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와 떠난 한라산

순례를 마치며

by 양작가

순례길을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2024년의 새해가 밝아왔다.

몸을 겨우 추스르자마자 제주에 있는 지인과 날짜를 맞추어 한라산 산행 일정을 잡았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산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뜨거웠던 피레네 산맥과 갈리시아 산을 넘어가며 비를 맞던 순간이 떠올랐다.

한국에 돌아온 뒤 한 번도 밟지 못했던 집 앞 둘레길―멀리 인수봉이 보이는 그 길―을,

한라산에 오르기 전 꼭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에 돌아와서는 새로운 휴대폰을 사야 했고,

유럽에서는 예상치 못하게 운동화와 구두까지 새로 장만해야 했다.

유럽여행이 생각보다 많은 경비가 들다 보니,

다시 취업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잠시 스쳤다.

그러나 그럴 틈도 없이 감기에 시달리며 2023년은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감과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나는 순례길도 완주한 사람이다.

집에서 요양하는 동안, 순례길에서 마주했던 대자연이 더욱 그리워졌다.



아빠와의 일화, 회상

한국에 돌아와 아빠가 계신 납골당에 다녀왔다.

하얗게 눈이 쌓인 서원주 기차역 풍경은 일본 영화 철도원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아기 때 아빠와 엄마와 함께 한라산에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


다만 아빠는 주말마다 산에 다닐 만큼 산을 좋아하셨고,

내가 아빠와 함께 산에 오른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다.

아빠는 산행을 마치고 식사 자리에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곤 하셨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린아이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게 참 아빠도 별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납골당에 두거나, 아니면 뿌려라.”
그때 나는 그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렸었다.

돌아보면 아빠와의 가장 따뜻한 추억은 초등학교 시절까지였던 것 같다.


2024년 1월 3일 제주행

제주에 에어비앤비를 하는 지인과 겨우 일정이 맞아 비행기 예약을 했다.
2024년의 첫 비행이다.

지인은 새로 이사한 숙소와,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진저와 후추의 소식도 전해 주었다.



제주 땅에 내리자 차가운 바닷바람이 나를 맞이했다.

제주의 겨울은 가혹하고 험하다.

최근 잦은 눈 때문에 한라산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식에 걱정이 스쳤다.

바람처럼 자유롭지만 맞바람처럼 고단한 제주살이를 홀로 견뎌내는 지인을 보며, 나 또한 자극을 받는다.

우리는 오래된 친구이자 동료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인연이다.


라이트 형제가 쇳덩이를 하늘로 날리겠다며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했기에,

지금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타국의 순례길을 걷고,

제주까지 단 30분 만에 닿을 수 있게 되었다.
만약 그들이 꿈을 끝내 성공시키지 못했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세상은 언제나 누군가의 도전과 꿈에 의해 흘러가고 있다.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내 인생,

그리고 꿈을 실행하는 모든 이들의 한 걸음에 나 역시 응원을 불어넣고 싶다.

제주의 탁 트인 풍경은 내 마음까지 환기시키는 듯했다.


일상에서의 순례자의 삶

삶 속으로 다시 들어와 지인들을 만나 예전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단지 3개월이라는 기간뿐이었는데도,

순례길에서 느꼈던 깨달음과 경험들은 전혀 통하지 않는 듯했다.

같은 인종,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이들과의 대화만큼 깊게 연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다른 언어와 국적을 가진 순례자들과 나눴던 대화가 그리워졌다.

나는 여전히 혼자였고, 일상이라는 간극 속에서 저만큼 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고, 내 발걸음 하나에 온전히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시돌 올레길

이시돌 목장은 제주 올레길 코스 중 하나이자 성지다.
목장과 성당, 카페가 함께 있는 이곳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순례자 도장을 발견했다.

겨울이라 차가웠지만, 이곳을 조용히 걸으며 명상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와닿았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기에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을 것 같았다.



제주의 장점 중 하나는 같은 한국이면서도, 섬이라는 폐쇄성 덕분에
육지에서의 일들이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 멀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렇게 나는 목장 산책로를 걸으며, 2024년을 준비하는 마음을 다졌다.


한라산, 영실로

우리가 머문 숙소는 제주의 서쪽에 있고, 한라산은 섬의 정중앙에 자리한다.
한라산 초입부터 오르기는 쉽지 않기에, 우리는 1700미터 지점의 산 입구까지

차로 이동한 후 영실 코스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사실 겨울 산행은 처음이라 장비가 다소 미흡했다.

스패츠와 도시형 아이젠, 그리고 등산용 폴스틱 하나만 준비했다.


지인은 새벽 주차 자리 걱정 때문에 일찍부터 산행 준비를 마쳤다.
어쩌면 생애 첫 한라산행이라서인지,

마치 산티아고에서 첫걸음을 떼던 날처럼 설렘이 올라왔다.


한 시간 남짓 새벽길을 달려,

아침 해가 떠오르는 풍경을 보며 한라산 영실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한국 사람들은 어디서든 부지런함이 세계 1등이다.


이른 시간임에도 등산로 앞은 겨울 절경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붐볐다.

산티아고에서도 새벽 5시에 일어나 걸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가끔 동네 공원에서 운동하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저분들은 언제 주무실까?’ 궁금해졌다.
밤 12시에도 운동하는 분들을 마주치고,

새벽 4시 비행기를 타러 가는 택시 안에서도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늘 감탄했다.



겨울산은 처음이라

겨울산은 처음이었다.
산을 오르며 잊고 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아이폰이 추위를 많이 탄다는 사실이다.
영실로 입구에 도착했을 때, 아이폰은 방전되어 꺼지고 말았다.

휴대폰이 꺼지자 오히려 온전히 등산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함께 걷던 지인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나보다 걸음이 뒤쳐졌다.
나는 오르다 멈추다를 반복하며 뒤를 돌아보고, 지인이 따라오고 있는지 살폈다.

산을 오르며 몸이 풀어지자, 나는 벽면에 붙은 듯한 경사진 비탈길을 리듬 타듯 가볍게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길 내내, 어린아이와 가족, 외국인 등 여러 사람들이 줄지어 오르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내가 생각보다 산을 잘 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순례길을 걸을 때 나는 빠른 발걸음이나 강인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걸으며, 스스로 잘 걷는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인이 한참 지나도 보이지 않자, 나는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 이제 좀 잘 걷는 사람인가 보다.”

그랬다. 나는 800km를 걸은 순례자였다.
그 사실을 매번 재확인하면서도, 그 앞도하는 거리에 스스로 놀랐다.



나는 윗세오름 휴게소 지점에서 나는 남벽분기점까지 더 오르기로 결정하고,

지인은 나중에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결정하고는 나는 진짜 이제 거를 게 없다는 듯이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앞에는 새하얀 눈으로 덮인 한라산 설경이 펼쳐졌다.
한라산의 매력은 산만이 아니라, 그 너머 푸르게 펼쳐진 제주 바다에 있었다.
위에서 바라본 제주의 풍경은, 수차례 제주를 여행했음에도 처음 보는 광경 같았다.
나무 위 두껍게 쌓인 눈은 한라산을 눈부시게 아름답게 만들었다.

“이곳이 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니.”
아름다웠다.
늘 그곳에 있었기에 몰랐지만, 또 보고 싶을 만큼 소중한 존재였다.


영실로에서는 백록담까지 갈 수 있는 경로가 아니지만 근처까지는 갈 수 있어서

분기점에 도착해 가지고 온 컵라면을 꺼냈다.

배도 출출해서 가지고 온 텀블러에서 물을 부어서 컵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텀블러 성능이 별로인 건지,

기온이 너무 추워서였는지 물이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거의 나는 반 미지근한 물에 빠진 생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산에 쓰레기를 버릴 수 없기 때문에 국물까지 다 마셨다.

꽁꽁 비닐로 싸매고는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갔다.


해가 점점 산 가까이 뜨면서 눈이 녹기 시작했다.

지면이 미끄러워서 넘어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12시가 넘었기 때문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새벽에 비탈길을 오를 때는 문제없던 길들이 아이젠을 했음에도

스키장의 다져진 매끈한 단면처럼 미끄러워졌다.

도시형 아이젠은 눈을 발로 쑤시며 가기에 너무 작았다.


나는 내려가는 내내 엉덩방아를 찍으며 거의 썰매를 타듯 내려가게 되었다.

가이드 줄과 폴대 엉덩방아를 반복하며 어깨 어리 엉덩이에 근육이 뭉쳐서인지 삭신이 쑤셔 왔다.


동화와 현실의 차이

영화라면, 모든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순례길을 마친 후, 모두 행복하게 자아를 찾으며 살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 이후에도 계속된다.


순례길을 마치고 제주 한라산을 걸으며, 나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까미노처럼 오롯이 걷기에만 집중하며 살 수 있는 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오히려 현실로 돌아온 후, 카미노에서의 일상이 현실보다 더 쉬웠다고 느꼈다.
시차 적응만큼이나, 카미노와 일상의 간극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순례글을 마치며..

2023년 11월 한국으로 돌아와 2024년부터 꼬박 매주 목요일마다

다녀온 길의 기억을 되돌려 머릿속 어질러진 기억들을 글로 다듬기 시작했다.


걸으며 우연히 떠올린 생각, 이 기억들을 기록으로 남기자는 생각은

2024년을 온전히 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오롯이 길을 걸었던 것처럼, 오롯이 글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이것은 마치 순례길을 두 번 걸은 것처럼 매회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하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스치듯 지나가는 경험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머릿속 꽉 차 있던 슬픔과 트라우마,

성장통을 털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이들, 길의 방향성을 잃었거나 좌절하는 이들,

그리고 순례길을 계획하는 순례자들에게 용기와 응원을 주기 위해 이 글을 놓치지 않고 한자한자 담아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 또한 글을 돌아보며 위로 받을수 있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 아닌가?


가장 느리고 평소 운동도 하지 않던 사람도 그곳을 걷고 꿈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온전히 내 마음을 열고 준비가 되었을 때 순례길은 또 나를 부를 것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순례길이 그립고, 다른 수많은 순례길을 걷고 싶어서 늘 지도를 바라보고 있지만,

역시나 현실과 이상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다음 순례길을 기약하며 긴 글을 마친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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