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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Dec 08. 2021

당신에게는 소중한 대나무숲이 있나요.

나의 지인 K는 얼마 전 작은 카페를 오픈했다가 코로나의 여파로 수익을 거의 내지 못하고 폐업을 해야 했다. 직장을 다니며 차곡차곡 모은 돈을 대부분 투자한 상황이어서 K의 상실감은 매우 컸다. 가게를 정리하고 나서부터 잠이 안 오고 가끔 심장이 두근거리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불면이 점점 심해져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K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고, 약한 공황증세가 의심된다는 진단과 함께 약을 처방받았다.     

K가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한 것은 병원에 다닌지 6개월도 훨씬 더 지난 뒤의 일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직장을 다니고, SNS에는 평온한 일상이 올라오는 그녀였기에 그런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조심스레 나에게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상담일을 하는 나에게 전문적인 조언을 듣기 위함이라고 했다. 나는 K에게, 그동안 겪었던 마음의 힘겨움을 누구와 이야기하고 나누었는지를 물었다, K는, 남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는 답을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상황을 누군가가 아는 것이 너무나 싫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친정 식구들은 걱정만 할 것이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초라해지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무너진 자신의 상황에 대해, 동정어린 시선은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K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정말 부정적인 상황을 겪고 곤경에 빠졌을 때, 내 치부를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내 주변에 몇 명이나 될까? 나역시 언제부터인지 내 속상한 마음, 초라한 기분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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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40-50대 남성의 상담 의뢰 사례가 예전에 비해 늘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고 무거운 낯빛으로 상담실을 찾아왔는데, 대부분 자신이 문제가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임을 강조했고 직장 동료나 친구와 의논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매일 만나서 얼굴을 맞대고 함께 일을 하고, 술자리를 하며 대화를 나누면서도 ‘내 이야기’는 나누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대부분 비슷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잘 없고, 만약 털어놓는다 해도 이해해줄 수 있는 관계는 아니라고.     


그들은 우울이나 불안 중상을 가진 자신을 나약하다 생각했으며, 직장이나 가정에서 자신의 위치가 단단한 기둥처럼 든든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흔들린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렸음을 고백했다.     


기업에서 상담센터를 운영하거나 심리치료, 힐링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 또한 자신의 문제를 안전하게 편안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마음의 병이 되어버리는 요즘의 세태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업무 스트레스나 번아웃상태에 놓인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지원하는 상담프로그램으로 도움을 받았다는 사례를 흔히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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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나의 작고 소소한 문제들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외로움과 공허감이다. sns로 일상을 공유하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것을 먹는지 보여주며 타인의 공감과 관심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내밀한 개인의 문제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관계는 지극히 줄어든다. 그렇게 ‘사회적인 나’와 ‘개인적인 나’의 모습에 차이가 생기고 그 간극이 커지는 시대이다.      


그렇게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느라 정작 나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하며 살아간다. 대외적인 이미지로 잘 포장된 나를 만드는 것에만 치중하는 어른의 삶을 살다 지치고 외로와지는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40이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인생의 성과를 돌아보고 다듬는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동안 내가 살아오며 배우고 체험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삶의 모양새를 다듬어가는 나이가 되는 것이다. 그 시간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이다. 내가 살아가는 길 위에서,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사람과의 깊고 진한 소통은 삶의 큰 등불이 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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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답답한 일이 생기면 전화나 카톡으로 미주알고주알 다 이르게 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나는 ‘나의 대나무숲’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친구에게는 그 어떤 이야기를 해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는 단단한 신뢰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친구가 조언을 해준다 해도, 나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 친구의 조언은 아프지 않다. 그 친구에게는 나의 치부도, 내가 저지른 잘못도 꺼내어 보여줄 수 있다. 얼마 전에도 업무적으로 잔뜩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있었는데 일이 생기고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먼 곳에 사는 그 친구에게 속상함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전화를 끊을 때 언제나 이야기했다. “아, 너한테 다 이야기하고나니 너무 시원해. 속이 풀려. 좀 나아졌어.”      


앞서 이야기한 K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업에서 실패를 하고 경제적으로 무너졌을 때 ”너무 힘들고 허무해. 마음이 아파.“ 라고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K가 느끼는 마음의 불안과 외로움이 조금은 덜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K가 경험한 일은 그대로라 해도 그 일을 감당하고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자세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은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누군가의 존재’로부터 삶을 버티는 힘을 얻기 때문이니까.     


“시간 있어? 잠시 나랑 얘기좀 할래?”

누군가가 그 말을 내게 건네는 순간을 나는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 시간은 최대한 마음과 귀를 열고 진심으로 대화하려 애쓴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누군가의 울창하고 깊은 대나무숲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 


***

열여섯살과 열여덟살,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아이들은 숙제를 하고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각자의 방에 들어가는데, 간간히 친구들과 화상이나 전화로 수다를 떨며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때 매일매일 소소한 이야기들을 친구와 나누고 우리가 가진 고민들, 생각들을 이야기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던 시절이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친구를 위로해주느라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털어 술을 사주고, 늦은밤까지 전화로 고민상담을 하거나 편지에 한가득 마음을 적어 주고받던 시절이 떠오르며, 그때는 적어도 외롭진 않았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방문 너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건강하게 느껴진다.



* 이 글은 12월 6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 <외로운 40대는 SNS보다 '대나무숲'이 훨씬 좋습니다>의 원문입니다.

기사링크: http://naver.me/5cwECe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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