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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Apr 11. 2017

인종차별과 국가간 격차에 대하여

유나이티드 항공사 인종차별 사건을 보며

#1.


기차역이었다. 파리에서 오스트리아까지 가는 기차는 하루 종일이 걸렸다. 도중에 갈아타기까지 잠깐 시간이 나서 역에 있는 매점에서 초밥을 사려고 했다. 20살이었던 나는 독일어를 몰랐고, 영어는 서툴렀다(지금도 다를 바는 없지만). 점원은 영어가 서툴렀다. 서로 의사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내가 자꾸 다른 얘기를 하며 이것저것 가르키자 젊은 점원은 웃음을 터뜨렸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무사히 구매했지만 초밥을 먹으며 다시 기차를 타고 가는 길은 왠지 씁쓸했다. 그것은 내 외국어 능력 부족에 대한 부끄러움이 대부분이었지만, 점원이 영어를 못하는 것을 내가 웃을 수는 없구나라는 생각이 잠깐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2. 


베를린이었다. 시청 앞 광장에서 갑자기 젊은 남성이 뒤에서 나를 빠르게 제치며 나에게 무어라 소리쳤다. 제치는 순간 뒤를 돌아보았기에 정확히 내 얼굴을 보고 한 말이었다. 독일말이었기에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말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당시 규칙을 어기며 걷고 있지도 않았고 정말로 '아무 상황'도 아니었기에 나는 그가 인종차별적으로 욕지거리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도망치듯 빠르게 지나쳤고, 뭐지하며 당황한 나는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3. 


프라하였다. 트램에 올라타려는데, 내리고 있는 아이가 '곤니치와'라며 중얼거렸다. 타고 내리는 그 짧은 시간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 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당황했기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있던 보호자가 뭐라고 했는지, 내리고 나서 그 아이에게 이에 대해 한 마디라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아무렇지 않은 인사말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아이에게 인종차별적 뜻이 있었겠는가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저 아이는 단지 곤니치와라는 인사말을 어디선가 배웠던 것이고, 일본인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보고 싶었던 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마음이 찝찝했던 건 나는 그들에게 다른 인사말을 아무렇지 않게 건넬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 그들에게는 굳이 세세하게 관심가질 필요가 없는 어떤 동양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라는 느낌 때문이었겠다.


#4. 


독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칭챙총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명백한 인종차별 용어였다. 중국인들의 발음을 비꼬는 말투로 동양인들에게 고루 쓰이는 차별적 언어다. 다만 그 말을 한 젊은 남자는 몸이 불편한 사람으로 보였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그에게 훈계하는 보호자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그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했다. 그가 독일의 일반 사회에서 약자라면 나는 그보다도 더 약한 어느 존재인 것일 테다. 독일 사회에서 약자라면 더 약자인 내게 화풀이를 하면서라도 자신은 그래도 최하층은 아니라는 것을 느낌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걸까?


#5.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다. 한인을 비롯한 일본인과 서양인은 인도네시아에서 최상층에 속한다. 2층 집을 지어서 모여 살고, 운전사와 청소부 등 현지인을 몇 명씩 고용한 채로 산다. 인도네시아인과 나는 인종적 차이가 유럽인과 동양인처럼 크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서로를 쉽게 구분할 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어렸던 나는 그 때에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의 다름을 느끼곤 했다. 한참 어른이더라도 그들이 내게 보내는 시선은 기본적으로 '어린 도련님'과 같았다. 그들에게 나는 건드리면 안 되는 대상인 듯 느껴졌고, 무언가를 가진 사람 혹은 계급적으로 위에 속한 사람으로 보이는 듯 했다. 너무나 깍듯이 대하는 그들이 나는 불편했고, 인종적 차이가 아니라 경제적 차이에서 오는 인위적인 '국가 혹은 인종 격차'는 현실이었다. 그 눈빛에서(때로는 애처로워 보이는 듯한) 자유로운 순간은 1세계 국가들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였다. 


#6. 


읽었던 여행책 <어학연수 때려치우고 세계를 품다>에서 주인공은 아프리카에서 버킷리스트였던 드레드 락 헤어스타일을 한다. 아프리카 미용실에 들어간 그는 "왜 이렇게 좋은 머릿결을 가지고 있으면서 굳이 우리의 헤어스타일을 하려고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만약 아프리카인들이 1세계에 속했다면 그들의 머리 스타일은 "좋은 머릿결이 아닌", 그렇기에 어떻게든 '팽팽하게 펴져야 할' 존재였을까? 우리의 머릿결이 'Fine'인 이유는 단지 우리가 그들보다 '잘 살아서'는 아닌가?


#7.


유나이티드 항공사에서 아시아인 승객을 경찰을 통해 끌어내리는 일이 있었다. 항공사의 실수로 좌석이 모자란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결국 끌려간 이는 아시아인이었다. 그는 예약되어 있는 환자를 치료하러 가야 했지만 강제로 끌어내려짐을 당해야 했다. 내리는 과정에서 상처도 입었다. 4명이 내려야 하는 데 그중 3명이 아시아 인이었고, 그 비행기에 탄 아시아인 역시 3명이었다. CEO는 겉으로는 사과하는 척 했으나 직원들에게 보는 메일에서 '공격적인 승객'이었다며 직원들을 비호했다.





#8.


인종차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유나이티드 항공사는 이전에도 인종차별 논란에 시달렸고, 홀리스터 역시 인종차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 외에 생활에서 겪는 일들도 수없이 많다. 화제가 되었던, 중국의 흑인 비하 광고까지. 단순히 유럽에서 동양에게 혹은 유럽에서 아프리카에게 행해지는 것만도 아니다. 결국은 '약자'인 대상에게 행해지는 일이다. 피부색이나 '눈이 찢어졌다'와 같은 것들은 표면에 불과하다. 



내가 겪었던 사례들은 하나같이 '어떡해야 하지'라는 당황을 안겨 주었다. 나는 그 시공간에서 약자였다. 약자인 나는 즉각 반격이나 분노를 하기 어렵다. 감정과 판단은 당혹감 이후에 찾아온다. 반대로 강자들은 거리낌 없이, 그것을 듣는 상대의 기분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다. 그것이 단순히 상황만 떼어놓고 본다면 인종차별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곤니치와"와 같은 인사말일지라도 말이다. 



물론 내 사례에서 나를 기분나쁘게 했던 이들은 억울할 지도 모른다. 동시에 내가 기분 나빴던 것 역시 무조건 '내가 인종차별을 당했다'라는 판단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순간들은 내가 약자임을 명확하게 인지시켜주는 상황이었다. 나는 상대가 내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던 순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호의가 내게도 호의인지까지는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강자였을 뿐이다. 그 결과 '인종차별'로 인식되는 일들이 벌어진 것일 뿐이고.



유나이티드 항공의 일은 어찌보면 '명백한' 인종차별이다. 내가 그 사건을 보며 떠오른 것은 명백한 차별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이것을 차별로 보아야 할지 아닌지조차 혼란스럽지만 기분이 나쁜 순간들이었다. 우리는 단순히 인종과 국가의 격차를 넘어 평소에도 약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차별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고 거리낌이 없었지만 그 중 어떤 것이 그들에게는 "격차"를 재확인시켜주는 과정일 수도 있었지는 않은가?



결국 인종차별은 인종격차, 국가 간 격차에서 시작한다. 강자인 국가에서 태어난 이들은 강한 시민이다. 그들은 자신보다 못 사는 나라를 가도 자유롭다. 치안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거기에서도 충분히 강하다. 강자는 그저 자유롭게 움직이고 말할 뿐이지만 약자는 그렇지 않다. 사소한 인삿말 하나도 상처가 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느껴지는 건 결국 그 지점이다. 동시에 유나이티드 항공에 대입하면, 만약 백인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이다. 그 상황에서 백인이 내려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는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했을까? 동시에 그 상황에서 아시아인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 차별을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이들에게 "왜 그렇게 민감하게 구냐. 네가 선택된 것은 단지 랜덤일 뿐이다"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유나이티드 항공과 같은 행동을 하고, 말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약자'와 '무딜 수밖에 없는 강자'의 관계에서는 차별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다. 나는 내게 인종차별의 느낌을 심어준 이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국가간 권력에 따라 설정되는지를 덕분에 배웠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내가 아무렇지 않게 소유하고 있는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는 'Fine'이자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나 강자인 동시에 약자다. 유나이티드 항공이 큰 대가를 치르기를 바라게 되는 이유는, 개인적 분노도 있지만 약자에 대한 생각이 한 번이라도 더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공유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떤 말을 듣는 상대가 무슨 느낌이 들지 우리는 늘 고려하며 살지만, 때로 고려하지 않는 상대가, 상황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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