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 걸린 감기

파리행 기차 여행

by 양작가

삶을 살면서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만은 없다.

하지만 순례길의 종착역을 바라보며 걸었던 산티아고에서처럼,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을 때 오히려 환희와 즐거움보다는 아쉬움과 후련함을 더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마치 학교 과정을 드디어 마치고 졸업장을 받았을 때처럼 말이다.


나 역시 파리로 올라가기 전,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밤새 내 몸도 알고 있었던 기침으로 얕은 잠을 뒤척이며, 문득 이 여행이 끝났다는 걸 실감했던 걸까?

20대에는 부모님에 대한 콤플렉스, 30대에는 모든 믿음이 흔들리게 만든 사건들과 아버지와의 이별이라는 큼직한 고비들을 지나며, 나는 순례길에 깊이 몸을 담갔고 그만큼 진하게 흘려보낼 수 있었다. 이제 그 순례자의 여정이 끝났다는 것을 내 몸이 먼저 알아차린 것만 같았다.


순례길을 걸으면서도 종종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많은 순례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간 뒤, 하루에 20km 이상을 매일 걷던 몸이 갑자기 멈춰버린 리듬에 적응하지 못해 몸살을 앓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매일 걷고, 한라산에도 올라야겠다고 다짐했었다.



2023년 11월 9일 아침, 바르셀로나 숙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기침이 연신 나왔다.

단체 숙소인 만큼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전날 밤엔 머플러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잠들었었다.
쉴 때 제대로 쉬지 않았던 것이 결국 화근이 된 셈이다.


오늘 오후 1시까지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필요한 것들을 구매한 후, 산츠역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파리행 기차를 타기 전, 침대에 누운 채 언니에게 연락을 전하고 오늘 일정을 곰곰이 살펴보다가 문득 이상한 특이점을 하나 발견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걸었던 길은 아니지만, 왜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의도치 않게 늘 약한 모습만 보이게 되는 사람.
나에게 그 사람은 파리에 있는 은영언니였다.

우리는 함께 일을 하게 되면서 인연이 생겼고,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나는 어딘가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이번만큼은 순례를 무사히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온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감기에 걸려버린 걸 어쩌겠는가?

언니는 나의 치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또, 나약한 나를 보여주게 될 것만 같았다.


오늘 기차 탑승 전까지 할 일

약국에서 감기약 사기

자라 매장 가서 겨울옷 사기

숙소에 짐 맡겨두고 전망대에서 휴식

기차에서 먹을 샌드위치와 주스 구입

오후 2시까지 바르셀로나 산츠역 도착하기


오전 일정을 계획하던 중, 이 숙소의 조식이 무료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그런 정보조차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체크아웃 시간 전까지 미적거리며 짐을 정리했다.

짐은 다 쌌지만, 마음은 아직 이곳에 남겨둔 것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많은 곳을 다닐 거라 생각하고 구입했던 지하철 일주일권은 결국 두 번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순례자의 루틴에 맞춰, 대부분의 거리를 걷는 데 익숙해진 탓이다.
이제는 대중교통보다 ‘걷기’가 더 자연스럽다.

나는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서, 어제 마리아와 함께 샀던 새 신발을 신고 기차를 타고 싶었지만
결국 편안함을 택해 호카 트레킹화를 다시 꺼내 신었다.


체크아웃

체크아웃을 하러 갔을 때, 보증금 5유로를 돌려받았다.
하지만 점심때까지 짐을 보관하고 싶다고 말하자, 5유로를 다시 가져갔다.
나는 지하 공유공간으로 내려가 내 순례자 배낭을 보관함에 넣었다.

신기하게도, 여행을 다닐 때마다 하나씩 물건이 사라져 있었다.


이번에는 순례길 내내 차고 다녔던 헤어밴드, 팔토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일 사용하던 수건이 사라졌다.
떠나기 직전 샤워를 마치고, 수건을 말리겠다고 걸어두고는 그대로 두고 온 모양이다.

이테로 데 라 베가에서 얻었던 패션 선글라스는 이곳의 기부 공간에 놓고 왔다.


그 물건이 나에게 필요했던 것처럼, 어딘가에서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10년 넘게 가지고 다녔던, 다리가 부러진 칩먼데이 선글라스도 이제 작별할 때다.

다리가 부러져 잘 쓰지도 못했지만, 순례길에서도 버리지 못하고 들고 다닐 만큼 애정이 많았던 물건이었다.

이상하게 놓지 못했던 물건이었다.
스페인에서만 선글라스가 세 개나 생겼으니, 지난 두 개의 선글라스를 여기서 떠나보냈다.




백화점 전망대

숙소에서 나오자마자, 어제 마리아와 함께 식사했던 전망대 카페를 다시 찾았다.
그곳에서 아점으로 추로스와 카페 콘 레체를 주문했다.

이제는 함께 줄을 서 추로스를 먹는 사람들에게 초콜릿을 권할 만큼 스페인이 익숙해져 있었다.

파리로 돌아가면 이런 스페인 특유의 한 끼가
아득히 먼 기억처럼 느껴질 것 같아,
지금 이 순간을 꼭 담아두고 싶었다.



Farmàcia Lluís Barenys

짐을 정리한 뒤, 숙소 근처인 카탈루냐 광장으로 나왔다.

바르셀로나는 정말 큰 도시답게, 어디를 둘러봐도 볼거리가 넘쳐났다.
언젠가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하며,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이 광장의 풍경을 눈에 담아두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 기침 탓에, 우선 약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갈 언니가 추천해 준 유기농 목감기 스프레이를 사고 싶어,
약사에게 제품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약사는 지금 내 상태라면 조금 더 강한 약을 쓰는 게 좋겠다며 다른 제품을 추천해 주었다.


감기약

유리병 안, 핑크색 액체는 마치 나쁜 바이러스를 모조리 잡아먹을 듯한 강력한 기세를 품고 있었다.
나는 약사의 추천대로 타이레놀과 발포 비타민까지 함께 구입하며, 약 쇼핑을 마쳤다.

유럽에서는 병원에 가려면 예약이 필요해서 접근이 쉽지 않지만,
대신 약국은 길목마다 즐비하게 있어 의약품을 구입하기는 훨씬 수월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느새 유럽 여행 중에 약 쇼핑을 자주 하게 된 듯하다.



옷을 보러 가는 길

약국 쇼핑을 마치고 메인 거리로 나오자, 이른 시간부터 거리 교향악단의 버스킹 연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딘가 나를 붙잡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프랑스보다 내가 더 많은 것을 너에게 내어주었는데, 벌써 떠나려는 거니?”
스페인이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혼자 짝사랑하는 것만큼 답 없는 것도 없지.


자라 매장을 비롯해 여러 SPA 매장에서는 2023년 가을·겨울 컬렉션으로 무스탕류 외투가 유행하고 있었다.
가죽 느낌의 저렴한 소재로 만들어진 제품들이 많아,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구입하는 듯했다.

나 역시 하나쯤 살까 싶어 다시 자라 매장으로 들어가, 입었다 벗었다를 몇 번 반복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매장을 빠져나왔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장보기

숙소로 돌아가기 전, 7시간의 기차 여정에 대비해 근처에 있는 카르푸 매장에 들렀다.
매일같이 호사를 누렸던 즙을 바로 짜낸 오렌지주스가 떠올라, 샌드위치와 함께 간단한 도시락을 골랐다.

장보기를 마친 나는 숙소로 돌아와 배낭을 픽업했다.



기차역 가는 길, 오후 1시

유럽의 지하철은 1호선처럼 기차역 방향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보며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 시민들에게 묻고, 만원인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스페인의 교통수단은 에어컨과 청결 면에서 나쁘지 않은 편이다.


다만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해서 잘못 타는 것을 걱정하며 약간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사람이 많고, 특히 지하철은 소매치기가 많아 새롭게 이동할 때마다 긴장의 연속이다.

기차역까지 가는 경로는 노선별로 다르고, 기차 버전까지 포함해 구글 지도를 활용해 방향을 꼭 확인해야 했다.


걸어서 30분이면 닿을 거리지만, 다시 문명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의 일부였다.

관광객들로 가득 찬 지하철 안에서, 내 여정이 이제 끝나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순례길 때 멀쩡했던 몸은 감기에 걸려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다 낡아 속이 터지고 굽이 닳은 호카 트레킹화, 비바람에 낡은 고어텍스 재킷, 배낭에 매달린 조개 장식, 그리고 1kg 정도 되는 보조 가방까지.
주렁주렁 낡고 오래된 행색이 영락없는 홈리스를 연상시켰다.


아마도 그 덕분에 바르셀로나 여행 내내 소매치기 위험을 피해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스페인에 푹 젖어 익숙해진 나는, 파리행 열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여행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스페인의 Renfe가 아닌, 프랑스의 SNCF TGV 고속열차를 타고 이동할 것이다.


기차역, 1시 30분

14시 32분 전까지 바르셀로나 산츠역 카페에 짐을 풀고, 커피와 크루아상을 곁들여 점심을 즐기며 대기했다.
1시 30분경 도착해 2시까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이제 스페인에서의 식사도 작별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카페 밖에 두었던 짐을 챙긴 후 승강장으로 내려가 자연스럽게 짐 검색대를 통과하고, 전자 기차표를 스캔한 뒤 기차에 올랐다.



14:32 Barcelona Sants to Paris Gare De Lyon €94.00 7시간 기차여행

14:32, 바르셀로나 산츠역에서 파리 가르 드 리옹행 기차를 탔다.
내 자리는 마주 보는 테이블 자리였고, 파리행 기차라 대부분 승객은 프랑스인이었다.

내 옆자리에는 털코트를 어깨에 살짝 걸친 흑인 여자가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프랑스 비즈니스맨 두 명이 앉아 있었는데, 확실히 환절기라 나뿐만 아니라 그들도 연신 기침을 했다.

내 앞자리의 한 비즈니스맨은 나보다도 심하게 기침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혹시라도 그를 위해 내 감기약을 권하려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오지랖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마스크도 없이 기침을 계속하는 모습에 불안한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그렇게 7시간 동안 이어질 파리행 기차 여행이 시작되었다


기차 안 풍경

축제 때 가장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노는 스페인 사람들도 공공장소에서는 정말 약속이 몸에 밴 사람처럼 조용했다.
살짝 프랑스 사람들과 패션의 차이가 있을 뿐, 아주 조용히 기차에서 낭만을 즐기는 편이라고 해야 할까?

그에 비해 프랑스 사람들은 생각보다 일을 많이 한다.
지하철이나 기차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았다.
심지어 내 앞에 앉은 두 명의 비즈니스맨도 노트북을 켜고 있었다.


나는 기차에 오르자마자 늘 가지고 다니던 천 마스크를 쓰고,

까르푸에서 산 오렌지 망고 주스를 마시며 목감기용 스프레이를 연신 목에 뿌렸다.
목에 염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것 같았다.


정말 SNCF 열차에서는 프랑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기본 안내 멘트도 당연히 프랑스어가 먼저 나왔다.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은 특이하게도, 몸이 닿지 않아도 지나갈 때마다 “Pardon(파흐동)”이라며 연신 실례합니다를 말한다.
나는 스페인어 단어에 익숙해진 탓인지, 화장실에서 사람과 지나쳐 나올 때 자연스럽게 입에서 “빼르동” (스페인어)이 나왔다.


그들은 목소리도 속삭이듯 조용히 이야기해서, 프랑스어를 못 알아듣는 나에게는 마치 부드럽게 흐르는 자장가처럼 느껴졌다.

말이라는 게 그렇지만, 알아듣기 시작하면 프랑스어는 워낙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장난 아니라고 한다.


반면, 나는 스페인어는 알아듣지 못해도 목소리 자체가 중국어처럼 높고 열정적이라 정말 시끄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툴툴댔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곳의 정감 있고 저렴한 물가, 따뜻한 날씨에 익숙해져 있었다.

순례길과 그런 넓은 마음들이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나를 보듬고 치유해 주었던 것이다.

옆에 있는 흑인 여자의 털코트가 자꾸 내 자리를 침범했다.
패셔너블한 여자였는데, 덩치가 조금 커서 한 자리가 확실히 좁아 보였다.


국경을 넘어

프랑스 남부로 기차가 들어서자 요트와 프랑스 남부 특유의 건축 양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안가 근처를 달리는 기차 밖 창문 너머 풍경에 나는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기차역에서는 관광객과 소매치기들이 많아 항상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지만, 지금은 걱정을 뒤로하고 풍경 감상에 집중하기로 했다.


기차에서 본 노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기차는 프랑스 중부 툴루즈 지역을 관통해 올라갔다.
'몽펠리에에 사는 몽지아'와, 그리고 프랑스 중부 '클레르몽페랑에 사는 순례자 친구 임마뉴엘'에게

기차가 각 도시 근처를 지날 때 왓츠앱으로 안부를 물었다.

몽지아와는 파리에 올라오면 만나자는 약속을 받았다.


내가 기차를 타는 이유

내가 비행기를 타지 않은 이유는 내 나무 지팡이 때문이었다.
기내 반입이 안 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기차보다 저가 항공이 훨씬 저렴하고 시간 면에서도 효율적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기차 여행을 선호하는 편이다.


다음 여행에서는 기회가 된다면 저가 항공도 이용할 생각이다.

이런 사실은 유럽 여행을 처음 갔을 때도 분명히 있었지만,
그때는 유레일 패스를 끊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유레일 패스 가격을 다시 알아보면서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새삼 실감했다.

학생 할인도 받고 했지만, 일반 패스를 끊으면 한화로 50~60만 원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그 돈이면 저가 항공을 타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가 항공은 시간과 비용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지만,

나는 느릿한 기차 여행의 여유와 풍경을 선호하는 편인 것 같다.


도착 전

파리에 도착하기 전, 9월에 미리 사뒀던 파리 지하철 티켓을 보조가방 깊숙한 곳에서 이제야 주섬주섬 꺼냈다. 그리고 사용한 표와 새 표가 뒤섞여 있어서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없던 40여 일 동안, 2024년 파리 올림픽 준비로 정비된 파리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지 모를 일이다.

남들은 파리가 냄새나고 환상이 깨졌다고 하지만, 나는 알면 알수록 파리의 문화와 풍경,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좋았다.


바르셀로나 호스텔에서 만났던 알제리 여행자는 파리 여행 중 나에게 “스페인이 그립다”라고 연락을 해왔다.

파리 날씨가 계속 비가 내리고 우중충하게 추워진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프랑스 여행 비수기인 10월 말에서 11월은 우기로, 대부분 습하고 비가 잦다.


우중충한 날씨와 빨리 지는 해, 그리고 습하고 추운 날씨가 싫다면 이 시기는 피하는 게 좋다.

파리 사람들은 자주 내리는 시기에는 우산보다 후드티나 예쁜 우비를 많이 입고 다닌다.

우비도 브랜드화되어 예쁜 디자인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우산을 더 선호해 우비는 기본 디자인이나 트레킹용이 대부분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우비도 패션의 한 분야였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대부분 비는 맞으며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Gare de Lyon 역 도착/PM: 9시 21분

기차에서 보낸 7시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기차나 버스에 타면 멀미를 하는 나에게는 오히려 여행에 최적화된 이동 수단이었다.

달팽이처럼 가방을 메고 다니는 여행은 이것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남은 21일까지 언니 집에서 쉬며 회복하고 관광할 예정이다.

어두워진 파리 밤공기를 마시며 Gare de Lyon 역에 도착했다.

Gare de Lyon 역은 몽파르나스 역처럼 대형 역은 아니었다.




파리 지하철

역에 내리자마자 언니에게 연락을 하고, 오랜만에 파리 지하철 앱인 IDF Mobilités를 켜서 Gif-Sur-Yvette역까지 가는 방법을 살폈다.

실시간으로 지하철 상황을 확인할 수 있어 매우 편리했다.

특히 트램이나 RER-C선은 잦은 파업과 기계 고장 때문에 그쪽 경로를 피하고 익숙한 길을 택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파리에는 여전히 사람이 넘쳐났다.

40여 일 만에 만난 파리 지하철에는 보이지 않던 길 안내 키오스크와,

한국에서 익숙하게 보던 지하철 방향 안내 전광판이 지하철 내에 설치되어 있었다.


정말 파리 올림픽이 열리긴 하는가 보다!
파리가 이렇게 청소가 잘 되어 있을 줄이야!


새삼 몽파르나스 역에서 혼자 길을 헤매고 많은 인파에 치여 일주일 순례길 여정을 미뤘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지나고 보니 별것 아닌 내 안의 두려움들이었다. 거대한 두려움이라는 피레네 산맥 같은 경계선 하나를 나는 넘어섰다.


파리 시내에서 멘탈이 무너지는 것은 초보 여행자에게 정글 속 무리를 떠난 홀로 남은 새끼 가젤처럼 무섭고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 육식 동물의 공격을 받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 파리 시내에 도착해 기인처럼 나무 지팡이를 짚고 순례자 조개를 달고 언니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은 자유인으로 성장한 나 자신을 느꼈다.




Gif-Sur-Yvette역 도착

자연스럽게 RER-B선을 타고 샤틀레(Châtelet) 역에서 RER-A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샤틀레 역은 퐁피두 센터와 각종 쇼핑센터가 있는 중심가이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Gif-sur-Yvette역까지 가는 기차인지 꼭 확인하는 것이다.

새로 단장한 전광판이 지하철 운행 상황을 실시간 그림으로 보여주니 훨씬 보기 편해졌다.


이렇게 순례자 복장으로 다닐 때는 파리나 바르셀로나, 아마 로마에서도 나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창가에 비치는 바깥 풍경을 보며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이 긴 여정도 끝이 보이는구나!


2023년 9월 19일 새벽 5시에 길을 출발했던 나는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레 드 리옹(Gare de Lyon) 역에서 Gif-Sur-Yvette 역까지는 50분 이상 소요되고, 교통 정체 등을 고려하면 1시간 정도 걸린다.


그리고 언니네 집까지는 10분 정도 걸어 마을로 들어가야 한다.

밤늦은 시간, 거의 자정이 다 되어 Gif-Sur-Yvette 역에 도착했다.

집에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긴장이 풀리는 듯 느껴졌다.


자정이 다 되어 도착한 동네는 불이 다 꺼져 있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언니네 집으로 향했다.

파리와 달리 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파리 시내는 위험하다고 하지만, 진짜 현지인들이 사는 이곳이 훨씬 더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오늘 대략 11시 넘어서 도착한다고 연락을 드렸기에 집 대문에는 조명이 켜져 있었다.

문이 열려 있어서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언니집 도착!

언니가 로브 가운을 입은 채 마중 나왔다.
내가 묵고 있는 손님방에는 간단한 다과와 과일이 호텔처럼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언니의 섬세한 배려와 집처럼 다정한 환대에,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이 밀려왔다.

감기에 걸린 상태라 아이들이 있는 집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접촉을 줄이고 싶었다.
사실 당장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고 유럽의 집은 방음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간단히 씻고 잠잘 준비를 마쳤다.


프랑스 파리는 어느새 늦가을을 지나 겨울에 접어든 듯,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코끝에 느껴졌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언니네 집에 두고 갔던 캐리어에서 전기담요를 꺼냈다.
생각보다 훨씬 추웠고, 따뜻한 스페인 날씨에 익숙해진 몸이라 더욱 추위가 몸에 와닿았다.

있는 옷을 모조리 껴입고, 빨리 잠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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