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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Feb 14. 2016

2월 14일에 초콜릿 주고받든 너랑 뭔 상관이냐

기념과 기억은 개인의 자유다

사람마다 기념일은 다르다

양력 5월 1일은 무슨 날일까. 많은 사람들은 노동자의 날이라고 하겠지만 사실 그 날은 내 양력 생일이다. 다른 이들이 노동자의 날로 기억할 때, 나 역시 노동자의 날임은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내 생일로 5월 1일을 기억하고, 내 생일의 비중이 더 크다. 내게는 그렇다. 내게는 노동자의 날보다는 내 생일이 더 의미가 있으니까. 


기념일이라는 건 원래 그렇다. 주관적이라는 얘기다. 다만 그 주관의 크기가 다를 뿐이다. 이를테면 결혼기념일은 결혼을 한 2명만의 기념일이다. 개교기념일은 그 학교에 속한 사람들이 기념하는 날이고, 광복절은 한국인들이 기념하는 날이다. 주관의 크기만 다를 뿐, 어떤 날을 기념하는 행위는 오롯이 그 날에 대한 의미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2월 14일이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발렌타인데이 대신에, 초콜릿을 선물하며 들뜨는 대신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어느새 이 이야기는 언론사에서 카드뉴스를 만들어 배포할 정도로 커졌다. 


뭘로 기억하든 말든 니네가 뭔 상관이냐ⓒytn 페이스북 페이지 카드뉴스 캡처

뭘로 기억하든 말든 니네가 뭔 상관이냐

ⓒytn 페이스북 페이지 카드뉴스 캡처 

2월 14일은 단 하나의 날이 아니다

잘라 말해서, 2월 14일은 발렌타인데이이기도 하고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이기도 하고 세계 최초의 전자계산기 에니악이 만들어진 날이기도 하고 벨과 그레이가 각각 전화에 대해 특허를 등록한 날이기도 하다. 동시에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의 생일이며 미국 애리조나 주와 오리건 주의 미연방 가입일이라서 그 주의 휴일이기도 하다. 


2월 14일을 무엇으로 기억할지는 철저히 개인의 자유다. 누군가는 초콜릿을 선물할 것이고, 미국의 애리조나 주에서는 휴식을 취할 것이며 2월 14일이 생일인 사람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할 것이다. 그 누구도 2월 14일에 벌어진 수많은 일들이나 기념할 만한 것을 다른 이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날짜라 해도 마찬가지다. 프랑스가 7월 14일 혁명기념일을 맞아 축제를 벌인다고 해서 우리나라에게 왜 너희는 가만히 있니?라고 할 수는 없다. 


개인의 자유인 기념이라는 행위가 공동의 행위가 되려면 그 공동의 사람들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한글날이 한국인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 같으므로 국경일로 기념해 휴일로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라는 생각이 있고 그것이 합의 하에 국경일이 된 것처럼, 어느 가족이 우리는 이 날짜에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그 날짜가 되면 무엇을 하자고 하는 것처럼, 기업과 학교에서 만들어진 날에 그 소속 사람들이 다 같이 쉬는 것처럼. 


진짜 기막힌 아이러니는 언론사가 시민에게 기념과 기억을 강요한다는 것이다ⓒytn 페이스북 페이지 카드뉴스 캡처

진짜 기막힌 아이러니는 언론사가 시민에게 기념과 기억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ytn 페이스북 페이지 카드뉴스 캡처 

하나로 기억하고 기념하라는 것은 폭력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2월 14일이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이므로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자라는 것은 폭력이다. 우리나라는 2월 14일에 안중근 의사를 더 기억해야 된다는 합의를 한 적이 없다. 개인이 2월 14일을 안중근 의사 사형 선고일로 기념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언론사가 정말로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언론사 내부에서 합의해서 그 날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기념하면 된다. 


12월 19일에도 언론사는 과연 윤봉길 의사가 죽은 날이므로 기억해야 된다고 할까? 6월 26일이 되면 언론사는 김구 선생이 죽은 날이므로 김구 선생을 기억해야 된다고 할까? 기념과 기억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특히 언론사같은 곳에서 시민에게 ‘안중근 의사를 잊지 맙시다’라고 하는 건 연인 간의 유명한 기념일이 다가오면 으레 있는 사람들의 가벼운 질투 어린 농담을 자극해서 인기를 끌어보려는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말 언론사에서 독립투사를 기억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2월 14일에는 안중근 의사를 들먹이면서 6월 26일이나 12월 19일, 그 외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날짜는 ‘기억해야 합니다’라고 훈수를 두지 않는가? 


내 생일인 양력 5월 1일에 내 생일을 기념하겠다는 데 누가 와서 ‘너는 신성한 노동자의 날에 뭐하는 짓이냐! 5월 1일에는 노동자의 날이니까 노동자의 권리를 ’더‘ 생각해야 한다’고 훈계질을 둔다면 그것은 누가 봐도 ‘미친 놈’이며 ‘월권’이다. 내 생일을 기념한다고 해서 내가 노동자의 날을 잊은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2월 14일에 초콜릿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생일을 기념하든 초콜릿을 주고받든 공동의 합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가지고 남의 자유를 훼손하고 ‘안중근 의사도 기억 안하는 파렴치한’으로 몰아세우지 마라. 


   니네들이 뭔데 내가 초콜릿 주고받는다고 안중근 의사 생각 안 한다고 판단하냐ⓒmnet <언프리티랩스타> 캡처


*이 글은 고함20(www.goham20.com)과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니네들이 뭔데 내가 초콜릿 주고받는다고 안중근 의사 생니네들이 뭔데 내가 초콜릿 주고받는다고 안중근 의사 생각 안 한다고 판단하냐

ⓒmnet <언프리티랩스타> 캡처각 안 한다고 판단하냐

ⓒmnet <언프리티랩스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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