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
남해는 두번째 방문이었다. 약 7년 정도 전에 한 번 남해를 방문했었다. 그 때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였고, 차가 없는 뚜벅이 여행이었다. 그만큼 다닐 수 있는 곳도 제한적이었고, 다랭이 마을 정도를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통영을 들르는 과정에서 함께 다녀왔고, 시간은 짧았지만 궁금했던 보리암과 독일마을을 갔다.
남해를 생각하면 '굽이굽이' 길들이 떠오른다. '한국의 산토리니'란 말처럼, 절벽과 바다가 어우러진 그 풍경은 굽이굽이 이어진 길들로 연결되어 있다. 꼬불꼬불하고 높낮이가 매번 다른 그 길들 속에 산의 풍경과 바다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지고, 고즈넉한 그 풍경이 좋아 제대로 머문 적이 없음에도 여행지로 어디가 좋냐고 하면 '남해'를 추천하곤 했다.
동해는 시원하다. 일직선으로 펼쳐진 바다는 넓고, 마음이 트인다. 제주의 바다는 제주의 어디냐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청량'했다. 동남아에 있을 법한 바다 색깔과 현무암이 함께 빚어내는 풍경이 '제주구나' 싶었다. 남해의 바다는 남해군이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풍경이 복잡하다. 바다가 시야 끝까지 펼쳐져 있기 보다는 저 멀리 어디 또 섬이 있고, 해안선은 굽이굽이에 모양이 제각각이다.
그 묘한 매력에 빠져 늘 '언제 또 남해를 가야 하는데...' 싶었다. 물론 자주 가지 못했던 건 현실적인 이유들도 있었다. 우선 교통편이 가장 큰 이유다. 기차를 통해 손쉽게 방문할 수 있는 다른 여행지에 비해 남해는 마땅한 기차역이 없다. 버스편을 통해 가거나, 기차나 비행기를 통해 인근 역에 간 다음 자차를 이용해야 한다. 남해 안에서도 방문할 곳들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자차가 아니라면 여러 군데를 들르기 쉽지 않다.
이번에 다녀온 방문은 차를 렌트해서 통영부터 움직였기 때문에, 벼르던 곳을 갈 수 있었다. 첫번째는 금산산장/보리암이다. 보리암은 금산에 있는 사찰로, 꽤나 산 속 깊이에 위치해 있다. 그만큼 절경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래저래 찾아가기 쉬운 곳은 아니다. 풍경 자체는 여수의 향일암이나 양양의 낙산사와 같은 곳이랑 비슷하게, 산 속/바다가 보이는 모습이다. 다만 향일암이나 낙산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눈 앞' 바다는 아니라는 점. 절벽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산 속에 있기 때문이다.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 절은 앞서 적은 두 절보다 규모가 더 작은 편이었다. 굽이굽이 길을 지나 주차장에 차를 대고나서 한 20분~30분 정도 걸으면 닿을 수 있다. 길은 크게 어렵지는 않지만 낙산사보다는 마음을 먹어야 하는 수준이다. 찾아보니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는데, 실제로 내가 방문했을 때도 날씨가 변화무쌍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이 시야를 가리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 자체도 아름다움이라 할 수도 있었다.
보리암에 오면, '남해에 왔구나' 싶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뻥 뚫리는 풍경은 없다. 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가득하고, 산도 굽이굽이 시야를 채우고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다른 곳에선 보기 어려운 절경이라고 생각한다. 남해에 와야 볼 수 있는 모습.
보리암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방문하는 절들과 비교해도 그 크기가 크지 않은 편이라, 10분이면 전부 다 둘러볼 수 있다. 보통 보리암에 방문하면 함께 방문하는 곳이 금산산장인데, 보리암을 둘러보고 나서 금산산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보리암에서 10분, 15분 정도 걸으면 나온다. 다만 길이 좁은 편이라 가끔 '이 길이 맞나?' 싶은데 그 길이 맞다.
금산산장을 방문한 이유가 있다면, '라면'이다. 산장에는 컵라면을 팔고 있고, 그 곳에 올라 라면을 먹는 기분은 남다를 테니까. 작은 방 한 켠에서 라면을 팔고 있는 할머니에게 계산을 치르고, 어떤 라면을 먹을지 고르고 나면 몇 군데 자리를 골라 라면을 먹을 수 있다. 편하지도 깔끔하지도 않지만, 보리암 방문을 완성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번갈아 보고, 등산한 몸에 라면과 물을 넣으며 쉬고 나면 음식이 들어갔음에도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내려올 수 있다.
보리암과 금산산장을 꼭 찾아와야 할 이유가 있을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특히 낙산사와 향일암이나 하다못해 부산의 해동 용궁사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예쁘냐고 하면 이건 사람마다 답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 어디와 비교해도 보리암은 가장 '거칠고', '관광'할 건덕지는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해를 찾는다면 보리암을 권하게 되는 건, 그 굽이굽이 산을 오르고 나면 남해의 아름다움을 조금 더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고, 앞선 절과 달리 컵라면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남해를 좋아하는 이유가 압도적인 풍경 외에 더 있다면, '콘텐츠'라고 하겠다. 콘텐츠라 하면 여러가지가 될 수 있겠다. 그 도시의 스토리일 수도 있고, 독특한 음식이나 특산물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게 콘텐츠고, 그게 다채롭고 많을수록 '방문할만한 도시'라고 느낀다. 남해는 그 규모에 비해 꽤 많은 콘텐츠를 품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유자'다. 내가 유자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남해에 오면 유자에 대한 아이템을 만날 수 있는게 재밌다.
유자와 관련한 많은 아이템을 다루고 있는데, 유자 카스테라와 유자진액을 구매했다. 유자 카스테라는 충분히 맛있었고, 유자 원액도 활용도가 많아 맘에 들었다. 유유자적 말고도 남해에는 유자를 다루는 가게들이 많다 보니 들르고자 한다면 여러 군데가 있다. 과거에 방문시 갔던 식당도 음식 중 유자를 다루는 메뉴들이 있었다.
사실 독일마을은 크게 기대한 바는 없었다. 국내에서 해외의 컨셉을 가지고 브랜딩을 한 곳들 중에 대부분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토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여기에 이걸 왜 만든거지?'라고 했을 때 시원하게 답을 찾을 수 있는 곳도 별로 없었다. 물론 남해의 독일 마을은 과거 파독 간호사/광부들이 자리잡은 마을이라는 배경을 이미 알고 갔기 때문에 최소한의 스토리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그들이 모여사는 마을인데 거기서 얼마나 '독일'스럽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정도는 있었다. 그러니까 '실제로 사는 곳'이다 보니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싶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독일마을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여기서 기대 이상이라고 한다면, '컨셉'에 그치지 않는 정도였다는 뜻이다. 독일에 진심이었다. 그리고 한 바퀴 둘러보면 땡이 아니라 군데군데 가볼만한 곳들도 많았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아이템이 겹치거나, 관광지스러운 느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좋았다. 꽤 예전에 만들어진 곳임에도 젊은 감각이 군데군데 스며들어 있는 곳도 있었고, 옛날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분들이 쌓아온 '유산'이 느껴지는 곳들도 있어 더 좋았다.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광장에 있는 전시관은 당시 휴일이라 들어가보지 못했지만, 기념품샵은 꽤 아이템들이 좋았다. 그리고 내려오는 곳곳에 있던 가게들-소품샵, 소시지 집, 빵집, 마켓-도 맘에 들었다. 특히 독일에서 먹었던 커리부어스트나 그곳에서 마켓이 열리면 보이곤 했던 아이템들도 있어 즐거웠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이곳을 지키는 분들이었다. 관광지인 동시에 삶의 터전이기도 한 이곳은 그 사이 어딘가를 절묘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멀리서 온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낄만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그 안에 삶도 새겨져 있었다. 오랜 시간 가게와 마을을 유지한 자부심, 진짜 독일의 것들을 갖추고 내고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 그 안에서 가게 사장님들 간의 끈끈한 유대까지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관광지이지만 언제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듯 편안했고, 이곳을 이루는 요소들은 '마케팅적 요소'에 그치지 않고 삶에 녹아들어 있었다.
국내에서 해외 어딘가의 컨셉을 잡고 있는 곳 중에 이렇게까지 맘에 든 곳은 없었던 것 같다. 다양한 독일 아이템을 구경하고, 마을을 둘러보고, 그 안에 담긴 스토리를 좇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기대가 없었기에 '잠깐 들러보자~' 정도였는데, 시간을 더 들이고 온다면 음식점에서 식사도 하고 더 여유롭게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면 좋았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전시관에 갈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다음에 또 오기를 기약'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사실 이곳들을 오가는 과정에서 '이동복 떡집'도 들렀다. 맛있었다.
7년 정도 전에 갔던 남해에서의 아쉬움이 다른 곳을 많이 가보지 못했던 점이라면, 이번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더 긴 시간을 머물면서, 남해의 구석구석을 더 둘러보았다면 좋았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의 짧은 남해도 좋았던 이유는, 그 굽이굽이 길에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복잡하고 불편한 듯한 이 길들과 풍경 하나하나를 넘을 때마다 마음의 걱정과 불안을 두고 올 수 있었다. 이번 고개를 넘으면 남해 바다가 눈에 들어오는 남해 풍경처럼, 매번 바뀌는 모습과 다양한 풍경은 지루하지 않게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남해에서는 아주 마음이 편했다. 그건 7년 전에도 그랬다. 고즈넉한 바닷가와 그 안에서 삶을 꾸리는 사람들, 다른 곳에서 쉬이 보기 어려운 풍경들, 작은 도시임에도 다양한 콘텐츠. 그 안에 담긴 진심들. 다른 여행지에서는 찾기 어려운 남해만의 매력은 그 굽이굽이 길에 숨겨져 있다. 그 길들을 헤치고, 그 때마다 보이는 풍경들에 마음을 담고 나면 나는 한결 더 기쁘고, 감사한 사람이 되고, 내가 바쁜 삶 속에서 잊고 있던 여유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남해가 좋다. 다음에 또 언젠가 기회가 되서 남해를 방문한다면, 이번에 가지 못했던 또 다른 남해의 모습을 마주하러 가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는 난생 처음으로 '프리미엄 고속 버스'를 타봤다. 물론 난 통영에서 타서 복귀했지만, 남해도 오간다고 들었다. 서울까지 4시간 반~5시간이라는 긴 시간이지만, 이렇게 편하게 올 수 있다면 남해 여행의 가장 큰 어려운 '접근성'도 어느정도는 낮아지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