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효훈 May 08. 2019

네, 저는 그 음식이 별로에요.

미식가와 초딩입맛 사이에서


몇 년 전, 수요미식회가 사회에 미치는 열풍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었다. 수요미식회에 나온 가게들이 임대료가 올라 이전하게 되거나,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거나 하는 일들이 생긴다는 것. 그 때 나는 수요미식회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긍정하는 지점이 있었는데, 그건 '우리가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나 '우리에게 음식이란 무슨 의미인가'를 다룬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 '맛집 프로'라는 건 고작해야 '어느 동네에는 해물을 산더미처럼 주는 곳이 있다!?', '이렇게 양이 많은데 만 원 밖에 안한다구요??', '여름엔 시원하게! 새로운 냉冷 음식들!'과 같은 수준이었다. 음식에 무슨 스토리가 있는지, 이 음식엔 어떤 이야깃거리가 있는지, 이 음식은 왜 가격이 비싼지, 이 음식과 관련되서 우리의 추억은 무엇인지를 논하지는 않았다. 싸거나/양많거나/뭔가크거나/신기한 것이 우리가 소비하는 음식 프로의 이야기였다.



난 그게 싫었다. 돈가스라고 하면 흔히들 나누는 일본식 돈가스/한국식 돈가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최근의 돈가스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송이 필요했다. 최근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천호동의 한 식당이 '월 1억매출 신화' 가게로 소개가 됐더라. 근데 그건 나는 관심이 없는 이야기다. 나는 저 가게가 어떤 쌀을 쓰고, 무슨 생각으로 음식을 만드는지가 궁금하지 저곳의 매출이 궁금하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가 소비하던 방송이란 으레 그런 것이었다. 손님을 보여주고, 음식이 나오면 박수를 치고, 오버스럽게 정말 맛있다는 말과 뻔한 평가를 남발하고, 하루 매출을 보여주는 플로우. 그게 아니면, MSG를 쓴다는 이유로 '나쁜 식당'이라고 호도하는 사기를 여과없이 내보내는 방송까지 있었다.



방송계의 흑역사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수요미식회의 긍정적인 측면은 "난 별로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비록 그것이 초딩입맛으로 치부되기는 했어도, "아니, 근데 나는 이래서 좀 별로였어. 내취향은 아니야"라고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게 중요했다. 누군가는 매운 맛이 싫을 수도 있고, 단 맛이 싫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라면에서 쫄깃함을 선호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간의 맛집 프로라는 건 그런 모든 취향이 삭제된 상태였다. 그리고 말했다. "이 집의 음식은, 모두가 맛있대!"



'대부분'이 맛있게 만드는 법은, 그런 방송에서 소개된 것처럼 하면 된다. 밍밍한 대신 자극적이게, 적고 예쁘게 담는 대신 푸짐하게. 그리고 모든 맛을 숨겨버리는 치즈와 매운맛의 조화같은 것들. 나 역시도 그런 맛을 선호하고 즐겨먹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음식'만'이 맛있는 건 아니지 않나. 또 누군가는 '요새 핫하다는 음식점들은 왜 맛이 다 똑같은거야?'라고 할 수도 있지 않나.



그건 우리나라에 팽배한 고정관념에 '한 방 먹이는' 시도로서 유의미하다고 생각했다. "회를 초장에 찍어먹어? 회 먹을 줄 모르네~", "이걸 안먹어? 맛 모르네", "아직 맛을 몰라서 그래. 어린이다 어린이", "그거 그렇게 먹는거 아니야. 어디가서 그렇게 먹지마", "내 앞에서 그렇게 먹으면 진짜 짜증나"와 같은 말들. 우리나라에선 늘 그런 말들이 식사 시간에 따라 붙었다. 난 옛날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신이 맛있어하는 방식과 내가 맛있어하는 방식이 다른데 왜 내게 당신의 취향을 강요하는가? 음식의 맛이란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가? 


"어촌인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다 초장 찍어먹는데 서울 오니 회는 초장에 찍어먹는 게 아니라는 소리를 하고 있더라"는 지인의 말이 기억이 난다. 



그건 하나의 '권위'였다. 그래서 난 늘 농담삼아 '맛알못'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곤 했다. 그건 일종의 비꼼이었다. '술알못'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잘알'이 되는 방법은 공부를 하거나, 배우거나, 직접 체험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전반에 흐르는 인식에 동의하면 됐다. 내가 양파 한 번 썰어본 적 없더라도, 음식이라곤 주어진 대로만 먹었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 정확히는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생각과 인식에 맞장구를 치고 그렇게 행동하면 '먹을 줄 아는 놈'이 됐다. 흔히들 '아재 음식'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좋아한다고 하면, 아재들이 먹는 방식대로 음식을 먹으면 맛을 아는거고, 아니면 초딩입맛이고 맛을 모르는 것이다였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었나보다. 한창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러한 게시물들이 돌았다.



물론 내가 음식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익힌다 한들 그것이 '맛잘알'이 되는 근거는 아니지만, 내가 매일같이 여러 개의 요리 관련 방송채널을 보고 책을 읽어도 '아 전 그거 별로 안 좋아해서'라고 하면 그건 '맛알못'이 되는 거였다. 그래서 난 <수요미식회>가 존재가치를 잃는 순간은 황교익의 '00씨는 맛을 몰라~'라는 말이 프로그램 전반에서 동의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입맛은 다른거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사회에 퍼뜨리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물론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많았다. 라면이나 떡볶이 편을 할 때, 평양냉면을 다룰 때가 그랬다. 초딩음식을 다룰 땐 이게 무슨 맛이냐~는 이야기들이 돌았고 평양냉면을 밍밍하다고 평가하면 우스워지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먹는 것이 맛을 돋운다"거나 "이게 제작자의 뜻이다"는 건 얼마든지 소개할 수 있는 법이지만, "이렇게 안먹어? 평양냉면 먹을 줄 모르네~", "평양냉면이 걍 밍밍하기만 해? 맛을 모르네~"라는 말로 바뀌는 것은 한 끝 차이였으니까. 그리고 방송과 별개로, 우리 사회에선 실제로 그랬다. 한동안 '평양냉면부심', '면스플레인'을 봐야했다. 



난 그게 싫었다. 흔히 말하는 '미식가'들의 깔아뭉개는 태도. '난 이런 것도 아는데 너희는 모르지? 하찮은 놈들"이라는 느낌. 그리고 또 한쪽에선 '미식'이 아니라 '가성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음식 콘텐츠. '유행'만을 좇는 분위기. 내가 생각하는 미식은 개인의 것이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가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는다 한들 "고로 맛알못이네"하지 않고 그냥 '저 사람은 술을 안 마시는 구나'하는 생각이 당연하듯, 내가 미식을 즐긴다고 해서 타인을 깔아뭉갤 당위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고로가 술 대신 우롱차를 양껏 마신다고 한들 그것이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만큼 '미식'은 어떤 고고한 취미같은 것이 됐고, 그 격차가 싫었다. <수요미식회>는 그 격차를 줄여나가는 첫번째 방송이라는 생각이었다. '난 이게 싫던데?'라고 말하는 것. 음식 그 자체에 대해, 음식을 먹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것이 새로운 음식 문화의 출발이었으니까.



그리고 식당이 추구하는 소소한 가치들, 노력들에 대한 관심이 전 사회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식기를 들이는 것, 위생관념이 투철한 것, 깔끔한 가게 내부와 같은 것들. 하지만 그간 느꼈던 건 '음식'만 남았다는 것이었고, 최근에는 음식과 별개로 '가게가 예쁘기만 하면 되지'라거나 '힙하기만 하면 되지'라는 생각들이 뜬금없이 치솟고 있는 건 아닌지.



이를테면 노포에 대한 것들도 그렇다. 난 노포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중요시하지만, 노포라는 이유로 위생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꼭 재건축을 하고 가게이전을 해야만 깔끔해질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냥~ 오래된 집이잖아' 혹은 '뭐 맛집이니까'라는 이유만으로 부족한 위생관념에 대해 눈감아 주는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닌 건 아닌 거다. 김밥천국이 위생이 별로면 뭐라 해도 되지만, 유명한 맛집 노포가 위생이 별로라고 '그게 뭐 어때서'라고 어물쩡 넘어가는 건 맞지 않다. 요리를 내는 사람이라면 위생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동안은 그런 다양한 요소들이 음식이나 식당, 맛 평가에 들어가지 않았고, 난 그게 싫었다. 


음식을 먹는 공간은 '당연히' 여러 것들이 함께 평가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무언가 부족한 점은 없는지 확인하는 서버의 태도, 독특한 시도, 대기인원을 대하는 방식, 가게에 흘러나오는 음악과 그 볼륨, 깨끗하게 닦여진 식기, 위생관념과 재료관리가 철저한 주방,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음식을 내는 가게, 간판, 내부 인테리어, 의자의 편함 정도, 음식을 내오는 방식, 메뉴판의 정렬, 예상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가게의 모습, 음식을 추천하는 매니저... 그 모든 것들이 실제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땐 고려되는 지표들이지만, 그간 맛 방송에선 없었다. 


이를테면 많은 이들이 칭찬해 마지않는 <하동관> 본점은 내게 맛을 떠나 황당한 곳이었다. 내가 원하는 메뉴를 이야기해도 다른 메뉴가 더 맛있다며 그걸 억지로 주문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그리고 고민하는 사이 결제를 해버린다. 비단 <하동관> 뿐만이 아니라, 노포라고 불리는 곳들은 으레 불친절이나 접객의 미숙함을 '정'이나 '친근함' 따위로 덮어버리곤 했다. 


 맛과 별개로 그러한 지점들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있어야 하고, 반대로 신기하다거나 힙하다는 이유만으로 맛평가를 뒷전으로 하는 최근의 평가들도 문제가 있다. 수요미식회는 '그래도 나에게 이건 좀 별로였다'라는 이야기가 들어간, 유의미한 시도라는 점에서 난 긍정적인 면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물론 수요미식회도 놓치는 지점이 많았고, 그게 늘 싫었지만. 


그간의 거대한 성이었던 미식을 무너뜨리고, 모두의 것으로 돌려주는 과정. 하나의 입맛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입맛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 음식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을 따지는 것. 그것이 우리나라 식문화 개선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걸 다루는 콘텐츠는 거의 없었다. 한쪽에선 '맛도 모르는 것들'이라고 이야기하고, 한쪽에선 '밥 하나 먹는데 뭐 그리 까다로워?'라고 이야기하는 건 이상했다. 


내겐 음식점의 주인이 음식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 인테리어를 하고 재료를 사고 그릇에 담는 등 모든 경험이 중요하다


결국 미식가들이 만든 미식이라는 성은 드높고, 한 쪽에서는 서로를 '맛알못'으로 지칭하는 일이 벌어지는만큼 사람들은 대안을 찾아다녔다. 잡지에서, 방송에서 추천하는 곳이 그 답이었고, 그곳을 가면 조금 더 '검증된 곳, 허용된 곳'에서 음식을 소비하는 행위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돈카2014'가 정말 맛있네요!라고 하는 건 비판받지 않으면서 고고한 미식에 가까워지는 길처럼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조금 더 깨끗하고, 주인장의 의지나 생각이 표현되는 가게에서, 가격에 상응하는 맛을 가진 음식을 먹고 싶다. 다만 우리사회에선 '난 이게 싫다'고 하면 '까다롭네~'라며 면박을 줬고, '이게 맛있다'고 하면 '초딩입맛이네. 맛을 모른다'고 무시했다. 내게 필요한 건 음식을 소비하는 행위를 조금 더 복합적으로 고려하는 시각, 다양한 입맛을 존중하는 태도가 갖춰진 콘텐츠다. <수요미식회>는 내게 그 점에서 단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가치를 인정할만한 프로그램이었다(하지만 안 본지 꽤됐다. 갈수록 길을 잃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언제쯤 그 이상의 콘텐츠를 볼 수 있을지. 평소에는 '집밥의 맛'이라는 주관적인 맛에 대해 비이상적 찬양을 보내면서도 한 편에서 '타인의 주관적인 입맛'을 깔아뭉개는 시도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천편일률적인 기준을 따르기를 강요하는 이곳에서 꿋꿋이 '내 맛'을 찾아가는 건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쉬운 스물을 지나, 나는 졸업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