그들의 모습은 이 도시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마린 작가의 공방을 나와 거리를 기웃거리다 우연히 발견한 서점,
Librairie La Procure. 파리에는 이런 서점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름난 명소가 아니어도, 규모와 상관없이 언제든 책을 읽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나는 종교 서적 코너를 둘러보다가 가톨릭 묵주 진열대 앞에 섰다.
그곳에서 앞부분은 순례자동상과 뒷부분 조개 문양이 새겨진 펜던트를 발견했다.
마치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우연히 발을 들인 공간에서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 작은 펜던트가 내게 용기를 주는 듯했다.
“대천사 미카엘이 길 잃은 순례자에게 건네는 마지막 위로일지도 몰라.”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했다.
이곳은 각종 매체와 전 세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모여드는 파리의 대표적인 명소 카페다.
나는 초록색 라벨이 붙은 예쁜 티팟을 사기 위해 걸어서 찾아갔다.
하지만 예상대로, 그곳은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늘 붐볐다.
기념품을 사려고 안으로 들어갔지만, 가격대가 생각보다 높아 선뜻 지갑을 열지 못했다.
스페인 물가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파리 물가는 그야말로 살인적으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즐기지 못한 것은 아니다.
화려한 명소 뒤편 골목에는 의외로 가성비 좋은 카페와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나는 오히려 그런 곳이 더 좋았다.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즐기는, 진짜 파리의 일상 같은 공간 말이다.
와이파이 없이 다닌 덕분에 검색이 불가능했지만,
오히려 우연히 들어선 카페와 서점에서의 경험이 마지막까지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노트르담 대성당과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 앞을 지나쳤다.
영화 비포 선셋에도 등장했던 이 서점은 이제 너무나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예전처럼 조용히 들어가 책을 읽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몸 상태가 다시 나빠져 감기가 도졌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 짐을 싸고,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길을 처음 걸을 때 느낀 막막함과 두려움은 여전히 나 그대로였지만,
3개월 전의 고민들은 이제 더 이상 나의 고민거리가 될 수 없었다.
그저 3개월 동안 익숙한 공간을 벗어난 것만으로, 삶의 많은 부분이 정리되었다.
익숙한 환경을 떠난 것만으로 나는 완전히 새롭게 탈피한 것이다.
멀리까지 가야만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나는 순례자의 무덤에 내려두고 왔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살아오면서 외부의 상처와 트라우마에 꽁꽁 싸매며 보호하기에 급급했다.
진정으로 나를 위해 해준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와의 이별과 여러 슬픔까지,
인생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를 정리해 준다는 옛말이 틀림없음을 증명했다.
길을 떠날 때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힘들고 고생스러운 경험만큼 나를 성장시키고 기억에 오래 남는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그런 경험 덕분에 시간이 흘러도 나는 마치 어제 그곳을 다녀온 것처럼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
다음 이야기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준비와 공항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마지막까지 꽉 채워서 감기에 걸려 고생한 고생담이다.
나의 인생 순례길의 여정은 역시나 늘 상상 이상인 것 같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