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사연이 있다

by 선경

아주 어릴 적 세상은 마냥 희망차고 걱정 없어 보였다. 숲에서 사슴벌레와 매미를 잡으러 다니는 동안 놀이터로 보이기도 했다. 남들이 놀기만 하면 좋은 대학 못 간다고 겁을 주지만 서울대도 조금만 공부하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돈이 나뭇더미처럼 착착 쌓여 금방 부자가 될 거 같았다.


하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어보니 결코 세상이 호락호락 한 곳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언제나 참나무같이 당당해 보이는 부모님은 어느새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가고 있었고 나는 점점 어른의 고민을 하며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와 산책을 나서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한 손을 들어 한 아파트를 가리켰다. 저곳 9층에 사는 내 또래의 청년이 건물 밖으로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말해주었다. 삶의 무게를 느끼고 있는 나는 가볍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는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자기 자신으로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오늘도 거리에서 수많은 사람을 마주친다. 다들 분주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어찌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그들도 각자의 크고 작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조카가 곱창을 먹고 싶다고 해 매형이 나와 두 조카를 데리고 한 식당으로 향했다. 매형의 단골집이었는데, 외진 장소에 자리잡고 있었다. 식당의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왠지 세월의 풍파를 맞은 것처럼 거칠어 보이지만 우리를 맞이할 때는 인자한 미소로 반겼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 한 명이 곱창을 탈 정도로 오래 굽자, 큰소리로 나무라며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 정도로 능수능란했다.


맛있게 곱창을 먹고 나와 다시 차에 올라타자, 매형이 그 아주머니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원래 식당은 다른 곳에 있었고 북적북적할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다. 그러다 좀 더 넓은 곳에서 장사를 하고 싶어 지금의 외진 장소로 옮겼다. 그런데 번화가와 떨어진 위치 때문인지 전보다 장사가 잘 안되었고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직원 없이 주인 부부가 가게를 운영했다. 얼마 후 남편이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고 이제 아주머니 홀로 꿋꿋이 장사를 해가고 있다고 한다. 설명이 끝날 즈음 아주머니의 묘한 미소가 잠시 눈앞에 아른거렸다.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가며 볼만한 프로를 찾는데 94살의 아버지와 63살의 딸이 함께 사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그들은 시골에서 서로 가까운 거리에 집을 마련해 살았다. 딸이 건강검진차 아버지를 보건소로 데려가려고 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할아버지 스스로 빨리 죽어야 한다며 검사를 안 받으려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딸은 화도 내보지만 아버지의 고집은 절대로 꺾이지 않았다.


결국 기분이 상한 딸은 이후로 아버지를 찾아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심 미안했던지, 딸의 집 주변을 서성이다가 조심스레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이 사연의 다툼은 자식에게 더 이상 신세 지고 싶지 않아 하는 아버지와 부모를 잘 모시려는 딸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로를 위하다 보니 오히려 싸움이 일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과연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 교사로 정년퇴직 후 친구의 수술 비용을 위해 매일 청소일을 하는 할아버지, 요식업으로 승승장구하다가 파산하고 다시 열심히 일하며 20억 넘는 빚을 갚는 청년사업가 등의 사연을 접할 때면, 드라마 같은 현실에 놀란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만의 사연을 껴안고 이 험난한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만 불행하게도 어려움을 겪는다 생각하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은 각자 작거나 크다는 차이만 있을 뿐, 각자의 고통의 숯덩어리를 등에 짊어지고 산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덜 외롭고 덜 아플 수 있다. 적어도 자기만 힘든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모두가 영화 같은 사연을 가진 것은 아니더라도, 함부로 누군가를 무시할 만큼 한 인간의 무게가 가볍지 않음을 헤아릴 수 있다. 그 인생을 생각하고 인정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중할 수 있을 것 같다.




_기다릴 수 있다_


늦은 밤 퇴근길 들린

어느 작은 식당


밥 다 먹고 돈 내려는데,

머리 헝클어진 식당 아주머니

구석에서 조용히 밥 먹고 있다.


밥 얼마 남지 않아

조용히 의자에 앉는다.


오늘 하루 열심히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 심정 더 먹으며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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