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들어간 첫 직장을 다니다 결국 사표를 냈다. 언론 쪽에서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분야인 교육 쪽으로 이직 준비를 했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직장에 원서를 내고 합격해 부산에서 타지 생활을 시작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또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으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 것이다. 박봉에 일은 버겁도록 주어지는 곳에서 내 이상을 좇으며 일했다. 쉬는 날은 지쳐 쓰러져 잠자느라 몇 년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몰랐다. 돌아보면 슬프게도 바빴던 지난날이 좋았다. 정신 없이 바쁘지 않았다면 무척 외로웠을 것이다. 그동안도 중간마다 깊은 외로움과 답답함을 느꼈으니까.
노력해도, 승진해도 월급은 크게 오르지 않았고, 내 적성과 맞는 일을 했음에도 현실과의 괴리가 존재했다. 또 언제까지 타지에서 외롭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집도 마련하고, 결혼 자금도 모아 두어야 한다. 앞으로 연로하신 부모님은 잘 챙겨줄 수 있을까? 이런 저런 고민 후엔 결국 삶이 쉽지 않다는 결론만 남는다.
어른이 되면 알아서 돈이 모이고, 때 되면 결혼하고 집 사고, 결국에 일에서도 성공하며 단란한 가정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평범할 수 있는 이 생각이 이토록 어려울지 예전의 나는 몰랐다. 어른이 되니 몸은 자유로워졌지만, 내 현실과 꿈에 제한되는 것들이 보였다. 평범한 어른이 되는 것조차 이렇게 어렵다니….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세상이다.
뉴스에서 나오는 ‘흙수저’란 단어의 무서움을 느꼈다. 삶의 불평등이 보이기 시작했고, 내 불만과 불안의 원인을 모두 내 탓이 아닌 사회의 탓으로 돌리고도 싶어졌다. 왜 세상이 돈을 좇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보다 사회의 벽은 높았고, 마냥 값싸게 어른이 될 수 없었다.
그래도 땀과 희생의 비용을 들이다 보면 내 삶에서 조금씩 돌파구는 보인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면서 능력과 경력을 꾸준히 쌓다보니,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이 오거나 아예 내 사업을 해볼까라는 여유가 생겼다. 물론 어떻게 풀어가게 될지는 선택과 역량에 달렸지만, 냉혹할 수 있는 사회에서 나를 포함한 우리는 이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노력하며 힘겹게 자신의 세상을 넓혀 가고 있다.
그러면서 문득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도 내가 지금 겪는 어려움을 겪었겠구나. 그리고 나 몰래 좌절했겠구나. 돈 벌고 밥 먹고 조금씩 책임져야 할 게 많아지는게 마냥 자연스러운게 아니었구나를 느끼게 된다. 돌아보면 내가 서운함을 느꼈던 지점과 부모님의 표정이 어두웠던 지점이 교집합되는 부분도 있었음을 깨닫는다.
어른이 되면서 내는 비용은 냉정한 현실을 맞이해 겪는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내가 부모를 이해하게 되면서 느끼는 안타까움, 고마움 등도 결국은 내 몫이 된다. 이런 종류의 동질감까지 느끼고 책임질 수 있을 때 우리에게서 어른의 모습이 점차 엿보이기 시작한다.
_술이 달다_
“걘 집안이 워낙 빵빵하잖아.
우리가 문제지.”
친구 하나가
현실의 아쉬움을 하소연한다.
‘우리도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고 돈 많이 벌면 되지.’
과거라면 호기롭게 말했을 말들
이제는 가슴에서 맴돈다.
꿈으로
현실을 이길 수 있을까?
누군가는
지지 않기 위해 마신다.
누군가는
현실을 이길 수 없어 마신다.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나
한잔 더 들이킨다.
술이 달다.
때론 눈물이 날 만큼 달다.
어느덧
쓴 술이 맛있어지는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