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성심의 아이

by 바스락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작년, 여덟살 진은 몸이 헐렁헐렁했다. 어렸을 때야 어려서라고 생각했지만 초등학생이 된 이후에도 제 사지를 다스릴 줄 몰랐다. 멀리서 뛰어오는 모습을 볼 때면, 헐거운 나사가 퉁 튕겨나가 손이나 발이 덜그럭 분리될 것 같았다.

운동 감각이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우리 아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출발하는 발과 반대 방향의 손이 함께 움직인다는 개념, 줄넘기의 줄을 넘기면서 동시에 점프를 하는 능력은 인간의 몸에 선천적으로 갖춰진 것이 아니었다. 쌩쌩한 운동 신경 시스템을 갖춘 아이들과 달리, 진의 몸에는 중고 시장에서 건진 구 버전의 시스템이 깔린 것 같았다.

하다못해 몸에 힘이라도 있으면 좋았겠다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바람은 늘 이루어지지 않는것인지, 밥 몇 숟가락에 급한 허기만 끄면 식욕이 사라져버리는 통에 아이의 몸에는 힘이 붙을 새가 없었다. 스케이트 역시 몇 달을 배워도 허벅지에 힘 주는 법을 몰라, 그의 발은 맥없이 찍찍 바깥쪽으로 벌어지며 빙판에서 멋대로 개다리춤을 추었다.


‘몸을 야무지게 사용 못할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또래들과 차이를 확인하면 마음이 마냥 느긋할 수 없게 된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작년 가을, 진네 학교는 교외의 큰 농장에 모여 체육대회를 했다. 차로 한 시간 이십분이나 걸리는 그 먼 곳까지 기껏 가서는, 달리기를 포함한 모든 경기에서 꼴찌를 했다. 50미터 달리기는 “준비-땅” 하는 순간 재빠르게 치고 나가야 하는데 출발부터 멈칫거려 반 박자 늦었다. 이어 오른발과 오른손이 같이 나가버리며 뜀박질이 덜그럭 거렸다. 넘어지지 않는게 용할 정도였다.

게다가 발이 빠르지 않다면 약삭빠르게 눈으로 최단거리를 확인하며 달리지, 어미 마음 답답하게 얘는 정직하게 트랙 정 중앙을 뛰는 것이 아닌가. 같이 뛰는 아이들은 다부진 눈빛으로, 출발과 동시에 튀어나가 본능적으로 트랙 안쪽에 바짝 붙어 달리던데 말이다.

이 학교는 인정머리 없게 까만 펜으로 들어온 순서대로 아이들 손등에 크게 등수를 써줬다. ‘나는 일등’, ‘나는 이등’ 하면서 주먹쥔 손등을 나누는 아이들 사이에서, 진은 숫자가 적힌 손등을 다른 한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사정 봐주지 않는 뜨거운 가을 햇살 아래서 손으로 해가리개도 못 만들고, 공손히 두 손을 모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모습이 참 딱했다.


이런 아들이 작년 겨울 초입에 태권도 학원에서 종이 한 장을 할랑할랑 들고왔다. 이번부터는 하얀 띠 다음 노란 띠같은 승급체계가 아니라, 국기원에 가서 ‘승품 심사’를 봐야 한단다.

띠 색깔이 바뀌는 심사는 지금까지 태권도 학원에서 봤다. 발차기를 할 때 무게중심이 ‘축이 되는 발’이 아닌 ‘날아가는 발’에 실려 스텝이 꼬여도 늘 학원 심사는 통과되어, 태권도는 ‘태권도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합격시켜주는 세계인 줄 알았다. 인류애적인 심사 기준에 안심이었는데, 국기원의 전문 심사위원에게 평가를 받다니, 이건 승산이 있는걸까? 하지만 태권도인으로서 다음 단계 도전은 포기할 수 없고, 이 어린이는 자신이 꾸준히 승급해왔다는 사실에 본인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아, 어떡하지?


어떡하긴.

관장님은 앞으로는 매일, 하루에 두 번씩 수업에 오라고 하셨다. 겨울 방학 이후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됐다. 영화로 치면 땀방울이 흐르고,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이 보여져야 하는데, “태극1장을 외웠어.” 라고 집에서 선보일 때, 나는 정말 이게 되려나? 이게 태권도인가? 싶어 동공이 흔들렸다. 야무지지 못한 손끝 발끝은 상대를 찌르기보단 맥없는 포물선을그렸다. 경험으로만 삼기에는 심사 등록비 20만 원이 아른거렸다. 스포츠 영화처럼 무턱대고 응원해주고 싶었지만, 엄마로서 ‘와 잘했다’ 라는 칭찬해줘야 할 타이밍엔 건전지가 다 된 목소리가 났다.

게다가 심사 이 주 전에 계속된 고열로 병원에 가니, A형 독감과 폐렴이었다. 그래서 막판 스퍼트를 올려야 할 기간에는 학원도 갈 수 없었다. 나는 반 넘게 포기했는데, 아이는 심사에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나보다. 해열제를 먹고 잠깐 열이 떨어질 때마다 외웠던 동작을 반복했다. 열 때문인지 여전히 흐물흐물한 지르기를 보다 못한 나는 태권도장에 전화를 걸었다.


“심사를 반년 뒤로 미루는게 낫지 않을까요?”

여러모로 효율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관장님의 생각은 달랐다.

“진은 성심껏 하고 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을거에요. 만약 안되더라도 3월에 재심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머리속에 “성심”이라는 두 글자가 또렷했다.

성심이라니… 마음을 온전히 다 쏟을 때 붙일 수 있는, 그리고 “성심껏 돌보다”, “성심껏 답변드리겠습니다.” 에서도 알 수 있듯 그 마음이 쏠리는 곳으로 행동이 함께할 때 비로소 붙일 수 있는 그 귀한 단어를 관장님이 진에게 붙여주셨다.

아이가 두 달 넘게 온 마음을 쏟아가며, 도장에서 연습했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그 성심의 결과로 얼마나 심사에 통과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그려졌다.

그래, 그러고보니 요즘 발차기 할 때 적어도 중심이 되는 발에 무게를 놓긴 하잖아? 그러고보니 탈춤 추듯 덩실거리던 동작들도 한결 나아졌고. 링 위에 올라가기도 전에 수건을 던지려고 하다니, 내가 참 신실하지 못했네, 못했어!


결론적으로 아이는 국기원 가기 전날 급히 관장님과 마무리 연습을 했다. 전국에서 모인 수백대의 노란 태권도 학원 차에서 내린 수천명의 태권도 어린이들과 나란히 서서, 그 동안 외운 동작을 실수없이 해냈다. 대련 과목에서 상대방에게 워낙 얻어맞는 바람에 최종 통과가 될까 조마조마했지만 이 주일 뒤 관장님께 합격이라는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다행이다. 합격해서, 아이의 성심이 인정받아서, 그리고 나의 조바심이 틀려서.


이후 진은 태권도에 더 재미를 붙었다. 하교 후면 바로 태권도장으로 간다. 발끝도 손끝도 예전보다 날카로워 졌다. 저 형처럼 시범단에 들어갈래, 방학때는 더 많이 배우고 싶어, 라며 스스로 하고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아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항상 이런 식이다. 내가 옳은 줄 알고 씩씩거리지만 결국 내 아이는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깨닫고 끝난다. 그저 평균보다 다소 늦다는데 조바심을 내는 내가 문제다. 헛웃음이 나오는 지점은, 내가 어릴 때 동경하던 사람들은 사회의 리듬이 아닌 개인 고유의 리듬을 유지하며 살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의 리듬은 한결같이 느릿했다. 평균의 시선이 의문을 눈초리를 보내도 아랑곳하지 않은 그들의 줏대가 부러웠다. 나는 못해도 내 아이는 자신만의 리듬을 가졌으면 하고, 아이 계획도 없는 시절부터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태어난 아이에게는 빨리 꽃을 피워내고 종용 하고 있다니… 정작 동네 나무에 달린 꽃눈에게는 빨리 푸른잎을 내라던가, 벚꽃을 피우라든가 하지 않고, 그저 그 꽃눈이 시간을 느긋하게 즐기는데 말이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실수를 반복할 게 분명하다. 희망하는 건, 그 때마다 실수를 알아차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 역시, 종종걸음의 엄마와 상관없이 자신의 속도대로 나아갈 수 있기를. 자신의 리듬에서 춤출 수 있기를.


아니, 또 너무 내가 바라는 건가?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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