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귀국 여정
2023년 9월 5일부터 11월 23일까지, 약 81일간의 여정이 마무리되는 날이 다가왔다.
내게 필요한 짐이라곤 36리터짜리 배낭과 24리터 캐리어가 전부였다.
삶에서 정말 필요한 짐은 과연 얼마나 될까?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왔다면, 아마 1년 살이를 준비하지 않았을까 싶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쉥겐조약에 의해 무비자로 90일까지 체류가 가능하다.
2년간 모은 돈을 모두 털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과 유럽 여행.
그 여정이 내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한국으로 돌아가면, Itero de la Vega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것처럼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어떤 일이든 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짐을 싸면서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쳤다.
하지만 당장 붙잡아두었던 감기가 다시 도지고 말았다.
습하고 들쑥날쑥한 날씨 탓에 기침이 심해져,
결국 마스크와 목도리를 둘러매고 공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와 작별하기 전날.
우리는 마지막으로 근처 슈퍼에 들러 크리스마스 선물과 기념품으로 챙길 프랑스산 와인을 샀다.
이제 모든 채비가 마무리된 듯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파리에서의 생활은 언니 덕분에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나는 RER-B선을 타고 곧장 샤를 드골 공항 2 터미널로 향했다.
공항에 미리 도착해 마지막으로 Paul 커피숍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체크인 시간을 기다렸다.
7시 비행기였기에, 4시간 전쯤 도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탓에 몸은 약 기운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지만,
마스크 사이로 기침이 계속 새어 나왔다.
“조금만 버텨줘, 제발.”
예사 기침이 아니었다.
다행히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 성난 목과 코를 잠시나마 달래주는 듯했다.
정말이지, 이 순간에서야 내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마음이 열려 있고 귀가 트인 맑은 사람들과 함께하다가,
이제는 성이 나 있고 앞뒤 보지 않고 돌진하는 성격 급한 관광객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텍스 리펀 지그재그로 줄 서는 라인을 따라 짐 카트를 끌고 가는 길,
나는 뒷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카트와 35kg에 달하는 무거운 짐을 끌며 빠르게 움직이기란 한계가 있었다.
내 낡은 노란 재킷의 초라한 행색 때문인지,
뒤에 있던 사람은 내가 한국인임을 인식하지 못한 듯했다.
게다가 감기로 목소리조차 잘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신경질적인 한국말로 나를 몰아세웠다.
“빨리 안 가고 뭐 하는 거야?”
내가 한국인이 아니었더라도, 앞에 나와 같은 상황을 겪은 동양 여자가 있었다면
아마도 정말 창피하고 민망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사람은 가이드였고, 나와 같은 아시아나 7시 편 비행기를 타는 승객이었다.
급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뭐가 그리 급했을까?
3개월 동안 마음을 닦고 귀를 열며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단 한순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기요!
빨리 움직이고 있잖아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면세 환급 하나 받으려고 이렇게 무례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니, 분노가 치밀었다.
결국 그는 연신 사과를 했고, 같은 비행기를 타는 처지라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여행이 끝난 시점이라 더 이상 여행자 모드가 아니었기에,
한국말로 맞받아치고 눈빛으로 싸울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중요한 건 빨리 면세 절차를 마치는 것이었기에 그냥 넘기기로 했다.
하지만 첫 번째 분노가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사건이 벌어졌다.
러시아 부호 분위기의 명품을 두른 백인 노부부가 줄을 무시하고 당당히 새치기를 했고,
중국인 몇몇은 비행기 시간이 촉박하다며 계속 새치기를 시도했다.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와중에, 마지막까지
‘돈이 많으면 뭐 하나, 저렇게 뒤에서 추한 행동을 하니 전 세계적으로 욕을 먹는 것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중국인뿐 아니라, 아까 만났던 한국인 가이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체크인.
밤비행기라 비행기를 타면 종일 자고, 도착하면 아침일 것이다.
약을 먹으며 감기기운을 누르고 계속 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몸이 끝까지 잘 버텨주길 바란다.
대기실에서도 아까 그 인종차별적인 가이드가 계속 눈에 띄었다.
면세 텍스리펀 확인서 줄에서 본 그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사실 순례길에서도 그랬지만,
국가를 막론하고 단체 관광객들은 대체로 시끄럽고 큰 소음을 일으켜 웬만하면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속을 긁어댄다니, 아이러니하다.
“이너 피스(Innner Peace)…”
스스로 다독여 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까지 험난하다니.
유럽으로 갈 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해 파리까지 갔지만,
돌아오는 길은 직항으로 곧장 한국에 도착하는 항공편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줄곧 기침을 멈추지 못했다.
거의 모든 승객들에게 민폐를 끼쳤으니, 혹여 그들이 나에게 불편함을 드러낸다 해도 면목이 없을 정도였다.
타이레놀을 과다하게 먹었음에도, 비행기 안의 탁한 공기를 내 목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쩌면 유럽살이를 간신히 버텨낸 내 몸이 마지막으로 쏟아내는 발악 같았다.
게다가 앞 좌석 승객이 의자를 지나치게 젖혀 두어 일어날 때마다 불편했고,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좌석을 뒤로 젖혀야 했다.
양해를 구했지만, 앞 좌석 승객은 배려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항공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좌석이 좁아진 것이니, 사실 딱히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조금만 배려해 주면 좋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한 자리라도 더 이득을 취하려는 항공사 쪽에 있는 셈이었다.
빈자리가 보이긴 했지만, 몸이 그렇게 움직일 만큼 건강하지 않았다.
겨우 정신을 붙들고 있는 상태에서, 나는 좌석에 멱살을 잡듯 몸을 고정해야 했다.
기침은 밤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심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타이레놀을 더 먹어 버티는 것뿐이었다.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
생각보다 더 매서운 추위에 지하철을 탈지, 버스를 탈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직행 버스를 선택했다.
몇 푼 아끼자고 무리할 만큼 내 몸이 성한 상태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혹시 모를 질병에 대비해 방역 당국에 신고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열이 없다는 판정을 받아 무사히 검사를 통과했다.
원래는 귀국하자마자 제주도 한라산을 오를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내가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은 병원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공항버스 안에서 드디어 10시간 넘게 꼼짝 못 하고 있던 발을 펴고 꿀잠을 잘 수 있었다.
한국의 해는 저렇게 빨갰었지?
스페인의 해는 그림자까지 삼킬 듯 크고 노란색이었으니, 비교가 되었다.
한국에서의 풍경과 기억들이 하나둘씩 깨어난다.
우선 내 몸부터 추스르고,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