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한 적 없던 대학 생활도 'Glory Days'가 될 수 있을까
2012년, 대학에 들어간지 7년 뒤에 졸업을 했다. 정말이지 기나긴 시간이지만, 사실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몰랐다. 대학교 1학년이던 20살 때 앞으로 남은 4년의 시간을 생각하며 '대학은 진짜 길구나'라며 이 뒤에 펼쳐질 수많은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감히 셀 엄두도 내지 못했더랬다. 하지만 시간은 그런 나를 비웃듯 지나갔고, 어느새 3학년과 4학년을 지나 졸업을 맞았다. 그 중엔 군대를 다녀온 2년과 휴학을 했던 1년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졸업은 순식간에 내게 찾아왔다.
20살 때는 타카피의 글로리 데이즈를 많이 들었다. 재밌게도, 대학 OT 때 이 그룹과 이 노래를 알았다. 대학에 실망했던 첫번째 날, 대학생활을 위로해준 노래를 만났으니 아이러니하다. <오늘의 낭만부>라는 웹툰을 많이 봤다. "너희들은 낭만이 없다"는 혁집의 대사를 보고는 감명을 받았더랬다. 그 때의 나는 남다른 대학생이 되고 싶었고, 청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그런 '이미 시대가 지나가버린 단어'에 목매달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 때의 내게 대학의 인간관계는 우스웠고, 대학 공부는 지루했고, 20살에게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는 어떻게 써야할지도 모른 상태였다. 그 상태로, 내 멋대로 시간을 죽이면서 '나라도 다른 대학생을 살고자' 했다. 수업을 멋대로 빠진다거나, 사진전을 다닌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온오프믹스를 통해 재밌어보이는 행사를 참여한다거나, 독립서점을 찾아 서적을 구매한다거나, 출사를 나간다며 몇 년뒤 '핫플레이스'가 되었던 서울 곳곳을 둘러보거나 하는 일들. 그리고 청소년 때부터 해왔던 대외활동을 이어가고, 새로운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일들로 '청춘'이나 '낭만'과도 같은 단어를 쟁취할 수 있을리는 없었고, 나는 '미친듯이 몸부림쳐봐도 뒤로 가는 것 같은 나의 삶'으로 느껴지는 수많은 순간들을 외면하며 1학년을 마쳤고, 군대에 갔다. 그 때 나는 페이스북에 스스로를 '자유인'이라고 칭하고 있었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고등학생 때, 어느 행사에 참여하러 서울대에 간 일이 있었다. 거기엔 어느 잡지가 있었는데(대학생을 위한 잡지였나 대학생이 만든 고등학생을 위한 잡지였나 기억이 잘...), 그 잡지를 만든 서울대생은 온갖 공모전에 나가 수상을 해서 수 천만원을 벌었고 그걸로 해외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그 때 난 그걸 읽으며 내 대학생활도 저리 만들 것이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수많은 대외활동을 하고, 공모전을 나가고 하는 대학생활을 꿈꿨지만 난 그런 대학생활을 살지는 않았다. 아예 그런 걸 꿈꿨다는 사실조차 까먹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너무 바빴다. 현재 대학에서 학기를 보내는 과정에서 놓치게 되는 가장 아쉬운 점은 '일상의 루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주매주 닥치는 수업과 과제, 시험을 치르고 나면 어느새 학기는 끝나있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빡빡하게 채워넣은 학점, 수많은 발표들, 매주 써가야 하는 과제, 아르바이트, 고함20 활동을 하고나면 남은 시간은 거의 없었다. 빈 시간 곳곳을 애인과의 데이트로 채우고나면 정말로 살아내기에도 빠듯했다. 2015년 2학기는 월에 60가까이를 벌었는데, 월화수에 수업을 몰아듣고 목금토일을 일했기 때문이었다. 그 학기에 교내 공모전에서 탄 상금도 합치면 80~90정도는 됐었던 것 같다. 돈을 벌었기에 유럽에 다녀올 수 있었으나 그 때의 나는 단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살아내기에 바빴다. 오죽하면 어느 단기 알바를 일찍 마친 날, 대외활동 회의를 가기까지 남은 2시간이 3주만에 있었던 첫 자유시간이었고, 시청에서부터 하릴없이 1시간 반 정도를 걸었다. 목금토일 중에선 때로 쉬는 날도 있었고, 주말은 풀타임을 일하진 않았으나, 그렇게 돈을 벌며 나는 종종 아팠고, 턱관절염도 얻었다.
그 이후엔 그보다 조금 낮거나 비슷한 소득을 올리면서 조금 더 여유롭게 학교를 다녔던 것 같다. 여행을 갈 돈을 모을 필요는 없었기에 내가 쓸 것만 벌어도 충분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사실엔 큰 차이가 없었다. 2012년 '자유인'으로 스스로 명명했던 때와 말 그대로 적응하기 바빴던 2015년 1학기를 제외하면 늘상 내겐 남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놀랍게도, 2015년 1학기를 끝내면서도 나는 이 이상 무언가를 채울 순 없을 것 같다고 적었는데, 그 이후에 더 채워넣었더랬다). 보통 한 학기에 2개의 일을 했고(프리랜서 식으로 일하는 일들이 꽤 자주 있었다), 20대 미디어인 고함20에서의 활동도 유지하고 있었고(슬슬 퇴직 준비를 하던 2016년 2학기를 빼곤. 심지어 2015년 2학기엔 일주일에 2회 회의와 월간 회의에 갔고, 기사를 썼다), 여전히 데이트를 했다. 대부분은 잠실에 나가는데만도 빨라야 40분은 걸리는 하남에 거주하던 때였으니, 시간은 더욱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뭇내 아쉽다. 더 채워넣지 못한 것이. 2016년 JENESYS로 일본에 다녀오고 나서, 내 생활에 다른 것들을 그간 끼워넣지 못함을 두고 후회하곤 했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졸업이 결정된 1,2개 월전에도, 페이스북에 우연히 뜬 '대학생 연합 사진동아리' 홍보를 보고는 생각했다. 나도 저기에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그렸던 대학생활이란 저런 것이었는데 하고 말이다. 사실, 그런 것들 투성이다. 더 많은 공모전에 나가고 싶었고, 더 많은 일을 해보고 싶었고, 더 많은 것을 이뤄내고 싶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도 하고, 조금 더 전문적인 능력을 익히기도 하고, 공모전에서 한 1,000만 원 정도 되는 상금도 타고, 사진전을 연다거나 하는 개인적인 프로젝트도 하고, '인싸'처럼 생활도 하고, 악기나 제2외국어를 배우기도 하고, 그냥 그 무엇이든. 내가 봐왔던 사람들처럼.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멋진 '대학생활'을 하고 싶었다. 더해서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법한 경험을 하고 이뤄내고 싶었다. 그러지 못한 게 사무칠 정도로 아쉽다. 하지만 동시에 안다. 그 모든 것이 가능한 게 아니란 걸. 그리고 내가 이룬 것도 많다는 걸. 그러니 비교하지 말고 만족해야 한다는 걸.
참 많은 실패를 했었다. 대학을 가는 것부터, 사람들을 만나는 것, 연애, 공모전, 성적, 동아리 등등. 세상은 쉽지 않았고 나는 부족했다. 주어진 환경은 제한적이었고 대부분의 일들은 내 예상이나 계획을 벗어나는 것들이었다. 포기를 하며, 분한 마음을 늘 다잡곤 했다. 최종에 진출하지 못했던 전국 프레젠테이션 대회를 1주일만이라도 더 일찍부터 준비할 수 있었다면 상을 타지 않았을까, 고등학생 때부터 했던 활동을 더 잘 마무리지을 수 있지 않았을까, 더 일찍부터 이런 활동을 했다면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수많은 인간관계를 더 만들거나 멀어진 관계를 더 가깝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만약, 내가 좀 더 여유로운 환경이었다면 어땠을까... 포기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많은 과정들이 내 대학생활의 한 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걸 가졌고, 이뤘다. 최소한 등록금을 마련할 필요는 없었고, 운이 좋아 조금 더 효율적으로 돈을 버는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아서 큰 돈을 들이지 않고 대학생활 동안 2번 유럽을 다녀올 수 있었고(물론 식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가난한 여행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시험공부라곤 일주일 전이나 전날에 한 게 전부인 것 치고는 성적도 괜찮게 받을 수 있었고, 꽤 많은 곳에서 말하고 글쓸 기회를 얻었고, 고함20 활동을 통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즐거운 경험들을 할 수도 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벌었던 것 치고는 꽤 괜찮은 소득도 올릴 수 있었고, 좋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었고, 꽤 좋은 관계들을 쌓아나가기도 했고, 대학생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경험할 일도 꽤나 있었고,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이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계속 써왔던 글이 성과로 돌아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썩 괜찮은 시간들이었다고 여길만도 하다. 중요한 건 비교하지 않고, 아쉬워하지 않고, 뒤돌아보는 대신 앞을 바라보는 일이리라.
몇 가지 기억나는 풍경들이 있다. 종강하던 날, 마지막 시험을 끝내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캠퍼스를 내려오던 때. 1학년 시절, '이런 게 정말 대학 수업이지'라고 생각했던 교양 수업을 들었던 때. 전역을 하고 복학해서 기숙사에 첫 짐을 풀고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룸메 자리를 비워둔 채 홀로 잠이 들었던 때. 오후 수업을 듣고 방에 돌아와 저녁을 먹기 전 베란다에서 볼 수 있었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교정의 풍경. 교내 프레젠테이션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탔던 때. 동아리 사람들과 축제를 준비하고, 마치고, 정산을 하던 때. 발품을 팔아 방을 구하고, 계약을 하고, 입주를 하던 때. 아침부터 수업을 풀로 듣고, 저녁을 먹고 도서관에서 작업을 하고 사물함에 짐을 내려놓고는 교내 헬스장에서 1시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와 공부를 하고 12시가 되면 자취방으로 터벅터벅 돌아오던 때와 그 길. 독립언론을 만들어서 매일 밤마다 모여 회의를 하고, 기사를 쓰고, 발행을 하고, 그 성과를 함께 자축했던 때. 학교 일에 무관심했던 부채감만큼 학교 일을 직접 마주하고 해결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기분에 들떴던 때. 그리고 그것을 포기하고 놓아버려야 했던 때. 룸메이트 형과 새벽의 절반이 지나도록 온갖 주제로 이야기를 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때. 가을이 되면 바닥을 수놓는 붉은 낙엽들과 휘날리는 이파리, 살랑거리는 바람과 부서지는 햇살 속에서 길을 오가던 학생들. 주변의 음식점들을 다 가보겠다며 한참을 걷던 때. 10박 11일 간의 일본 탐방 일정을 마치고 트렁크를 끈 채로 그대로 자취방에 들어와 바로 수업을 갔던 때. 매 학기마다 3,4번 이상 씩은 했던 발표의 떨림들. 수많은 이유로 다급하게 교정을 뛰어다녔던 때. 그런 수많은 순간들. 한 주 한 주의 진도만큼 빠르게 지나가버린 나날들. 실망하고, 기뻐하고, 놓치고, 성취하고, 싫어하고, 좋아하고, 잊어버리고, 또 배웠던 시간들.
내가 상상하고 기대했던 대학생활은 아니었고, 타인이 선망할만한 대학생활도 아니었으며, 흔히들 '대학생이라면 해봐야 한다'는 것들과 거리를 둔 채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워나가기에 여념이 없었던 대학생활이었다. 그 흔한 축제 한 번 제대로 즐겨본 적 없이 언제나 바쁘게 지냈던 대학생활이었다. 생각만큼 자유롭지도, 기대만큼 들뜨지도,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지성의 요람'이라고 느끼지도 못했다. 내게 대학은 방만, 자유, 방황, 지성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치열하게 살아내야할 삶의 현장이었고, 준비하는 대신 증명하고 실천해야하는 공간이었고, 무언가를 가지는 대신 포기해야하는 곳에 가까웠다. 캠퍼스의 다른 학생들을 볼 때마다, 미디어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타 대학생들의 삶을 볼 때마다, 나의 대학생활은 저렇지 않음을 안타까워하기도 하며 동시에 묵묵히 받아들이곤 했다. 그럼에도 이곳이 '바깥의 세상'에 비해 얼마나 자유롭고, 방황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곳이며, 준비를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수많은 책과 논문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도서관이라는 곳을 이용할 수 있다는 특권, 내 일상을 채우는 수업이라는 일을 내 마음대로 포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자유, 원한다면 부담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여유와 문화가 여전히 부럽고, 그립다. 농담삼아 '현금으로만, 돈 쓸 준비가 된 학생을 대상으로 세금도 내지 않고 장사를 할 수 있는 축제기간 때 돈 한 번 못 벌어보고 졸업할 순 없지'라고 떠들어댔었는데, 여전히 그렇다.
대학이 아니라면 내가 언제 그러한 시도들을 할 수 있을까. 동아리방에서 함께 떠들어대다가 새벽 한 시 즈음 술과 먹을거리를 사러 어슬렁 편의점에 다녀오고, 교수님이 문득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야외에서 짧게 수업을 하고 마치도록 하죠. 부족한 진도는다음 시간에 채우도록 하고, 남은 시간은 이 봄날을 즐기도록 하세요'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뜬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던 곳. '아마추어'스러운 것이 기분좋게 용서가 되고, 또 용인이 되고, 비효율이 받아들여지는 곳. 그런 곳이 앞으로의 생에서 대학말고 또 있을까하면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대학은 상업화되가고 있고, 학생의 수업권은 갈수록 무시받고 있으며, 지성의 전당이라는 거짓말을 통해 자신들의 비효율과 무능을 숨기려하고, 수많은 비합리 속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당연한 기준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으로 계속 거듭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곳이 마지막 남은 어떤 보루같은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는, 아이러니함. 그리고 난 이 아이러니함에 끝없이 실망하고, 자조하고, 부정했으며 동시에 열망했고, 사랑했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독립언론을 하며 대학본부의 수많은 부정과 비리를 목도하고 한탄해왔음에도, 여전히 대학이란 공간을 쉽게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 공간에 발을 들일 수많은 새로운 이들에게 조금 더 나은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내가 가지지 못했던 순간들을 만끽할 수 있기를, 또 내가 얻어간 것들을 얻어갈 수 있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이 더 많은 이들에게 허용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대학이 정말로 싫었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졸업이 가까워지며 이 공간을 꽤나 좋아하게 됐노라고, 그리고 그곳을 떠나게 된 지금은 도리어 그리워하게 됐노라고 쓰는 건 정말이지 이상야릇한 기분이다. 하긴 인간은 원래 지나고 나면 추억보정이란 걸 하게 마련이니까. 4년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다. 짧다. 4년의 시간은 한 주 한 주로 쪼개져 있고, 그 한주를 살아내다보면 '화석'이라는 호칭과 함께 졸업은 눈 앞에 다가와있기 마련이니까. 대학을 부정하고, 미워하고, 실망했고, 또 싸우려고도 했던 나도 이제 이 공간을 떠난다. 애증이라고 하기엔 훨씬 더 복잡미묘한 감정을 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3년 있었던 시간마저도 떠날 때가 되면 서글퍼지는 일인 것을,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대학생'이라고 명명할 수 있게 해주었던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길이 어찌 편하기만 할까. 몇 번이나 글을 쓰고, 글을 지웠던 것도, 그 어떤 이야기도 내가 드는 생각과 겪어왔던 시간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나를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대학과 대학생활은 언제나 '모호함'이었던 것 같다. 장대한 아이러니를 품고 있는 모호한 공간. 그만큼 나의 글도 정확하지 않고 모호해질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을 하는 것만이 그래도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애매한 감정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졸업식에 아쉬운 일이 있다면, 내가 대학생활을 보냈던 글로컬캠퍼스가 아니라 서울캠퍼스에서 통합으로 하는만큼 정든 공간에서 끝낸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막학기 때 따로 캠퍼스 사진을 찍고자 했으나 시간 여유가 없어 미뤄졌고, 이제는 '졸업 후에 다시 찾을 핑계거리를 남긴 셈'이라고 생각하며 또 시간을 흘러 보낸다. 졸업식 그 자체는 놀랍도록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었으나, 입학식 역시 그러했고, 하지만 입학 이후의 삶이 이전의 삶과 비교했을 때 천지차이로 달라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졸업식 이후의 삶도 역시 그러하겠지. 나는 대학내일 잡지에 나올법한 '인싸' 대학생의 삶을 살고 싶었던 걸까? 그게 아니면 많은 것을 성취하고, 대학에서나 가능한 시도를 하고 있던 '성공한' 대학생의 삶을 살고 싶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것이 부족해서 아쉬움이 남는 것일까? 이제는 나도 내가 어떤 대학생활을 가장 바라는지 모른다. 아니, 사실은 처음부터 그랬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사실은 BEST라고 불릴만한 대학생활은 없을 지도 모른다. 그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들을 하며 살아왔을 뿐이고, 그렇게 다양한 색깔의 스펙트럼으로 채워진 대학생활이 있을 뿐이다. 내가 대학생활을 앞으로도 지속해야하는 이들에게 남길 말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건 무슨 색깔로 채워지든 그건 본인의 대학생활이며, 부디 그 존재를 지우지 않기를 하는 바람이다. 나 역시도 그 믿음을 가지고 내 스펙트럼을, 내 대학생활을 긍정하며 살아갈테니까.
이건 20살 때 제출했던 어느 과제의 일부. 지금 생각해보면 놀랍고 우습지만, 이 때는 한없이 '청춘'을 긍정하던 시기였다. 그랬다. 이 때의 나에게도, 모두에게도, 대학생활이 'Glory Days'가 되기를.
나의 대학생활은 그렇게 오늘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쳐 가고 있다. 그렇게 내 예상과 다르다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더 사라질 것이 뻔하기에 그 지나침이 아쉽고, 지나쳐 온 것들이 아쉽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있다면 길에서 약간 벗어난 덕분에 옆에도 수많은 길들이 있음을 발견했다는 것이고, 일렬로 가는 개미처럼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는 것 같았던 많은 대학생들도 옆에서 바라보니 내가 그들을 마음대로 평가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로 열심히 삶을 영위하고 있었음을 발견했다는 것이고, 그들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고 그렇기에 판타지가 말 그대로 판타지로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말의 기대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이고, 앞서서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수많은 길들을 개척해온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비교적 편하게 그 길들과 여러 길들을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크게 실망했기에 이제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대학에 대한 인식이 있다는 것이고, 내가 그렇게 평가하기에는 내가 아직 훨씬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그래도 나는 20살의 대학생이라는 것이다.
욕한 다음 칭찬하고 비판한 다음 마음에 들어하고 후회한 다음 고치고 열심히 살았다가 나태해지고 실망했다가 반가워하고 싫어했다가 좋아하고 하는 수 많은 방황과 무의미해보이는 생각타래들이 그 동안의 내 대학생활을 채워왔지만, 그래도 그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회가 아무리 각박하고 내가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 한들 내가 청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다는 것. 하루하루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의 싱그러운 시간을 나는 풍족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 그 사실만큼은 어린시절부터 꾸어왔던 판타지가 아니라 내일이면 해가 뜬다는 명백한 사실임이 틀림이 없기에 그래도 난 그 방황과 혼란 속에서도 웃음을 지니고 있는 거라고 믿는다. 지나온 시간이 아쉽고 후회스러울 때도 있고 섣부른 판단과 부족한 지식이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그것을 그렇지 않게 고쳐나갈 시간도 남아 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황과 혼란, 비참함과 배신감, 무기력함 속에서도 나는 내 대학생활에 대해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아, 나의 청춘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라고 그때는 마무리를 지었다. 분명 과제가 저런 내용을 적으라고 했던 건 아니었겠지만,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떠들어 댔던 것 같다. 스물을 지나고 난 뒤에는 청춘이란 말 자체를 우습게 여기게 됐고, 어디선가 인용했는지 기억조차 나지않는 저 문장보다도 더 좋은 문장이 나의 대학생활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20살에는 저렇게 나의 20살을, 대학생활을 생각했던 것이었고, 지금의 나는 그때로부터 많이 변했고, 자랐고, 부딪혔고, 나아갔다. 그만큼 많은 일을 겪었고, 조금 더 현실적이고 재미없는 사람으로 바뀌었고, 그 때 품었던 꿈이나 이상들도 버려졌거나 색채를 잃었고, 그 때 만나던 사람들 중 꽤 많은 이들과 교류를 하지 않게 됐거나 줄었고, 지식이 늘어난 대신 더 냉소적이 됐고, 무엇보다 '나의 청춘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고 스스로 문장을 적을 정도의 자신감과 같은 감정들도 어딘가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되돌아가지는 않았고, 그렇게 지나온 길을 지나며 한 두 마디, 과거와는 다른 문장을 남길 순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느 내용이 나오든 간에 그간을 소회하는 글을 써보자는 마음을 먹게 된 이유였다. 2012년의 내가 청춘, 그리고 여러모로 절망하고 방황했던 당시의 상황 속에서 긍정을 찾아갔다면, 지금의 나는, 그간 헤쳐왔던 덤불로 가득한 길을 되돌아보면서, 이제는 하나의 길을 빠져나왔고 이제는 또 다른 길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지나온 길이 썩 괜찮았다고 생각하는 정도려나. 가보지 못한 길의 아쉬움은 그대로 두고, 나는 또 내가 갈 길을 가면 될 뿐이다. 가지 못한 길을 두고 자신을 탓하며 침잠하던 기억은 19살과 20살이면 충분하니까.
"기대하지 않았어도, 아름답지 않아도, 지나온 여정의 순간순간들은, 꽤 '괜찮았다'"
미친듯이 몸부림 쳐봐도
뒤로 가는 것 같은 나의 삶
시작은 있었었는데
끝이 안보이는 너의 꿈
꿈이라는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지 못하는 맘
찢긴 날개를 붙잡고 눈물 흘리기를 10여년
아침이 밝아 오면 솟아나리라
기다림을 알게됐을 때
오늘은 그대의 날 오늘은 우리의 날
어제보다 아름다워진 당신과 나의 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 그 순간
my glory days
사랑하는 이에 대한 미안함
나의 꿈에 대한 서운함
아무것도 하지 못한 불안함
그래도 주먹 불끈 다시 삶
한발 더 내딛을 때에 뛰어오를 때에
떨어져날릴때에 하지만 보란듯이
오늘은 그대의 날 오늘은 우리의 날
어제보다 아름다워진 당신과 나의 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 그 순간
my glory days
아침이 밝아오면 솟아나리라
기다림을 알게됐을 때
오늘은 그대의 날 오늘은 우리의 날
어제보다 아름다워진 당신과 나의
오늘은 그대의 날 오늘은 우리의 날
어제보다 아름다워진 당신과 나의 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 그순간
my glory days
타카피 - 글로리 데이즈Glory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