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님이 나란히 걸어가면 두드러지게 보이는 특징 하나가 있다. 두 분 다 키가 작다는 것. 부모님이 둘 다 160cm가 되지 않는다. 물론 후천적 영향과 노력을 통해 키가 크는 경우도 있지만, 나에겐 그런 낭만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비교적 작은 키인 나는 나름의 노력을 해보기도 했다. 키 크려고 한약도 먹어봤고,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오다리 교정방법을 따라하기도 하며 매일 매일 키 재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키에 대한 열등감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특히 내가 이성에게 고백을 몇 번 하고 차인 이후에 더욱 심해졌던 것 같다. 옷을 입을 때마다 키 때문에 옷맵시가 안 난다고 답답해 했고, 길을 지나갈 때에도 내 키를 남들과 비교하며 키 큰 사람을 시기했다. 이 한계는 나를 더 못난 사람으로 만들었고, 좋아하는 이성 앞에서 도 자신감을 더욱 낮게 만들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부끄러워하거나 남을 시기하는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 자주 일어난다. 누군가는 이런 이유로 거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자신의 외모가 드러난 사진을 찍는 것조차 싫어한다. 그러한 자기 부정이 자신감을 떨어트리고, 일상에서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외모와 열등감과 관련해 의미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 사람이 있다. 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성이었는데, 처음 그 식당에 갈 때부터 정말 밝게 웃으며 나를 맞이해준 사람이었다.
서로 알게 되면서 같이 가볍게 일상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면, 밝은 성격 덕분에 나까지도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었는데, 흔히 우리가 말하는 집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의 성격 같았다. 그 밝은 성격 덕분인지 뛰어난 외모를 지니지 않았지만, 참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그 사람은 누구보다도 자기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었고, 그게 그녀를 자신감 있게 만들었다. 15세기 책 석보상절에서는 아름다움의 ‘아름’을 ‘나’라고 의미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결국 ‘아름답다’는 건 ‘나답다’인데, 그 여성은 그런 의미에서 정말 아름다웠다.
사람마다 다양한 나다움을 가지고 있다. 친절하거나 아는 것이 많아 똑똑한 사람도 있고, 얼굴이 예쁘지 않아도 예쁘게 말하는 사람도 있으며, 옷을 개성 있게 잘 입는 사람이 있다. 또는 함께 있으면 편안하거나 재밌게 만들어 주는 사람도 있다.
물론 자신감을 갖거나 이성에게 잘 보이려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만 너무 집중하기보다는, 자기다움도 긍정하며 꽃 피울수 있으면 좋겠다.
태양계 행성은 서로 시기하지 않는다.
태양은 밝게 빛을 발하며 인사를 하고
금성은 뜨거운 심장으로 별처럼 밝게 답례하며
화성은 지구보다 작음을 신경 쓰지 않으며
목성은 가장 빠르게 자전할 수 있지만, 자랑이 없고
천왕성의 고리는 토성처럼 예쁘지 않아도 상관없으며
해왕성은 꽁꽁 얼어 있지만 마음은 고요하다.
태양계는 서로가 다르기에 아름답다.
녹색 산과 푸른 바다가 조화를 이루며
나름의 개성을 가진
태양계 속 지구
그 행성에 사는 사람만이
모두가 다름을 알면서도
자신과 남을 비교하며 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