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전선> 중에서.
어린 시절 읽은 동화에서 왕자는 공주를 구해냈고 정의로운 기사는 악당을 무찔렀으며 주인공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인줄로만 알았지만, 세상은 동화만 있지 않다. 사실 우리 마음에 오래 남는건 허무한 죽음으로 마무리된 로미오와 줄리엣이기도 하고, 기차에 뛰어든 안나카레니나이기도 하며,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인연'의 아사코이기도 하다.
살면서 나쁜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게 되기를, 언제나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바라지만 사실 그런 인생이란 없다. 삶의 고비고비마다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아픔들이 우리를 따라오기도 한다.
예전에는 나쁜 일은 빨리 잊고 그런 일이 내 삶에서 또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살기만 하면 된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때로는 삶에서 지우고 싶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는 상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서 어른이 된다.
삶이란 결국 그런 아픔과 상처의 기록으로 한권의 책을 완성해나가는 일은 아닐까. 물론 동화같은 순간, 서정시같은 페이지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써내려가는 책이 그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가득찬 책이면 좋겠지만 어쩌면 우리가 한쪽 귀퉁이를 접어두고, 밑줄을 그어놓고 오래오래 기억하는 내 삶의 페이지들은 어쩌면, 내 삶의 아픈 기억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만 그 순간들을 어떻게 건너가는지, 어떤 방식으로 내 마음 속에 곱게 품을 수 있는지를 써내는 내 인생이라는 책의 작가일 뿐이다.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한줄 한줄 기록해나가는 사람으로 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