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안내해 주는 사람
나는 중학교 시절 까지 486DX 컴퓨터와 함께 했다.
(컴퓨터에 먼지 쌓일까 덮어두곤 했다)
당시 운영체제는 윈도우 3.1이었는데, 요즈음의 그것 처럼 컴퓨터 전원을 넣자 마자 켜지는 게 아니라, 컴퓨터 전원을 켜면 만나는 까만 화면 흰 글씨 화면에 win 명령어를 넣고 엔터를 누르면 켜지는 그런 운영제체이다.
이 시절, 내 책장에는 금성출판사의 과학학습만화(이 친구는 어느 집에 놀러가도 책장을 장식하고 있더라), 그리고 30인의 위인전기와 함께 여러 길라잡이 책이 자리잡고 있었다.
길라잡이는 길잡이를 뜻하는 아마도 순 우리말인 거 같은데, 지금으로 치면, 하나씩 따라하면서 배우는 핸즈온을 위한 핸드북 쯤 되겠다.
이제 억울한 이야기를 좀 풀어보겠다.
초딩 시절, 컴퓨터는 내 친구였는데, 사실 인터넷도 안 되는 컴퓨터지만 그냥 컴퓨터에 전원 넣으면 삑! 하면서 비프음이 나고, 숫자가 막 돌아가면서 올라가고(당시에는 컴퓨터 켜면 메모리 검사를 했다) 윈도우즈의 기분 좋은 부팅음과 함께(이 당시 영어 단어 시험보는데 컴퓨터는 좋아하면서 창문-Window 를 못 맞춘게 기억났다! 당황해 하던 선생님의 표정...) 볼 마우스 슥슥 움직여 가며 이것저것 눌러만 봐도 즐거웠다.
지금은 32, 64기가바이트 쯤 되는 메모리가 우습지만, 당시 메모리는 8메가바이트 쯤 되는데, 메모리 때문에 혼났다면 믿어지겠는가?
그냥 M DIR 켜고 키보드로 쿡쿡 눌러가며 여기 저기 둘러보는거도 재미있지만, 포켓몬스터가 유행하기 전 까지 최고의 게임은 라이온킹 이다.
나는 라이온킹을 만화 보다 게임으로 먼저 알았다. 일요일에 디즈니만화동산 보는 거 보다 컴퓨터 앞에 앉는게 빨랐으니까. 티몬과 품바를 아는데 라이온킹을 모르는 웃긴 상황이.
물론, 잘 하지는 못했는데 두 번째 스테이지에 퀴즈가 있었기 때문에 진행을 잘 못했기 때문이다. 저장도 그다지 친절하진 않았던 거로.
문제는 이 게임만 한번 하면, 컴퓨터가 아주 이상해 진다는 거다. 지금 생각하면 메모리 누수가 있는지, 게임만 좀 하고 나중에 다른걸 하면 영 프로그램이 멈추거나 이상하게 되어 버린다. 아마도 메모리가 누수되는 상황이었겠지만, 초딩이 알 리가...
사실 컴퓨터는 당시 공무원 생활을 하시던 아부지의 워드프로세서 역할과 내 친구를 겸 하고 있었는데, 이 꼬맹이가 한번 앉아서 게임만 하면 컴퓨터가 고장나(?) 버리니. 우리 집에서 게임은 “하면 고장나는” 그런 천덕꾸러기 같은 부정적인 그게 된 것이다.
(변론2)
당시 억울했던 나는, 길라잡이를 집어 들었다. 고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불안한 느낌은 비켜 가지 않고 사건으로 돌아온다. 내 인생에 머피의 법칙은 그냥 기본 옵션 같다.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건 다 걸리면서 살았으니.
일단, 컴퓨터가 이상해졌다!
당시에는 메모리가 부족하니까 하드 디스크에 메모리 스왑(하드 디스크 용량을 메모리 처럼 사용) 하는 기능이 보통 켜져 있었는데 이걸 덥썩 건드렸더니 컴퓨터가 시한 폭탄이 되었다.
전원을 부웅 넣으면, 잘 켜지는 듯 하다가 주황 불빛이 계속 켜지더니(하드 디스크를 읽으면 불빛이 번쩍인다) 결국 그냥 멈춰버리는 고물이 되는 것이다. 그 뒤에는 마구 영어(나는 중학교 가서야 윤선생 영어교실로 겨우 파닉스를 뗐다)가 나오더니 까만 화면과 흰 글씨만 남는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쯤 되면 다음번 아부지가 컴퓨터를 켜는 때가 오면 불벼락이 내릴 게 뻔 했다. 아니, 불벼락 보다는 앞으로 컴퓨터 앞에 앉지 못하게 될게 더 무서웠다.
부모님은 맞벌이시고, 나는 겨울방학이었기 때문에 시간 빌게이츠 초딩인 나는 시계 부터 힐끔 보고 식은땀을 흘리며 길라잡이를 꺼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컴퓨터가 켜질 때 자동으로 실행되는 부팅 스크립트를 친 거 같은데, 독수리 타법으로 영어 하나 못 읽는 초딩이 수 백개의 알파벳을 타이핑 치는 걸 상상해 보시라. 누가 거울을 보여주었다면 새파란 얼굴이 아녔을까?
나중에 개발자가 되어서 언제 처음 코드를 짜 보았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나는 엄청 조기교육을 무려 자습으로 시작한 거다.
떡잎 부터 달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