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도 그걸 말해주지 않았을까
대학생 시절, 학원에서 고등학생 대상으로 국어를 가르친 일이 있다. 그 때 어쩌다 다른 얘기-대부분 대학생활에 대한 것이었다-를 하게 되면, '생각보다 대학생활이 만능이지는 않다'고 했다. 공부를 안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꽤 많이 해야 하며, 생각만큼 즐겁지도 않으며, 힘든 순간도 가득하다고 했다. 학생들은 '아이- 지금도 힘든데...'라는 반응이었다.
단순히 놀려주려고 했던 이야기는 아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난 세상이 수많은 고등학생들에게 '대학만 가면 된다'라고 사기를 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비록 그 사기에 '덜 당한' 사람이면서도, 그 거짓말이 너무 싫었다. 대학만 간다고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본인이 고민하고 노력하지 않는 한 대학교 1학년은 고등학교 4학년에 불과할 수 있고, 대학 시절을 허송세월하기도 쉬웠다.
사람들이 말하는 '즐거운 대학생활' 혹은 '대학생이서야 가능한 것들'은 대학생이기만 하면 주어지는 선물 같은게 아니라, 그조차도 치열하게 본인이 찾고, 원하고, 구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대학생으로서 얻게 되는 특권'에 대해서 잘 느끼지 못했기 때문도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방황과 낭비조차도 대학생의 특권'이고, 그걸 좀 더 러프하게 말하면 '대학이 최고다' 혹은 '대학가서 해라'란 말이 될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자세한 설명은 지루해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당시의 나는 고등학생들에게 알려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은 만병치료약이 아니고, 너가 가만히 있는데 멋진 연애를 하게 된다거나 성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척척 해내게 된다거나 별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성적이 A+이 나온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고. 그 모든 일을 이제 스스로 고민해야 하고, 갑작스레 찾아온 자유는 방종이 되기 쉬우며 갈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대학은 충분히 좋고 대학생활도 고등학생에 비하면 수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 멋진 시간이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대학만 가면!'이란 말로 설명되는 건 없다고 말이다.
그 '책임감'에 휩싸였던 건, 주변 사례들 때문도 컸다. 과가 맞지 않아 방황하는 친구들, 재수와 삼수를 거쳐 대학생활을 시작한 친구들, 적응의 문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들, 미래에 대한 고민과 같은 거대한 상황들을 겪고 지켜봤다. '대학만 가면 된단 말이지?'라며 삶에 대한 고민을 미루고 쌓아두었다가 대학생활에 마주하려니 도리어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대학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동기부여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동기부여는 다른 식으로도 가능하지만, 그 거짓말 때문에 고통받는 친구들이 옆에 있는데 나조차도 '일단 의문을 품지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냥 공부나 해. 대학은 모든 걸 해결해준단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 시절조차 지나고, 취준생 시절도 어영부영 지나고, 사회초년생 시절도 지나온 나는 한동안 그 문제에서 벗어나 있는 거라 생각했다. 대학, 취준을 거쳤다면, 그리고 회사에서도 어느정도 적응했다면, 이제 내 삶에서 '어려운 문제'란 건 다 지나온 게 아닌가. 그동안 고생한 만큼, 이제 내가 생각한 방향대로 천천히 삶을 꾸려가면 그만 아닌가. 그동안의 삶이 거칠고 변덕스러웠다면 이젠 좀 안정적으로 삶을 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무의식에서 생각했던 듯 하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건 없다'고 얘기하던 10년 전의 나같은 사람은 지금의 내겐 없었다. 사실 없을 수밖에 없겠다. 20대 후반도 지나 30대에 접어든 사람에게 누가 굳이 찾아와 '너 지금 세상 끝난 것 같지? 이제 그냥 살면 되는 것 같지? 웃기지마. 지금이 행복한거고, 앞으로는 더 어려운 일이 남았어'라고 찬물을 끼얹을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20대의 내가 10대들에게 굳이굳이 찬물을 끼얹었던 건 그럴 기회도 있었고 당시의 내가 그 문제에 분노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0대가 아닌 사람에게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 누구든.
마찬가지로 내게도 사람들은 굳이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이야기하진 않는다(물론 꼭 타인이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결국 나 스스로, '아직 삶의 주요한 순간이 다 지나진 않았고, 내겐 퀘스트도 여전히 남아 있어'라고 생각했어야 했지만 난 그러진 않았다. 어느 정도 삶의 큰 파도들을 건너온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건, 그저 첫 회사가 운 좋게 잘 맞았고, 거기에 오래 다니면서 편안함과 안락함에 젖어 세상 밖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에 불과했다.
내가 싸워나가야 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가 여전히 산더미처럼 날 기다리고 있는데, 10대의 고민을 20대로 유예하는 것처럼 외면해왔을 뿐이었다. 대학에 입학한다고 공부라는 문제가 끝나지 않고 회사에 적응한다고 커리어라는 문제가 끝나지 않는데, 회사에서 적응을 마치고 편안해지자 그 고민을 내려 놓았던 것 뿐이었다. 10대가 대입, 20대가 취직이라는 퀘스트가 있다면 30대에는 또 그 정도의 무게에 꿀리지 않는 선택들이 있는데 그 선택들 조차도 '내가 당장 고민해서 결정해야 하는 건가?'라고 한 켠에 치워뒀던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영원히 외면할 수 있는 선택은 없다. 꽤 긴시간 동안 양갈래 길을 모두 살펴볼 수 있게 걸어갈 수 있지만, 언젠가는 그 길도 끝이 나고 그 중 어느 길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길에 놓인 수많은 일들과 감정들을 직접 마주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늦으면 늦을수록, 그 고통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10대 시절 고민과 생각을 유예한 만큼 대학생이 되어 더 크게 방황하게 되는 것과 똑같다. 어차피 해야 할 선택이라면, 마주해야 할 인생의 단편이라면 유예하는 건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고백한다. 30대가 되면 세상이 좀 더 쉬워질 줄 알았다.
그렇게 보였다. 나쁘게 말하면, '지루해' 보였다. 세상의 중대한 이벤트가 지나고, 그저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거나 하는 일들을 사는 것. 돈을 벌기 위한 일에 일상의 대부분을 채우는 일. 그 일들이 지루하다는 게 아니다. 그 과정들은 숭고하고 중요하고 유의미하지만, 30대가 지나면 '이벤트'라는 거나 '선택지'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즉 '그저 가만히 있으면 그 길에 접어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가만히 있는데 만들어지는 '찬란한 대학생활' 따위가 없듯,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지 않는데 저절로 이루어지는 '30대의 지루해 보이는 일들'도 없었다. 그 지루해 보이는 일들조차 끊임없는 고민과 무거운 선택 속에서 만들어진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대입/취직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난이도는 아니었다. 결혼을 결정하는 일, 가정을 꾸리는 일이 그렇고 아이를 낳는다면 그 새로운 가족 구성원과 삶을 꾸려나가는 일도 그렇다.
무엇보다, '지루해 보인다'는 것도 착각이었다. 그 지루함이라는 표현은 '선택지가 제거된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20대는 하다못해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거나 휴학을 한다거나 뭔가 선택지가 많아 보였고,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0대에 되면 돈을 벌고 모아야 하는 삶을 '자연스럽게 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니 애초에 선택지가 없을 것이고, 그 의미에서 '지루'하고 '고민할 일' 없이 그저 그 삶을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 지금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인가? 다닌다면 어떻게 다닐 것인가? 옮긴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퇴사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거나 도전해볼 것인가? 돈을 모을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위해 투자를 해볼 것인가? 결혼을 할 것인가? 결혼을 한다면 누구와 할 것인가? 그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그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선택을 한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상대도 그런가?
답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 문제들은 전혀 답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건 모두가 '선택'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과거에는 '일차 방정식'이었다면, 그러니까 X만 해결하면 된다면 이건 Y와 Z까지 들어간 이차, 삼차 방정식이었다. 그 선택을 '함께 내릴' 사람과의 결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의 뜻, X의 답만 찾는다고 방정식이 풀리지는 않았다. 과거엔 나의 답, X만 찾으면 되었음에도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웠는데 말이다.
군대에 있을 때, <마녀사냥>이란 프로그램이 인기였다. 군대에선 국내의 모든 최신 음악과 TV 프로그램을 섭렵하기 마련이고, 나도 열심히 그 프로를 보곤 했다. 그 때 출연진들은 이런 말을 했다(워딩이 정확하지는 않다)
'어린 시절 30대가 되면 어른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야. 난 그냥 애새끼야'
지금의 내가 그렇다. 난 아직 결정해야 할 일도, 고민해야 할 일도 많은, 20대의 연장에 불과하다. 10대가 연장되어 고등학교 4학년을 살고 있는 대학교 1학년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것에 대해 어떤 대비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취직을 하고나서 적응까지 마치고 나서는 맘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삶을 살면서 '맘을 놓아버려도 되는 때'는 없는 것 같다. 언제나 내 앞에 놓인 삶의 길을 고민하고, 결정해야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게 그걸 말해주지 않았다. 20대의 나처럼, 나는 또 배신감이 일렁이기도 한다.
농담이다. 과거에 내가 분노했던 건 '그렇지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그런거였고, 30대의 나에겐 그 누구도 그런 비슷한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주지 않은 것'으로 분노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30대 건, 20대 건, 10대 건, 자신의 삶은 자신이 사는 일이다. 10대라면 그래도 '조언 가능'이라고 생각할 수라도 있지, 직장도 다니고 있는 20대 후반에게 말을 해줘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내가 말하는 '배신감'은 사람들, 사회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밖에 굴러갈 수 없는 삶 그 자체'에 대한 배신감이다. 대체 언제 맘 편하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수없이 많은 고비와 고난들과 선택의 역경들을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물론 그것도 우스운 일이다. 난 정말 편하게 살아왔다), 왜 아직도 삶에는 어렵고 난해한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여러 번 언덕을 넘었고 이제 난 '평지가 기다리고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왜 아직도 더 높고 깊은 봉우리가 내 눈앞에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 다음 봉우리를 넘어도, '당연히' 또 더 높은 봉우리가 날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물론 그 배신감은 그저 '농담'과 같은 일이다. 삶이 그러하다고 해서 그저 불평만 하기엔 이미 나이를 먹어버렸다. 봉우리가 또 있다면 '뭐야 젠장!'하고 내뱉을 수는 있지 않은가. 내뱉고, 나는 다시 또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사실 그 봉우리도 자신의 존재를 숨긴 적 없다. 내가 그저 그동안 살면서 '당장 눈 앞의 언덕'만 바라봤기 때문에 인지를 못했을 뿐, 그 봉우리는 그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내가 눈을 조금만 더 멀리 뜨고 보았다면 충분히 알고 있었을 일이다. 나는 10대와 20대를 지나며 '그래도 난 조금 더 멀리 보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30대의 봉우리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죠? 인생의 끝나지 않는 봉우리를 넘고 또 넘으면서, 넘으면서 쓰러지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일으켜세워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누군가를 떠나보내기도 하고, 다른 길로 가기도 하고, 겁을 내기도 하고, 때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그렇게 산다는 거죠? 그러니까 인생이란 원래 그렇단 거죠? 평지란 건 없고 어차피 다 언덕과 봉우리 뿐인데, 그걸 내가 '평지'라고 받아들이냐 아니냐만 남았다는 거죠?"
봉우리에 오르고 나서, 다음 봉우리를 바라보며 하는 넋두리가 길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이제는 다시 걸어가야 할 시간이다. 무언가를 떠나 보내고, 잃어버리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면서. 그럼에도 챙겨야 할 것을 다시 꽉 쥐고는 놓지 않으면서. "이번 봉우리만 넘으면 끝이란다!"는 거짓말에 속지 않으면서. 봉우리 뒤에 기다리는 건 더 큰 봉우리 뿐이고, 그건 내가 삶을 사는 한 영원히 이어질 것이고, 그 봉우리를 미워하지 않고 회피하지도 않고 함께 즐기는 것 뿐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렇게 굳게 믿고, 한 걸음 옮기는 일밖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