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작용의 여왕' 타이틀을 사수하라

2부 나의 걸음으로 새기는 길

by 윤슬


“내가 갖고 있던 상호작용의 여왕 타이틀 주고 갈게요.”

유치원에서 몇 년간 함께 일했던 원감 선생님의 송별회 날 직접 나에게 해주신 말이다.

처음 원감 선생님을 만나던 날, 이론서가 현장으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눈빛, 음성, 단어 선택, 어미 처리 모든 게 완벽했다.

‘맞아. 책에서 저렇게 하라고 했어. 내가 저런 모습을 보고 유치원 교사가 되려고 했던 거잖아.’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있는 것처럼 인형을 앉혀놓고. 소리 내서 연습하고 녹화해서 다시 돌려 보며, 얼마나 비슷해지고 있는지 점검했다. 실습 교사일 때나 초임 교사일 때보다 더 상호작용을 연습하던 시간이었다. 뭐라고 발문할지 고민하고, 아이들의 대답을 어떻게 수용하고 공감할 것인지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그것이 자연스러워지도록 말해보고 또 말해보았다.

닮고 싶어 몸부림치던 시절을 지나, 그 분께 들은 ‘상호작용의 여왕’이라는 말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해야 할 만큼 좋았다. 교사들이 끼고 보는 「상호작용 이론에 기초한 유아교육 과정의 실제」를 집필하신 분께, 그분의 별명을 물려받다니, 진짜 여왕이 되면 이런 기분일까? 아마 날개가 있다면 구름 위까지 날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상호작용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은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격을 운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내게는 영광스러운 이름표였다. 잘 지켜내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내성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두려웠지만, 잘 말하는 것에는 관심이 있었다. 어쩌면 잘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말하기를 움츠리게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뉴스를 볼 때면 아나운서의 말을 유심히 들었고, 귀에 쏙쏙 들어오게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이 있으면 절로 고개가 움직였다. 어떻게 소리 내고 있는지, 무엇이 전달력을 높이는지 관찰했다. 목소리와 발음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걸 점차 알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유치원 교사에 이어 선택한 일도 강사이다. 물론 아이 양육 때문에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짧고 일정 조율이 가능하여 택한 것이기도 하나, 누군가가 알아야 할 내용을 잘 정리해서 귀에 쏙쏙 들어오게 전달하고, 소통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항상 내재되어 있었다.

강사로 일한 지 1년이 넘었을 즈음, 온라인보수교육기관으로부터 이러닝 콘텐츠 개발 강의 의뢰가 왔다. 내가 보육교사 대상으로 강의하는 것을 모니터했고, 보건복지부 위탁기관으로 많은 보육교사들이 시청하는 연수기관이라는 소개가 이어졌다. 원고를 쓰고 내레이션을 써 내려갔다. 한 장의 슬라이드를 열어 놓고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단어의 배열을 고민하고 어디에 엑센트를 주어 발음할 것인지, 잠시 쉴 것인지 재차 고민했다. 촬영이 끝나고 기관의 대표로부터 딕션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딕션이 무엇인지 검색했다. ‘정확성과 유창성을 두루 갖춘 발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눈을 크게 뜨게 만드는 설레는 칭찬이었다. 그 후로도 몇 편의 영상을 더 촬영했다.


잘 말한다는 건 발음이나 전달력 같은 말하기의 기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상대의 의도를 듣는 기술도 포함된다. 잘 듣는 것이 먼저다. 아동, 종사자, 보호자 등의 다양한 대상에게 교육하는데, 대상과 관계없이 상호작용이 잘 됐다고 느낀 날은, 내가 교육생의 말을 많이 듣는 날이다. 잘 들으면 잘 말할 수 있다. 상대의 말을 듣는 동안 고요한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 동안 내용을 음미하며 이어 갈 대화를 생각한다. 또한 그 공간은 상대에게도 내가 ‘당신의 말을 잘 듣고 있어요’ 하는 신호를 주어 보다 편하게 말하도록 한다. 편해지면 믿음이 생기고 마음이 열린다. 열린 마음은 소통의 윤활유다. '더 잘 말해야지 보다 더 잘 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되뇐다. 가끔 더 잘 말하는 것에 치우친 나와 마주할 때면 호흡을 고른다.

아마 원감 선생님도 내가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더 높게 샀으리라 생각한다. 아이들 앞에서는 자세를 낮추고 눈을 보며 미소 짓는다. 너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으니 언제든 편안하게 이야기하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양질의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상호작용의 여왕’이라는 이름표는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아는, 나의 타이틀이다. 안 지킨다고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레드카펫 위를 걸을 수도 없으나 내가 알고 있으니, 최선을 다한다. 자격 유지를 위해 보수교육은 필수다. 자주 귀와 마음을 열고 듣는 셀프 연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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