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기억을 지나, 나를 쓰다

by 윤슬


‘자전적 에세이인데, 옛 기억을 떠올리면서 쓰면 되지, 어려울 게 뭐 있겠어!’ 하는 생각은 곧 오만인 걸 알았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기억은 희미했고, 의식하지 않고 살았던 일은 대면하기 두려워 꼬깃꼬깃 접어 깊숙이 넣어두었다는 것을. 어린 시절이 담긴 사진첩을 열고 지난 다이어리를 펼쳤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인터뷰를 통해 기억을 구체화했다.


아득하지만 때로는 새로 맞춘 안경처럼 선명했고, 마치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었다.

‘오늘은 유치원 시절로 다녀오자'

'이번에는 할머니와의 시간으로 가볼까?’

마음먹은 대로 직행 티켓을 끊어 머물다 왔다. 행복했던 기억으로 다녀온 날은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다녀오기 두려웠던 여행지에서는 눈물과 콧물을 다 쏟고 나니 개운했다. 웅크리고 있던 어린 나에게 손 내밀었고, 외면했던 시간과 오롯이 대면했다.


쓰면서 울다가, 웃다가, 진지하다가, 갸우뚱했다 하는 내 모습은 인생의 굴곡과 같았다. 그리움에 가슴 저리던 일, 입 찢어지게 좋았던 일, 다 때려치우고 싶었던 일,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던 일, 모두 내 삶에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한 켠씩 자리 잡고 있다.


기억의 거름으로 나는 자랐다. 어떤 기억들도 내가 아닌 순간은 없다. 떠올리고 싶은 기억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도, 저 한 켠의 기억나지 않는 일도 모두 ‘나’였던 순간으로, 그 시간들을 통과하며 나는 성장했다. 자전적 에세이를 쓰며 돌이켜본 시간 또한 기억되겠지.


그리고 지금 여기, 또 기억을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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