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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Feb 08. 2019

'술알못'이 마실 수 있는 술?

술이 조금 더 많아지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내가 20살 때 대학에 갔을 때는, 술의 종류가 많지 않았다. 내가 고를 수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빨간 소주인지 후레쉬인지, 병인지 '대꼬리인지'와 같은 것들이었다. 아니면 '소주' or '소맥'인지 아닌지 수준. 엄청 옛날 일도 아니고, 2012년의 일이었다.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고 소주를 단 한번도 '맛있다'고 생각해 본 바 없는 나로서는 꽤나 고역이었다. 그 때야 20살이라는 기분에 나름 열심히 술을 마셨더랬지만, 내게 술은 '맛없는데 마시는 것'이었다. 특히 어린시절부터 '호기심'으로 접근한 술들, 그러니까 전 세계에 있는 다양한 맛과 종류의 술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럽여행을 나가서 매일같이 다른 술을 마셔보던 기억과 달리 한국에서의 선택지는 매우 좁았으니까. '술은 못 마시지만 술을 좋아합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내게는 사실이다. 나는 칵테일을 만드는 법이나 다양한 전통주, 맥주 종류에 이르기까지 '배우고 싶은 세상'으로서의 술은 좋아한다. 하지만 그런 호기심이 충족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맥주에 사이다를 타먹으며 '샹디'라고 떠들어봐야 사람들은 '저거저거 술 못마시니까 이상한 짓 하네'라고들 했으니까. 우리나라에 술은 소주 or 소맥이었다.


물론 몇몇 술집에선 '레몬소주'와 같은 것들을 팔았더랬다. 가게에서 직접 비율을 정해 섞어서 내놓는 것들이었고, 난 그런 술들을 파는 곳이 좋았다. 2012년에 새로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 자몽 막걸리 '아이싱'도 좋았다.그리고 몇 년이 지나 '순하리'가 등장했고, 그 이후 '자몽에이슬'을 비롯한 수많은 소주 종류가 등장함은 물론 부라더소다와 같은 다양한 술들이 등장했다. 각 지역명을 붙인 새로운 맥주들이 속속 등장했고, 다양한 맛의 막걸리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이름만 듣던 전통주들을 눈으로 확인하거나, 전통주들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들도 더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난 이런 변화가 반갑다. 사진은 잠실 롯데마트에서 찍은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만든 술들이 다양해지고, 그 술들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이 늘어났다는 건 나같은 '술알못'에게 정말이지 꽤나 기쁜 일이다.



누군가에겐 농담, 누군가에겐 진담인 이야기 중 하나는 바로 '이게 술이야?'다. 호로요이는 술이 아니다. 알코올이 조금 들어간 음료라는 것. 내겐 농담이다. 왜냐면 내겐 호로요이는 술이다. 그나마 소주 반 병을 마실 수 있었던 20살이 지나고 난 무슨 술이건 한 잔을 마시면 취기가 꽤나 오른다. 호로요이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에 가서도 한 캔을 비우는 일이 드물었다. 한 캔을 다 비우면 분명히 어지러울 것이고, 난 불쾌해지고 말 테니까. 적당히 기분 좋은 수준이라면, 천천히 3/4캔 정도를 비우는 것. 내겐 그정도만 해도 타인이 술을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런 내게 호로요이는 술이고, 호로요이는 술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는 농담이다. 하지만 때로 누군가에겐 진담이 된다. 소주 순수령과도 같은 것이려나. 혹은 알코올 순수령. 17도 이하인 것들은 '술'로 취급하지 말거라!와 같은 불호령이 떠오른다.


예전에 알바를 하던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며 '어디까지가 매운 맛의 기준인가'를 이야기한 적 있다. 나는 으레 사람들에게 불닭볶음면을 잘 먹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 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난 전주비빔밥 삼각김밥을 묻는다'고 했다. 본인에겐 전주비빔밥 삼각김밥이 매우며, 자기가 생각했을 때 진짜로 매운 걸 먹지 못하는 사람은 공통적으로 전주비빔 삼각김밥을 맵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맵지 않지만, 누군가에겐 맵다. 누군가에겐 매움의 기준이 될 수 없지만, 누군가에겐 충분히 기준이 된다. 호로요이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에선 매일 다른 맛의 호로요이를 마셨다 / 출처 : ALL ABOUT JAPAN


호로요이 역시 술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많아지면, '17도 이상만이 술이다'라는 생각이 줄어들면, 우리는 조금 더 많은 술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부라더소다가 나왔을 때, "난 부라더소다 하나만 시키면 돼"라고 이야기를 하며,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참이슬이냐, 처음처럼이냐의 선택지밖에 없던 시절, 나는 마시고 싶지도 않은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어우 쓰다'고 되뇌였고, 그 이후로는 손도 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건배엔 끼고 싶었고, 그저 잔에 손을 대지 않는 자신이 머쓱했더랬다. 부라더소다가 생긴 이후엔 괜찮았다. 얼마든지 나도 함께 건배를 하고, 함께 마시고, 함께 비슷한 정도로 취할 수 있었으니까.


나는 주류회사들 입장에서 마케팅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리는 미래의 어떤 막연한 모습 중의 하나는, 돈을 많이 벌었던 내가, 집 한 켠에 '술 아닌 술'들의 빈 용기를 잔뜩 모아두는 것이다. 대부분 알코올 도수가 6도를 넘지 않을 것이지만, 그 디자인은 꽤나 예쁠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우리 집에 놀러온다면 나는 문배주를 권할 수도 있을 것이고, 보드카를 권할 수도 있을 것이고, 달달한 술을 권할 수도 있을 것이다. 17도의 후레쉬가 아닌 술을 마시고 싶진 않지만 다른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있다. 그간은 선택지가 없었을 뿐이고, 선택지가 없으니 우리는 호로요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상상을 할 수 없었지 않을까.


체코의 펍에서 마셨던 술. 달달하니 좋았다.


유럽에서 마트에 가면 늘 술을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서머스비를 마시거나, 코젤을 마시거나, 데스페라도를 마시거나, 호가든을 마시거나, 그리고 그 외의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술들을 보며 나는 '내가 마실 수 있는, 마시고 싶은 술들이 이렇게나 많다니!'라고 기뻐하곤 했다. 우리나라 마트의 진열되는 술의 종류가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술집에 갔을 때 마실 수 있는 술의 종류가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물론 나 역시 소주나 맥주를 시킬 일이 많겠으나, '저 카페는 코젤다크를 시키면 잔에 시나몬 슈가를 잔뜩 묻혀서 주는 점이 참 좋지'라고 기억하듯 어느 술집에 가면 내가 고르고 싶은 술들이 많다는 점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맨 소주 뿐인데 뭔 술이냐'고 지나치던 마트 주류 칸에 멈춰서 '이런 술이 나왔네'하곤 집어들 것이다.


체코 마트에서 팔았던 서머스비.


'술알못'의 세상에도 술은 있다. 누군가에겐 전주비빔 삼각김밥이 매움의 기준이 되듯, 누군가에겐 호로요이도 술이다. 과거에 한창 술 블라인드 테스트가 유행하던 시절,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영상을 찍은 적 있다. 주량 별로 다른 사람이 테이블에 앉아 술맛을 보는 영상이었다. 나는 냄새를 맡고, 스포이드로 몇 방울을 짜내 아주 조금 맛을 봤다. 그리고 영상이 진행될수록 나는 취해있다. 그 영상이 담고 싶었던 건 '술알못은 이 술의 맛을 이렇게 생각합니다'였다. 얼마나 유의미한 작업이었는가를 떠나서, 나는 술알못의 취향들을 세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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