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치 북클럽 <지금 여기, 내 마음>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1979년부터 44년동안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작품을 발표해오고 있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기사단장 죽이기> 이후 6년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입니다.
이 책은 지난 8월 말, 예약판매 기간에 이미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했으며 정식판매일 첫날 이미 3쇄를 인쇄했다고 합니다. 하루키 특유의 단순하면서도 매끄러운 문장을 읽다보면, 작가의 나이가 어느덧 70세를 훌쩍 넘겼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소설은, 어린시절 사랑했던 한 소녀가 사라진 후, 그녀와 함께 공유했던 특별한 장소인 어느 도시를 찾게된 주인공의 이야기가 신비롭고 모호하게 펼쳐집니다.
작가가 오랜 세월동안 마음 속의 숙제처럼 품고 있던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펼쳐냈다고 고백하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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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준비하고 모임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무살의 봄,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작가. 그리고 내가 어른으로 사는 모든 시간 사이사이에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꾸준히 써준 작가여서 고맙고 다행이라 믿는 작가님이다. 특별한 이유를 열거하기는 어렵고, 우연히 나의 정서에 맞는 이야기를, 주인공을 이 세상에 내어주어 그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어른으로 살아온 것 같다.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을 동경하는 나의 성향이 내 안의 불안이나, 결핍으로부터 오는 마음이라고 해도 상관없는 기분.
- 다 읽고 나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진다.
- 모호한 이야기를 상상해가며 읽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빠져 들었다. 주인공이 자신의 생각 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고, 모호하다고 여겨지는 상징들도 결국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 하루키의 작품은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는데, 이번 작품은 특히나 공감이 어렵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느낌도 있었다.
- 90년대, 하루키의 작품을 많이 읽고 열광하던 시대에 20-30대를 보냈기에 그의 작품을 많이 읽었었다. 그런데 70대가 된 지금도 젊을 때 그대로인 작품을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발전하지 않은 이야기를 쓰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적 메세지를 담고 있을거라는 기대로 읽기도 했는데 너무나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표현이 불친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 하루키의 작품을 처음 읽었다. 몽환적인 묘사와 표현이 낯설고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적이지 않은 표현들이 정확히 그려지지 않아 잘 읽히지 않았다.
-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한다. 역시나 공감되는 문장을 많이 만났고, 주인공이 작가 하루키와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따뜻한 커피와 블루베리 머핀이 먹고 싶어지게 만드는 묘사가 좋았다.
- 하루키라는 작가가 나와 닮은 부분이 있다고 여겨지기에 그를 이해하고 공감하기보다는, 재미없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은 사회적 문제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식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서사방식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 이미 젊을 때 많은 것을 이루고 모든 것을 갖추었을 작가가 이런 결핍감과 고독감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는 것이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가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그림자라는 것이, 작가의 다른 자아를 떠올리게 한다. 책 속에서 느껴지는 상실감과 나른함이 '여전하네'라는 느낌이었다.
- <오래된 꿈을 읽는 일>
꿈이라는 게, 따뜻하게 만들고 마음을 열어야 읽을 수 있다는 설정, 그런데 현실세계에서는 타인과 마음을 나눌 수 없는 '옐로서브마린 소년'에게 가능한 일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오히려 그 소년에게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겠구나 생각하니 희망이 느껴졌다.
-<책이 없는 도서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고, 꿈을 가라안지는 일을 하는 장소라는 설정이 조금 비관적인 느낌을 주었다.
-<잔향>
어떤 특별함이 있는, 강한 자극을 갈구하는 삶이지만 실재 내 삶은 그 무엇도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벽 안에 사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내가 누리기 어려운 감정들을 누르며 차분하고 냉정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 삶에서, 사소한 것들로 느껴지는 기쁨을 찾고 싶다. 그런 생각 때문에 '잔향'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갔다.
-<그림자>
어린시절 사랑했던 여자로 인해 오랜 세월 갇힌 삶을 사는 주인공이 그림자처럼, 독특하게 느껴졌다. 그림자는 어쩌면 나의 본질을 현실로 돌아오게 만드는 존재인 것 같다.
-<그림자>
사회적으로 보여지는 내 모습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닐지도 모르고, 그림자라고 이해했다. 그렇다면 진짜의 나는 누굴까?라는 질문을 하며 이 책을 읽었다. 현실과 무의식에서, 그림자와 본질은 각각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다닌 것 같다. 분리되어있던 그림자가 사실은 연결되어있다는 결론으로 이해했다.
- <과거의 그녀와 가상의 도시>
어린 시절 만난 여학생, 가상의 도시 모두 주인공의 환상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을 그곳에 두고, 그곳에 매여있던, 스스로 가두어놓은 자신을 꺼내어오는 작업을 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
-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 그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임을 깨닫지 못했다고 여겨진다. 결국 현실의 삶을 살아낼 준비가 되어서, (상처받을 수 있을지라도) 그 도시를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 그 도시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생각보다 쉽고 간단한 결론이어서, 촛불 하나를 불어 끄기만 하면 된다는 간단 명료한 결말이어서 신선하게 느껴졌다. 모든 일들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어쩌면 그녀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은 게 아니라 사랑했던 그순간의 자신을 놓지 못하고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삶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명료한 결말로 다가왔다.
- 벽은 나 자신을 가로막는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나 자신을 벗어나는 길은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추구하는 결말이 그 지점을 명확하게 정리해준 것 같다.
- 나라면 1부에서 이미 그림자와 함께 나왔을 것 같다. 계속 그 도시에 머물러야 하는 주인공을 생각하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 옐로서브마린 소년은 주인공의 과거, 고야즈씨는 주인공의 미래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기도 했다.
- 주인공의 결말은 결국 현실에서 기다리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지로 여겨진다. 사람과의 소통을 하지 못하는 소년이 그곳에 남는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 주인공은 '직감'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주인공은 계속 직감에 따른 선택을 한다. 작가의 삶 또한 직감을 믿고 따라온 것은 아닐까? 주인공은 현실에서 생각하기에 너무 괴로운 문제를 (직감에 의해) 상상속 세계를 만들어 넣어두고 고민하는 것 같다. 결국 주인공은 그곳을 나와야 함을 깨닫고 현실로 나아가는 결말로 여겨졌다.
p44
그래도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내 생각에, 이 세계에서 마음속에 비밀을 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것은 사람이 이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p90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문지기는 말했다. "머리 위에 접시를 얹고 있을 땐 하늘을 쳐다보고 있지 않는 편이 좋다는 거야."
p174
"분명 처음에 이 도시는 우리의 상상 속에서 태어났을 거야. 하지만 긴 세월동안 스스로 의지와 목적을 갖게 된 것 같아."
p451
"가끔 저 자신을 알 수 없어집니다."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혹은 잃는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이 인생을 저 자신으로. 저의 본체로 살고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그저 그림자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그런 때면 제가 그저 나 자신의 겉모습만 흉내내서, 교묘하게 나인 척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해집니다."
p513
입은 웃이 달라져도 행동 패턴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항상 앉는 열람실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는 결눈질 한 번 하지 않고 책을 읽었다. 그건 활짝 핀 꽃에서 한 방울도 남김없이 꿀을 빨아들이려는 나비의 모습을 상기시켰다. 꽃에게나 나비에게나, 서로 유익한 행위다. 나비는 영양을 얻고 꽃은 교배에 도움을 받는다. 공존공영,아무도 상처받지 않는다. 그것이 독서라는 행위의 홀륭한 점 중 하나다.
p590
"그러니 어쨌거나, 네, 그가 어느 쪽 세계를 택하느냐를 두고 당신이 고민할 필요는 없답니다. 그애는 스스로 판단해서 앞으로의 삶을 선택할 겁니다. 그래뵈도 심지가 굳은 아이니까요. 자신에게 어울리는 세계에서 확고하고 힘있게 살아나갈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세계에서. 당신이 선택한 인생을 살아가면 됩니다."
p684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p754
"마음으로 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소년은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고했다. "이 방의 이 작은 촛불이 꺼지기 전에 마음으로 그렇게 원하고, 그대로 단숨에 불을 끄면 돼요. 힘차게 한 번 불어서. 그러면 다음 순간, 당신은 이미 바깥세계로 이동해 있을 겁니다. 간단해요. 당신의 마음은 하늘을 나는 새와 같습니다. 높은 벽도 당신 마음의 날갯짓을 막을 수 없습니다. 지난번처럼 굳이 그 웅덩이까지 찾아가 몸을 던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분신이 그 용감한 낙하를 바깥세계에서 안전하게 받아줄 거라고, 진심으로 믿으면 됩니다."
책 속의 인물들을 이야기하다가도 어느새 작가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해서 많이 하게 되었다. 이것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영향력인건지, 하루키라는 인물이 가진 고유한 특성인지는 모르겠다. 오래도록 작가 하루키를 좋아해온 나 역시도, 그의 작품을 통해 작가의 느낌을 느끼고 따라다닌 것 같기도 하다.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세계를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는 평도, 공감이 어려웠던 평가도 있었지만 결국 이 책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희망'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로 모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