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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Apr 23. 2018

나의 오랜 친구, 무한도전을 보내며

내 인생을 위로해준 친구가 떠났다


무한도전이 종영한지 어느새 꽤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되돌아보는 특집도 3개나 마쳤다. 이제와서 무한도전에 대해 이야길 하는 건 늦은 감도 있다. 하지만 큰 상관은 없다. 언젠간 한 번 쓸 이야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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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나름 무한도전의 팬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제대로 보지 않은지가 1년이 넘어가지만 그럼에도 팬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를테면 2007년 여름 서울구경 특집 1편에서 노홍철이 집 앞에서 남산을 가기 위해 추천받은 버스 번호가 472라는 걸 기억한다. 그 편에서 처음 멤버들 집을 방문할 때 박명수가 욕을 하는 바람에 혼자서 재촬영을 했고 어색한 모습이 연출됐다는 것도 기억한다. 2008년 지못미 특집에선 버스에서 프랑스인과 대화를 했고, 노홍철이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웠다며 '마메종(나의 집)'이라고 외친 것도 기억한다. 그렇게 마메종은 내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프랑스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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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파시 특집에서 하하정준하노홍철이 남산계단앞에서 텔레파시를 보낼 때 나오는 노래가 '노리플라이'의 '조금씩,천천히,너에게'라는 것도, 김장특집에서 박명수가 유재석의 김치를 뺏어먹다가 가장 매운 맛 김치를 먹게됐다는 것도, 2006년 농촌특집과 2009년 쌀농사 특집의 배경이 강화도이고 레슬링 특집 때 특훈을 갔던 곳도 그 인근에 있는 오마이스쿨이란 것도 기억한다. 식객특집 1편에서 유재석의 김상덕 발언이 나오고 나서 박명수가 '김상덕씨 ~래요. 김태호 PD가찾아봤는데...'라고 중얼거렸다는 사실도 기억한다. 정형돈은 자막처리도 해주지 않는 말들을 맨날 혼자서 떠들어 왔다는 것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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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건 별 게 아니다. 나는 죽어라고 무한도전을 봤다. 휴대폰에 넣어서 봤고, PMP에 넣어서 봤고, 노트북에 넣어서 봤다. 밥을 먹을 때면 무한도전을 틀어 놓았고, 거실 TV에서도 다른 본방송들을 보는 대신 케이블에 나오는 무한도전 재방송을 봤다. 잠들 때는 무한도전을 틀어놓지 않으면 잠들지 못했다. 단언컨대 나의 10대에는 무한도전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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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증을 가지고 있던 당시의 나는 그 두려움을 무한도전을 보며 이겨냈다. 무한도전에 나오는 시민들 모습을 보고, 거기에 담긴 서울을 보고, 거기서 싸우고 떠들고 미션을 수행하는 멤버들을 보며 희망을 품었고 웃었다. 무한도전이 있었기에, 무한도전이 나를 위로해줬기에 나는 힘겨웠던 시기를 지나올 수 있었다. 누군가는 슬픈 특집이 아닌 무한도전을 보면서 울었다고 하면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울었다. 특히 2010년 텔레파시 특집을 보면 지금도 울컥하는 감정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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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특집은 그간의 과거를 돌아보는 특집이었고, 영상미를 강조한 특집이었고, 유달리 노래가 많이 등장한 특집이었다. 그걸 보며 나는 지난 나를 떠올렸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그렸고, 우리의 삶은 조금 더 괜찮다고 자신했다. 세상은 살 만한 거라고. 우리의 삶은 비록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 모두 좀 더 잘 살아야 한다고. 내겐 추억을 전하고 희망을 전하는 특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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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한도전은 그런 특집들을 여럿 만들어낼만큼 능력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한국 예능을 아예 뒤집어놓았고, '이래도 되는건가'라는 시도들을 가져와서 잘 해냈다. 그만큼 새로운 도전을 하는 프로그램도, 장기프로젝트를 병행하는 프로그램도, 인기없는 스포츠를 다루는 프로그램도, 지구온난화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프로그램도, 스태프들을 전면에 등장시키며 벽을 허문 프로그램도, 예능에 등장하는 사람을 사람으로 인식시키게 한 프로그램도 그간 없었다. 말 그대로 무한도전 이전과 이후로 나눌만큼 한국 예능을 변화시킨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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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동시에 무한도전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도 안다. 다시 과거편을 보면 그 때 얼마나 차별적인 시선이 깃들어있는지도, 문제가 될만한 내용이 많았는지도 바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얼마나 더욱 그러했는지도 안다. 그러니까 무한도전은 더 이상 발전하기보단 어떻게든 현상유지를 하는데도 벅찬 상황이었다. 일주일에 7일간 촬영을 하고 하루에 4편의 서로 다른 특집을 찍는다고 멤버가 호소하는 상황들이 '일시적'인 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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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은 완벽하지 않았다. 실수도 했고, 그 자체로 부족하기도 했다. 그나마 지금까지 버텨왔던 건 출연진들이 '이 프로그램이 누군가의 인생이었고, 그렇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다'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전진이 돌아오지 않은 것도, 연예인들이 '킹스맨'을 고사한 것도, 정형돈과 노홍철이 돌아오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무한도전은 이미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 돌아가는 프로그램이었고 그 짐은 너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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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짐을 들기 위해 유재석은 초인이 됐고, 멤버들과 제작진은 시대에 따라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자신의 일상을 포기하고 매달렸다. 이미 2007년부터 시즌제를 외친 김태호 PD가 2018년까지 무한도전을 맡아오게 된 건 결국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놓을 수 없는 무언가가 됐기 때문이었다. 많은 팬들이 그 짐을 내려놓으라고 외쳤지만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그 순간 무한도전은 무너지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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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회 특집, 쉼표를 보며 나는 먼저 무한도전을 내려놓았다. 어떤 기대도 하지 않고, 무한도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삶을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이상 2006년과 2007년의 무한도전을 볼 수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였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듯이, 무한도전도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그들이 택한 건 질질 끌려가는 것만은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택한 건 그런 그들을 놓아주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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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기에 이제 나는 무한도전이 없는 삶이 고통스럽지도, 슬프지도 않다. 무한도전은 언젠가는 없어질 프로그램이자 없어져야할 프로그램이고, 내가 알고 있던 무한도전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는 몇 년을 소비했다. 그랬기에 다른 사람들이 무한도전을 뭐라고 평가하든 별로 신경쓰지도 않는다. 무한도전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비판들은 무한도전이 큰 규모인만큼 짊어져야 하는, 당연한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예민한 감각을 갖추고, 조금 더 말과 행동에 조심하는 건 당연한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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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관점에서 출발한 비판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대부분 맞는 지적들이다. 다만 무한도전은 이미 2007년부터 위기설이 나왔고 재미가 없어졌다고 했다. 모두가 무한도전을 평가하고 노려봤다. 이래서 문제다 저래서 문제다라며 저마다 한 마디씩을 얹었다. 한 에피소드를 두고 나라가 들끓고, 시청률이 떨어지니 이제 재미가 없니 하는 일은 수십 번도 넘었다. 아예 무한도전에서 그러한 비판적 시각들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특집을 다룬 것도 수년 전 일이다. 무한도전의 문제점을 잡고 비판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어떤 프로그램도 시대를 뛰어넘기는 어렵고, 무한도전도 그 시대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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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나 역시 무한도전의 문제점을 수십가지를 댈 수 있었다. 다만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무한도전을 이해하고 평가하고 받아들일 뿐이다. 무한도전과 함께 자라났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평가를 남기고자 할 뿐이다. 무한도전의 한계는 나보다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지적해줄 수 있고, 이미 그렇게 해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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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졌던 프로그램. 내 인생을 위로해준,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만들어준 프로그램. 잊을 수 없는, 장소를 가고 노래를 들어도 떠오르는 프로그램. 수없이 많은 새로운 시도를 했고, 한국 예능계 판도를 바꾼 프로그램. 사소하게는 멤버들이 출근하는 모습, 방송을 준비하는 모습, 이동할 때 운전하는 모습까지 카메라에 담아내고 그를 위해 움직이는 매니저와 코디와 방송 스태프들을 담아낸 프로그램. 조정과 봅슬레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잊을 수 없는 노래를 만들어준 프로그램. 굿즈를 만들고 사진전을 벌여 2차 창작이 가능하단 걸 보여준 프로그램. 그걸로 기부를 하며 자신들이 생각하는 '보답'을 해왔던 프로그램. 제작비가 깎이고 출연료가 깎여도 멤버들이 제작비를 충당하며 버텼던 프로그램. 누군가의 인생이 됐던 프로그램. 그리고, 그 시대의 한계를 간직한 프로그램. 그랬기에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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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실 어떤 프로그램도 그 시대를 안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제 난 몇 년 간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무한도전을 보낸다. 이제 난 끝없는 공포를 떠나보냈고, 무한도전 없이도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됐고, 무한도전 없이도 잠을 들 수 있게 됐다. 그 과정을 가능케해준 무한도전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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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한도전보다 조금 더 나은 프로그램들이 생기기를 바란다. 또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반복하거나 당장 시청률에만 목매다는 것 대신 조금 더 새로운 이슈를 다루고, 조금 더 우리가 가야 할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그렇게 무한도전을 뒤에 두고 우린 또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평균이하를 자처했던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이 됐던 시대가 지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주인공이 되는 시대가 올테니까. 사람들이 '나와 함께 했던 프로그램' 혹은 '나를 발전시켜준 프로그램' 혹은 '우리 시대를 이끌었던 프로그램'이라고 기억할 프로그램도 생겨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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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2013년 자유로가유제에서 유희열이 무한도전 프로그램과 멤버들을 위해 만든 노래인 <그래 우리 함께>를 적는다. 이 노래를 녹음하며 눈물을 흘린 정형돈처럼, 나 역시 이 노래를 쉽게 보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무한도전이 정말 그리워지는 날엔 이 노래를 들으며 또 스스로를 위로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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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bXUZUw9_rU?list=RDZbXUZUw9_rU


너에게 나 하고 싶었던 말

고마워 미안해

함께 있어서 할 수 있었어

웃을 수 있어

정말 고마웠어 내 손을 놓지

않아 줘서

힘을 내볼게 함께 있다면

두렵지 않아


.

내가 늘 웃으니까 내가 우습나 봐

하지만 웃을 거야 날 보고 웃는

너 좋아

자꾸만 도망치고 싶은데

저 화려한 큰 무대 위에 설 수

있을까 자신 없어

지금까지 걸어온 이 길을

의심하지는 마

잘못 든 길이 때론 지도를

만들었잖아

.


혼자 걷는 이 길이 막막하겠지만

느리게 걷는 거야 천천히

도착해도 돼

술 한잔 하자는 친구의 말도

의미 없는 인사처럼 슬프게 들릴 때

날 찾아와

그래 괜찮아 잘해온 거야

그 힘겨운

하루 버티며 살아낸 거야


.

지지마 지켜왔던 꿈들 이게

전부는

아닐 거야 웃는 날 꼭 올 거야

괜찮아 잘해온 거야 길 떠나

헤매는

오늘은 흔적이 될 거야


.

시원한 바람 불어오면

우리 좋은 얘길

나누자 시간을 함께 걷자

그게 너여서 좋아

그래 우리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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