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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Jan 22. 2019

청년을 향한 '노력'에 대하여

'노력투쟁'을 끝내고, 더 나은 논의로 나아가기 위해

최근 몇 년 동안 정말로 많이 소환된 단어가 있다면, 그것도 특히 청년과 함께 가장 많이 인용된 단어가 있다면 BEST5에 '노력'은 포함되지 않을까. 그만큼 청년과 노력은 맞닿아 있다. 그리고 놀랍도록 정반대인 2개의 인식이 공존해있기도 하다. 그간 종종 언급하기도 했지만, 최근에 어떤 콘텐츠들이나 일련의 조류를 보고나서 아예 노력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보기로 맘먹었다.



1. "노오력이 부족해"와 "단군이래최대스펙"


2014년 정도부터 한국을 강타한 개념 '헬조선'은 사실상 '노력'에 관한 담론과도 같다. 이는 "노오력이 부족해"라는 기성세대 또는 사회의 기나긴 '주문'에서 비롯된 반작용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청년이 취업하기가 힘들다, 원룸 구하기가 어렵다, 애를 낳지 않는다 등등 수많은 사회문제들이 지적될 때마다 "우리 때는 더 힘들었다, 노력을 하면 되는 일이다. 우리는 노력으로 극복해왔다"라는 무한반복의 굴레가 문제를 지적하는 모든 목소리를 짓눌러왔고, 그에 대한 반감이 터져버린 것이 '헬조선 담론'이었다. 그러니까 헬조선 담론때 수많은 '저명인사'들이 언론에 '아니 우리나라가 이렇게 살기 좋은데 헬조선이라니!?'라며 황당해했지만 사실 헬조선 담론의 출발은 기본적으로 '노력이 더이상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시대에서 노력만을 주문하는 시대에 대한 절망과 조소'였다. 그 결과가 바로 '노오력'이라는 단어의 탄생이다. 이 사회의 현실, 문제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노력만을 주문하는 사회의 아이러니는 바로 노력이라는 단어를 뒤틀어버리고 비꼬는 '노오력'이라는 말로 드러나는 것이다. 즉 오랜 시간동안 "아니 요새 애들은 왜이렇게 노력도 안하고 불평불만이 많지?"라는 지적이 청년층에게 쌓여왔다. 이와 비슷한 논리로는 "아니 맨날 스타벅스가서 커피 마시고, 해외여행도 가고, 애플 제품 쓰고, 홍대에서 술마시고 클럽가기 바쁘면서"가 있다. 즉 단순히 '노력하지 않는다'에서 진화한, '노력은 커녕 흥청망청 놀고 소비하기 바쁜' 청년의 이미지다.



심지어 이 얘기는 언론 칼럼의 주요 근거는 물론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인물들이 매일같이 반복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홍대에 가보면 술 취해서 길거리에 널부러진 청년들이 가득한만...", "해외로 나가는 청년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건만..."이다. 이 지적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빼먹은 것들인데, 1)홍대에서 술 먹고 취하거나 놀러다니는 사람들을 청년층 전체로 치환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2)청년들이 심지어 술을 먹고 놀러다닌다 하더라도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3)소비행위를 죄악시하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출발한 것에 불과하다 4)술을 마시고, 놀러나가는 것은 20대만의 일이 아니며 전 세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중장년층은 골프를 비롯한 상대적 고가의 취미는 물론 각종 성매매를 비롯한 퇴폐적 문화까지 동반되고 있지만, 그 누구도 4,50대를 정확히 꼽아 "흥청망청 놀기 바쁘다"고 지적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올해 2월에 비슷한 내용을 쓴 바 있는데(https://www.facebook.com/ChoiHaeMill/posts/1765304823527098 ), 해외로 나가는 이들의 숫자는 20대보다 3,40대가 많다. 20대의 많은 층이 교환학생,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대가 나가는 것이 '놀러나간다'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물론 애초에 해외에 많이 가는 것이 대체 왜 문제냐는 근원적 질문도 남는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는 훨씬 할 말이 많을 정도로 어이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이야기할만한 수준은 NEET 통계를 가져오는 경우인데, NEET 통계가 가리키는 것은 "요새 20대가 특출나게 게으르다"가 아니라 NEET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우리나라의 고용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고, 우리보다 먼저 비슷한 사례를 겪은 일본을 비롯해 다양한 선진국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NEET가 늘어난다면 이 현상을 어떻게 바꿀까에 대한 논의로 이어져야지 왜 "지금 청년들은 하여간 노는것만 좋아해"가 된단 말인가? 지금의 4,50대 자영업자들을 두고 "하여간 4,50대들은 능력을 키울 생각은 없이 정부에 자기들 힘들다고 징징대기만 하는 징징충들이라니깐"이라고 하면 황당하지 않겠나? 세대의 문제로 풀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그리고 정말로 이들의 지적대로 지금의 20대가 '노오력하지 않는' 세대라면, 지금의 청년층을 가리키는 또 다른 유행어인 '단군이래최대스펙'이란 말도 거짓이 된다.



지금의 20대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시각에서는 '지금의 20대가 단군이래최대스펙을 갖췄는데 취업이 안된다며? 에구 불쌍해라'는 지점에 도착한다. 이는 앞서 지적한 오류를 벗어났다는 점에선 유의미하지만, 1)20대의 문제를 취업난으로 치환 2)20대를 단순히 '불쌍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점에선 여전히 오류를 가지고 있다. 다만 최소한 이 영역은 '20대가 노오력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않으므로 지금 글에선 깊게 다룰 필요는 없을 것이다.



<SKY캐슬>이 화제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으나, <SKY캐슬>이 의미하는 바가 하나 있다. 지금의 20대는 '노오력타령'하는 40대 50대보다 훨씬 더 '빡세고', '경쟁적인' 환경에서 10대를 보내왔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의 20대가 10대였던 기간동안 PISA에서 한국이 성취도 평가에서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으로도 일부분 설명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것들을 가져오지 않아도 모두들 알고 있나. 지금의 교육경쟁이 '광풍'이라는 것을. 그것이 정시든, 수시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적하는 건 하나다. 이미 10대 때부터 당신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자랐다. 그걸 과시하자는 게 아니다. 애초에 10대와 20대가 과거 10대와 20대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많이 한다고 떠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사는 시대가 다른데. 지금은 그런 환경에 놓인 것이고, 과거 역시 그런 환경에 놓인 것에 불과하지 않나. 자, 그리고 이 생각을 다른 곳에도 적용시켜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력을 조금만 더 키워봤으면 좋겠다.


출처 : jtbc


'우리 애는 더 좋은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는 교육열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필연적으로, 과거 대비 상대적으로 더 많은 10대들의 희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너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들하기에 감도 안잡히나본데, 그 모든 과정은 전부 '노력'이었다. 트위터에서 '대치동 학생들도 얼마나 노력하는데!'라는 내용이 왜 화제가 되었나. 지금의 20대들은 "우리가 10대 때부터 전 세계에서 꼽힐만큼 노력했는데요?"라고 하지는 않는다. 모두들 '성공을 위해 해야하는 필수과정'으로 여길뿐 그 행위 자체를 '노력'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20대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난 지금의 20대, 대학생들이(20대의 노력을 얘기할 땐 언제나 '대학생'만이 이야기된다는 점도 짚고가자) 과거 대비, 타 국가 대비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토익점수를 비롯한 단순 스펙을 떠나서, 온갖 스터디와 경쟁을 이미 10대 때부터 내면화했기에 이미 기본값 자체가 '노력'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학생들이 노력하지 않더라를 지적할 땐 <복학왕>이 등장한다. '지잡대'에 가봐라. 애들 놀기만 한다~라는 논리다. 지방대학생, 전문대생은 평소에는 대학생으로 쳐주지도 않다가 지금의 20대들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할 때엔 빠짐없이 등장한다. 등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주체가 된다(놀랍게도 지방에 거주하는 이들이 매일 홍대에서 술에 취하는 걸까? 그리고 요새 애들은 눈이 높아서...라고 할 땐 흔히 말하는 명문대생이 주체가 된다는 점도 가볍게 무시해야 이 아이러니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흔히말하는 386세대가 "우리는 수업 맨날 안가도 졸업하고 취업할 수 있었어"라는 영웅담 아닌 영웅담을 공유하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면서도 "지금 대학생들은 왜 노력을 안하지?"라는 말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웃기지 않나. 노력을 안한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나. 노력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댈 수 있다. 수많은 스터디룸, 독서실, 스펙쌓기 위해 나서는 대학생들이 너무나도 많아 '돈 한 푼 안주고 부려먹었던' 수많은 기업과 공기관의 대외활동들이 존속할 수 있었다는 것, 자격증과 토익점수, 상대평가 등의 끊임없는 도입에도 불구하고 '재수강과 성적 삭제의 반복'으로 만든 평점 올리기, 갈수록 일찍 시작하고 많이 하는 영어, 중국어, 기타 외국어들. 이쯤 하면 다시 얘기할 수도 있겠다.


출처 : 네이버 웹툰 <복학왕>. 흔히 말하는 '지잡대'를 그린 <복학왕>은 작품마다 '이래서 공부하라는 거다'라는 댓글이 달리며 지방대를 묘사한 '교과서'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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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게 노력하는 건 상위대학 애들이고, 지방에 있는 애들은 안그렇다니까?". 일단 '그렇지도 않다'고 말하고 싶지만, 여러 발 물러서서 그렇다고 하면 "그럼 그것이 왜 청년일반이 되는가?", "청년일반으로 할만큼 상위대학 학생의 숫자가 적은 것이라면 왜 청년담론은 그동안 단 한번도 지방에 있는 20대 위주로 구성된 적이 없는가?", "그 어느 세대도 100% 당신이 생각하는 '노력하는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높은 성과를 거두는 퍼센트와 그렇지 않은 퍼센트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정책의 목표는 '낙오'되는 이들을 줄이는 것이고. 대체 지금의 청년이 사회 전반으로부터 '노오력이 부족하다'란 얘기를 들어야 할 근거는 어디에 있으며, 애초에 그러한 지적은 시대착오적 발상, 20대를 한번에 후려칠 수 있다는 게으른 발상,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뒤처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2)물론, 노력은 중요하다.



앞서 적었듯, 헬조선 담론은 '노력하기 싫다'가 아니다. '노력하고 있는데 답이 안보이는 환경 속에서도 노력만을 강조하는 부조리함'에 대한 비웃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20대는 훨씬 더 '노력'에 민감하다. 평창 올림픽 때는 다들 잘도 지적하지 않았나. "지금의 청년은 불공정함에 누구보다 분노한다"고. 지금의 청년은 10대 때부터 경쟁시대를 겪어왔고, 경쟁이 정당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면, 즉 노력이 통한다면 얼마든지 그 노력을 할 자신이 있으며 불평하지도 않는다. 그건 지금의 20대라서도 아니다. 다른 세대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것 아닌가? 어느 특정 세대가 불공정함에 '뭐 그럴 수 있죠'라고 넘긴다면 그거야말로 뉴스감이 아닐까?(애초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세대 내에는 수많은 인간이 존재하기에 세대는 모든 인간을 하나로 묶을 수 없다)



성공에 있어 노력은 중요하다. 20대들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다. 10대 때 이미 뼈저리게 배웠다. '입시경쟁'에 밀린 이들은 매일같이 다양한 상황에서 읊조린다. "내가 공부를 많이 안해서"라고. 고용주가 법을 어겨도, 비합리적인 대우를 받아도, 인권침해를 받아도, 모욕을 당해도 한결같다. "내가 공부를 덜해서". 공부를 덜했기에 수많은 '벌'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누구나 안다. 노력이 중요함을. 과한 자기비판과 자기부정으로 이어질 정도로 말이다. 노력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노력도 하지 않고 성공하는 경우는 없다. 누구나 동의하는 지점일 것이다. 다만 우리사회는 그간 '흥청망청 놀고 있는 청년'이라는 이미지를 가져와서 '패왔고', 그 때마다 또 수많은 청년들은 '맞아, 주변에 보면 맨날 노는애들 천지임'이란 식으로 반응해왔다. 그러한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고, 다른 나라나 과거 세대에 비해 노력평균값이 훨씬 높음에도. 그렇게 '순응'한 것이 지나고 또 지나서 나온 게 '헬조선' 담론이었다. 그것도 심지어 '우리 노력하는데요?'라는 반발도 아니었다. '쟤네 할 줄 아는 말은 노오력밖에 없어'라는 자조와 비웃음에 그쳤다.


출처 : 네이버웹툰 <송곳>


노력 담론에서 가장 필요한 건 두가지다. 애초에 어느 세대가 노력을 하네 안하네를 따지는 건 말 그대로 우스운 일이다. 세대마다 처한 환경이 있을 뿐이고, 그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거나,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편협한 이들이나 "옛날엔 이랬는데 ㅉㅉ"라면서 과거와 현재의 인간을 동일시하고 있을 뿐이다. 노력 담론에서 필요한 얘기는 "성공에 있어서 노력은 당연한 요소다"라는 점과 "하지만 모두가 같은 수준의 노력을 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앞문장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에, 뒷 문장을 가지고 얘기가 나오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



즉, 타인의 '노력' 정도를 가지고 타인의 인성을 평가하기엔 이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다. 대치동에서 살며 학원 뺑뺑이를 하며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했기에 진학한 것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노력을 할 수 없는 여건에 처한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노력이 부정당하는 것도, 노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노력'에 쓸데없이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에 타인의 노력을 평가절하해도 된다고 여기고, 내가 어느 부분에서 노력했으면 그 이상의 것들을 성취해도 된다고 여긴다. 고시로 고위 공무원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범죄'와 '인식'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그들이 공부를 잘했기에 그런 자리가 주어진 것이지 그 노력의 댓가가 그들이 법을 어기고 타인을 깔아뭉개는 것이 아니지 않음을 우리는 긴 시간동안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이 모든 일은 "노력"이 너무 과대하게 부풀려진 사회의 결말이다. "노력만 하면 다 될거야", "너가 성취한 걸 얻지 못한 애들은 전부 노력하지 않은 애들이야"라는 인식들이 만든 비극이다.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장려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노력은 성공의 요소지 타인을 깔아뭉개도 된다는 권위가 아니며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같은 라인에서 달리는 '노력경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찬호 저, 개마고원,2013 / 청년 내부 계급화를 다룬 책


이제와서 '난 노력했는데 비정규직이 정규직되면 안되는 거잖아요' '나보다 낮은 대학 애들이 취업을 잘하면 안되는 거잖아요' '나보다 낮은 대학 애들이 나랑 같은 대접을 받으면 안되는 거잖아요'라는 인식을 가진 청년들을 지적하는 것은 살짝 우스운 일이다. 이미 우리가 10대인 시절에 교육한 내용이 그것이지 않나. 부모부터 선생, 사회까지 나서서 "수능점수가 네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며, 수능점수가 낮은 이들은 사회에서 저평가당하고 무시당하고 고단한 삶을 산다"고 죽어라 외치지 않았나. 또한 "네가 하고 있는 이 공부란 것은 완전무결하게 공평하다"고도 말하지 않았나. 공부를 하는 대신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이들, 바로 옆 친구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 학교와 학교라도 나오면 다행인 학교를 애써 무시하지 않았나. "노력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이들이 노력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는 노력을 부정하는 것도, 공정한 룰을 깨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만드는 일이고, 또 다른 누군가의 노력을 인정하는 일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논의는 바로 그것이다. 지금의 40대 이상은 노력하는데 20대는 노력하지 않는다는 쉐도우복싱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노력의 가치'가 정말로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필요하고, 노력이 정말 노력으로 남아있는지 '노오력'이나 '비합리적인 권위'로 변한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이 필요하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자극'짤이 떠돈다. 인터넷 강사를 비롯한 이들이 '공부해라' '왜 공부하지 않느냐' '왜 노력하지 않느냐'고 일갈하는 것들을 모은 것들이다. 수많은 이들이 '맞아 나 너무 쓰레기야 흑흑'이라고 댓글을 달고 공유한다. 이걸 가지고 가서 "요새 20대들은 이렇게나 노력안한다고 본인들이 인정한다"고 떠들고 다니면 웃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몇 년간 지속된 '노오력 논의'는 그런 수준이었다. 자기들이 보고 싶은대로 어떤 이미지를 가져와서 떠들어대는 것 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노력의 논의는 그게 아니다. 그 논의들을 미뤄와 놓고 이제와서 '요새 청년들은 차별이 심하다'고만 밀어붙이는 것도 모양이 이상하고, 아직도 '요새 애들은 술이나 퍼마시기나 하면서 사회불평만 많다'고 떠드는 건 아직도 지금이 2019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청년들이 노력하지 않는다'고 말할 거면, 엄한 홍대나 스타벅스를 끌어올 게 아니라 근거라도 봤으면 좋겠다. 본인들을 '꼰대'라고 '후려친다고' '억울해'하면서 왜 남들은 그리도 잘 후려치는가 말이다. 그리고, 우리모두 각자의 삶에서나 '잘 노력'하자. 괜히 다른 사람들, 심지어 다른 세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고. 그럴 시간에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이나 하는게 좋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을 지울 수 없다. 아, 물론 일련의 모습들을 보니 청년들을 '패면' 어디서 자리가 하나씩들 생기든지, 인정을 받는 것 같더라. 우스운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얘기를 하는 건 '노력 투쟁'을 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할 생각 따윈 없다. 과거의 경제성장에 대한 공과 현재 청년의 노력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두의 노력투쟁을 그만하자는 얘기다. 그냥 우리는 각자의 시대를 살 뿐 아닌가. 각자의 시대상에서 긍정적인 것을 배우는 것과 각자 '세대'의 노력을 따지는 건 엄연히 다른 일이다. '너희 왜 노력 안해?'라는 말이 사회 전반으로 흐르는 게 우스운 일이듯, '우리 노력하는데요?'라는 말이 사회 전반으로 흐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헬조선 담론'이 노력투쟁이 아니듯이, 하는 말은 하나다. "노오력만 하면 된다니까"와 "요새 애들은 노력을 안해"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지우고 있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애초에 '노오력'에 대한 그간의 지적들이 사실부터 틀린 얘기들이라는 걸 고쳐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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