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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Aug 28. 2019

사실 우리의 삶은 꽤나 엉망진창이다

그것이 위인의 삶이라 할지라도 - 영화 <JOY> 리뷰


조이

JOY, 2015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넌 꼭 성공한 여성이 될거야


이 영화는 실화영화다. 실제 큰 성공을 거둔 미국의 여성 CEO '조이 망가노'의 이야기다. 물론 난 원래 이 분을 알지는 못한다. 어쨌거나 지금은 최대 홈쇼핑 채널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 찾아보니까 이런 사이트가 나온다.



이 영화에 대해 처음 받은 인상은, "굉장히 독특하다"였다. 성공실화를 다룬 영화 중에서 이런 느낌의 영화를 본 적이 있던가?라고 스스로 되물을 정도였다. 무릇 성공영화라는 건 굉장히 직선적이라고 생각해왔다. 힘겨운 시절을 거치는 주인공, 그리고 노력과 행운, 마침내 거두는 성공, 찾아오는 실패와 그것을 이겨내며 더 큰 성공을 이루는 주인공. 조금 더 압축적으로 담는다면, 실패 속에서 끝내 성공을 거두는 주인공 정도려나. 


그 과정에서 주변 환경은 철저히 '통제가능'한 것이 된다. 주인공의 노력을 통해 바꾸거나, 아니면 주인공을 쓰러뜨릴만큼 단단치 못하거나. 주변인들의 삶 역시 최대한으로 단순해지면서 '조력자', '방해꾼', '배신자' 정도로 남는다. 하나 정도 더한다면 그의 성공을 뒤에서 응원하는 가족이나 친지, 애인 정도려나. 그 단순함을 메우는 건 결국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이고, 어쨌거나 꽤나 개운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게 실화 성공영화였다.


하지만 <조이>는 그 시작부터 다르다. 시작은 드라마다.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흑백의 드라마. 그리고 이 드라마는 '지겹도록' 주인공 '조이'를 따라다닌다. 영화의 배경은 주로 1990년 대, 조금 더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들이 그려진 영화 배경 속 드라마는 그보다 더 예전인 흑백이고,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당하는 동시에 고뇌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조이의 할머니가 전하는 내레이션으로 흘러간다.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끈기와 집중력을 가지고 손재주를 발휘하죠. 조이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어요



처음 등장한 드라마는 지긋지긋하게 조이를 따라다닌다. 일찍이 남편과 이혼한 조이의 어머니는 그 슬픔을 안은 채 이 드라마에만 몰두할 뿐이다. 안락한 침대에서, 한껏 꾸민 채, 드라마를 보는 것이 일상의 전부. 마찬가지로 드라마의 주인공 '클라린다'는 '자신만의 삶'을 찾기 위해 '총을 쏴야 하는' 선택을 두고 고뇌하는 것이 전부다.





카페트에 곰팡이가 슬어도, 엄마의 부주의함으로 바닥이 벗겨져 물이 새도 엄마는 그저 침대에서 드라마를 볼 뿐이다. 그 모든 걸 해결하는 건 조이다. 동시에 조이는 집안의 가장으로 일을 해야 한다. 비행기 발권을 돕는 일을 하며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하면서, 이혼한 남편과의 자식 3명까지 키워내야 한다. 그 이혼한 남편은 집 지하실에서 노래만 부르며 제 멋대로 살 뿐이고, 엄마와의 이혼 뒤 집을 떠난 아버지는 여러 여자친구를 거치다가 결국 머물 곳이 없어 집에 돌아온다. 시도때도 없이 엄마와 자신의 전남편과 충돌하는 아버지 역시, 조이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뿐이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했던 아버지 일을 도우며 자랐지만 그곳에는 계속 자신을 견제하는 이복 언니가 있다. 이 영화가 특이한 점은 바로 그들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많다는 점이다. '지긋지긋'한 환경. 그 속에서 불안한 심리를 영화는 그대로 표현한다. 부모님이 이혼하던 날 버려지던 자신의 작은 발명품을 바라보는 조이, 17년 간 땅에서 사는 매미에 대한 책을 읽어준 뒤 "17년 전의 삶을 잊어버렸다"고 자신을 책망하는 목소리를 만나는 조이.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영화의 전개는 복잡하다. 주인공에게 초점이 맞춰지기엔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단순하게 시간대를 따라 전개되는 대신 할머니의 내레이션, 자신을 힐난하는 딸을 만나는 꿈, 남편을 만나 사랑하고 이혼하는 과거의 모습들이 뒤엉키며 영화는 진행된다. 하지만 그 모습들은 잔인하다. "뭐가 부족해서 잘난 남자들을 버리고 고작 그런 남편을 만나느냐"고 이야기하며 결혼식을 망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온갖 기억과 경험과 이야기들이 뒤섞여버린 채 남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보며 나는 '동화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토록 불안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실화-성공담 이야기를 내가 본 적이 있던가? 이후 스토리는 그 '지난한' 환경 속에서 잡은 기회들로 진행된다. 부유한 아버지의 새 애인에게 초기 투자금을 받고, 아버지의 정비소에서 일하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시제품을 마련한다. 그 과정에서 조이는 어느 때보다 단호해진다. 이혼한 남편에게 '이제 지하실에서 나가서 살아'라고 이야기하고,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요구한다. '그동안 나는 아빠가 필요한 건 무엇이든 해주지 않았느냐"며.


그렇게 다시 스케치북에 크레용으로 그린 첫 제품은 대걸레. 여러 번 감아 흡수력이 좋은 데다 무엇보다 걸레 부분을 대에서 쉽게 분리할 수 있어 직접 손으로 걸레를 만지지 않고 세탁기에 넣어버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사람을 시험하려드는 아버지의 애인으로부터 얻어낸 돈으로 첫 시제품을 만들지만 앞에 놓인 건 마찬가지로 어려운 환경 뿐이다. 믿을 수 없는 거래처, 언제든 태도를 부정적으로 변경하려드는 가족들, 아무리 노력하며 영업을 해도 팔리지 않는 물건. 


이 때 기억에 남는 장면은, 대걸레를 만들기 위해 일해줄 사람을 모집했을 때 나타난 직원들이 전부 여자라는 것. 그것도 이민자들. 



모든 것이 풀리지 않아 좌절하는 조이에게 전 남편이 등장해 자신이 아는 사람을 소개시켜준다. 무턱대고 홈쇼핑 방송국을 찾아간 조이는 겨우겨우 대표를 만나 설득할 기회를 얻고, 홈쇼핑에 출연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에 조이가 만나는 것은 참담한 실패. 그 때 조이는 다시 대표를 찾아가 담판을 벌인다. 직접 호스트로 나선 조이는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처음부터 자신의 꿈을 되찾아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친구의 전화로 용기를 얻고 경이로운 판매 기록을 세운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은 가혹할 뿐이다. 할머니는 그 성공의 날 죽음을 맞고, 기껏 몇 만 개의 주문에 맞추어 생산을 준비했으나 함께 일하는 가족들의 잘못된 판단과 거래사의 방해로 제품을 만들수록 손해만 보는 구조가 남아있었을 뿐이다. 집에 모여 홈쇼핑을 보며 성공을 자축하는 가족친지와의 즐거운 시간은 잠시뿐. 그들은 다시 태도를 바꿔 "실패할 줄 알았다", "너는 사업을 할 줄 모른다"는 이야기를 남길 뿐. 결국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조이에게 "파산동의서"에 사인하라는 독촉이 전부다.



직접 담판을 지으러 간 거래처도 마찬가지. 비합리적이고도 비협조적인 태도를 견지하던 그들은 오히려 조이의 아이디어를 빼돌려 특허신청을 하며 종지부를 찍는다. 법정다툼을 한다 하더라도 가족의 판단으로 인해 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 궁지에 몰리고 결국 파산동의서에 사인하는 조이가 남기는 말은 절망이다.



"10살 때 엄마가 했던 말을 그냥 들었어야 했어. 세상과 담쌓고 살았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할머니 얘긴 꺼내지 마. 할머니가 틀렸어. 내 머릿 속에 바보같은 생각만 잔뜩 심어놨다고!"



하지만, 물론, 영화는 거기에서 끝나지는 않는다. 조이는 절치부심하고, 계약서를 뒤지며 한참을 연구한 끝에 거래사의 치부를 밝혀내 담판을 짓는다. 돈을 받고, 특허도 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그 이후 조이가 거둔 성공을 짤막하게, 할머니의 내레이션과 함께 소개하면서. 앞선 실패의 과정과 비교하면 놀라울만큼 짧고, 압축적으로 제시될 뿐이다.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선글라스를 쓰고 담판을 짓는 조이. 흔히 말하는 '사이다'와 같은 장면 불과 몇 분을 위해 영화는 지난하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비합리의 시간들을 지난다. 그 과정의 전개 역시 불친절하고, 때론 의미를 알 수 없는 장면들로 가득차 있으며, 조이의 주변 인물들이 얼마나 조이를 괴롭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저런 사람들과 어떻게 가족의 연을 맺고 살아가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뇌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보는 이들에게 고통이 될 정도로 외롭고 괴로운 길을 조이는 걷고, 그 감정은 뒤섞여진 전개와 함께 드러난다. <조이>는 그런 영화다.


이 영화는, 엄밀히 말하면 성공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실패하는 이야기다. 그 실패의 과정 속에 놓인 한 사람의 감정을 다룬다. 비현실적이지만 놀랍게도 현실적이다. 우리의 삶은 사실 이렇지 않던가. 초라하고, 찌질하고, 어렵고, 부족하고, 험난한 상황들로만 가득하지는 않던가. 우호적으로만 보였던 이들은 조금만 어려워져도 등을 돌리며 "네가 망할 줄 알았다"고 자신을 비난하고, 가진 것 없는 자신 앞에 세상은 냉혹할 뿐이다. 본인들이 잘못된 판단을 해놓고 "너가 사업감각이 없다"며 뻔뻔한 모습을 견지하는 이들은 주위에 넘쳐나고, 나를 응원하는 이들은 떠나거나, 미약하다. 세상에는 나를 응원하는 사람보단 방해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이 영화는 "성공하는 과정"과 그에 따른 '사이다'를 준비하진 않았다. "저게 말이 되냐"고 할 정도로 잔뜩 '고구마'만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평가는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다. "이해 못할 장면들로 가득하고, 전개는 혼란스럽다"는 이야기들이 주류였다. 이를테면 아버지의 정비소 옆에 들어선 사격장의 이야기가 러닝타임을 채우고, 스트레스를 받은 조이가 그곳에서 총을 쏴대는 장면이 왜 등장해야만 했느냐는 질문이다.


하지만 정비소 옆에 들어선 사격장의 이야기는, 감독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 그저, 우리의 삶이 그런 것일 뿐이다. 우리가 봐왔던 '성공 스토리 영화'란 건 2시간이라는 시간 한정 속에서 온갖 지난한 일상의 과정들을 들어내고는 그 자리에 극적인 성공담을 메운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사실은 '비현실적'인 게 아닌지. 물론 나 역시 그런 성공담을 좋아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조이>가 그런 구성이 아니라고 해서 쓸데없이 비현실적이거나 러닝타임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영화가 조명하고자 하는 부분이 달랐을 뿐이다.



또 하나의 비판은 '결국 인맥, 그마저도 남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들뿐"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조이가 실제 살아왔던 시절에, 조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의 여성이 어디에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신 <조이>는 실제 조이의 옆에 섰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영화가 채우지 못하는 여성의 빈 자리를 채운다. 언제나 조이를 지켜보고 응원했던 할머니와 친구, 묵묵히 자신을 따랐던 딸, 그리고 작은 정비소에 찾아온 여성들. 물론 그 서사는 미약하고 '대안적'인 것에 불과하게 느껴지지만, <조이>가 '엉망진창'인 현실에 집중한 영화라면, 어찌보면 그 역시 당연한 일은 아닌지. 


"너도 잘생긴 왕자님이 필요해"
"아니, 필요없어. 이건 아주 특별한 능력이거든"


왕자가 필요없다고 되받아치는 어린 조이,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남성들을 물리치고는 "내가 직접 할거야"라고 선언하며 일을 해결하는 조이. 영화가 전하는 서사는 그곳에 있다. 물론 그에 대한 평가야 다분히 나뉠 수 있음이 당연하지만, 이 영화가 단순히 남성이 결국엔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만 본다면 그것은 최소한 내 시각은 아니다. 결국 결정을 내린 것도, 그림을 그린 것도, 사람을 설득한 것도, 직접 홈쇼핑 생방송에 나간 것도, 거래처를 만난 것도 모두 조이다. 그리고 조이를 움직인 건 결국 조이 자신이었고, 할머니였고, 친구였고, 딸이었다.



이 영화가 인생 영화로 남을만큼 멋진 영화였느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하지만 썩 괜찮았다. 최소한 여러 영화들 중에서 짚을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성공 스토리를 이렇게도 그려낼 수 있구나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이 영화는 충분했다. 밝은 햇살을 강조하는 여타 영화들과 달리 눅눅하고,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지배하는 <조이>는 내게 어른을 위한 동화같은 영화였고, 그것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러니까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은, 짜증을 유발하는 가족들과 성공보다는 실패로 가득하고 멋지기보다는 엉망진창인 일상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굳이 뉴욕의 한 복판을 당당하게 걷거나, 고층 빌딩을 오르내리지 않고도, 우린 다른 장면들을 담아내고 상상하고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퀴퀴하고 어딘가 늘 고장나있는 집안, 방해만 되는 집안 사람들, 잘 풀리지 않는 직장... <조이>가 주는 이 배경들은 단순히 '그래서 조이는 이런 지긋지긋한 환경들 속에서도 성공했답니다!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여러분도 노력을 하세요!'를 위해 소비되지 않는다. 그저, 실체로 존재할 뿐이다. '원래 삶은 이 모양이지. 사실 그렇지 않아?'라고 조용히 우리에게 속삭이듯이.



비교가 쉬운 세상이다. 곳곳에서 대단하고도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구질구질한 일상'이 사라진 세상은 완벽함과 성공 스토리만이 그 자리를 그득그득 메울 뿐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SNS에도 등장하지 않는 '일상의 엉망진창'은 그 어느 시간보다 내 곁에 머물고, 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세상에 보여지지 않는, '완벽한' 세상 속에서 보여주기도 부끄러운 '찌질'들이 나라는 사람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난 그것을 외면할 수 없다. 


<조이>가 내게 준 메시지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조이'도 일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이름마저 'JOY'인 그에게도 대부분의 일상은 'JOY'와 가깝지 않았다는 것. 이런 성공영화도 있구나, 이런 '잔혹동화'도 있구나. 오히려 감독의 다른 영화가 궁금해지는 영화였다. 그리고 조이로 분한 배우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력에 감탄했던 영화였다. <인턴>에서 봤던 '대현자' 할아버지가 너무나 완벽한 망나니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도 <조이>가 선사한 자그마한 재미라 할 수 있겠다.




넌 나중에 커서 강하고 똑똑한 여성이 될거다. 아주 멋진 것들을 만들어 낼 거야. 지금처럼 말야. 알았지?





개인적으로 이 포스터가 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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