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친구는 어떻게 사귀는거죠?

by 바스락

“그러니까 네가 친구가 없지!”


9살 아들이 스쿨버스에서 내리는데 같은 반 아이가 뒤통수에다 대고 저리 말했다고 한다. 마중을 나갔던 아이의 할머니, 즉 나의 엄마가 이 현장을 목격하고 회사에 있던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00이가 진이한테 그러니까 네가 친구가 없지...그랬는데 참 어이가 없다. 진이를 본체 만체 하고 뿅뿅이랑 간식을 나눠먹더라. 맹랑하기도 해라. 흥, 진이는 뭐 아무나 다 친구하나?"

문자만 읽었을 뿐인데도 할머니의 부글부글 분한 마음이 느껴졌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우리 집 첫 째는 어렸을 때부터 또래 아이들과 잘 섞이지 못했다. 친구를 때리거나 악독하게 굴어서가 아니라 우리 부부를 닮았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나이가 사십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타인과 섞이면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애꿎은 미소만 짓는다. 이런 우리가 심은 콩은 우리를 그대로 닮아 사교적이지 못하고 수줍은 콩으로 자라났다. 아들의 어린이집 시절 선생님은 매주 금요일마다 한 주간의 사진을 공유해 주셨다. 세 살 때도, 네 살 때도, 다섯 살 때도 사진을 볼때마다 늘 가슴이 콱 막혔다. 선생님 주위로 아이들이 빙 둘러 모여있는데 우리 아이는 항상 무리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 어릴 적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니 그도 “궁금하긴 하지만 굳이 사람 많은데 가서 섞일 필요가 있나”라고 스스로 변명하면서 어릴 적부터 사람 많은 자리엔 좀처럼 끼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고, 이를 어째. 우리로 인해 아들은 수줍음의 순혈로 태어나고야 말았다. 그는 이제 내가 자라오면서 겪었던 답답함과 오해, 섞이지 못함에서 오는 표류의 감각을 오롯이 이어받아 견뎌야 할 운명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일부러 아이와 친구들이 놀 자리를 마련하거나 엄마들 전화번호를 열심히 수집하지 못했다. 운명을 뒤틀기에는, 지독한 수줍음과 내향성은 성인이 된 우리 부부에게 여전히 찰싹 붙어있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가족에게 키즈 카페 가실래요? 라거나 주말에 탄천에서 만날까요?라고 말을 거는 상상만으로도 땀이 차는 손바닥을 연신 바지에 문지르는 부모라니... 미안하지만 아들아, 자기 몫의 고독은 스스로 겪으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애초에 이것이 노력의 영역이던가? 친구를 사귀는 것이 과연 노력으로 되는 일인가?

내 인생의 첫 진짜 친구는 고등학교 입학 후 두 번째로 짝이 된 N이었다. 다른 지역으로 학교를 다니게 된 까닭에 사교성도 없는 데다 아는 사람도 없어 곤혹스러운 고등학교 생활 2주가 지나던 차였다. 무작위 추첨으로 자리 배치를 바꾼 날, 내 자리가 된 1분단 첫째 줄로 이동하며 이미 그 옆자리에 앉아있던 N의 등짝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생애 처음으로 ‘저 사람과는 친구가 될 것 같아, 친해지고 싶어.’ 라고 생각했다. 처음 인사는 수줍었지만 우리 둘은 무서운 속도로 친해졌다. 블러, 오아시스, 신해철(과 넥스트)CD를 나눠듣고 야자시간에는 앨라니스 모리셋의 가사를 외웠다. 영화잡지 키노를 함께 뒤적이며 학교 근처에 광화문 씨네큐브가 있음에 감사하는, 생판 남인 존재가 나와 공명한다는 사실은 그때까지 연결고리가 약한 친구만을 가져본 사춘기 고등학생에게 우주가 선사한 최고의 경이로움이었다. 누구에게나 “기적의 등짝” 이 존재한다면, 아들은 본능적으로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 아닐까. 그는 고작 6살 때 “오늘 친구들이랑 잘 놀았어?”라는 질문에 “아직 친구가 없어. 누구랑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는 중이야.”라는 예상치 못한 답을 들려준 어린이니까.


하지만 며칠 뒤 담임선생님과의 통화는 나를 다시 현실로 불러왔다. 선생님은 아이가 친구들이 말을 걸어도 대답을 안 한다고 전해주셨다. 원체 집에서는 수다쟁이인데 학교에선 친구랑 말도 안 한다니 웬일인가 싶었는데, 선생님 말씀을 더 들어보니 말하고자 하는 욕구는 쉬는 시간마다 담임선생님을 잡고 풀고 있던 모양이다. 원래 그런 이야기는 또래에게 하는 거라며, 또래와 관계를 맺어야 다른 사회적인 기술이 발달한다고 선생님은 걱정스레 말씀하셨다. 그날 밤, 아이를 앉혀두고 얘기했다.

- 친구들이 너한테 말 걸어도 네가 답을 잘 안 한다던데?

- 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 그럴 땐 “아, 정말?”, ”아, 그렇구나“라고 대답하면 돼. 아니면 그 친구가 한 말을 한 번 더 되풀이해도 좋고.

- 아..! 00이가 맨날 그렇게 말해! (그러니까 친구가 없잖아,라고 한 애)

- 응, 너네들은 꼭 엄청 멋진 대답을 해 줄 필요는 없어. 친구들은 네가 응! 이라고 크게 대답해 주면 더 기뻐할 거야. 대답이 없으면 무시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고.


이후, 나의 약간의 채근과 담임 선생님의 자연스러운 개입으로 아이는 반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친구와 조금씩 말을 트게 되었다. 어느 날은 유독 빛나는 얼굴로 하원하길래 물어보니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책을 읽는 대신 그 아이와 잡기 놀이를 했다고 한다. 어린아이답지 않은 신중함 뒤에 숨어있던, 실은 친구와 뛰노는 게 좋은 어린아이의 면모가 빼꼼 모습을 드러낸, 감동적이면서도 마음이 저릿한 순간이었다.


한 번 뛰어놀았다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쌍방 친구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는 맛이 무서운 것처럼 놀아본 맛을 알게 되었으니, 신중함 뒤에 숨기보다 좀 더 또래와 노는 걸 원하고 찾게 되었으면 한다. 인생의 친구를 지금 찾는 걸 기대하는건 아니다. 그저 작고 느슨한 관계 맺음을 통해 너의 “운명의 등짝”을 만났을 때 놓치지 않고 말 걸 수 있는 준비가 되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나보다 관계 맺음에 좀 더 의연한 사람이 되면 더 바랄 게 없고.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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