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건 그런 어른이 되지 말자고 했던 다짐 뿐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시절인 2012년, 컴퓨터공학은 그렇게 인기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공대가 유망하다는 것 정도야 모두들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었지만 그건 말하나마나한 이야기였다. 졸업 이후 10년도 채 되지 않아 대 개발자 시대가 올 거라고 말하는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고, 그저 고등학생이었던 우리도 생각은 비슷했다. 컴퓨터공학은 그렇게 입에 오르내리는 학과는 아니었다.
그 시절 문돌이에게 유망하다고 떠들었던 학과가 있다면 경영학과와 중어중문학과였다. '곧 중국의 시대가 온다'며, 쓸 과가 없다면 그냥 중어중문학과를 으레 쓰는 일이 있었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 되서는 경영학과도 그 이름이 바랬지만, 2011~2012년만 해도 '그래도 경영은 취업이 잘 된다'라는 분위기였다. 취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그래도 경영가서 대외활동도 하고 스펙도 쌓아서 대기업 가자'라는 분위기는 살아 있었다. 그게 무너진 건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넘실거리던 시즌이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엔, 공무원이 열풍이었다. '대학을 다니며 공무원 준비를 할 수 있다고?'라면서 행정학과에 입학하곤 했고 어느 대학은 고시를 준비하는데 특화된, 소위 '밀어주는' 학과를 만들기도 했다. 그 열풍은 졸업하는 즈음이 되어선 시들해지더니, 거기서도 몇년이 지난 지금은 공시생이 없다는 비명소리가 들린다고들 한다. 대학 땐 '걔도 공무원 준비한대. 역시 문과는 공무원이지'라고들 했지만 공무원 열풍이 시들해지며 다른 길로 빠져나간 경우가 꽤 많았다.
대학생 시절, 학원에서 고등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가장 나이 차이가 적었을 땐 4살이었다. 난 23살이었고, 그들은 19살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래도 너희와 나는 비슷하지'라고 생각했고, 당시 그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분하게도, 그들이 맞았다. 나와 그들은 묘하게 다른 추억과 감성을 품고 있었다. 세상의 변화는 빨랐고, 불과 4년 만에 내가 기억하는 고등학교의 환경과 그들이 겪는 고등학교의 환경은 달라져 있었다.
변화가 빠른 사회다. 2011년 고3 교실로 돌아가 '10년도 되지 않아 대 개발자 시대가 오니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하거라'는 이야기를 했다간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고3 시절 선생님들이 이러쿵저러쿵 어느 학과가 좋네 무엇이 유망하네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이렇게 세상 감각에 둔해서야'라고 우리끼리 쯧쯧 거리곤 했는데, 그건 그들의 잘못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당장 지금의 나도, 현재의 고등학생은 물론이고 대학생들에게도 '무엇이 미래를 위한 준비일지' 섣불리 말하기가 어렵다. 만으로 31인 나도, 지금의 대학과 고등학교는 알기 어렵다고 확신하는 마당이다.
문해력 논란은 몇 년을 돌고돌아 죽지도 않고 잊을만 하면 나타나곤 한다. 한자 교육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다. 잘 모르겠다. 문해력이 정말로 낮은지도 모르겠고, 그 원인이 한자 교육의 부재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자라던 초등학생 시절에도 어른들은 '지금 애들은 한자를 이렇게 몰라서야'라며 잔소리를 하곤 했다. 나의 교육과정에는 한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교육이 정말로 우리 세대의 문해력에 큰 영향을 끼쳤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한자 교육을 잘 따라간 편이었지만, 대부분은 관심이 없었다. '앞으로 우리가 한자를 쓸 일이 있겠어?'라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내가 돌이켜보면,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변했고 우리의 사회 속에 한자는 많이 사라졌다. 물론, 한자를 알면 도움되는 것도 많고 이득도 많다.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자가 정말 당시 그네들의 걱정만큼 중요한 요소였는지는 모르겠다. 거기에서 또 20년의 격차를 둔 아이들에게 같은 이야기들이 넘실거린다.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이 모든 문제가 한자 교육의 부재란 말인가? 차라리 '책을 안 읽어서 그래'라고 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그럴 수 있지'라곤 하겠다. 하지만 그래도 신문에 한자가 함께 쓰이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한자로 쓰인 책까지 있던 내가 자라던 시절과 지금의 10대가 살아갈 세상은 여전히 같은가? '한자를 알면 도움이 된다'는 말과 '한자를 몰라서 문해력이 떨어졌으니 망국의 징조다'라며 호들갑 떠는 것이 같은가?
20대를 지나며 다짐한 게 있다. '요새 애들은'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기로 한 일이다. 요새 애들이 어떤지 나는 모른다. 그들은 그들의 문제를 품고 있을 것이다. 우리 세대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어른들끼리 모여서 '요새 애들은 이래서 문제야'란 말에 고개를 끄덕거릴 수는 없다. 내가 자라는 내내 어른들은 '요새 어린 것들은'이라고 잔소리를 하곤 했고, 나는 꼭 그 말이 틀렸음을 증명하고 싶어하던 아이였다. 심지어 30살이 된 지금도 어른들은 내게 '요새 MZ들이란' 이라며 한숨을 쉬곤 한다. 이 지긋지긋한 잔소리와 고정관념은 끝날 줄을 모르는 일이다.
우리를 이해하려고 하는 바 없이, 그저 미디어에서 그렇다고 하면, 옆 사람 누가 그렇다고 하면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고 떠드는 건 쉬운 일이다. 누군가를 이해하기보다는 미워하는게 편하고 빠르다. 고정관념 딱지를 붙이고는 그대로 소비하는게 재밌다.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다.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하면 '정말로 그런가?' 생각이 든다. 동시에 '나라고 안그랬나? 우리 세대는 다른가?' 생각한다. 나 역시 흔하게 '요새 애들은' 이라며 쯧쯧대는 그저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자라던 시절 어른들은 '외계어'를 쓴다며 우리 세대를 걱정했다. 영어,일어,한자,특수문자를 섞은 인터넷 문법이었다. 세종대왕이 노할 일이라는 이야기가 흔했다. 그 시절을 지난 우리는 한글을 사랑하고 한국어를 잘 사용하는 어른이 됐다. 우리가 자라던 시절 '햄버거와 피자만 먹고 서양식 입맛에 길들여진'이라는 문장이 횡행했다. 그 세대는 커서 '국밥충'이라는 단어를 만들었고, '든든하게 국밥이나 먹자'고 놀고 있다. 어른의 시각에서 10대를 바라보는 일은, 그들의 시야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보통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내 세대도 문해력이 부족할 수 있다. 동의한다. 그렇다면 당신 세대는 다른가? '모두'가 당신만큼 문해력이 높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우리가 그들이 살아갈 세상이 어떨지 알 수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내가 살아가야 할 5년 뒤의 세상도 난 모른다. 그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한자 교육이 더 필요한지는 정말 모르겠다. 그들이 한자교육을 덜 받는다고 미래의 한국이 망하게 될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어쨌거나 그들은 나의 세대보다 조금 더 진보할 것이란 것 뿐이다. 그 방식을 나는, 우리는 '퇴보한다'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건 어른들의 착각일 뿐이라고 믿는다. 그들의 방식으로 나아갈 것이고 세상을 바꾸어나갈 것이다. 거기에 대고 쯧쯧 거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차라리 체육교육을 늘리자고 하는 건 그래도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문해력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는 상황에서 그 해답으로 한자 교육은 동의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난 모른다. 어떤 세상을 살게 될지는 더더욱 모른다. 그런 내가 함부로 '너네들은 한자를 몰라서 그래'라는 훈수를,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어른들의 '우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잔소리'를 반복하는 흔해빠진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문해력이 문제라는 기사 보도는 넘실대지만 '정말로 그런지' 상황을 깊게 파고든 이야기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나는 지금 자라나는 10대보다 잘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시쳇말로 PC를 다루는 일, 엑셀 '팡션'을 다루는 일에 더 능숙할 수도 있고, 한문을 더 잘할 수도 있다. 대신 지금의 10대는 다른 걸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 각 세대는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세상에 나아갈 것이고, 그렇게 세상을 만들어낼 것이다. 난 그것이 내가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한자 교육이 부재한 게 문제다!'라고 호들갑떠는 어른보다는, 진짜 그들의 삶과 생각에 관심을 1g이라도 주고자 하는 어른이 그들에게는 필요할 거라는 것도 안다.
한자 교육을 더 해야 할 수도 있다. 문해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지나버린 세대'들의 시각이란 것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나버린 세대의 시각은 대체로 틀려왔다. 정확히 말하면, '다음 세대에 대한 진단'은 대체로 틀려왔다. 난 내가 10대를 판단하려는 순간 대체로 틀릴 거라고 생각한다. 그랬기에 다짐한 게 한 가지 더 있다. 세상에서 아무리 '지금 10대들이 문제다'라고 떠들어도, 그 무게가 100이면 10 정도만 받아들이자고 한 일이다. 사람들이 지금 10대에게 문해력 문제가 100이라고 한다면, 난 그 문제의 정도를 10이라고 생각하겠다.
난 내가 살아갈 5년 뒤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던 10대 시절, 우리를 바라보던 시각이나 우리에게 하던 미래 예언 중에서 맞아떨어진 건 10%도 되지 않았다. 난 그 시각들에 대고 '아닌데요'라고 증명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똑같은 멍청한 짓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최소한 지금의 10대가 나보다 나은 교육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잔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런가?'라고 한 번 더 되묻는 일일 것이다. 사람들이 떠드는 와중에 묻고 싶다. '정말 그런가?', '정말 10대가 문해력이 현저하게 부족한가? 우리는 안 그런가?' 결국 우리 세대는 문해력 논란에서 자유로운가? 난 잘 모르겠다. 그냥 위치만 바뀐 것 아닌가? 우리는 그저 늘 비슷한 수준의 문해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세대에서 다른 이유로 '부각'이 된 건 아닌가? 아무도 답을 주지 않는데, 한자 교육이 문제니 뭐가 문제니 하는 이야기들만 넘실거린다.
나는 몇 가지 이야기만 듣고 지금 10대가 자라나는 환경에 대해, 그들의 문제와 원인에 대해 확신하는 어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배움이 짧아 그정도 통찰력은 갖추지 못했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난 어른이 되긴 글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세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훈수만 놓는 게 어른이라면, 그런 어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