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치 북클럽 <지금 여기, 내 마음>
할머니는 강렬한 인물, 보편적이지 않은 인물이었다. 성격상 쉽게 분쟁에 휘말리는 편이었고, 그럼에도 자기 의견을 좀처럼 굽히지 않았으며, 대중의 가벼운 사랑과 소수의 집요한 미움을 동시에 받았다. 쉽사리 희미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낙관을 위해.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만 한 게 없었다.
그 모든 일을 겪고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게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난정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면 읽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죽음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행위는 읽기라고, 동의할 만한 사람들과 밤새 책 이야기나 하고 싶었다.
명준은 같은 그림을 다른 날에, 다른 시간에, 다른 날씨에 보는 걸 좋아했다.
그럴 수 있지요, 사람들은 의외로 흠 없는 것만큼이나 완전히 파괴되었다 다시 이어 붙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니까요.
"그래도 좋은 성격이네."
"뭐가?"
"나는 세상에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생각해. 남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이랑 자신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 후자 쪽이 월씬 낫지."
세상은 참 이해할 수 없어요. 여전히 모르겠어요. 조금 알겠다 싶으면 얼굴을 철썩 때리는 것 같아요. 네 녀석은 하나도 모른다고.
(....) 그때 이후로도 종종 점검합니다. 내가 나 자신을 작은 틀에 가두고 있지는 않나? 부엌 뒷방에 방치해두고 있지는 않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도 점김합니다. 이걸 네 배, 다섯 배. 열 배 크기로 그리면 달라 보일까?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 데 얼마 동안 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 볼 만하다.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였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