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아름다움이 쌓이는 사소한 순간

퐁피듀 센터와 라파예트 백화점, 파리 밤 야경 산책

by 양작가

파리, 바르셀로나, 서울 같은 대도시의 장점은 목적 없이 거리를 나서도 문화적 갈증을 채워줄 요소들이 곳곳에 넘쳐난다는 것이다.
퇴근한 파리지앵들이 센강변에 앉아 햇살을 즐기거나, 서울 청계천에서 발을 담근 채 왜가리가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들이야 말로 도시의 각박함과 시름이 물처럼 흘러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특히 광화문 청계천을 좋아한다.


파리에도 그런 ‘숨 쉴 틈’ 같은 공간이 많다. 관광객이든 파리지앵이든, 누구나 공평하게 파리를 느낄 수 있는 곳. 이런 유휴 공간과 예술이 모여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하는 파리라는 도시를 만들었을 것이다.
가을과 겨울의 파리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따뜻함을 품고 있다. 바깥공기 대신 커다란 미술관 안에서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시간이 그게 바로 파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조금 더 포근하게 머무는 방법 아닐까?



2023년 11월 15일 크레페 크레페 크레페

스페인에서 매일같이 카페 콘 레체와 추로스를 먹었듯이, 프랑스에 왔다면 크레페이다. 길거리마다 있는 크레페는 한국에 와서 떡볶이를 먹는 것만큼이나 놓칠 수 없는 별미이다. 아무 크레페집에 가도 재료를 넉넉하게 주는 인심은 항상 배고프지 않게 파리 거리를 걸을 수 있게 해 주었다.


퐁피두 센터

오늘은 프랑스에 왔다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는 연례행사 같은 날이다.
무려 첫 여행 때도 마지막을 장식했던 곳, 바로 퐁피두 센터다.

나는 퐁피두 센터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고양이 캣타워가 생각난다. 층층이 연결된 구조물들이 꼭 고양이들이 좋아할 법한 놀이터 같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오프닝을 보며 느꼈다. 속 안의 모든 욕망과 생각을 티끌 하나까지 끄집어내어 표현하려는 프랑스 예술의 극치. 그런 예술적 기운은 퐁피두 센터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발상, 금단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슬아슬하게 이슈메이커로 자리 잡았던 근현대 미술의 거장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


전시된 작품 하나하나가 강렬하지만, 내가 더 사랑하는 건 퐁피두 주변의 풍경이다.

카페테라스에서 잔 부딪히는 소리, 거리 공연자의 기타 선율, 알록달록한 스트리트 아트. 그 사이사이에 앉아 일상을 예술처럼 즐기는 파리지앵들의 바이브가 이곳을 완성한다.



입장

아침에 마이리얼트립으로 퐁피두센터 패스트트랙을 결제하고 빠르게 입장을 했다.

현대미술과 설치미술은 어렵고 추상적이란 이미지가 있지만, 파리와 현대미술은 마치 오래된 석조 건물 사이에 놓인 유리 건물처럼 서로 다른 시대를 품고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한 쌍 같다.


대가들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나는 삼청동에 있는 현대미술관에 예술인 패스를 이용해 자주 들러 작품을 감상하곤 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평소에도 대가들의 작품을 숨 쉬듯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이 질투가 날 정도로, 이번 관람은 눈과 귀, 그리고 온몸으로 담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미술 관람객

미술관에서 관람객들만 보고 있어도, 그 자체로 전시 퍼포먼스가 되는 듯하다. 나는 관람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어떤 사람은 그림 앞에서 한참을 스케치하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또 어떤 사람은 관광객 티를 내며 앤디 워홀 같은 유명 작가 작품 앞에서 연신 사진을 찍는다.


내가 현대미술을 재미있게 느끼는 부분은 바로 이 점이다. 작품은 누가 관람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7미터가 넘는 대형 작품들을 눈으로 담으려 하니 동공이 확장되고, 시야가 트이는 느낌이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작품을 오늘 하루 동안 모두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퐁피듀 풍경

퐁피듀센터 내부에서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파리 시내 전경을 바라보면, 마치 예술작품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오래간만에 맑은 날씨 덕분에 파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것도 한몫했다. 이런 행운이 있을까?

관람 중에는 대화가 거의 없지만, 수많은 예술작품을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느끼다 보면 금세 허기가 지는 것 같다.


퐁피듀 도서관

퐁피듀 내부에는 도서관과 매점이 있어서, 아까 사 먹고 남은 크레페와 매점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겨 먹었다. 하루 종일 관람으로 지친 다리를 오랜만에 의자에 올려놓고 한숨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이제 곧 여행이 끝난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퐁피듀 외관 모양의 키링이라도 팔면 좋을 텐데, 기념품을 사 오고 싶었지만 마땅한 것이 없어 한참 기념품 가게 안을 서성였다. 결국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요즘 한국에서 워낙 기념품을 잘 만들어서 그런지, 내 눈도 자연스레 높아진 듯하다.

아쉬움에 퐁피듀 안에서 자꾸 서성이다,

계속 밀려드는 인파에 결국 밖으로 나와 퐁피듀 주변을 거닐기 시작했다.



스트라빈스키 분수

퐁피듀센터 바로 옆에 조성된 스트라빈스키 분수와 주변 기념품 샵을 구경하며, 잠시 작품 감상으로 바쁘게 움직였던 발걸음을 멈추고 앉아 휴식을 취했다.

스트라빈스키 분수 주변에서는 버스킹 공연과 외벽의 커다란 그래피티가 퐁피듀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11월 16일 라파예트 백화점

9월에도 옥상에 올라 파리 전경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었던 라파예트 백화점.

오늘 이곳을 찾은 이유는 파리의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건물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돔 천장과 전망대로 유명한 이곳은 언제나 관광객으로 붐볐다.


유럽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일 년에 한 번 맞이하는 가장 큰 명절이다.
거리마다 화려한 백열등과 건물 장식이 넘쳐나고, 중요한 시기의 공간 디자인을 맡는 감독은 그해 가장 왕성한 활동과 영향력을 가진 디자이너라고 한다.




크리스마스 풍경

2023년, LOEWE 수석 디자이너가 라파예트 백화점 공간 연출을 맡아 화려하게 꾸몄다.

돔 천장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리본은 뱅글뱅글 돌며 바닥으로 원형을 그리듯 춤을 추고,

위에서는 삐에로 인형이 외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손을 흔들었다.


파리 시내는 흐린 날씨에 우중충했지만, 백화점을 수놓은 크리스마스 전구가 거리를 반짝였다.
입체적이고 아름다워, 백화점 전체가 거대한 선물 상자처럼 느껴졌다.



백화점 층층이 오를 때마다,

선물 상자와 마네킹으로 꾸며진 크리스마스 연출 덕분에

마치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밤풍경

옥상 전망대로 올라가 파리의 밤 야경을 구경했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 다소 아쉬웠지만,

마지막 야경을 오래 눈에 담기 위해 한참 동안 파리 풍경을 바라보았다.


파리의 밤산책

백화점을 나와 축축하게 젖은 아스팔트를 밟으며 밤거리를 걸었다.
파리는 큰 도시여서, 순례길 파리 코스만 해도 3일짜리가 있을 정도다.
일단 발이 시동이 걸린 듯 스텝을 밟아 나아갔다. 번화가에는 스페인처럼 불들이 하나둘 켜지고,

늦은 시간에도 영업하는 레스토랑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도시는 너무 늦은 시간 돌아다니기 위험하기도 하다.

주차 구역이거나 건물 뒷면처럼 사람이 없는 곳은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을 주었다.


저녁

추워진 날씨 속에서 파리의 겨울을 몸소 체험하며, 나는 일본 우동집에 들어가 따뜻한 우동을 먹었다.

이 큰 도시의 밤거리를 걷다 보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우연히 이름을 알 법한 거장이 나타날 것 같은 아름다운 레스토랑도 보였다. 내부에는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밖에서 보는 내 모습은 철저히 외부인 여행자인 나 자신을 느끼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로움도 함께 느껴졌다.

언니 집으로 돌아가려면 또 한참 지하철을 타야 했다. 전철역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는 동안,

파리의 깊어지는 밤거리를 비추는 노란 불빛이 아름답게 도시를 수놓는 것 같았다.


다음 파리에 오게 된다면

파리 시내 중심가에 숙소를 잡고, 나는 파리의 밤을 즐기고 싶었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불빛과 레스토랑, 로맨틱한 공연과 파티,

그리고 사소하게 모여 있는 아름다움들이 파리를 더욱 밤의 시간에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사소하고 솔직하며 하찮은 것 하나도 그들의 생활과 문화 속에 녹아 예술과 이야기,

그리고 삶으로 스며드는 이곳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발걸음을 지하철 역으로 돌렸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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