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진할 수 있었다

by 선경

사랑이 뭘까? 사전에 나온 대로 누군가를 좋아하고 아끼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해석할 수 있는 걸까? 그럼 그 사랑의 대상은 어떻게 정해지며 어떻게 우리는 사랑해야 하는 걸까?


나이가 들면서 이성을 보는 눈은 까다로워 지며 바라는 것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이상형이 부질없음을 느끼면서도 좀 더 욕심을 부리기도 하고, 대학생 땐 생각하지도 않았던 상대 집안 형편에 대해서도 알아보기도 한다.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는 나를 의심 또는 한심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한다. 그럴수록 더욱 조바심이 나 친구에게 소개팅을 해달라고 조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기도 보다는 결혼하기 위해 사랑을 찾는다는 느낌이다.


나같이 나이는 드는데 이성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외모나 재력이 없거나 연애에 영 재능이 없는 사람은 사랑이 더욱 어렵다. 사랑을 성공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 이러한 답답함과 아쉬움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던지, 책이나 인터넷 등에는 사랑의 의미나 방법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넘쳐난다. 그만큼 우리는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관심을 갖고 있다.


그 과정엔 사랑에 대한 각자의 경험이 존재한다. 특히 첫사랑은 앞으로의 사랑을 해나가는 데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럼 나의 어렸던 첫사랑에서 배운 건 무엇이었을까? 나의 첫사랑은 시골에서 중2 때 시작됐기에 모르는 게 많아 좀 더 순수했고, 좀 더 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여학생은 눈이 아름답게 피어 내리는 어느 겨울에 내 마음에 찾아왔다. 항상 아침에 등교할 때마다 “Good morning, everyone!”이라고 힘차게 외치며 교실에 들어섰다. 반장으로서 야무지게 학급 일을 처리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속칭 ‘인싸’였다.


그 아이가 한눈에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조용했던 나에 비해 에너지 넘치는 말투, 행동 그리고 귀여운 모습에 동화되어 도화지에 물감이 스며들 듯 빠져들었다. 어느 날부터 복도에서 그녀를 지나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졌고 수업 시간에도 그 여학생 생각에 선생님 말씀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아이를 수업 시간에 보는데 가슴이 너무 심하게 쿵쾅거려, 그 소리가 옆의 친구들에게도 들릴 것 같았다.


그땐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고백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가슴 떨리는 날은 크리스마스로 정했다. 아이템빨의 중요성을 느끼고, 펼치면 저절로 음악이 흘러나오는 고급 멜로디 카드를 샀다. 거기에 내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어서 악필임에도 정성스레 편지를 썼다. 한 땀 한 땀 내가 너를 언제부터 얼마나 좋아했는지 신파극처럼 절절하게 쓰고 마지막에 정식으로 사귀고 싶다고 마무리 지었다. 카드를 우체통에 넣을 때도 제대로 넣었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며칠 후 편지로 답장이 왔다. 아직 부담스럽다며 계속해서 좋은 친구로 지내자는 내용이었다.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제법 큰 상실감을 느꼈다. 발라드 노래의 가사 주인공이 된 거 같았고 가슴이 찢어진다는 표현의 아픔이 무엇인지 알았다. 이후에 나는 가장 좋아하는 여자가 요청한 대로 좋은 친구가 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가 내 진심을 느껴 나 대신 설득했는지, 서로 친구로 지내면서 전보다 더 가까워졌고 결국 그녀가 마음을 열어 첫 연애를 시작했다.


시골 중학생의 사랑이 시작되었으니 얼마나 서툴렀을까? 서로 반이 다르기에 쉬는 시간마다 시간을 정해 냄새 나는 재래식 화장실(?) 옆이나 가는 길목에서 만났다. 수업을 다 마친 후에는 오붓하게 운동장 벤치에 나란히 앉아 학교와 집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그 시간이 참 빨리도 지나갔다. 나란히 앉아 있다가 서로의 어깨가 닿을라치면 그 부분에서 날개가 돋아나 그대로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손 한번 잡는 것도 뜨거운 솥뚜껑 만지는 것처럼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 첫사랑은 둘 다 초보자답게 오래 가지 못했다. 그 짧은 풋사랑은 헤어지는 방법도 무척 서툴렀고 바보 같았다. 다만 그만큼 서로에게 조심스러워하며 몸보다는 상대의 마음에 집중했고, 상대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만큼은 진하디 진할 수 있었다. 적어도 사랑이라면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머릿속에 너무 많은 욕심과 정보를 구겨 넣게 되면서 잊을 때가 있다. 사랑은 어찌 보면 생각보다 단순한 게 아닐까?




_첫눈이 첫사랑처럼 오다_


아침이 속삭이는 소리에

헝클어진 나의 마음 토닥이며

조용히 창 열어 본다.


눈이 내린다.


그 내리는 틈새로

어른의 껍질은 사르르 녹아들고

깨어난 아이는 눈을 마중한다.


첫눈이 내린다.


설렘에 취해

눈밭을 거닐어 본다.


입 벌려 눈을 먹어도 보고

손바닥에 받아 녹는 정경을 감상한다.


첫눈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오로지 변한 건 나뿐인지도 모른다.


첫사랑을 닮았다.

문득 찾아와 나를 설레게 하곤

조용히 나의 시간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래도 사랑이다.

볼 수 있다면 여전히 아껴주고 싶고

떠나가도 영혼의 한 조각으로 남은 사랑이다.


그토록 아득한 첫눈을

온 가슴으로 맞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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