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그리드로 보는 차별의 모습과 차별을 이겨내는 법
해그리드는 마법사 세계로 해리를 인도한 인물이다. 고드릭 골짜기의 해리 집에서 버논 두들리와 페투니아 이모가 살고 있는 프리벳가까지 데려온 사람이자, 1편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를 마법사 세계로 데려가며 해리가 마법사임을 알려주는 사람이자, 7편에서 해리가 프리벳가를 떠날 때 버로우로 데려가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에는 죽은 척한 해리를 호그와트에 안고 가는 역할을 볼드모트로부터 맡기도 했다. 소설 내에서 해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인물이자 실제로 해리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사람인 셈이다.
해그리드는 거인혼혈이다. 마법사인 아버지와 거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거인의 피가 반 쯤 섞여 있다. 호그와트에 입학해 그리핀도르에서 생활하지만 동창(!)인 볼드모트가 비밀의 방을 열 때 주동자로 오해받아 퇴학당하고 지팡이를 더 이상 쓰지 못하는 판결을 받았다. 즉, 더 이상 마법을 쓸 수 없는 삶을 살도록 한 것. 물론 부러진 지팡이 조각들을 고친 다음 우산에 숨겨서 몰래몰래 마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그는 마법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허나 그는 거인의 피를 이어받은 만큼 강인한 육체를 지니고 있기에 왠만한 공격 주문은 튕겨내 버리며 완력만으로 마법사들과 전투가 가능하다(실제로 그는 죽음을 먹는 자를 완력으로 처치했으며 오러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반격을 함과 동시에 도망치기까지 했다). 동시에 인간 이외의 생물들에 굉장한 호기심이 있으며 그들을 다루는 데도 능숙하다. 해리포터 세계관 내에서도 꼽힐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이다. "이걸 길들인 건 처음이다"와 같은 생물들이 한 둘이 아니니까.
하지만 해그리드는 차별의 대상이다. 거대한 몸집, 거인의 피가 섞여 부족한 마법 실력, 순하디 순해서 타인의 속임수에도 넘어가는 모자란 성격, 위험한 생물을 가까이 하는 특이한 모습까지. 동시에 '혼혈'이라는 점은 순혈주의인 마법사 세계에서 가장 큰 타격이다. 혼혈을 2등 시민으로 여기는 마법사 세계의 사고방식, 그 중에서 '위험하다'고 적대되는 거인의 피가 섞였다는 점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차별의 이유가 된다.
실제로 해그리드가 퇴학당한 이유도 해그리드가 "거인 혼혈"이었기 때문이다. 볼드모트 입장에서는 죄를 뒤집어 씌울만한 대상으로 해그리드가 적격이었다. "모자란 거인 혼혈"이 쫓겨나는 일 쯤이야, 다른 보통의 마법사가 쫓겨나는 것과는 인식 자체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물론 해그리드가 마법생물들을 몰래 기르는 것 자체가 퇴학사유에 해당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마법세계에서 마법사가 아닌 이들의 삶은 비참하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존재인 '스큅'으로 무시를 받으며 마법사 세계에 어떻게든 '기생'하거나, 머글 세계에 동화되는 일이다. 스큅인 학교 관리인 필치는 자신이 스큅이라는 생각에 마법사로서 거듭날 학생들을 싫어한다. 평생에 걸친 차별의 결과다. 해리 옆집에 사는 피그 할머니는 머글사회에 동화되는 길을 택했고, 실제로 마법부도 그 길을 '권장'한다. 하지만 거인혼혈인 해그리드는 애초에 머글 세계에 발을 붙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동시에 거인혼혈인 그는 거인세계로 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거인 세계는 철저히 힘의 논리로 좌우되기 때문에 거인보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해그리드는 폭력의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
그런 해그리드에게 인생의 보답이 되는 인물이 덤블도어다. 덤블도어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해그리드에게 사냥터지기라는 직책을 맡기고, 숲을 관리하도록 한다. 동시에 매년 호그와트에 신입생이 들어오면 그들을 배에 태워 호그와트로 데려오는 역할을 준다. 현실적으로는 '굳이 없어도 되는 직책'을 만들어서 해그리드를 배려한 것. 2편에서 비밀의 방을 연 사람이 볼드모트임이 밝혀져 누명이 벗겨지고 나서는 덤블도어는 '신비한 동물 돌보기' 교수를 맡기기까지 한다. 호그와트 교수가 마법세계에서 굉장히 존경받는 직업이자 현실적으로도 좋은 직업임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조치다(물론 이는 학부모들의 거센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교장으로서 위험한 선택이기도 하다. "어떻게 거인혼혈에게 내 자식을 맡기냐!"라는 비판이 쇄도한다는 뜻.)
동시에 해그리드는 볼드모트와 그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불사조 기사단으로서도 중역을 맡는다. 해리를 프리벳가로 데려오는 일, 해리를 마법사 세계로 데려오는 일, 1편에서 마법사의 돌을 운반하는 일 등이다. 7편에서 프리벳가를 떠날 때는 해리와 함께 가는 성인으로 역할을 맡기도 한다. 그를 두고 맥고나걸 교수조차 "해그리드에게 그런 중요한 직책을 맡겨도 되는 것이냐"고 걱정할 정도다. 실제로 해그리드는 일에서 실수한 적도 있다. 마법사의 돌을 지키는 케로베로스(그 괴물에 플러피라고 이름까지 붙여줬다)를 무사히 지나가는 법까지 술술 털어 놓는다(그가 가장 관심있는 생물인 용의 알을 구하는 조건으로). 그 덕에 마법사의 돌은 볼드모트 손에 넘어갈 뻔했다.
그런 그에게 덤블도어는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해그리드에게는 내 목숨조차 맡길 수 있다"고 공언할 정도. 해그리드 역시 덤블도어에게 무한한 신뢰와 감사를 가진다. 해그리드에게 덤블도어는 마법세계의 영웅에 앞서 인생의 구원자로도 모자라 마법 세계에서 차별받고 직업도 가지지 못할 하류인생에게 중책을 맡기며 신뢰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덤블도어를 비난하는 자를 조금도 용서하지 못하며, 모두가 스네이프를 믿지 않을 때, 심지어 스네이프가 덤블도어를 '죽였을 때도' "덤블도어 교수가 스네이프를 믿었다면 스네이프는 믿을 사람이다"라는 판단을 내린다.
여기서 덤블도어의 훌륭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사회에서 차별받고 배제되는 사람을 '차별없는 시선'으로 바라보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그의 장점과 능력을 찾아낸다. 동시에 신뢰를 보내며 신뢰하고 있음을 행동으로 표현한다. 그 일은 쉽지 않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그 선택에 대해 비판하고(호그와트 내의 교수선임 문제나 교육방침 같은 일은 영국 마법사 세계에서 아주 '핫한 이슈'라는 점을 감안할 때, 교수 선임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걱정할 때도 '나는 너를 끝까지 믿는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신뢰를 얻을 만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야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다름이 없지만, 상대가 차별받는 대상일 때 그 과정은 굉장히 어렵기 마련이다. 상대 자체에 대한 자신의 고정관념을 먼저 깨부숴야 하며, 상대가 실수하고 못난 모습을 보일 때도 신뢰해야 한다. 그 과정이 주변의 압력 때문에 고된 과정이라도 말이다. 덤블도어는 그 일을 해냈고, 그 결과물은 비록 중간에 실수와 해리를 죽을 위험에 빠뜨리는 몇몇 사태들이 있었음에도 해그리드는 마법사 세계에 잘 안착함은 물론이요 불사조 기사단으로서 중책을 해내기도 했다.
볼드모트가 돌아왔을 때 거인 세력에 동맹을 청하러 간 일을 맡은 것도 해그리드였고, 앞서 기술한 해리를 데려오는 일들과 마법사의 돌을 운반한 일을 맡은 것도 해그리드였고, 5편에서 엄브릿지에게 쫓겨 탈출한 뒤 바로 덤블도어를 도우러 간 것도 해그리드였다. 호그와트 입장에서는 세스트랄을 길들여 학교 마차를 끌게 한 사람이자 마법사를 싫어하는 켄타우로스들과 친교를 맺고 금지된 숲을 관리한 사람이자 학교의 손재주가 필요한 잡다한 일을 해낸 것도 해그리드였다. 동시에 지금껏 그 누구도 '기르지' 못했던 생물들을 기르고, 마법생물들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교수이기도 했다(물론 헤르미온느의 조언이 없었다면 그는 범법행위를 하며 위험한 생물을 수업에 가져오는 나쁜 교수님에 그쳤겠지만!).
물론 해그리드가 없었더라도, 해그리드를 산속을 떠돌며 삶을 연명하는 '버림받은 혼혈거인'에서 구원하지 않았더라도 해리포터 세계관에서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가 임무에서 실수를 하거나 해리를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에 데려다 놓은 장본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피해가 더 크다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해그리드의 존재와 해그리드의 삶에서 알 수 있는 건 "무시받고 차별받는 이들을 대하는 법"이다. 덤블도어는 인생에 걸쳐 그 모습을 보여왔고(덤블도어가 원체 계산적인 인물이라 그 모든 것을 이익의 기준에 맞춰 계산했다는 비판은 그럴 듯 해보이지만, 작중 덤블도어의 대사를 보면 덤블도어는 기본적으로 차별받는 이들에 대한 감수성이 평균을 훨씬 웃돌 정도로 높은 사람이다),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차별받는 이들의 삶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동시에 그렇게 신경쓸 만한 것도 아니다. 전체 세계차원에서 보자면 말이다. 그렇기에 해그리드가 퇴학될 때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동시에 어떻게든 보통의 세계에 편입시킨다 해도 조금의 틈만으로 그들은 다시 공격받는다. 해그리드에 대한 기사가 나갔을 때 해그리드는 근신해야만 했다. 그에 대한 비판이 워낙 거셌기 때문이다. 동시에 차별받는 이들에게 신뢰를 보내는 일조차 우려의 대상이며, '그들이 맡을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라는 시선이 중론이다. 마법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하나에 속하는 맥고나걸 교수조차 '이런 일은 해그리드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라.
해그리드는 해리에게는 마법세계로 인도한 인물이자 정신적 지주지만 해리를 떼놓고 본다면 작중 세계에서는 차별받는 인물의 대표, 즉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는 '하류시민'이다. 차별의 결과로 인생의 끝에 내몰렸으며 구원받은 뒤에도 몇 번이나 그 위기에 처했다. 차별받는 삶 그 자체이다. 해그리드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차별받는 이의 삶이다. 차별받는 이는 어떤 일들을 겪고 어떤 시선을 받는지, 차별받는 이들은 얼마나 쉽게 삶이 무너질 수 있는지. 동시에 덤블도어-해그리드로 본다면, 그 차별받는 이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후에도 다루겠지만, 해리의 정신적 지주들로 나오는 인물들이 '무시받는' 사람들이거나 독특한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덤블도어는 게이였고, 시리우스는 미치광이 살인마였으며, 아서 위즐리는 머글광으로서 마법사 세계에서 괴짜취급을 받아 높은 직위에 올라가지 못해 돈도 없었다), 해그리드의 존재는 더 부각된다. 사실 해리 주변에 있는 인물들 모두 그렇다(욕으로 통하는 '위즐리 집안' 사람들이나 머글태생이자 왕따에 가까운 헤르미온느, 노예인 집요정 도비, 늑대인간 루핀을 보라). <해리포터>는 기본적으로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이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해그리드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
-로빈 윌리엄스는 해그리드 역을 너무 하고 싶어했지만, 영국인을 쓰고자 한 롤링의 의지 때문에 역을 맡지 못했다.
-해그리드는 슬러그혼이 탐내는 온갖 귀중한 물건(죽음의 숲에서 구한 것들)들을 집에 처박아놓고 제대로 쓰지도 않았다. 해그리드가 맘을 먹고 돈을 벌려고 했으면 많은 돈을 벌었을 것.
-해그리드는 자신의 이복동생(거인 어머니가 거인세계로 돌아가서 다른 거인 사이에서 낳은 자식) 그롭을 데려오는데, 해그리드가 '차별받는 이로서'의 감정을 드러내는 몇 안되는 장면 중 하나다. 자신의 어린시절과 마찬가지로 괴롭힘 당하고 있는 그를 내버려두고 올 수 없었다고 했다.
-해그리드는 똑똑한 인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중요한 본질을 꿰뚫어 볼 때가 있다. 해리와 론이 헤르미온느에게 잘 못해줄 때 해리와 론을 따끔하게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헤르미온느가 3총사에서 배제될 때, 해리나 론보다 더 힘든 인물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해그리드의 러브라인은 보바통의 교수인 맥심. 그 역시 거인 혼혈이다. 본편에서는 어떻게 되는지 안 나오지만 롤링과의 인터뷰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얘기가 있는 걸로 보아, 결과적으로 잘 되지는 못한 듯.
-해그리드의 동물을 돌보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세스트랄/히포그리프는 인간이 기르는 생물이 아닌데 해그리드는 그걸 능히 해냈고, 마법사 세계에서도 희귀한 동물인 유니콘, 그 중에서도 새끼 유니콘을 '구해오기'까지 한다. 새끼 유니콘을 그렇게 쉽게 구해올 수 있는 인물은 마법세계에서 해그리드를 제외하면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말할 줄 아는 거대한 식인 거미인 애크로맨투라를 '길러서' 그 거미의 잔치에 초대되기까지 한다는 점은 굳이 적지 않아도 '굉장히 특이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해그리드는 그 거미가 자신에게만 친절한 거라는 점은 몰랐다. 해리와 론은 잡아먹힐 뻔했다.
-해그리드가 타고 다니는, 날아다닐 수 있는 마법이 걸린 오토바이는 본래 시리우스의 것이다. 시리우스가 빗자루를 탈 수 없는(금지당한 게 아니라, 해그리드같은 거구를 태울 수 없는 빗자루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법사 세계는 거인혼혈이 빗자루를 타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것 같다)해그리드를 위해 선물한 것. 물론 해그리드는 시리우스가 살인마라고 생각할 때에 시리우스에게 길길이 분노하지만. 시리우스는 은근히 다른 존재에게 친절하다. 개인적 원한이 담긴 집요정 크리처를 제외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