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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Feb 12. 2018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2013) 후기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桐島、部活やめるってよ, The Kirishima Thing, 2013)

(스포일러밖에 없는 후기)


"싸우자, 이곳이 우리들의 세계다.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하니까."



이 대사를 위해 러닝타임을 소모하는 영화다. 제목은 '키리시마'지만 영화에 키리시마는 등장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사라진 키리시마 때문에 달라지는 학생들의 삶을 다룬다.


원래 영화를 보면서 인물 구분을 잘 못하는 편이긴 한데, 키리시마라는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다보니 이해하는데 더 애를 먹었다(그 사실을 모를 땐 자꾸 아 얘가 키리시마인가 속으로 생각했기 때문). 그래서 다시 돌아서 보고, 후기를 찾아 대조하면서 봤다. 전반적으로 이해하기가 엄청 어렵다-는 아니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이해하기엔 그냥 봐서는 쉽지 않다.



그나마 그것을 해소해주는 건 영화의 스토리 전개 방식이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같은 하루를 다르게 살아가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영화는 서술된다. A라는 사건을 겪는 B, 그리고 C... 그 과정을 통해 처음에는 '읭?'하지만 점차 인물들과 사건들, 그리고 그 관계들을 이해하게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키리시마가 아니다. 네이버 영화에는 영화부를 하고 있는 마에다가 주연으로 돼있다. 실제로 앞서 서술한, '가장 중요한 대사'를 하는 사람 역시 마에다다. 하지만 그와 함께 중요하게 등장하는, 감독의 '분신'으로 넣은 것은 아닌가 생각되는 '히로키'(첫번째 포스터에 등장하는 사람)다.


키리시마는 학교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이다. 배구부에 속해있고, 실력이 뛰어나서 배구부는 전적으로 키리시마에게 의존한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여학생을 애인으로 두고 있고, 키도 크고 잘생긴 것(으로 맥락상 묘사된다). 그리고 역시, 키리시마 주변에 있는 친구들도 '잘 나간다'. 히로키는 큰 키, 잘생긴 얼굴, 방과후엔 농구를 하는 또 다른 스타다. 그리고 그가 스타인 이유 중 하나 역시 '키리시마'의 '베프'이기 때문.




하지만 키리시마는 갑자기 배구부를 그만두고, 학교에서 사라진다. 키리시마의 주변에 있는 친구들 삶은 바뀐다. 여자친구는 키리시마를 찾아 다니고, 키리시마를 기다리기 위해 농구를 하던 히로키와 친구들은 농구를 그만둔다. 이게 키리시마 '주변'의 변화다.


하지만 그 변화는 곧 더 주변부, 그러니까 학교에서 무시당하는 존재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마에다'는 그런 인물이다. 검도부의 동아리실 한켠, 1평도 되지 않을 좁은 공간을 가지고 있는 영화부에서, 대놓고 '잘나가는'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인물이다. '성공하면 저것들은 절대 배우로 쓰지 않을거야'라고 속삭이는, 마찬가지로 '영화 덕후'이자 소외당하는 친구와 언제나 함께하면서.


농구를 하는 히로키를 쳐다보기 위해 옥상에서 연주를 하던 관현악부 부장 아야는 더이상 그곳에서 연주를 할 수 없게 되고, 키리시마가 빠진 자리를 채우기 위해 리베로로 선발된 후스케는 자신 능력의 한계 앞에 좌절한다. 키리시마를 기대했던 배구부는 후스케에게 분노하고, 키리시마가 돌아왔다는 말 한 마디에 학교를 쑤시고 다닌다. 키리시마가 사라졌기에, 그들의 일상은 무너졌고(그 날 이후, 우리의 세상은 무너졌다!라는 표현이 영화의 소개문구다), 그들의 공간 역시 무너졌고, 그들의 세계도 무너졌다.




그러자 침범당하는 건 '마에다'의 세계다. '후스케'의 세계다. 그리고 영화는 '세계가 무너진, 잘 나가는 이들'에게 침범당한 마에다의 말로 맺어진다.


"싸우자. 이곳이 우리들의 세계다.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하니까."


그리고 그 이전에는, "어떻게든 하려고 해서 이 정도란 말야! 이 정도밖에 안된다고 나는!"이라고 외치는 배구부 후스케가 있다. '내가 바로 히로키의 여자친구다'라는 걸 과시하기 위해 부러 히로키와 키스하는 사나를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연주하는 아야가 있다.


물론, 그 싸움은 현실에선 아주 미약하다. 그들은 이길 수 없다. 다만, 중심 세계에서 소외됐었기에 언제나 '안온했던' 세계가 침범당하자 자신들의 세계가 있음을 외칠 뿐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그 외에도 영화는 다양한 인물을 다룬다. 자신의 선천적 능력부족을 탓하며 살아가는 미카, 마에다같은 인물들을 무시하지만 동시에 일말의 관심을 품고, 그들을 놀리는 친구에게 뺨을 날리는 카스미, 특채로 선발된만큼 뛰어나지 않지만 '야구가 좋아서', 고3임에도 입시 대신 하루 종일 야구에만 매진하는 야구부 부장과 같은 사람들. 이들은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청소년들 모습의 일부분들이다.




전혀 섞일리 없는 견고한 계급 세계는 키리시마가 사라졌기에 섞인다. 히로키는 카메라를 들고 마에다를 인터뷰한다. "언젠가는 아카데미 상을 타는 게 목표인가요"라고. 사실 그것이 우리사회가 인식하는 평균이다. 입시공부에 매진하든, 운동을 뛰어나게 잘하든... 어쨌거나 한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없는 사람이나 되기 어려운 이들이 빠진 무언가를 "주류가 되기 위한 발판"으로 이해한다. 주류가 아닌 행위는 '우스운 것'이거나, '성공하면 인정해줄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마에다에겐 그렇지 않다. 좋아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을 할 수 있기에 매진할 뿐이다. 그렇다고 가벼운 건 아니다. "심심풀이라니? 우리도 진지하다고!"라고 외친다(이 말은 히로키에게 한 대사는 아니다)


히로키는 마에다로부터 도망친다. 야구부 활동을 포기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 '귀가부'로 살아왔던 그는, 입시공부와 동아리 활동 사이에서 고민을 유예했던 그는, 매일 밤 연습에 매진하는 야구부 부장과 마주칠까 무서워(자신이 포기한 일에 열정을 보이는 이를 만나는 것에 대한 기피였다) 피했던 그는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야구를 연습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키리시마에게 전화를 건다.





물론 그 과정 속에서는 단순히 "내 세계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마에다 뿐만이 아니라, "왜 아직도 야구부를 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답했던 야구부 선배도 있었다. 키리시마가 사라진 이후 무너진 자신의 세계에 대한 인식까지('키리시마가 없으니 이제 우리는 농구할 필요가 없잖아?'라며 농구 모임은 한 순간에 없어진다).


주인공이 없는 영화. 학교 모든 구성원이 "키리시마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지만사실은 언제나 자신의 세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는 걸 말하는 영화. 자신의 세계없이 키리시마에게 기댄 이들의 세계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걸 말하는 영화. 그리고, 무너진 세계 속에서 다시 자신의 세계를 찾아나가는 사람을 그리는 영화.


사실 난 마에다에게 별로 꽂히진 않았다. 마에다는 사실 '흔한' 캐릭터로 잡혀져 있다. 영화부 멤버들도 마찬가지. 물론 그 뻔함에 이끌리기도 하지만, 그건 어찌보면 값싼 동정과도 같은 거였다. 저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하는 바람과 같은 것들.




이 영화가 킹스맨과 닮은 부분이 있다면(생각해보니 킹스맨보다 먼저 나왔다), 강하게 깔리는 음악 속에서 잔인한 장면이 나온다는 것. 그 기괴함의 감정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그 기괴함이 킹스맨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영화에선 그것이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


"정말 이렇게 키리시마가 안나온다고? 어떤 설명도 없이?"라고 생각했지만 끝까지 키리시마는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가 조명하고자 하는 건 키리시마가 아니라, 키리시마 주변에 있는 수많은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 영화를 고등학생 때 봤다면'이라고 아쉬워하는 글을 봤다. 글쎄, 나는 고등학생 때 이 영화를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객관적으로 학생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시기가 됐기에 영화에 담긴 인물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줬던 게 아닐까 싶어서.


그리고 이 영화가 준 생각 1. 역시 일본은 우리와 달리 동아리 활동이 활성화 돼있구나 2. 하지만 물론 그 안에는 입시공부도 해야한다는 고민도 담겨 있구나 3. 동아리 활동이 활성화된다는 건 곧 '루저'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것이기도 하구나라는 거였다. 일찌감치 자신이 키리시마가 될 수 없는 걸 깨닫고, 모든 이에게 밝혀야 하는 학생의 삶이란 또 어떤 것인지. 역시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너는 키리시마가 아니어도 괜찮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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