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이었다. 여느 날과 같이 엄마는 손주들 아침을 먹이려 미역국을 데우고 나는 엄마 옆에서 어린이용 작은 수저를 찾아 수저 통을 이리저리 뒤적이고 있었다. 갑자기 툭, 엄마가 말했다.
“어젯밤에 자는데 눈물이 막 나더라.”
왜? 왜지?
이유가 될법한 것들이 잔뜩 머릿속에 떠올랐다. 고작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 손주가 숙제하라는 할머니에게 ‘잔소리하지 마’라며 되바라지게 굴어서. 편안한 노년을 꿈꿨는데 염치없이 얹혀사는 딸 가족 때문에. 발달 장애인 손녀가 당장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으니 자다가도 한숨이 푹푹 나오는 것도 당연하고, 손가락 관절염이 심해져서 밤새 말도 못 하게 앓았을 수도 있다. 이것도 아니라면...
이 중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의 슬픔은 분명 나에게서 기인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마음이 쿵쾅거렸다. 할 말을 찾지 못해 숟가락만 매만졌다. 엄마는 여전히 미역국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였다. 이렇게 대화가 끝나나 싶을 때쯤 엄마는 흔들리는 목소리를 겨우 목구멍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때, 너 결혼 안 한다고 할 때 그냥 놔둘걸...“
몇 번이나 삼키며 지우려고 했지만 눈물 자국이 남아있는 이 말. 이것은 원래 엄마와 나의 농담이다. 우리 둘이 부엌에서 남편이란 존재의 무용함을 흉보면서, 점점 천방지축이 되는 아이들 따라잡기가 버겁다면서 모녀 사이의 유대를 더욱 돈독히 할 때, 그 대화를 마무리해 주는 그런 농담 말이다. 보통 “그러니까. 내가 결혼 안 한다고 했잖아.”라며 핀잔하듯 눈을 흘기면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어휴, 그러게나 말이다.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라고 체념한 듯 웃고 끝낸다. 그래야 하는 건데, 엄마는 왜 우리의 농담을 이렇게 슬프게 이야기하는 걸까.
여태껏 농담인 척했지만 엄마는 딸과의 삶이 늘 서글펐던걸까. 도움을 받다 못해 내가 남편과 아이들을 이끌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엄마의 시간과 공간은 우리에게 잠식당했으니까. 70대인 엄마는 나 때문에 여전히 새벽부터 가족의 밥을 챙기는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손주들이 아무리 예쁘다고 한들, 그들을 챙기느라 미국에서 십몇 년 만에 놀러 온 단짝 친구를 고작 하루만 보고 싶었을까.
더군다나 이번달 초 미국에 계시는 큰 이모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뿔뿔이 흩어져 살던 외가 식구들이 이를 계기로 십 년 만에 모였는데 엄마만 갈 수가 없었다. ‘황혼육아’로 바빠 여권 만료도 모르고 산 탓에, 장례식이 끝나는 3일 내에 여권과 비자를 발급받을 방법이 도저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 여운이 남아있으니 이런 말을 하시는 거겠지.
죄책감이 들지만 모른 척 눈 딱 감고 살아왔는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엄마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만 했다. 이를 위해 머릿속으로 남편과 나, 아이의 시간표를 이리저리 맞춰보기 시작했다. 이러면 문제가 좀 해결되겠지? 그러나 엄마란 존재는 역시 만만치 않다. 끝난 줄 알았던 대화에 엄마가 한 마디를 더 붙였다.
“내가 너에게 짐을 지게 했어. 너는 얼마든지 자유로웠을 텐데.”
그간의 가정을 모두 오답으로 만든 답변이었다. 왜 엄마는 내게 사과하듯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동시에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와 머릿속을 모두 지워버렸다. 나는 뭐라고 대답 해야 할까.
그 사이 제 방에서 아이가 눈을 비비며 식탁으로 걸어왔다. 나는 목에 걸린 무언가를 삼키고 황급히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에이, 거봐. 내 이럴 줄 알고 결혼 안 한다고 했었잖아.” 수저를 놓고 밥을 펐다. 평소같이 하려고 했지만 엄마를 쳐다볼 수는 없었다.
엄마의 말은 그날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따라다닌 것도 모자라 하루 종일 나를 슬프게 했다. 문장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 슬픔은 두루뭉술해서, 도대체 어느 부분이 왜 이토록 아픈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잠든 아이 옆에 누우면 바로 잠드는 나인데, 그날은 이불같이 나를 덮어버린 슬픔 속에서 한참을 뒤척였다. 서너 시간 지났을까... 뭔가 하지 않으면 영원히 걷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벌떡 일어났다. 슬픔을 규명하지 않으면 그 안에 잠겨버릴 것 같아서.
그동안의 일을 되짚는 것으로 시작했다. 하루 전인 금요일은 둘째의 참관수업 날이었다. 회사일을 이리저리 조정한 덕분에 간신히 금요일 오전에 아이와 함께 유치원에 갈 수 있었다. 첫 번째 수업은 교실에서 이루어졌다. 7세 아이들은 같이 앉고 싶은 짝꿍이 생기는 나이인데 우리 아이는 친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어있는 책상에 혼자 앉았다. 요리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집중하는가 싶다가도 자꾸 자리를 이탈하여 교실 반대편에 보관된 장난감들을 한 번씩 만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이미 자폐라는 진단명을 아는 이상, 내 마음은 구깃구깃해졌다.
두 번째 수업은 공연 관람이었다. 강당에는 조명이 요란스럽게 번쩍이고 만화 주제가가 신나게 울러퍼졌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노래에 맞춰 개다리춤을 추고, 선물을 준다는 말에 눈이 커지는 것 까진 바라지 않았다. 그저 표정이라도 밝았으면... 마음이 한번 더 버석거리며 구겨졌다.
착잡했던 공연 시간이 지났고 드디어 참관수업도 끝났다. 이제 아이들은 부모와 헤어져 식당으로 이동할 차례였다. 아이들은 엄마 손을 꼭 잡으며 헤어짐을 아쉬워했지만 결국 재잘거리며 선생님을 따라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감정 조절이 안되는 우리 아이는 달랐다.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를 들썩이며 서서히 울음을 장전했다. 일이 터지기 전에 서둘러 진정시켜야 했다.
“엄마랑 헤어지는 게 서운한 것 알아. 그렇지만 약속했잖아. 점심 먹고 3시에 하원할 때 만나자.”
그때였다. 식당으로 이어지는 강당 뒷문이 열렸다. 조명이 꺼진 어둑한 강당으로 빛이 쏟아지며 내부가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엔 아이의 할머니 즉 나의 엄마가 서있었다. 아이가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굳이 와봤음이 분명한 우리 엄마. 아이는 웬만한 상황에선 제 편이 되어주는 할머니를 금방 발견하고는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에게 달려가 다리에 얼굴을 파묻고 다급하게 말을 했다. “싫어… 할머니를 나는 더 소중해. 하지 마세요.”
평소보다 더 주어와 조사는 어긋나고 상황에 맞지 않는 뒤틀린 문장이 큰 소리로 강당에 울려 퍼졌다. 식당으로 이동하던 모든 아이들이 등을 돌려 갑자기 벌어진 이 소란에 주목했다. 나는 차분히 아이를 달랬지만 머릿속은 하얗고 그저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었다.
결국 노련한 선생님들 덕분에 아이를 할머니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있었다고 한다’라고? 왜 갑자기 전해 들은 듯 적냐면 정말 전해 들었기 때문에. 오후 출근에 맞추려면 그 시간에 지하철을 타야 했기 때문에 먼저 가라는 엄마의 손짓에 뒷일을 맡기고 난리에서 빠져나왔다.
몇 시간 후 남편은 아이를 하원 시켜 회사 근처의 치료 센터로 데려왔다. 나는 회의를 마치고 부랴부랴 치료 후 상담 시간에 맞춰 센터로 갔다. 목표했던 문제 행동이 하나 해결되었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양상이 보인다는 내용의 상담이 이어졌다. 자폐는 치료가 계속될수록 더 정교한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문제 행동의 연쇄성을 설명하는 선생님의 말에 집중하는 대신 어느새 손가락으로 둑의 균열을 막는 네덜란드 소년을 그려보고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점점 많아지는 균열 앞에 무너지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던 소년을.
그렇게 상담을 끝내고 금요일의 끔찍한 경부고속도로를 겪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가 수학 숙제와 피아노 연습을 수월하게 끝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첫째는 자신 없거나 하기 싫으면 대뜸 짜증 섞인 울음을 터뜨리는 기가 막힌 성격이다. 한 인간이 작정하고 온몸으로 배출하는 짜증을 받아내는 것은, 게다가 그것을 거의 매일 견디는 것은 뼈가 녹을 듯한 고된 일이다. 대부분 부재중인 나 대신 그 고난을 겪는 것은 나의 엄마이다. 게다가 엄마는 짜증과 울음이 시작되면 피하는 나와 달리, 어르고 달래서 기어이 숙제를 마무리 짓고 만다. 그러던 차에 평화로웠다는 숙제 소식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평화는 지속되지 않았다. 둘째를 재우려 둘째방에 누워있는데, 신경을 긁는 소리가 방 문 너머로 들려왔다. 제발 환청이길 바랐지만 내 인생이 호락호락할리 없지. 얼른 첫째 방문을 열었다. 자기 직전에 무슨 일인지 수틀린 아이가 할머니에게 원망의 눈을 가늘게 뜨고, 침대에 벌렁 누워 허공에 발길질을 해대고 있었다. 제 어미는 무서워하는 아이를 호되게 야단쳤다. 겨우 소란을 가라앉히고 방 불을 끄려고 보니 못 보던 스케치북이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숙제를 합니다.”라는 다짐이 보였다. 이토록 공허한 다짐이 또 있을까.
한껏 야단맞은 첫째와 첫째로 인해 속이 뒤집힌 우리 엄마, 침대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난리통을 기웃거리는 둘째를 모두 수습하고 드디어 금요일 밤은 막을 내렸다. 남편은 새벽부터 시작하는 본인의 긍정적인 루틴을 지키기 위해 이미 잠든 상태다. 드디어 혼자가 된 밤, 불을 켜고 뭐라도 해야겠지만 읽고 싶던 책도 매일 글을 쓰자고 다짐한 약속도 다 귀찮다. 눕자마자 잠이 든다. 그 다음 날 아침, 엄마가 말했다.
“내가 너에게 짐을 지게 했어. 너는 얼마든지 자유로웠을 텐데.”
엄마는 늘 100% 이상을 하는 사람이고 지금도 여전하다. 수학 머리가 없는 첫째가 수학을 싫어하게 될까 봐 새로운 수학 교수법을 찾아 공부한다. 둘째의 언어 발달을 위해 센터에서 내준 숙제를 제일 열심히 챙기는 사람도 엄마다. 이것에 비춰보면 외동딸인 나도 열과 성을 다 해 키웠음이 분명하다. 그러면 엄마는 그 옛날 직장까지 그만두면서 왜 나를 열심히 키웠을까? 그리고 세상의 많은 부모는 자식을 키우는데 왜 그토록 많은 시간과 돈, 정성을 쏟아 넣는 것일까?
단지 낳았다는 책임감으로 설명이 안된다. 내 경우를 보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다. 영어 실력이 부족해 업무에서 밀린 경험을 내 자식은 평생 모르면 좋겠는 마음, 악기 하나도 연주하지 못하는 삶 대신 자식은 클래식의 기쁨을 아는 삶을 살았으면 해서. 축구하는 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경험을 대물림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그 무리였으면 해서. 이렇듯 부모는 자신이 빠졌던 크고 작은 삶의 구덩이를 미리 메꿔주고 싶은게 아닐까.
엄마를 가장 크게 집어삼켰던 구멍은 “부자유”였다. 일곱 남매 중 여섯 번째 딸로서 원하는 것을 말할 자유가 얼마나 있었겠는가. 간신히 고등학교 때 용기를 내어 수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여자라면 자고로”란 통념에 결국 가정대에 진학한 것은 엄마가 가장 후회하는 과거이다. 졸업 후 드디어 본인의 힘으로 외국계 은행 취업을 이루며 꿈꾸던 삶을 사는가 싶었지만, 결혼과 함께 바로 나를 낳게 되며 여러 가지 이유로 포기하고 말았다. 이후 엄마의 삶을 생각해 보면 늘 무게중심은 딸인 내가 기회를 더 많이 갖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쏠려 있었다.
그렇게 키운 딸이, 지쳐 잠든 금요일과 같은 날이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다. 함께 살면서 이 모습이 엄마 눈에 더 자주 보였던 것이겠지. 유독 딸이 동동거리며 지낸 그날 밤, 엄마는 잠들지 못하고 그 이유를 찾아보려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어느덧 “결혼”에 도달했을 것이다. 누구나 다 하는 인생의 과제라 생각했기에 빠짐없이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딸에게 권하고 권했을 뿐인데, 결국 엄마 본인이 가장 큰 구덩이를 파도록 종용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생각이 토요일 아침의 한 문장으로 정리된 것이 아닐까.
여기까지 오니, 엄마의 말에 울컥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짧은 두 문장은 아직도 엄마에게 내가 최우선임을 충분히 전달해준다. 어린 시절부터 마흔을 넘은 딸을 위해 지금도 엄마는 한결같이 시간과 공간뿐 아니라 마음까지 내게 가장 많이 내어주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아이를 위해 나를 포기하는 순간에도, 엄마만큼은 여전히 내가 나를 잃지 않도록 애쓰고 계셨다. 아이러니하게 그것이 설령 본인을 잃는다 해도 말이다. 이는 슬프면서도 감사하고, 놀라우며 여전히 온전히 사랑받는다고 느낄 때 차오르는 -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로 일일이 표현할 수 없는 - 많은 감정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섞여 나는 울고 싶어졌던 것이다.
슬픔의 해부를 끝매고 나니, 엄마의 울먹임을 멈출 답은 찾기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즉 사랑은, 멈출 줄 모르고 한 방향으로 쏟아지는 에너지 위에서 생겨났고, 그것이 무엇이든 언제나 딸의 구덩이를 막는것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당장 해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우선 엄마가 나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것이 어떻게 구덩이로 하염없이 빠져드는 나를 잡아주는지 엄마에게 알려줘야겠다. 날이 밝는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