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병이 아니라 가난 때문에 아플 때가 있다. 어느 날 아래 어금니의 통증이 심해져 치과에 간 적이 있다. 진료실을 나오자 간호사가 내가 받아야 할 충치 치료 안내 설명을 해주는데 생각보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취업하고 돈을 조금씩 모아가고 있었기에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라 다음에 치료 받겠다고 말하곤 밖으로 나왔다. 돈 때문에 도망치듯 나오는 내 모습이 조금 부끄러웠고, 유난히 더 추위를 느낄 만큼 마음이 시렸다.
사회를 살다보면 이렇게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순간이 있다. 처음으로 그 돈의 무서움과 가난의 슬픔을 느낀 적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유년기 시절 책이나 TV를 턱을 괴고 누워서 보는 습관 때문에 아래턱이 앞으로 튀어 나오며 치아까지 고르지 못했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나를 치과에 데려갔고 의사는 치아교정을 권했다.
카운터에서 간호사가 마저 교정 비용에 대해 따로 설명을 해주었다. 난 소파에 앉아 잡지를 보며 기다리는데 아버지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교정 비용이 수 백만원에 달했는데 물가를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큰 돈이었다. 아버지가 좀 더 깎아보려는 과정에서 기분이 상하는 말을 들었던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후 다른 직원이 아버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서로 오해를 풀려 했지만 아버지는 뿌리치며 나를 데리고 나왔다.
그 때 처음으로 남들과 싸우는 아버지를 보았다. 160cm도 안 되는 작은 키의 왜소한 아버지이지만 자존심이 무척 센 사람이었다. 아들의 치아를 위해 비굴하게 가격을 깎아 보았지만 끝내 수치스러움은 참지 못했나 보다. 그 날 처음으로 가난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누군가를 비참하게 만들거나 싸우게 만드는 돈의 무서움을 알아챘다. 화나 있는 아버지의 모습보다 돈이 주는 압박감이 더 무섭게 느껴져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 이후부터는 난 아픈 곳이 있더라도 전보다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철이 없어 용돈은 여전히 달라고 했지만, 생각만큼 집에 돈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불필요한 곳에 돈 쓰는 것에 예민해졌다.
시간이 흘러 이제 내가 어른이 되어 돈을 아낀다고 비싼 치료를 안 받는다고 말하는데 나 때문에 싸우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도 만약 자기 치아를 교정하는 거였다면 그토록 울분에 차서 싸우지 않았으리라. 아버지의 그 행동을 전적으로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나로선 아버지의 고충을 나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나도 이제 아버지가 겪었던 어른의 고민을 조금씩 조금씩 느끼거나 경험하고 있다.
나도 이제 어른이라고 부담 없이 말해도 되는 나이가 된 만큼 세월도 제법 많이 지났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과 상황은 생각보다 많이 변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것을 보더라도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예전엔 몰랐던 것을 어른이 되어 가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_다시 보다_
오랜만에 찾아 뵌 그대
아버지란 이름의 책을 다시금 펴본다.
어쩡쩡하게 서 있는 그대
그새 슬픈 소설 되어 있다.
붉은 노을처럼
검붉게 타오르는 피부
여태의 삶 고단함을
토해내고 있고,
날 바라보는 얼굴엔,
바닥 갈라진 논에 세운
허수아비의 힘없는 미소
걸리어 있다.
뒤돌아 걸어가는 아버지
그 어깨는
어찌나 비좁은지
보는 내가 서럽다.
그동안의 아쉬움만큼
그대가 힘내 주길 바라지만
이 모든 게 덧없어지는 건 왜일까?
책 제목은 그대로인데
그새 장르가 바뀐 건,
내 탓일까 아니면 그대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