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조금씩 이성을 알아가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을 조금씩 할 수 있게 됐다. 몸이 자라듯이 세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서 세상을 향한 막연한 자신감은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세상을 많이 알아가면서 혼란스러웠고 진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됐는데, 사람들은 그 시기를 사춘기라고 부른다.
아주 어리지도 않지만 성숙하지도 않은, 겉모습은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속마음은 아직 영글지 않은 시기. 그래서 때론 순간의 감정대로 행동하거나 어떻게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지 몰라 심하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나 또한 그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다만 아쉽게도 풋사랑처럼 낭만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특히나 고등학교 때 겪은 일들은 지금 생각해도 혼란스럽다.
안 좋은 일은 같이 일어난다는 말이 있다. 사춘기를 겪을 때의 나는 알에서 갓 나와 보니, 생각보다 무서운 동물이 많음을 느낀 병아리 같은 처지였다. 집의 형편이 갈수록 안 좋아졌다. 사람을 믿었던 아버지는 보증 사기를 당한 적도 있었고, 농부 일이 맞지 않아 일에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 조바심이 비싸게 소를 사고도 솟값이 폭락할 때 급하게 파는 일을 반복하게 했다. 그 부정적인 악순환 속에서 아빠는 환한 미소보다는 성난 인상을 짓는 일이 잦아졌고 집안 분위기도 점차 어두워졌다.
입학한 고등학교에서도 비슷했다. 어수선한 마음 상태에서 목적을 잃어버린 공부에도 흥미를 잃어가고, 수포자의 대열에 합류하다 보니 성적은 계속 떨어졌다. 집과 학교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어, 공부를 포기한 친구들과 야간 자율학습도 안 하고 같이 도망치기도 했다. 결국엔 눈에 보이는 내 성적과 행동만으로 나를 판단한 담임은 나에게 무자비한 체벌을 가했고, 한편으론 반항심이 더 커지며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러한 이유로 중학교 때까지 곧잘 하던 공부는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답답한 마음에 자취하는 친구 집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친구로부터 세상을 사는 방법을 배워갔고, 그게 좋은지 나쁜 건지를 판단하기 어려워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며 어떻게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했을까?
그전부터 나와 잘 맞던 어머니는 농사일을 거들며 집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나를 예전처럼 돌보기 어려웠다. 진정성 있게 “너 무슨 일 있니?” “오늘도 공부하느라 수고했다.”와 같은 관심 어린 말들을 듣고 싶었지만, 어머니도 나름의 고민을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어머니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일들이 더 늘어나면서 나부터 조금씩 침묵의 벽을 쌓았다. 세상은 사춘기인 나에게 '외로움, 한계, 좌절'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수영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나에게 과거에 보지 못한 거친 파도가 닥쳐오는 상황 같았다. 당시 내가 했던 일은 당장 빠져 죽지 않기 위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허우적거리며 그 파도가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 기간 동안 힘이 되어준 몇몇 친구들, 나를 믿고 있었던 어머니, 내가 입시 준비를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었던 과외 선생님 등은 나를 완전히 쓰러지지 않도록 버팀목 역할은 해주었다. 그 시기를 버티고 버티어 헤쳐 나간 후, 대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뭐라고 말해주면 좋을까? 딱 그만큼이 사춘기에 대한 아쉬움이 아닐까? 그때의 아쉬움을 온전히 돌아볼 수 있다면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