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건방지게도 부모님을 자식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부모님의 나이는 일흔 살을 넘어서고 있다. 그들의 눈은 흐릿하게 보이며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스마트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어머니는 어깨 수술은 잘 마쳤지만, 고된 농사일에 무릎 연골이 닳아 다리를 절뚝절뚝 절며 걷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알려줘야 하고 사드려야 하는 것들이 전보다 점차 많아지고 있다.
예전엔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신경쓰지 말라며 사양했지만, 지금은 두 분 다 도움을 받는 것을 크게 주저하지 않는다. 본인도 이젠 예전 같지 않음을, 성내서 거절할 만큼의 기력도 없음을 알고 있는 듯하다.
부모님을 챙길 때마다 나를 어떤 마음으로 키웠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부모님이 손등을 다쳤는데 유통기한이 3년이 지나고 색이 바랜 대일밴드를 붙이고 있거나, 스마트폰으로 기차 예약을 못해 입석으로 서서 서울로 올라오는 일들을 겪을 때면 무척 속상하다. 그 속상함은 그들을 탓하는 화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던지는 성냄이다. 내가 도와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고생한 부모에게 미안해서 화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감히 부모님을 자식 같이 여기기도 하며 챙기고 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른이 되지 않고 세상의 방관자가 된다면, 난 온전히 이 사회를 제대로 살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커가면서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알게 된 것들을 되새기지 않고 산다면,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삶을 부여받는다.
어떠한 삶을 살 것인지 미리 선택할 수 없다. 그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때론 그 점을 투정하면서도 결국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나이가 드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되고, 나의 일을 하게 되며, 나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겁든 가볍든 그 짐을 져야 하고, 그것을 오롯이 감내하며 무거운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삶의 의미를 만들거나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그런 삶이야말로 어른으로서 걸어야 할 길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 나는 누구이며,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 어떤 것이 중요하며, 무엇을 추구할지, 어떻게 살아갈지, 어떤 의미를 내 삶에 부여할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오늘도 우리는 어른이 되기 위해 하루를 살아간다. 왜 어른이 되어야 하냐고?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삶 속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찾으며 나의 길을 제대로 걸어 가야 하니까. 그래야 먼훗날 우리가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